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의 빅테크 읽기] 3화. 페이스북의 두 인물: 프란시스 하우겐 vs 피터 틸 오늘 [키티의 빅테크 읽기] 3화는 최근 페이스북 사태를 둘러싸고 주목받고 있는 페이스북의 두 주요 주변인과 이들이 페이스북의 규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사회적으로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넘어, 페이스북의 의사결정 시스템과 그 위험성을 전 세계에 알린 내부고발자인 프란시스 하우겐 그리고 소위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자 <제로 투 원>으로도 유명한 피터 틸은 페이스북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요?
향후 페이스북 그리고 빅테크 규제의 거대한 변곡점이 만들어지고 있는 가운데, 두 인물은 앞으로 큰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예상됩니다.
[키티의 빅테크 읽기] 3화. 페이스북의 빛과 그림자 feat. 프란시스 하우겐 vs 피터 틸 #1. 프란시스 하우겐의 치밀한 빌드업 페이스북 내부고발자가 얼굴을 드러내며 페이스북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내부고발자인 전 프로덕트매니저(PM)인 프란시스 하우겐(Frances Haugen)의 주장은 아주 새롭지는 않다. "인스타그램이 10대 소녀들에게 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페이스북 알고리듬은 강한 감정에 가산점을 줘 가짜정보가 더 확산하게 했다." "페이스북 플랫폼은 인신매매를 방조하다시피 한다." "알고리듬이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끼친다." 구글에서 일했던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가 제작에 참여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도 인스타그램 알고리듬이나 미얀마 사태를 보며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에 해악이 된다는 비슷한 주장을 했다. 이번 폭로가 달랐던 점은 그동안 외부 연구보고를 인용한 주장 수준의 의혹을 내부 문서로 증명했다는 거다. 게다가 하우겐은 전 세계에서 퍼지는 가짜정보의 위험수위에 따라 얼마나 사용자에게 노출할지 알고리듬을 결정하는 PM이었다. PM은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서비스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기획자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하우겐의 폭로에 더 무게가 실렸다. (적어도) 빅테크 취재 중 올해의 보도가 될 것이 확실하다. ©WSJ 페이스북은 하우겐이 일하지도 않았던 분야에 대해 폭로했다며 그녀의 주장을 애써 폄하했지만,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구글 플러스-옐프(Yelp)-핀터레스트(Pinterest) 등의 테크 기업에서 소셜미디어 업무를 했으며 구글에 다니던 시절 알고리듬 관련 특허까지 낸 전문가가 조목조목 지적하는 데엔 당할 길이 없었다. 하우겐의 폭로가 더 폭발력 있었던 이유는 치밀한 계획과 타이밍이다. 첫 테이프를 끊은 건 월스트리트저널이다. 하우겐의 내부 정보를 기반으로 <페이스북 파일>이라는 연속 보도를 기획했고, 이 보도의 순서는 전략적으로 기획된 걸로 보인다. 10대 청소년 이슈로 시작해 국경 간 인신매매, 알고리듬을 통한 가짜뉴스 등 미국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복잡하고 심각한 이슈를 연속으로 터뜨렸다. 첫 번째 폭로 주제였던 10대 청소년 소셜미디어 중독 이슈는 정치적 지향점을 떠나 대중적 폭발력이 있다. 하우겐 주장의 핵심은 "페이스북이 광고비를 많이 벌어들이기 위해 사용자들의 강한 감정을 증폭시키는 알고리듬을 일부러 방치하거나 조장해 결국 가짜정보를 확산시킨다"인데, 트럼프 시대 이후 정치 성향 양극화가 역대 최고치로 치닫는 현재의 미국에서 이 주장부터 먼저 했다면 아마 공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 기사 순서를 보면 페이스북이 누가 보더라도 '민주주의에 해가 된다'고 저절로 생각하게끔 논리 구조가 쌓여가는 한편 정부 당국과 타이밍을 조율한 흔적이 보인다. 상원 청문회도 월스트리트저널 보도 전에 이미 기획된 것으로 짐작된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사가 나오자 상원은 페이스북 임원들을 소환해 청문회를 열었고, 이후 미국 최고 시청률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60 Minutes>에 하우겐이 모습을 드러낸 후 상원 청문회에 직접 출석하는 순서가 구성된 것이다. 상원 청문회에서 침착하고 조리 있게 주장을 펼치며, 파급효과는 더 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이어야 했던 이유 첫째, 내부고발자들이 흔히 겪어야 하는 고난을 피하기 위한 장치가 보인다. 내부고발자들은 고발 당사 기업에게 명예훼손소송을 비롯해 반드시 공격당한다. 명예훼손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명분이다. 그런데 하우겐이 상원 청문회나 언론에 밝힌 '내부고발 이유', '향후 페이스북 규제 방향성' 등을 보면 페이스북이 쉽사리 맞소송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우겐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페이스북을 상대로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현재의 이슈가 단순히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주주 이익에도 반한다"는 게 이유이다. 