☕️☕️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과 조용한 빅테크

[키티의 빅테크 읽기] 13화. 무대 뒤의 정치 셈법과 지켜보겠다는 테크 기업들
최근 통과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은 기후위기 대응 법안이라고 불릴 정도로 관련 산업에 대한 지원이 핵심이었죠.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미국의 탄소배출량을 40% 감축하겠다는 목표가 담긴 이 법안은 향후 미국의 산업 구조를 크게 바꿀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련 공급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할 것으로도 벌써 예상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통과된 이 법안에는 수많은 인물이 무대 뒤에서 움직이면서 큰 타협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는데요. 오늘 [키티의 빅테크 읽기]는 큰 무대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인물들이 활약했고, 어떤 정치 역하기 작용했는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법안에 반대는 하지만 조용했던 빅테크 기업들의 향후 셈법은 무엇일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키티의 빅테크 읽기] 13화.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과 조용한 빅테크
무대 뒤의 정치 셈법과 지켜보겠다는 테크 기업들
지난 8월 초, 미국 의회는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 이하 IRA)'을 통과시켰다.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제2의 루즈벨트를 꿈꾸면서 1년 내내 통과시키려고 용을 썼던 '빌드 백 베터(Build Back Better, 이하 BBB)'와 얼개는 비슷하지만 바이든 인기 추락의 주범이었던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겠다는 목적으로 탈바꿈시킨 법안이다. 

법안 통과 뒤엔 어떤 인물들이 있을까? 어떤 정치 셈법이 있을까? 테크 기업들은 어떻게 반응했으며 그 이유는 뭘까?  

척 슈머 민주당 상원의원 원내대표가 IRA 상원 통과 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그는 민주당 50명의 전원 찬성을 끝내 끌어냈다. © MSNBC

마지노선 50명 찬성을 이끈 척 슈머

법안 통과를 주도한 미 민주당 의원들은 통과 후 울먹이거나 감격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는 법안을 통과시킨 날 자신의 '럭키 수트'라는 푸른색 양복을 입고 등장해 "IRA 통과는 21세기의 위업이 될 것이"라며 감격의 연설을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이제까지 내 상원 생활 중 가장 통과시키기가 어려운 법안이었다"며 "얼마 전 98세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늘 옳은 일을 하고 끈질기게 버티면 이뤄낼 것이라고 했었다"라며 감격을 표현했다.

"상하원 다수당이 법안 하나 통과시킨 것뿐인데 무슨 호들갑인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업적이 맞기는 하다. 법안의 골자 중 하나인 기후위기 대응은 근본적으로 미국 에너지 소비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기존 화석연료 생산 주들의 반발이 심했다. 슈머는 현재 50:50으로 팽팽한 의석수를 기록하는 상원의 여당 원내대표로서 같은 당의 보수-중도파 의원들을 모두 이 법안 찬성에 참여시킨 주역이다. 

2021년의 BBB, 그리고 올해 IRA. 두 법안은 국민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건설(build)'이나 '인플레이션 감축'을 이름에 내세웠지만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다음 세 가지다. (상세 내용은 왜 기후위기 대응 법인일까? 참고)

  • 기후위기 대응
  • 저소득층 의료비용 절감
  • 대기업 최소법인세 15% 부과를 비롯한 조세 정의 실현

IRA는 법안 이름만 보면 인플레 때문에 궁지에 몰린 여당이 11월에 있을 중간선거 흥행을 위해 급조한 퍼주기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일성인 21세기판 뉴딜 정책의 미니 버전이다. 향후 10년 동안 4300억 달러(약 558조 원)를 투입해 기후변화 대응, 저소득층 중심의 건강보험 등에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이 법안의 인플레 억제 효과는 미 CBO(Congressional Budget Office, 의회 예산처)에서도 밝혔지만 미미한(minimal) 수준이다. 오히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각종 보조금을 기술 개발 기업과 그런 상품을 사는 소비자들에게 지급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돈을 시중에 더 풀게 된다. 단, NPR의 분석에 따르면 이 법안으로 인해 실제 에너지소비를 줄이거나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가 감소한다면 사회적 비용이 줄어드는 점진적 효과는 있다.  

