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의 빅테크 읽기] 14화. 파타고니아와 빅테크의 차이 오늘 [키티의 빅테크 읽기]는 새로운 신탁과 비영리 단체를 세워 회사를 통째로 기부하기로 한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의 결정을 다르게 바라보는 일각의 시선을 시원스레 해소하는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이어서 빅테크가 유사한 종류의 각종 단체를 세워 진행하는 로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반독점 조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11월에 있을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대응이 어떻게 이어질지를 전해드립니다.
향후 빅테크가 움직일 방향을 다시 세팅할 시간이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빅테크를 통해 정치를 움직이는 돈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고, 파타고니아는 앞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그리고 이는 무슨 의미가 있을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
[키티의 빅테크 읽기] 14화. 파타고니아와 빅테크, 정치를 움직이는 돈의 흐름 |
"우리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라는 파타고니아의 선언, 즉 창립자 이본 쉬나드 가족이 회사를 통째로 기후위기 대응에 기부하겠다는 선언은 비즈니스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쉬나드 일가의 기부 방식도 특이하다. 회사를 팔아서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식의 전통적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커피팟이 앞서 전한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펼칠 홀드패스트 컬렉티브(Holdfast Collective)는 파타고니아 주식의 98%를 넘겨받았다. 향후 회사의 의사 결정은 파타고니아 목적 신탁에서 하게 되는데, 전체 주식의 2%에 해당하는 회사의 모든 의결권을 양도받았다. 이본 쉬나드가 신탁에 자신의 지분을 기부하면서 1750만 달러의 세금을 납부하지만 배배 꼬아서 본다면 목적 신탁에 넣은 소수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1750만 달러(약 250억 원)의 세금은 이 증여에 대한 것이다. 반면 면세가 되는 비영리 재단에 98%의 주식을 기부했다. 파타고니아의 기업 가치가 30억 달러(약 4조 3100억 원)이므로 원칙적으론 40%에 해당하는 12억 달러(약 1조 7240억 원)의 증여세가 부여되었어야 하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을 피해 간 셈이다. 잠깐, 그렇다면 파타고니아의 이 통 큰 결정이 사실은 증여세 회피 전략에 불과한 걸까?뉴욕대에서 세법과 비영리 단체를 연구하는 다니엘 헤멀(Daniel Hemel)은 쉬나드의 결정이 이타적이긴 하나 분명히 세법의 어떤 부분을 이용한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쉬나드 가족이 세금을 회피하겠다는 일념으로 이번 결정을 내린 건 아니다. 지배구조를 유지한 이유는 기업공개를 하거나 기업을 타인에게 매각하게 되면 파타고니아의 기업 신념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최초로 전한 뉴욕타임스를 통해 이미 언급되었듯 이본 쉬나드는 본인이 포브스 부자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고, 자녀들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억만장자일 필요가 없다"는 신념을 고수한다. 그렇다면 쉬나드 일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가장 큰 의도는 파타고니아의 수익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세법 규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NGO 중 일반에게 더 익숙한 형태는 미국 세법 501(c) 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선단체(charitable organization)'다. 게이츠 재단 등 상당수의 기업인이 설립한 공익재단이 이에 속한다. 재단 기부금에 대해 세제 혜택이 있어서 기업가들이 은퇴 후 이 형태로 공익법인을 만든다. 이형태의 단체는 기업 지분을 20% 이상 소유할 수 없다. 또한 기부 내역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홀드패스트 컬렉티브는 미국 세법 중 501(c)(4)(이하 "501c4") 규정에 의해 설립된 ‘사회복지단체(social welfare organization)’다. 501c4 단체중에는 '미스 아메리카'재단이나 지역 스포츠 리그 등도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NGO가 들어있다. '사회복지단체’는 집행 비용중 50% 미만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가능하다. 예를 들어 단체 설립 목적에 맞는 정치 후보자를 후원할 수도 있고 로비에 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기부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기부자는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볼 수 없다. |
