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12화. 과연 중국과의 이별은 가능할까? 최근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이 본격적으로 커지는 가운데, 두 국가가 1979년부터 이어온 과학기술 협정 또한 이어지지 못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이 협정은 정기적으로 당연하게 연장이 되면서 미국이 앞서기도 하고, 중국이 앞서기도 한 광범위한 분야에 두 국가의 연구진 간 협력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끈이었는데요. 미국 의회 내 이 협정을 종료시키겠다는 움직임에 대해 마침 어제 월스트리트저널이 단독 보도를 내보냈어요.
지난 몇 년간 무역 갈등이 이어지면서,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 관계는 점차 고조되어 왔죠. 최근 미국이 각종 기술의 수출 금지를 걸면서, 더 본격화한 디커플링 움직임은 쉽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라는 경고도 꾸준히 나왔고요. 디커플링은 중국만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 이를 추진하는 미국과 미국이 동참을 요구하는 동맹국들에도 손해이기에 쉽지 않다는 경고가 나오지만, 현재로서는 미국이 노선을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디커플링이 계속되면 어떤 영향이 생길까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국가들은 이들의 이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이 쉽지는 않을 테지만,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는 복잡한 상황의 핵심을 명료하게 짚어줍니다. |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12화. 이별을 준비하는 미국의 자세 |
보호주의에 나선 미국의 변신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이 미국임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고도화된 자본 시장, 달러라는 기축통화의 지위, 방대한 원천 기술, 여기에 막강한 구매력을 갖춘 소비 시장까지. 글로벌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속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즉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고 국제사회가 다극화되기 시작 후 미국 정치의 흐름을 읽어나가다 보면 2023년 현재에 이르러 다소 당황스러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레이건(공화당), 조지 H.W.부시(공화당), 빌 클린턴(민주당), 조지 W.부시(공화당), 버락 오바마(민주당),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조 바이든(민주당) 순서로 민주-공화 양당이 번갈아 가며 정권을 잡아 왔다. 공화당은 레이건 정권 이후 경제, 사회 이슈 전반에서 보수화가 극심해졌다는 점 외에는 특이 사항이 없다. 즉 크게 방향을 트는 일 없이 비교적 일관적인 노선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민주당이다. 1990년대, 소위 골디락스* 경제를 이끌었던 클린턴 정권은 지금의 조 바이든 정권의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신자유주의 무역 정책의 첨병이었다. 심지어 클린턴 행정부는 그 어렵다는 연방 정부 살림의 흑자 달성까지 해냈는데, 이는 클린턴 정권이 비교적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 경제가 성장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낮은 상태. 일반적으로 경기 확장은 수요 증가로 인한 물가 상승을 촉발하므로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데, 인플레이션조차 통제 범위 내에 있어서 모든 것이 이상적인 경제를 가리킨다. 숲속에서 길을 잃은 금발 머리 소녀가 곰 가족이 사는 집에 들어갔다가 아빠 곰의 죽은 너무 뜨겁고, 엄마 곰의 죽은 너무 차갑고, 아기 곰의 죽이 입맛에 딱 맞았다는 동화에서 따왔다. 그런데 불과 20년 만에 바이든의 민주당 정권은 보호주의를 넘어 신냉전 시대에 가까운 통상 정책을 내세우며 전략적 적국(말할 필요 없이 지금은 중국)을 고립시키고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을 국제 무역의 무대로 끌어내 그 보상으로 달콤한 골디락스 경제를 누렸던 클린턴 정권과는 이보다 더 대조적일 수 없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골디락스가 가능했던 것 자체가, 미국 경제가 팽창하는 와중에 경제 개방의 문을 열어젖힌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이 소비자 물가를 전방위로 끌어내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황이 바뀌면 전략도 바뀐다.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도, 또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공화 양당이 선명한 당파성을 내세우는 전략적 노선을 취했다기보다, 오히려 집권당이 어디냐와는 관계없이 '미국'이라는 국가가 적어도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일관적으로 지향해 온 큰 그림이 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이 큰 그림의 방향성이 바뀌었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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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팽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중국을 국제 무대로 끌어낸 건 미국이었다. 하지만 이제 정반대의 전략을 취하는 중이다. |
바뀐 노선이 미국의 시대 정신? 이코노미스트의 아시아 지국장을 거쳐 현재는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국제관계 논설위원으로, 지정학 전문가로 꼽히는 기디언 라크먼(Gideon Rachman)은 "도널드 트럼프는 신뢰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지만 적어도 그가 레이건 이후 40년 동안 민주-공화당 정권을 막론하고 추진해 온 자유시장의 철학을 뒤집어엎는데 성공"했으며, 그로 인해 미국의 외교 및 국내 정책에 역사적인 노선 변경이 일어났다고 진단한다. 트럼프를 밀어내고 정권을 탈환한 바이든 정권의 정책 역시 큰 틀에서 트럼프의 그것과 (좀 더 교양있고 좀 더 체계적이라는 점 외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라크먼은 주장한다.