IRA 자체에 직접적 물가 인상 억제 효과가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이 법안은 메디케어(Medicare, 고령층 의료보험)에서 국가가 제약사들과 직접 약값을 네고할 수 있도록 하면서 메디케어를 이용하는 미국인들의 실제 의료비를 낮출 전망이다. (그러나 제약사들은 아마도 이렇게 지출한 비용을 다른 민간건강보험 가입자의 약값에 떠넘길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많은 언론은 이 법안의 가장 큰 인플레 억제 효과는 그 이름 자체에 있다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은 실물 경제의 움직임에서도 발생하지만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불안감이나 심리가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기는 '기대인플레이션'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미 정부가 드디어 '인플레이션 감축'이라고 이름 지은 법안을 통과시켜 인플레이션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인상을 주기에는 안성맞춤인 이름이다. 

물론 상당수의 미국 언론인이나 공화당 정치인들은 법안 명칭 자체가 기만적이라고 하지만 작명할 때는 당연하게도 그런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버니 샌더스 의원이 IRA 통과 후 상원에서 연설하는 모습. 그는 이번 IRA 법안을 그야말로 하드캐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포브스
법안을 하드캐리해 온 버니 샌더스
이번 법안은 상원에서 절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이 '예산 조정(Budget Reconciliation)'*이라는 미국 의회의 입법 절차를 통해 민주당 의원 전원 찬성과 부통령의 캐스팅보트를 통해 통과시켰다. 간신히 통과시킨 주역은 척 슈머지만 이 법안의 기안부터 발의 방법까지 멱살 잡고 하드캐리한 인물은 단연 버니 샌더스다. 
* 예산 조정은 특정 예산안에서 의결정족수의 단순 과반 충족 시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미국 의회의 절차이다. 상원에서는 대부분 법안이 60표 이상을 확보해야 통과 가능하다. 그러나 조정 절차는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없이, 단순 과반인 51표 이상만 확보하면 법안이 통과된다. 현재 상원은 상원 의장인 부통령이 민주당이므로 부통령의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면 51표를 얻을 수 있다.

현재의 기후위기는 국가적인 대응책 없이는 해결은커녕 악화를 막지도 못할 상황이다. 미국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국가적으로 큰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런데도 2022년 전까지 미 의회 차원에선 한 번도 대규모 환경 대응 법안을 통과시킨 적이 없었다. 

대선 경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은 자신을 지지하는 환경단체 및 진보 세력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바이든을 지지하게 이끌었다. BBB와 IRA에 '환경 대응'이 반드시 들어가게 된 원동력이 됐다.

샌더스의 평소 진보 성향이 법안 기안에 큰 영향을 끼쳤다면 그의 상원 내 지위는 이 법안의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 그는 상원 예산위원장으로 환경 및 복지 지출을 위한 재원 마련 방법까지 법안에 담았다. (아무리 법을 만들어 놓아도 그 법안을 실행할 예산을 책정하고 예산이 나올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법이 무용해진다는 건 한국 이동권 시위를 둘러싼 장애계와 기재부의 줄다리기 사이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샌더스는 IRA에 대해 상원에서 공개 발언하면서 "이 법안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면서도 이 법안이 정부지출을 대거 확대한다는 지적에는 반발했다. "이 법안에서 쓰이는 정부지출은 대기업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기업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건 샌더스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의회에서 민주당에 소폭의 우위가 있는 바이든 정부 1기 기간(2022년 중간선거 전)에 '공화당 없이' 민주당의 단순 과반을 통해서라도 이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는 게 바이든의 목표였다. 

그럴 작정으로 샌더스가 시도한 건 예산 조정 절차였다. 