파타고니아의 기부 방식과 의도를 '다르게' 보는 보도도 물론 나왔다. |
브레이킹 '배드(Bad)' 아닌 '굿(Good)' 그동안에도 파타고니아는 매출의 1%를 기후위기 대응에 쓰고 공급망에서의 탄소배출을 공격적으로 줄이는 한편 공정한 공급망 구조를 구축하는데 힘써 왔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국립 공원의 면적을 축소하려고 하는 움직임에 반대 광고를 게재하는 등의 정치적 목소리도 내왔다. 그런데 이번 결정으로 아예 파타고니아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적극적인 정치 활동의 전진 기지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사실 501c4 단체는그동안 '검은돈(dark money)’, 즉 출처를 알 수 없는 후원금을 모으는 수단이란 악명을 떨쳐왔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 세력의 반발로 지역에 기반을 둔 풀뿌리 보수주의 조직인 (그 유명한) '티파티(Tea Party)'운동이 2009년부터 펼쳐졌는데 501c4 단체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지역정치에 자금을 공급해 왔다. 이를 견제하려는 흐름은 정치적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13년 오바마 정부하에서 미 국세청이 501c4 단체들에 대한 조사에 나섰는데 보수 정치인들이 강력히 반발하는 한편 진보적 언론에서도 ‘'501c4 전체가 문제인데 보수 단체만 타겟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비판했다. 결국 2015년 공화당이 주도한 의회는 501c4 단체들의 설립요건을 오히려 더 완화하고 혜택을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번 쉬나드의 결정은 '음험하게 활용 될수도 있는' 501c4 단체 설립 목적을 신선하게 비튼 사례다. 누가 단체에 기여금을 냈는지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 규정이 검은돈의 온상으로 비판받아왔는데 그런 선례를 시원하게 깨버린 것이다. 그래서 NPR에서는 쉬나드의 홀드패스트 설립에 대해 평범한 교사가 마약 거래상이 되는 유명 넷플리스 드라마 <브레이킹배드>에 빗대서<브레이킹 '굿(Good)'>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기업이 소위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사기업이 흔히 걷는 길을 과감하게 박차 버렸다는 의미다. 그러나 다니엘 헤멀 교수는 여전히 501c4 세법 규정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홀드패스트의 경우 기부자인 파타고니아를 투명하게 이미 공개했지만, 501c4 단체는 여전히 누가 준지 모르는 돈을 정치적 목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검은돈(dark money)’은 미국의 정치 환경을 현저히 왜곡시켰다. 앞서 티파티 등 보수 단체들이 501c4 규정을 활용했다지만, 사실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로 이 규정을 활용해 실질적인 정치 캠페인을 벌여 왔다. 2020년 미국 대선 때는 501(c) 세금 코드로 설립된 공익단체, 자선단체를 통해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더 많은 모금을 했다는 뉴욕타임스의 분석도 있었다. |
스콧 갤로웨이는 미국 연방거래위원장인 리나 칸이 지금까지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다고 본다. |
501(c) 단체가 본래 활용되는 방식 "리나 칸의 업적은 지금으로서는 빈손이다." 카라 스위셔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피벗(Pivot)>에서 스콧 갤로웨이 뉴욕대 교수는 연방거래위원회(FTC) 리나 칸 위원장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최연소 위원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칸은 1년 넘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물론 위원회의 인원 구성 자체가 미루어지면서 중요한 결정 자체를 위원회 표결 자체에 부칠수 있게 된 것이 얼마 안 된 탓도 있다. 위원회 내부의 직원 만족도가 연방 정부 기관 중에서도 하위권이라는 보도를 비롯해 '리나 칸 흔들기'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악조건을 고려하더라도, 칸이 임명 전부터 '빅테크 저승사자'로 알려지면서 그가 위원장이 되면 당장 알파벳이나 아마존이 쪼개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지나치게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칸의 발목을 잡은 건 결정적으로 '자원 부족'이다. 