앞으로 페이스북을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는 오히려 "쪼개면 안 된다. 자칫 인스타그램에 콘텐츠 규제 자원이 몰리면서 페이스북에는 가짜정보가 난무할 수 있다"는 기업 친화적 해법을 낸다. 둘째,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즈가 아니라 친기업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을 폭로 매체로 섭외한 이유도 짐작해볼 수 있다. 빅테크 규제는 민주-공화당 양당이 원칙에는 합의하고 있으나 무얼 주제로 잡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론적으로는 의견이 갈린다. 이런 가운데 하우겐은 "기업을 쪼개는 대신 이들이 가진 데이터나 알고리듬에 대한 극도의 투명성을 요구하자"고 주장한다. 실제로 하우겐은 상원 청문회에서 이례적으로 민주-공화 양당 상원의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얽히고설킨 규제 방향성을 하나로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현실적 규제 방향(공화당에서 좋아할 만한)과 도덕적 근거(민주당에서 좋아할 만한)를 모두 제시한 걸로 보인다. 이런 정치적 복잡성 속에서 최대한 공격당하지 않으면서 아젠다 세팅을 할 만한 비중있는 매체로써 월스트리트저널이 적합했다고 판단한 걸로 보인다. 늘 그렇지만 달 대신 손가락을, 메시지 대신 메신저를 보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참고로 월스트리트저널은 폭스 뉴스 등을 소유한 미디어 거인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k)이 소유한 매체로 취재 기사를 쓰는 편집국은 중도 성향이고, 논설위원실은 보수 성향이다.) 내부고발자인 하우겐이 치밀한 전략을 구사한 데 비해 정작 페이스북은 지금까지 대중과 정치권의 분노를 가라앉힐 만한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키즈 인스타그램'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지만, 그 정도로 끝날 것 같지 않다. (거기에다 타이밍도 얄궂게 하우겐의 상원 청문회 바로 전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사이트가 무려 5시간이 넘게 다운되었다.) #2. '신뢰 위기'와 저커버그의 리더십 2008년 이후 최대 그리고 타이밍이 최악이었던 시스템 다운 사태는 페이스북에 더 큰 데미지를 안겼다. 이 문제점을 여러 IT 매체가 분석했는데,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페이스북의 운영시스템이 지나치게 중앙집중적인 데 있었다는 것이다. 서비스도 여러 개라 만일을 대비해 분산해 놓을 만도 했는데 세 서비스 모두 한 운영시스템이 꺼지면 쓸 수 없게 되는 구조였다. 시스템이 꺼지자 운영자가 직접 해당 시스템에 물리적으로 접근해 다시 켜줘야만 했는데, 운영자가 통과해야 하는 보안 관제조차도 해당 시스템에 물려 있어서 접근이 늦어진 것이다. 중앙집중적인 시스템의 장점은 해당 시스템과 시스템 운영자를 믿을 수 있으면 모두가 다 편하고 안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신뢰가 깨지는 순간 편리함도, 안전함에 대한 믿음도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이번 시스템 다운 사태는 페이스북이 처한 '신뢰 위기'를 더 증폭시켰다. 그리고 이 신뢰 위기의 핵심에는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운영시스템처럼 중앙집중적 통치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저커버그의 헤어스타일은 저커버그가 존경한다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와 비슷하다) 본래 페이스북 COO(최고 운영 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가 사이트 운영의 상당한 책임을 갖고 있었는데, 그나마 2018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 사태* 이후 샌드버그의 권한을 저커버그가 많이 가져왔다고 한다. * 러시아가 영국의 데이터 마이닝 회사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를 통해 페이스북 사용자 정보를 획득했고, 미국 유권자들에게 가짜 정보를 퍼뜨리며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겨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저커버그는 상원 청문회와 시스템 다운 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가 드디어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입장을 밝혔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다. CNN은 하우겐을 ‘낮은 직급의 직원’으로 폄하한 페이스북의 반응에 비판적이었고, 포브스에서는 이렇게 기업이 공격받을 경우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는데 저커버그의 포스팅에서는 책임 인정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산타클라라 대학교 부설 리더십윤리 센터의 앤 스키트(Ann Skeet)는 저커버그의 방어적 반응이 "고교 토론대회에서 무조건 이기려고 하는 참가자 자세"와 같다고 지적했다. 