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크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었지만,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의 모습은 그 운동장을 스스로 더 기울어지게 만들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워너브라더스와 디스커버리는 합병 이후 이익을 낸 적이 없습니다. 작년에는 오히려 2023년 대비 매출도 줄어들었고, 전체 사업의 재구조화 작업 등을 이유로 순손실은 113억 달러(약 15조 7280억 원)에 달했습니다.
HBO 콘텐츠가 사실상 성장을 홀로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트리밍 서비스는 1억 223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지만, 그 평균 단가가 넷플릭스에 비해 현격히 낮아졌습니다. 넷플릭스의 미국 구독자 평균 단가는 17.26달러인데 반해 HBO 맥스는 11.15달러입니다. 프리미엄 이미지의 HBO 브랜드가 퇴색된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하죠.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의 모습은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콘텐츠 사업이 얼마나 자리 잡기 힘든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악수를 둔다면 그 몰락을 가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죠. 피할 수 있었던, 굳이 안해도 될 선택을 한 결과가 지금의 실적입니다.
아마도 훗날 왜 그런 선택을 내렸는지에 대한 비화가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훗날이 거대한 전환을 이룩해 낸 성공 스토리보다는 레거시 미디어 기업이 몰락한 이후 <어떻게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거인은 몰락했는가?>와 같은 제목의 아티클이나 책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게 이들의 현실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설마 그렇게 큰 기업이 무너지겠어?", "대표적인 방송 채널과 콘텐츠들을 그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는데?", "스트리밍도 구독자가 1억 2000만 명도 넘는다며?"
이에 대한 반박의 답은 단언적으로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합병 이후 매년 손실이 크게 나고, 계속 이어진 경영 전략상의 실수들을 제시하면 무너지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미디어 거인이 무너지는 모습도 자연히 그려집니다. 워너브라더스는 올해 1분기에도 4억 5300만 달러(약 6300억 원)의 손실을 냈고, 올해 전체적으로도 수십억 달러의 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서미 스트리트를 비롯해 어린이 프로그램을 놓은 것은 비용을 아끼고 특정 영역의 콘텐츠에 집중한다는 전체적인 경영 전략 속에서 이루어진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지만, 결국 이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외부에서 보기에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의사 결정들을 내리고, 곧 턴어라운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큰 위기'에 대한 경고가 본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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