실제로 경제와 관련하여 레이건 이후 대통령들의 행보를 보면, 빌 클린턴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추진했고, 조지 W. 부시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환영했으며, 버락 오바마는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에 합의했고 중국과 양자투자협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을 단숨에 뒤집어 놓았다. 취임 연설에서 트럼프는 "미국이 학살당하고 있다"며 그 책임을 세계화 탓으로 돌렸다. (취임식장에 있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 말을 듣고 "정말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라고 중얼거렸다고.)
취임 첫날 미국은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에서 탈퇴했고, 대 중국 관세를 무더기로 부과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도 뜯어고쳤다. 이 모든 것이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온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되었다. 2017년에는 신 국가 안보 전략을 발표하여 중국과의 새로운 경쟁 관계를 국제노선으로 내세웠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바이든 정권은 트럼프 시대의 정책 유산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바이든노믹스'는 미국의 제조업을 부활시켜 중산층을 재건하겠다는 트럼프의 슬로건과 거의 일치한다. (물론 기후위기와 미래 에너지에 대해서는 트럼프의 노선과는 완전히 다르며 이게 결정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또한 트럼프보다 더 일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트럼프는 앞에서는 중국을 격하게 비난하고 돌아서자마자 시진핑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는 등 변덕스러운 언행을 보였으나,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좌절시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모든 정책을 여기에 집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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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미국 제조업은 부활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IRA(인플레이션 감축 법안)가 기폭제가 된 리쇼어링(Reshoring)도 계속되는 중이고, 대표적으로 미국 내 차량 생산 등은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 AFP) |
노선이 바뀔 수 없는 상황이기도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라크먼이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민주당에 안겨준 충격이다.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좌절과 분노를 지금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이른바 '먹고사니즘'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과는 1990년대 클린턴 민주당의 금과옥조였던 자유 무역주의의 포기였다.
두 번째로는 지난 40년간의 대 중국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으며 시진핑이 이끄는 현재의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진단이다.
지난주 백악관은 반도체, 양자 컴퓨팅, 인공 지능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대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새로운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이미 미국은 최첨단 반도체 등 핵심 기술 제품의 수출을 금지했고, 이러한 제품의 생산 기반이 되는 기술 이전도 봉쇄했다. 이번 행정 명령의 핵심은 더 나아가 아예 미국 투자자들이 중국의 기술 부문에 자본 투자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마이크 파일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문제는 자본 투자 자체가 아닌 전문가와 추가적인 접근성"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미국 투자자가 중국 기업에 투자하면서 특허, 데이터, 소프트웨어 등 지식재산권 등 중요한 무형 자산을 함께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대중국 투자는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크게 축소되었다. 대표적으로 중국에 중점적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및 사모펀드에 대한 달러화 투자는 2021년 950억 달러(약 127조 2500억 원)에서 2022년 140억 달러(약 18조 7500억 원)로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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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중국은 핵심 분야에서 이룬 과학적 성과가 미국을 앞서고 있다. 위 그래프에서 보듯 권위 있는 학술지에 발행하는 논문의 수를 이제는 한참 앞서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과학자들 사이의 학술 교류도 활발하다. 이런 교류를 끊어내는 것은 오히려 미국에 안 좋을 것이라는 경고도 과학계를 중심으로 나오는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최근 관련 보도에 의하면 미국에서 이룬 과학적 성취(고품질 논문 기준)의 40% 이상은 해외의 연구자들과 함께 협력해 만든 것이다. 이중 중국의 비중이 가장 높다. 당연히도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가장 큰 파트너이다. (데이터: 클래리베이트, 월스트리트저널) |
같은 편 설득하기 쉽지 않은 상황 하지만 '포스트 트럼프' 시대의 미국이 밀어붙이는 새로운 무역 정책이 과연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우선 중국은 얼마든지 미국의 정책에 맞불을 놓을 수 있다. 주요 광물 및 의약품 중에는 중국이 독점 공급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미국의 제약, 생명공학, 친환경 배터리 등의 분야가 고스란히 리스크에 노출되며,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려면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와는 달리 미국의 동맹국들, 특히 전통적인 동맹인 유럽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여기에는 미국의 '자국 제조업 우선주의' 노선이 한몫한다. 과거에는 미국의 안보 동맹이 되면 경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미국의 안보 우산을 쓰고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일본이 가장 좋은 예이다.