지는 것을 못 참아 경쟁사와의 경쟁을 전쟁에 비유하는 저커버그 특유의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에서 절반 넘는 의결권을 가지고 있어 실질적이고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저커버그를 견제하기 위해 독립적 이사회 의장을 선임하자는 의견이 주주총회에서 나온 적도 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주주총회에서는 급기야 "페이스북이 독재 기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3. 지금 피터 틸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페이팔의 창업자인 피터 틸(Peter Thiel)이 냅스터 창업자인 숀 파커(Sean Parker)를 통해 저커버그를 만나서 페이스북 초기에 자금을 빌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랬던 페이스북에 피터 틸은 투자를 했다. (사진: 영화 <소셜 네트워크> 중) 현재는 헤지펀드인 클래리움 캐피털 매니지먼트(Clarium Capital Management)의 대표로 있는 피터 틸은 저커버그의 이러한 경영방식과 페이스북의 운영방식에 큰 영향을 준 사람 중 하나이다. 페이스북 이사회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사 자리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엔 틸이 저커버그에게 끼친 영향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최근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 기자인 맥스 채프킨(Max Chafkin)이 쓴 틸의 전기 <콘트래리안(The Contrarian: Peter Thiel and Silicon Valley's Pursuit of Power)>*이다. * 직역하자면 <반대 의견을 가진 자: 피터 틸 그리고 권력을 향한 실리콘밸리의 질주>가 될 수 있다. 우선, 피터 틸이 어떤 인물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이력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페이팔 창업자. 링크드인 창업자인 리드 호프먼(Reid Hoffman)와 함께 실리콘밸리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창업자 군단인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 데이터 마이닝 기업인 팰런티어(Palantir)의 창업자 (이 기업은 9.11 테러 이후인 2003년에 창업했으며 국가안보에 관련된 정보를 가공 분석하는 기업으로 포지셔닝함) 대체로 진보적인 실리콘밸리에서 보기 드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된 후 <액세스 할리우드>란 TV 프로그램에서 한 여성 비하 발언이 폭로되면서 대선 가도에 위기를 맞았을 때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지지선언과 기부 약속을 한 첫 번째 기업. 또 트럼프 계열 의원 후보들에 거액의 정치헌금을 약속한 인물. 자신이 게이라는 점을 아우팅한 언론사 고커(Gawker)에 대한 악감정을 품고 있다가 다른 셀럽(헐크 호건)이 친구의 부인과 성관계한 것을 녹화한 테이프를 유출시킨 명예훼손 소송을 뒤에서 지원해 결국 고커를 망하게 한 인물. 정부 무용론자. 정부 규제 혐오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소위 PC) 혐오자. 스탠퍼드 대학교 강의 내용을 엮은 책 <제로 투 원(Zero to One)>을 통해 '궁극적으로 기업은 독점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인물. 최근 30년간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에게 알게 모르게 가장 문화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
<제로 투 원>을 보면 기업가들에게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는 메시지 이외에도 아예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를 독점하여 그 과정에서 큰 돈을 벌라고 설파한다. 함께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었던 리드 호프먼은 "비즈니스 규모를 빛의 속도로 키우라(Blitz Scaling(블리츠 스케일링)"는 교훈도 전한다. 책을 쓴 채프킨은 이러한 틸의 사고방식이 많은 실리콘밸리 창업가들이 규제나 기존 질서를 무시하거나 아예 거부하도록 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서술한다. 이는 틸이 페이팔을 운영할 때도 적용됐다. 페이팔은 틸의 표현에 따르면 ‘스위스 은행 계좌를 각 개인에게 제공한다’는 개념으로 시작됐다. 기존 중앙은행이 만드는 질서 자체를 부정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틸의 운영 방식은 초기 페이팔에 각종 불법 자금이나 검은돈, 사기거래가 창궐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틸의 이런 사고방식은 이후 암호화폐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틸은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한 후 헤지펀드를 차렸는데, 실리콘밸리의 테크 창업자가 이런 식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채프킨은 애초부터 틸은 어떤 서비스를 만드는 창업가라기보다는 마케터에 더 가깝다고 분석한다.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 '권력을 획득하는 행위' 자체에 더 매력을 느꼈고 자기 자신이 그런 사상을 전파하는 지식인임을 알리는 데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제로 투 원>은 일부에겐 바이블과도 같은 책이 되었다. 