물론 야심 차게 계획했던 원안에는 당초 5550억 달러(약 745조 원)이 세금 공제와 보조금 등으로 책정되어 있었지만, 그 금액은 줄다리기 과정에서 3690억 달러(약 479조 원)로 줄었다. 샌더스는 IRA 원안이 대거 후퇴한 것에 대해서는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필요한 한 걸음을 내딛었다"라고 표현했다.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조 맨친은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이끌었고, 애리조나주의 키어스틴 시네마는 막판에 변수를 던졌다. (사진: 조 맨친 페이스북, 키어스틴 시네마 공식 프로필)

X맨이던 조 맨친과 막판 변수 키어스틴 시네마

이번 IRA에는 화석연료 사용 증대나 온실가스 확대를 하면 불이익을 주는 '채찍’이 없다. 오히려 미국 화석연료 산업은 이미 받고 있는 연간 150억 달러(약 20조 원)의 세금 감면 및 기업 복지 외에도 향후 10년간 수십억 달러의 새로운 세금 감면과 보조금을 받게 됐다.  

이는 웨스트 버지니아주 조 맨친 상원의원의 요구사항이었다. 웨스트 버지니아는 압도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공화당 성향 주다. 1910년에 광산 소유주와 노동자 사이에 광산 전쟁이 일어났을 정도로 광산 산업이 컸고 현재도 에너지 산업이 고용을 주도한다. (맨친 가족은광산 소유주로 이 지역의 큰 경제 동력인 화석연료 산업의 이익을 적극 대변하고 있다.)

참고로 웨스트버지니아주를 묘사하는 유명한 노래인 고 존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에는 '광부의 아내는 푸른 물에 익숙하지 않다...어둡고 먼지 많은 곳(Miner's lady stranger to blue waters...Dark and dusty)'이란 가사가 나온다.

키어스틴 시네마(Kyrsten Sinema) 상원 의원은 민주당 의원 중 가장 친기업적 의원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IRA 법안에서 시네마는 막판에 카드 하나를 들이밀었다. KKR, 베인캐피털 등의 사모펀드, 헤지펀드 경영진이 받는 투자 성공 보수(carried interest) 세율 인상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IRA에 찬성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에서 이들 펀드매니저가 받는 투자 성공 보수의 낮은 세율은 세금 시스템의 큰 구멍으로도 꼽힌다. 미국에서 이들 펀드매니저가 받는 성공보수엔 소득세(40%)가 아닌 자본이득 세율, 그것도 장기적 자본이득 세율(20%)이 적용된다. IRA 원안은 이 장기로 정해진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자는 안이었다. 자본이득이라 함은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자기 돈으로 투자하여 번 이득이고 미국에서는 이런 투자에 위험 요소가 있다고 하여 이익에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반면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는 남의 돈을 갖고 투자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들 경영진 상당수는 인당 1억 달러(약 1340억 원)가 넘는 성공보수를 받는 초고소득자면서도 대다수 봉급생활자 미국인들의 절반밖에 안 되는 세율을 적용받는 셈이다. 애초에 성공보수를 소득 대신 ‘자본이득’으로 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투자 성공 보수에 대한 세율 조정은 트럼프 전 대통령도 대선공약 중 하나로 내놨을 정도로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의원 상당수가 공통으로 찬성하는 의제였다. 심지어 재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다. 워런 버핏이 "비서가 내는 소득세율보다도 내 세율이 낮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게 벌써 11년 전이다. 대형 증권사 제이피 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도 이에 찬성한 바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운영자들은 당연히 세율 인상을 막고 싶어 했다. 그동안 이들은 어마어마한 정치 로비를 진행했다. 지역 스타트업이나 기술기업에 지분투자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며 세율 인상이 "중소기업과 지역경제, 혁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쳐 왔다. 시네마 또한 애리조나주의 중소기업들에게 이로운 사모펀드나 헤지펀드 세율에 손대면 안 된다는 게 논리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자 CNBC의 유명 앵커 앤드류 로스 소킨(Andrew Ross Sorkin)이 지적한 대로 이 논리는 말도 되지 않는다. 투자 경영진들에게 부과되는 세율이 직접적으로 이 펀드의 투자에 영향을 끼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경영진 세금이 높아진다고 기업을 사들이거나 지분투자한 후 해당 기업을 구조조정을 해 팔아치우는 큰 장사를 사모펀드나 헤지펀드가 놓칠 리도 없다)  

알파벳,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 CEO들이 소속된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법안 통과를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홈페이지)

테크 기업들은 왜 아직 조용할까?