지금은 아니다. 안보도, 경제도, 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지겠다고 하면서 그 비용은 동맹국들이 모두 함께 분담하자는 미국에게 왜 우리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들은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좀 덜 과격적으로 들리는 용어를 만들어 내며,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중 경제 제재를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역과 고위급 외교에서 여전히 중국과의 교류를 이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 동맹국들의 협조 없이 공급망에서 완전히 새 판을 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포위 작전”은, 만약 정말로 실행에 옮긴다면, 생각보다 훨씬 길고 정교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러지 않으면 승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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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들과도 각종 분야에서 촘촘이 연결되어 있는 중국을 포위하는 것이 가능할까? 동맹국들을 만족 시키면서도 아주 정교한 전략을 짜내지 않는한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
그리고 디커플링 사이에 '낀' 나라들 올해 상반기 글로벌 베스트셀러였던 <반도체 전쟁(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경제와 안보를 분리해서 중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하여 안보에서 타협을 얻어내려는 미국의 전략에 상당히 회의적이다. 밀러 교수는 "미국의 경제 제재를 이겨낼 수 있다는 중국의 자신감"을 전제로 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이 경제 제재를 높일수록 중국은 첨단 기술에서 서방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고, 실제로 중국의 공산품 무역 흑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친환경 기술에서 중국의 최근 약진은 눈부시다.
중국은 석유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전 세계가 자국의 태양광 패널 및 배터리 공급망에 더더욱 의존하게 되도록 거침없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 판매가 급증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경제적으로 코너에 몰리면 중국이 두 손을 들고 안보에서 양보의 스탠스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못해 위험하다고 밀러 교수는 꼬집는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라나 포루하도 정확하게 같은 점을 지적한다. 오랫동안 서방에서는 안보와 시장은 별개라고 생각해 왔지만, 중국에게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는 하나라고.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경제란 결국 국가 안보, 다른 말로 체제 유지를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이 최종적으로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능하다 해도, 단기간에 원만한 합의 이혼으로 끝나기는 난망이라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입장이 난처한 것은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소위 '낀' 나라들, 즉 한국과 일본, 대만이다.
사실상 먼저 선전포고를 한 미국조차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장기전에서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세밀하고 미묘한 줄타기가 절박한 시점인데, 한국은 전략적으로 얼마나 대비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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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안젤라는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주목해야 할 거시경제 변화와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Long-from) 아티클입니다. 급격히 변하는 거시경제 지형 속에서 놓치지 않고 주목해야 할 이야기를 전할게요. |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어떻게 보셨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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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POT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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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80년대 이후, 즉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고 국제사회가 다극화되기 시작 후 미국 정치의 흐름을 읽어나가다 보면 2023년 현재에 이르러 다소 당황스러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레이건(공화당), 조지 H.W.부시(공화당), 빌 클린턴(민주당), 조지 W.부시(공화당), 버락 오바마(민주당),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조 바이든(민주당) 순서로 민주-공화 양당이 번갈아 가며 정권을 잡아 왔다. 공화당은 레이건 정권 이후 경제, 사회 이슈 전반에서 보수화가 극심해졌다는 점 외에는 특이 사항이 없다. 즉 크게 방향을 트는 일 없이 비교적 일관적인 노선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민주당이다. 1990년대, 소위 골디락스* 경제를 이끌었던 클린턴 정권은 지금의 조 바이든 정권의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신자유주의 무역 정책의 첨병이었다. 심지어 클린턴 행정부는 그 어렵다는 연방 정부 살림의 흑자 달성까지 해냈는데, 이는 클린턴 정권이 비교적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불과 20년 만에 바이든의 민주당 정권은 보호주의를 넘어 신냉전 시대에 가까운 통상 정책을 내세우며 전략적 적국(말할 필요 없이 지금은 중국)을 고립시키고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을 국제 무역의 무대로 끌어내 그 보상으로 달콤한 골디락스 경제를 누렸던 클린턴 정권과는 이보다 더 대조적일 수 없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골디락스가 가능했던 것 자체가, 미국 경제가 팽창하는 와중에 경제 개방의 문을 열어젖힌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이 소비자 물가를 전방위로 끌어내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황이 바뀌면 전략도 바뀐다.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도, 또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공화 양당이 선명한 당파성을 내세우는 전략적 노선을 취했다기보다, 오히려 집권당이 어디냐와는 관계없이 '미국'이라는 국가가 적어도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일관적으로 지향해 온 큰 그림이 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이 큰 그림의 방향성이 바뀌었다고 분석한다.
트럼프를 밀어내고 정권을 탈환한 바이든 정권의 정책 역시 큰 틀에서 트럼프의 그것과 (좀 더 교양있고 좀 더 체계적이라는 점 외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라크먼은 주장한다.