확실히 틸은 우리가 아는 소위 리버럴한 실리콘밸리의 전형성과는 차이가 있다. 스탠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틸은 극보수 성향의 학생신문인 <스탠퍼드 리뷰>를 운영했고, 작은 정부를 표방하던 레이건 정부 지지자였다. <콘트래리안>에서는 틸이 스탠퍼드의 진보적인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면서 반감을 품었다고도 서술한다. 정치적 올바름과 다양성에도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틸은 졸업 후 <Diversity Myth(다양성의 신화)>란 책을 써서 아예 인종차별주의나 남녀차별을 옹호하기도 했다. 그가 차린 페이팔, 팰런티어 등은 주로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 성향을 가진 백인 남성을 주로 고용했는데, 페이팔의 핵심 기술을 가진 천재 개발자 맥스 레브친(Max Levchin)은 "훕스(hoops)"란 단어를 (주로 흑인들이 농구를 표현할 때 쓰는 말로 해석하며) 면접에서 언급한 개발자를 떨어뜨리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 틸은 대학생 시절에 우생학을 지지한 걸로도 알려져 있다. (지금은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이 때문에 ‘똑똑하고 우수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어가는 국가’에 대한 반발이 있다. 틸이 페이팔 매각 자금을 중산층을 위한 개인은퇴 연금계좌인 로스 IRA(Roth IRA)*에 넣어 놓고 합법적으로 거액의 세금을 회피한 것은 유명하다. 로스 IRA는 중산층들이 은퇴할 때까지 수익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는 계좌이다. 틸이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서비스에 투자한 이유도, 소셜미디어의 비즈니스 전망을 내다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커버그가 학생 때 처음 만든 서비스인 페이스매쉬(Facemash, 신입 여학생의 얼굴 평가를 하던 사이트)의 반동적, 반사회적 정서에 끌렸기 때문이라고 책의 저자인 채프킨은 분석한다. 또한 유통 정보들이 가짜정보라 해도 기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나중에 규제하더라도)는 페이스북 회사 내부 방향성도 틸의 영향이라고 진단한다. 채프킨은 책에서 기존 사회질서 무시를 감수하는 행동 양식을 틸이 강조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틸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창업자 중 하나로 우버의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을 든다. 캘러닉은 비즈니스 확장을 위해 우버가 불법인 지역에서 함정수사를 하는 지역 경찰들의 우버 아이디를 몰래 입수해 이들의 스마트폰에서 콜을 취소해 수사를 방해하는 식으로 사업을 운영했다. 이렇게 말하면 틸이 매우 부정적으로만 보이지만, 실제로 틸은 매우 스마트하며 거시경제의 큰 흐름을 내다보는 통찰을 가졌다. 미국 국가안보국이나 경찰들이 쓰는 데이터 마이닝 서비스인 팰런티어를 운영했고, 이를 통해 획득한 각종 국가적 고급 정보의 소스가 있기도 하다. 경제 위기를 예측해 직원들에게 "가지고 있는 자산을 정리하라"고 이메일을 보냈다든지, 틸이 암호화폐의 도래를 일찍이 예측했던 점 등도 간과할 수 없다. (틸은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과 함께한 대담 자리에서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악용하면 미국 달러의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몇 달 후 중국이 암호화폐를 규제하는데, 비슷한 시기 암호화폐 거래 추이를 중국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건 사실인 듯하다.) 피터 틸은 페이스북 주식의 상당량을 이미 처분했다. 과연 페이스북을 구하려고 나설까? 이렇게 흥미로우면서 영향력 있는 인물 틸이 과연 위기에 빠진 페이스북의 구원투수로 나설 수 있을까? 틸은 트럼프 정부 시절 보수 정치인들이 "페이스북이 진보 편향으로 보수 콘텐츠를 규제한다"며 비난하자 보수 언론인들을 모아 저커버그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보수언론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피할 수 있게 해준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미묘하다. 틸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저커버그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멀어진 거리를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페이스북 상장 후 주가가 폭락하자 저커버그는 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틸을 강사로 초빙한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틸은 "내 세대에서는 날으는 자동차가 나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대신 페이스북이 등장했다"고 직원들에게 이야기한다. 사실 이 발언은 틸이 매번 하던 “내 세대에선 날으는 자동차가 나올 거라고 믿었는데 기껏 140자 서비스가 나왔다”는 트위터 디스 발언과 똑같았다. 