비록 투자 성공보수에 대한 세금 구멍을 메우는 데엔 실패했지만, IRA 법안은 샌더스 의원이 말한 대로 대기업들에 대한 세금 부과를 통한 세원 확보에 성공했다. 직전 3년간 연평균 영업 이익이 10억 달러(약 1조 3400억 원) 이상인 대기업들에 15%의 최저법인세를 매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최저법인세까지 지정해야 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미국 연방법인세는 21%다. 그런데 워낙 기업들에 대한 각종 공제와 감면 혜택이 많아서 실제 대기업들에게 매겨지는 실효세율은 15% 이하였다. 미국 상당수의 대기업은 주주에게 공개하는 이익 대비 국세청에 보고하는 이익을 대폭 낮추는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해 왔다. 

실제로 조세경제정책연구소(ITEP)가 2021년 4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큰 대기업 중 AMD, 페덱스, 나이키, 세일즈포스 등 55개 기업이 2020년에 연방 소득세를 아예 내지 않았다. IRA에서는 기업들이 국세청에 보고하는 이익 기준이 아닌 실제 장부 이익 기준으로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 법안으로 아마존을 비롯한 다수 기업에 상당한 세금이 부과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당연히 미 상공회의소(테크기업들도 상공회의소 회원이다)는 반대 성명을 냈다.  

하지만 테크 기업 상당수가 기후위기 대응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은가? 테크 기업들 개별적으로는 IRA에 대한 의견에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모인 협회의 의견은 어떨까?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CEO가 소속된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TBR, The Business Roundtable)은 이 법안을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건 TBR의 설립목적 중 하나가 IRA법안에서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지는 기후위기 대응에 있다는 거다. TBR의 홈페이지에는 "기후변화가 미치는 최악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전 세계가 함께 협력하여야 한다"라며 "금세기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파리기후협약 내용에 동의한다"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아예 기후 행동을 유도하는 단체는 어떨까? "기업, 투자자 및 자선가를 참여시켜 보다 대담하고 광범위한 기후 행동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로비에 반대한다는, 구글, 세일즈포스가 회원인 드로다운랩스(Drawdown Labs)는 IRA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 역시 침묵했다. 

테크 전문 매체인 프로토콜은 "개별 기업은 업계를 대변하는 협회의 입장과 다를 가능성도 있지만 그동안 테크기업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목소리를 높여온 걸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IRA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채찍 대신 당근을 주로 제시한다. 민간 섹터에 갖가지 기술 투자와 지원금, 보조금을 준다는 게 골자다. 따라서 이들 빅테크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열게 될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이번 법안 통과로 인해 환경 영향을 측정하고 모델링, 활성화, 관리를 할 수 있는 민간 소프트웨어가 널리 보급될 수 있게 됐다.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는 "탄소 집약적 산업이 탈탄소화로 성숙하면서 에너지, 운송, 제조 등에서 소프트웨어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며 "IRA는 탈탄소 전환에 따른 대규모 국가 투자를 약속한 만큼 기술기업들이 이런 혁신의 물결에 올라타야 한다"고 말했다. 

테크 기업들의 침묵은 아마 그런 새 기회를 이미 찾아보고 있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다.