실제로 경제와 관련하여 레이건 이후 대통령들의 행보를 보면, 빌 클린턴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추진했고, 조지 W. 부시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환영했으며, 버락 오바마는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에 합의했고 중국과 양자투자협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을 단숨에 뒤집어 놓았다. 취임 연설에서 트럼프는 "미국이 학살당하고 있다"며 그 책임을 세계화 탓으로 돌렸다. (취임식장에 있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 말을 듣고 "정말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라고 중얼거렸다고.)
취임 첫날 미국은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에서 탈퇴했고, 대 중국 관세를 무더기로 부과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도 뜯어고쳤다. 이 모든 것이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온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되었다. 2017년에는 신 국가 안보 전략을 발표하여 중국과의 새로운 경쟁 관계를 국제노선으로 내세웠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바이든 정권은 트럼프 시대의 정책 유산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바이든노믹스'는 미국의 제조업을 부활시켜 중산층을 재건하겠다는 트럼프의 슬로건과 거의 일치한다. (물론 기후위기와 미래 에너지에 대해서는 트럼프의 노선과는 완전히 다르며 이게 결정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또한 트럼프보다 더 일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트럼프는 앞에서는 중국을 격하게 비난하고 돌아서자마자 시진핑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는 등 변덕스러운 언행을 보였으나,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좌절시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모든 정책을 여기에 집중시키고 있다.
첫 번째는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민주당에 안겨준 충격이다.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좌절과 분노를 지금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이른바 '먹고사니즘'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과는 1990년대 클린턴 민주당의 금과옥조였던 자유 무역주의의 포기였다.
두 번째로는 지난 40년간의 대 중국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으며 시진핑이 이끄는 현재의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진단이다.
지난주 백악관은 반도체, 양자 컴퓨팅, 인공 지능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대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새로운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이미 미국은 최첨단 반도체 등 핵심 기술 제품의 수출을 금지했고, 이러한 제품의 생산 기반이 되는 기술 이전도 봉쇄했다. 이번 행정 명령의 핵심은 더 나아가 아예 미국 투자자들이 중국의 기술 부문에 자본 투자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마이크 파일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문제는 자본 투자 자체가 아닌 전문가와 추가적인 접근성"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미국 투자자가 중국 기업에 투자하면서 특허, 데이터, 소프트웨어 등 지식재산권 등 중요한 무형 자산을 함께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대중국 투자는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크게 축소되었다. 대표적으로 중국에 중점적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및 사모펀드에 대한 달러화 투자는 2021년 950억 달러(약 127조 2500억 원)에서 2022년 140억 달러(약 18조 7500억 원)로 급감했다.
주요 광물 및 의약품 중에는 중국이 독점 공급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미국의 제약, 생명공학, 친환경 배터리 등의 분야가 고스란히 리스크에 노출되며,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려면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와는 달리 미국의 동맹국들, 특히 전통적인 동맹인 유럽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여기에는 미국의 '자국 제조업 우선주의' 노선이 한몫한다. 과거에는 미국의 안보 동맹이 되면 경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미국의 안보 우산을 쓰고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일본이 가장 좋은 예이다.
지금은 아니다. 안보도, 경제도, 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지겠다고 하면서 그 비용은 동맹국들이 모두 함께 분담하자는 미국에게 왜 우리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들은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좀 덜 과격적으로 들리는 용어를 만들어 내며,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중 경제 제재를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역과 고위급 외교에서 여전히 중국과의 교류를 이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 동맹국들의 협조 없이 공급망에서 완전히 새 판을 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포위 작전”은, 만약 정말로 실행에 옮긴다면, 생각보다 훨씬 길고 정교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러지 않으면 승리하지 못한다.
미국이 경제 제재를 높일수록 중국은 첨단 기술에서 서방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고, 실제로 중국의 공산품 무역 흑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친환경 기술에서 중국의 최근 약진은 눈부시다.
중국은 석유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전 세계가 자국의 태양광 패널 및 배터리 공급망에 더더욱 의존하게 되도록 거침없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 판매가 급증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경제적으로 코너에 몰리면 중국이 두 손을 들고 안보에서 양보의 스탠스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못해 위험하다고 밀러 교수는 꼬집는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라나 포루하도 정확하게 같은 점을 지적한다. 오랫동안 서방에서는 안보와 시장은 별개라고 생각해 왔지만, 중국에게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는 하나라고.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경제란 결국 국가 안보, 다른 말로 체제 유지를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이 최종적으로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능하다 해도, 단기간에 원만한 합의 이혼으로 끝나기는 난망이라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입장이 난처한 것은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소위 '낀' 나라들, 즉 한국과 일본, 대만이다.
사실상 먼저 선전포고를 한 미국조차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장기전에서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세밀하고 미묘한 줄타기가 절박한 시점인데, 한국은 전략적으로 얼마나 대비가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