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대체재가 아닐지라도 오픈AI의 챗GPT 모델이 "뉴욕타임스 구독의 대체제가 아니다"는 말은 엄밀히 따지면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멀지 않은 과거에서 바로 찾을 수 있죠.
미디어 기업들, 특히 뉴스 사업자들은 구글과 페이스북이 각각의 플랫폼을 만들며 승승장구할 때도 이들을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미디어 기업들이 당시 의존하던 (광고) 수익의 대부분을 디지털로 옮겨가 담고 키웠죠. 이러한 현상은 미디어 소비자들 즉, '사용자'들이 모두 이들 플랫폼으로 건너오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플랫폼들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큰 틀의 경쟁에서 완승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성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플랫폼'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사용자들을 무서운 속도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그랬던 것보다 더 빠른 페이스로요. 검색과 소셜미디어가 그랬듯이 사용자가 많아지고, 제품이 점점 더 고도화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기존의 미디어에서 어떤 현상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의존하는 경우는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2, 3차적으로 찾아가는 곳이 될 수는 있겠지만, 1차적으로 찾아가는 곳이 되기는 당연히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챗GPT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디어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쟁자는 경쟁자들이 만든 데이터를 이용해 하루하루 강력해지고 있는 것이죠. 그리하여 점점 이들이 제시하는 상품의 대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요.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의 대처 이번 모션으로 "공정 사용"의 기준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소송을 제기할 때만 해도 많은 이들에게 이들의 액션이 어쨌든 이미 내어준 콘텐츠에 대한 보상 협의에 있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카드로 일각에서 비치기도 했지만, 그간 논의된 적이 없던 영역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만약 뉴욕타임스마저 "그래. 적당히 얻어내자."라고 하고, 이미 보상 협의를 마친 AP와 악셀 슈프링어와 같은 선택을 했다면 이 논의는 아예 빛을 보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선례는 현재 협상을 진행 중인, 그리고 앞으로 협상을 진행할 미디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보이죠.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잃을 것이 점점 없어지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손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이고요.
오픈AI도 이번 소송이 미칠 파급력이 아주 커질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뉴욕타임스라는 상징적인 미디어를 상대로 논리 싸움에서 지지 않아야만 이후 커질 수 있는 (불어난 보상의) 홍수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고요.
선례가 만들어져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릴 수밖에 없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들뿐만 아니라 생성 AI 모델을 만드는 업계 모두에게는 특히 다양한 문맥과 어휘 그리고 표현이 담긴 수십 년의 미디어 데이터가 소중한 자원입니다.
AI 시대의 기본이어야 할 사항 오픈AI도 이번 모션에서 주장했지만, 일어난 "사실"과 그를 적시하는 "언어의 규칙"은 누군가 점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과 작성은 단순히 사실을 적시하는 언어가 아닙니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새로운 언어로 표현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들에게 미디어의 데이터가 소중한 이유는 바로 위에서도 적시했듯이 '오리지널한' 다양한 문맥과 표현들 때문입니다. 문장과 문단의 구성, 그리고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뉴스의 영역에 있는 이야기도 각종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창작물입니다. 어떤 현상의 사실을 전하는 속보성 뉴스나 스트레이트성 기사와 같은 공공이 꼭 전달 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정보 외에도 직접 새로운 이야기를 기획하고 취재해 제작해 내는 오리지널한 이야기들이 다수이죠. 이 이야기들을 모두가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수익을 내고 생존해야 하는 이들에게 '크레딧'이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미디어도 자체적인 사업 모델을 계속 강화해 수익을 올려야 하는 환경에서 이는 더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기에 이 핵심 상품을 계속 진화시켜 온 것입니다. 적당한 보상을 받고 자신들의 콘텐츠를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면 당장의 이익은 얻을 수 있지만, 뉴욕타임스가 사활을 걸고 소송을 제기한 것은 장기적으로는 큰 손해가 될 장사가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제작해 내는 '이야기'에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한다면 미래에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 이야기는 더 적어질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 구글과 페이스북의 등장 이후 미디어의 사업 모델과 미디어 지형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돌아보면 현재 상황의 무게를 다시 실감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이해가 아직 크지 않았을 때, 미디어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었을 때, 더 빨리 이들의 파괴력을 알아채고 대응했더라면 다른 그림을 그리고, 다른 지형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겠죠.
인터넷의 등장 이후 급속화된 디지털화 그리고 이어진 모바일 혁명,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을 이전보다도 몇 배는 더 빠르게 바꾸고 있는듯한 AI의 등장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위협입니다. 단 몇 줄만으로 순식간에 고품질의 영상도 만들어 주는 단계로 금세 뛰어왔고, 이런 기술이 각종 산업에 스며들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더 빠르게 발전해 갈 것은 확실합니다.
뉴욕타임스가 이번 싸움을 잘 이어가는 것은 업계의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저작권 기준을 만들고 새로운 보상 체계도 만들기 위해서는요. 그래야만 생존해 오리지널한 이야기들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