물리학자이자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인 윌리엄 하퍼(William Happer)는 2018년에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시니어 디렉터로 임명되면서 탄소배출과 기후위기에 반하는 근거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방송에 출연해 "이산화탄소는 나치에게 박해받은 유대인과 같은 존재"라는 기이한 주장을 펼쳤고, 임명된 지 1년만인 2019년에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기후 관련 과학자가 아니다. © CNBC

큰 위업이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

IRA는 민주당의 큰 위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인간이 지구의 생물다양성을 위협한다는 주제의 책인 <제6의 멸종>으로 2015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뉴요커의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 기자는 이번 법안이 실제로 기후위기의 속도를 늦추려면 강력한 정부 드라이브와 국민의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화석연료 발전소 폐쇄와 전력망 교체와 같은 거대한 기술적 과제를 이행해야 한다. 

문제는 그나마 환경위기를 위기로 인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의회 우위가 유지될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는 거다. 민주당은 IRA를 통과시키기 위해 조 맨친처럼 화석연료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는 상원의원까지 동원해야 하는 처지다. 공화당은 IRA가 핵심으로 짚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한 국가적 대응, 서민 의료부담 경감에는 큰 관심이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 개별 공화당 의원 중엔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을 수 있으나 이미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초당적 협력이 거의 불가능해진 지금, 공화당이 통일된 의견을 모아 환경 이슈에 대응할 거라고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공화당은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환경 운동가들을 '문화전쟁의 대상'으로 삼아 공격하는 보수 성향이 더욱 심화됐다. 트럼프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와 트윗으로 설전을 벌이는 등 지구온난화 자체를 믿지 않았던 건 유명하다. 요즘 공화당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소위 '뉴라이트' 정치인들은 이런 경향이 더 심각하다.

빅테크 기업인 중에서도 공화당에 가장 영향력이 큰 피터 틸의 오른팔로 불리우는 애리조나주 상원의원 후보인 블레이크 매스터스는 아예 "지구온난화란 게 진짜 존재하는지부터 제대로 알아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6년 트럼프 당선 후 대통령 인수 위원회에 파견됐을 때 매스터스는 대표적인 지구온난화 부정론자인 윌리엄 하퍼(Willian Happer)를 트럼프 정부에 일찍이 꽂아 넣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자국 우선주의가 득세하면서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미 정치인들이 미국 내 제조업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게 IRA의 실현 가능성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IRA는 미국 기업에 비현실적으로 편향되게 보조금과 재원을 책정해 놨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일정 부분 이상 생산되는 전기자동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인데, 지금까지 글로벌 소싱으로 생산해온 제조사들이 그렇게 당장 수급 구조를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수입 자동차 업체들의 불만이 높다. (당장 한국 전기차 판매 확대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자국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물론 미국인들 입장에선 기후위기 대응을 계기로 차세대 환경 산업에서만큼은 외국 기업들(특히 중국)에게 의존하지 않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를 완화하려면 전 세계적인 공조, 특히 에너지 생산 여력이 있는 선진국들이 주도하여 기술을 공동 개발해야 전 지구의 공동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모두가 자국 이익만 생각하는 국가주의의 부상"이라고 말한다. 중국과는 첨예하게 대립하며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미국이 다른 개발도상국가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희생을 강요하기 어렵기도 하다.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누가 이길지가 앞으로의 방향에 (당연히) 가장 큰 변수이다.  

중간선거 지켜볼 예정인 테크 업계

한편,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100일 정도 남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생각보다 선전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인플레이션이 심각했던 올 초만 해도 민주당은 대패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가 임신 중단에 대한 미 대법원의 보수적 판결로 진보 세력 집결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바이든 정부는 뒷심을 발휘해 한꺼번에 여러 가지의 민생 법안을 통과시켰다.

총기 규제법, IRA에 이어 8월 하순엔 대통령 공약 중 하나였던 '학자금 대출 탕감'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반면 트럼프가 임기 중 여러 기밀문서를 플로리다 마라라고 자택에 옮겨놨다는 정보를 입수한 FBI가 압수수색을 하며 극우 지지자들의 집결도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는 이외에도 1월 6일 의회 습격 사건을 비롯해 탈세 등 다양한 의혹으로 각종 수사, 조사 중이며 지지자들은 정치 탄압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한마디로 중간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거다. 