저커버그는 틸의 이 발언이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생각해서 언짢아했다고 전해진다. 테크 기업에 친화적이었던 오바마 정권과도 유독 친하게 지냈던 페이스북과 틸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그동안에는 저커버그에게도 나름 틸을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날이 양극화되는 미국 정치에서 피터 틸의 존재만으로도 페이스북이 "우리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됐다. 저커버그가 애가 타든 말든 틸은 자기 행보를 이어간다. 틸은 트럼프 지지 정치인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이것도 페이스북에게는 불편한 측면이다. 틸은 구글 저격수이자 극우파인 조쉬 할리(Josh Hawley) 상원의원과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트럼프를 제외하고 가장 우파였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후원한다. 두 사람 모두 "대선 결과를 도둑맞았다"는 트럼프의 주장이나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침탈 사건에서 지지자들의 편을 드는 이들이다. 틸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상원의원 후보 후원금으로 거액을 약속한 것도 공개적인 사실이다. 이렇게 틸이 미는 정치인들은 공개적으로 저커버그를 비난하는 일도 잦다. 조쉬 할리는 구글 공격수인데 (틸은 구글을 아주 싫어한다) 구글 규제는 다시 돌고 돌아 페이스북에도 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할리의 존재가 페이스북에 썩 도움이 되진 않는다. 여러모로 페이스북에는 골치가 아픈 셈이다. 채프킨은 저커버그와 틸의 불편한 관계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틸은 확실히 영향력이 있고 오싹한 인물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거 동료를 배신할 수 있고, (페이팔은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엑스닷컴과 합병했었는데 머스크와 틸은 합이 잘 맞지 않았고 결국 머스크가 신혼여행을 간 사이 틸의 동료들이 반란을 일으켜 머스크를 해고한다) 언론사를 파산시킬 힘을 보여주었기에 실리콘밸리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의 저커버그는 물론 틸에게 엔젤 투자(라기보다는 대출)를 받은 시점의 저커버그와는 달라서, 틸과 충분히 각을 세우거나 이사회에서 해고할 수 있을 만한 영향력이 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모두 공격받는 가운데 틸을 해고하는 건 페이스북에 정치적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페이스북이 전방위적 압박을 받는 가운데, 틸의 전기가 나온 건 타이밍이 기묘하다. 하우겐과 틸은 페이스북의 빛과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낮은 직급'의 내부고발자 하우겐은 페이스북 규제에 대한 큰 방향성을 제시하는 인물이다. 앞으로 틸은 막후 조정자로서 역시 페이스북 규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두 사람이 앞으로 페이스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가 된다. ☕️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키티의 한글 이름은 홍윤희이다. 이커머스 기업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소셜임팩트를 담당하고 있다. 딸의 장애를 계기로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자는 취지의 협동조합 무의(Muui)를 운영하며 2021년 초 카카오임팩트 펠로우로 선정됐다. IT, 미국 정치, 장애, 다양성, 커뮤니케이션 등의 주제를 넘나들며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글을 쓴다. 한국일보, KBS 제3라디오 등에 정기 기고와 출연 중이다.
[키티의 빅테크 읽기]는 이제 본격화되는 미국 빅테크에 대한 규제 흐름과 이의 영향에 대해 다룰 롱폼(Long-form) 아티클로 당분간 한 달에 한 번 찾아올 예정이에요. 테크 산업을 넘어 전체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맥락과 행간을 놓치지 않는 시선을 전합니다. 오늘 [키티의 빅테크 읽기]는 페이스북 사태에 대해 한 단계 더 들어간 분석을 전했는데요. 어떻게 보셨는지 알려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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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라라 대학교 부설 리더십윤리 센터의 앤 스키트(Ann Skeet)는 저커버그의 방어적 반응이 "고교 토론대회에서 무조건 이기려고 하는 참가자 자세"와 같다고 지적했다. 지는 것을 못 참아 경쟁사와의 경쟁을 전쟁에 비유하는 저커버그 특유의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에서 절반 넘는 의결권을 가지고 있어 실질적이고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저커버그를 견제하기 위해 독립적 이사회 의장을 선임하자는 의견이 주주총회에서 나온 적도 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주주총회에서는 급기야 "페이스북이 독재 기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