지난 9월 20일 미국 상원 법사위에서는 연방거래위원회의 칸 위원장과 법무부 반독점국 조나단 캔터(Jonathan Kanter) 국장을 불러 지금까지의 반독점법 집행 사항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는데, 두 사람 모두 '자원 부족'을 호소했다. 이에 법사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에이미 클로버샤(Amy Klobuchar) 상원의원이 한 말이다. "인원 부족이라는 말, 무슨 말인지 잘 압니다. 상원 법사위에도 담당 변호사가 3명이 있는데, 이분들이 빅테크 기업의 로비스트와 변호사 수천 명을 상대해야 하죠. (현재 FTC가 아마존을 겨냥해 조사 중인) 자사 상품 우대(self-preferencing) 분야에만 최소 2700명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인해전술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규제기관을 압박하는 ‘로비스트’는 어디 출신일까? 빅테크 기업에서 직접 파견되거나 이들이 고용한 로펌 변호사들도 있고, 501(c) 코드에 의거해 설립돼 빅테크의 후원을 받는 사회단체 소속 로비스트나 연구자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나 칸의 전 직장인 오픈 마켓 연구소(Open Markets Institute) 또한 501(c)(3)에 의거한 단체다. 오픈 마켓 연구소는 빅테크의 문제점을 의회를 통해 지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빅테크의 노골적 로비에도 활용 빅테크들이 후원하고 있는 여러 비영리 단체 중 가장 노골적으로 반독점법, 제재 추진에 반대하는 곳은 '반독점 연합(Alliance on Antitrust)'이다. 의회와 FTC, 법무부의 흐름에 조직적으로 반대해 왔다. 이 조직은 보수 법관 임명과 옹호를 위해 설립된 501c4 비영리 단체인 '정의를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Justice)'의 부속 단체이기도 하다. 구글로부터 '가장 실질적인 기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단체들은 때로는 연구소의 형태로, 때로는 이익단체의 형태로, 때로는 익명의 기부자에게 기부금을 받아 특정한 정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엄청난 로비를 마주하는 건 입법부, 행정부를 막론하므로 빅테크 기업들을 효과적으로 제재하지 못했다는 평판을 칸이 뒤집어쓰는 건 부당한 부분이 있다. 미 의회도 작년에 빅테크 제재 법안들을 야심 차게 선보였지만, 이 중 실제 통과에 가장 가까운 법안은 아마존의 PB 상품이나 구글의 자사 서비스가 검색에서 우선시되는 '자사 상품 우대'를 규제하는 내용이 핵심인 '온라인에서의 혁신과 선택 법안(AICO: American Innovation and Choice Online Act)’ 한 가지에 불과하다. 클로버샤 의원은 카라 스위셔와의 코드 컨퍼런스(Code Conference) 인터뷰에서 "엄청난 (로비) 자금과 맞서 싸우는 실정(It is an incredible amount of money I’m up against)”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은 상하원 양원 본회의 투표와 대통령 서명을 마치면 되는데, 상원에서는 1월부터 본회의 표결을 기다리고 있으며 하원에서는 1년 이상을 기다리는 중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아직 투표 일정을 잡지도 않았다. 실제로 클로버샤 의원이 입 밖에 내서 말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진보 언론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이 소재한 캘리포니아주 의원 중 상당수가 이번 법안을 찬성하지 않는 데다 민주당의 상하원 거물급 의원조차도 빅테크 로비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빅테크가 반독점법 로비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금을 대는 비영리 단체들은 많기도, 겹치기도 한다. (출처: 오픈시크릿.org) |
그래도 할 일은 하고 있다 그렇다면 FTC는 그저 로비스트들에게 무력화되어 정말 아무 성과도 못 내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FTC는 항공, 반도체를 비롯해 14건의 기업 합병을 사전 차단했다. 테크 기업을 직접 겨냥하진 않았지만, 우회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그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목적인 결정도 있었다. 