얼마나 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졌냐 하면, ‘노잼 꼰대 할아버지’ 이미지로 인기가 없는 바이든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밈이 유행할 정도다. 일련의 정책 성공을 통해 ‘일하는 대통령’ 이미지가 부각되었고 알카에다 지도자를 드론으로 사살한 후부터는 바이든을 마블 히어로처럼 묘사한 '다크 브랜든(Dark Brandon)'*이란 밈이 소셜미디어에 돌면서 민주당 지지층들을 달구는 중이다. 

* 2021년 한 자동차 경주에서 브랜든 브라운이라는 한 선수를 인터뷰하던 방송 리포터가 바이든을 조롱하는 욕설 시위 구호(“FXXX Biden!”)를 잘못 이해해 '고 브랜든(Go Brandon)’이라고 말했다. 이후 바이든 반대론자들은 '고 브랜든'을 바이든 조롱에 사용했는데, '다크 브랜든'은 이 조롱 구호를 역으로 뒤집어서 바이든을 어떤 수퍼파워를 가진 존재로 묘사하는 밈이다. 밈 유행은 일종의 팬덤을 상징하기에 바이든처럼 인기 없는 대통령에 대한 밈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최근 일련의 정책 효과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밈을 양산해내고 있다. © Vox  

정치를 희화화하는 이런 밈들이 11월 중간선거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무엇보다 약간 안정세에 접어든 자동차 기름값이 언제 어떻게 다시 치솟아 미국인들의 인플레이션 불안감을 자극하고 이들이 "장바구니 물가가 오른 건 민주당 탓"이란 공화당의 논리가 다시 먹혀들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이든의 '다크한 힘' 덕분인지 (8월 3주 예측 기준) 하원의 경우 근소한 차이로 공화당이 우위를 점하겠지만 상원은 어쩌면 현재의 50:50 구도를 지킬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예측이 나오고 있다. 만약 이 예측이 맞아떨어진다면 미 중간선거에서는 여당이 필패한다는 그동안의 법칙을 깨게 된다.

물론 이런 변화를 테크 기업들의 대정부 담당 부서들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테크 기업들은 기업 법인세 인상을 통해 기후위기와 의료 불평등 대응을 하겠다는 민주당이 눈엣가시 같겠지만, (적어도 캘리포니아주나 워싱턴주에 위치한 회사들은) 진보 성향의 직원들과 젊은 이용자들을 의식해서라도 민주당의 방향성에 반기를 들긴 어렵다. 그러니 이번 중간선거에서 테크 기업들은 은근히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길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들 기업이 가진 큰 힘을 어디에 쓰는가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피벗(Pivot) 팟캐스트 등으로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중이고, 테크 업계의 존경받는 언론인인 카라 스위셔(Kara Swisher)는 최근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메타가 호라이즌 월드 VR 플랫폼을 출시하며 마크 저커버그의 아바타를 전면에 내세운 걸 보고 "이보다는 기후위기 대응 기술을 연구해 내놓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일침을 놓았다. 꼭 보조금 때문이 아니라도 이들 빅테크 기업들이 기후위기에 좀 더 과감한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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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티의 한글 이름은 홍윤희이다. 이커머스 기업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소셜임팩트를 담당한 바 있다. 딸의 장애를 계기로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자는 취지의 협동조합 무의(Muui)를 운영하며 2021년 초 카카오임팩트 펠로우로 선정됐다. IT, 미국 정치, 장애, 다양성, 커뮤니케이션 등의 주제를 넘나들며 페이스북브런치에 글을 쓴다. 한국일보, KBS 제3라디오, IT뉴스 미디어인 아웃스탠딩 등에 정기 기고와 출연 중이다.

[키티의 빅테크 읽기]는 미국 빅테크와 테크 산업이 끼치는 경제사회 및 정치적인 영향에 대해 다루는 롱폼(Long-form) 아티클이에요. 전체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맥락과 행간을 놓치지 않는 시선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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