예를 들어 FTC가 7월 '소비자 수리권'에 대한 조처를 발표한 후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수리 소비자에게 유리하도록 AS 규정을 바꾸기도 했다. 9월에는 코차바(Kochava)라는 앱 마케팅 기업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코차바는 사용자의 위치 정보를 비롯한 사용자 정보를 앱 마케팅을 하려는 기업에 판매한다. FTC는 코차바가 위치 정보를 팔면서 민감한 정보, 예를 들어 임신 중단 시술 병원, 학대 여성 상담소 등의 정보를 제대로 가리지 않았고, 기업 고객이 단순히 '비즈니스 목적'으로 정보를 구매한다는 것보다 더 상세하게 목적을 기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이 정보가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타이밍만 보면 의아하다. 연방 차원의 통합적인 데이터 프라이버시 법안에 대한 수요는 있으나 아직 발의도 안 된 상태라서 이길 확률은 더 낮다. FTC가 승소하려면 코차바의 사용자 데이터를 구입해 간 기업에서 이 정보를 악용했다는 걸 FTC가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 소송을 FTC가 제기한 것은 리나 칸이 '소비자 정보 보호'에 진심이니 기업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시그널이다. 사용자 정보 판매라는 비즈니스 모델에 더 엄격한 소비자 보호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의지다.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면 웬만하면 기업 인수합병은 승인하겠다"라는 것이 기존의 FTC였다면 리나 칸의 FTC는 좀 더 꼼꼼하고 엄격하게 소비자 이익 기준을 판단한다. 이종산업을 인수할 때는 관대하던 기존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아마존의 아이로봇(로봇 청소기 룸바(Roomba) 제조사) 인수에 대해서도 FTC는 9월 27일 두 번째 질의서를 보내는 등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어찌 보면 칸의 고난은 불 보듯 뻔했다. 새로운 소비자 이익 기준을 법원에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관련 케이스들에 보수적인 법관이 임명되도록 로비하려는 사회단체에 빅테크들이 기부금을 내고 있다면 어려움은 배가되는 게 당연하다. |
경쟁사 대비 가장 낮은 상품 가격을 제시해 소위 '소비자 후생(consumer welfare)'을 향상 시켜 시장을 차지해 왔다고 강조해 온 아마존인데, FTC는 '불공정 경쟁'을 통해 달성한 소비자 후생 논리가 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빅테크의 싸움: 주 정부와 전 세계 규제기관 그러나 FTC나 미 연방 법무부만이 빅테크에 대항하는 건 아니다. 미국의 주 정부가 외국 규제기관의 사례를 따라 빅테크를 압박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9월에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이 고등법원에 아마존을 '불공정 경쟁'으로 제소했다. 아마존이 서드파티(Third Party) 판매자들에게 월마트나 타깃과 같은 경쟁 사이트에서 더 싼 가격에 제품을 판매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계약에 서명하라고 요구했으며 이를 따르지 않는 판매자들은 아마존 검색 결과에서 불리하게 했기 때문에 소비자 가격에까지 영향을 주는 반독점 행위라는 것이다. 아마존의 경우 같은 케이스가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워싱턴 DC 법무장관은 유사 제소를 진행했다가 구두 심리에서 거절당한 후 8월에 다시 제소를 추진했다. 미국 주 정부의 이런 잇단 행보는 독일이나 캐나다가 아마존을 상대로 제기한 제소 건과도 비슷하다. 이를 두고 반독점을 연구해 온 '미국 자유 경제 프로젝트(American Economic Liberties Project)'의 맷 스톨러(Matt Stoller) 디렉터는 "반독점을 향한 민주주의 실험이 예전에는 미국 내 50개 주에서 주로 이뤄졌다면 이젠 전 세계가 이런 종류의 규제기관을 모두 갖추면서 서로 영향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승률을 높이기 위해 전술도 조금씩 바뀐다. 예를 들어 이번 '캘리포니아 vs 아마존' 소송에서 법무장관은 아마존이 독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신 '불공정 경쟁'이라는 좀 더 광범위한 차원의 법 조항을 적용했다. 아마존이 여러 '시장 획정' 기준을 들어서 '독점' 논리에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 주 정부의 사례 등이 쌓이면 결국 FTC와 미 연방 법무부의 빅테크에 대한 유사 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연방 법무부는 구글과 애플을 상대로, FTC는 메타 및 아마존과 각을 세우고 있다. 법무부는 구글이 애플, 삼성 등과 (휴대폰의 디폴트 브라우저에 구글 검색 엔진이 적용되도록) 계약을 맺고 비용을 지급해 검색 엔진 1위를 수성하려 한 행위에 대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애플 앱스토어 운영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FTC는 메타가 피트니스 VR앱인 '수퍼내추럴'을 만드는 '위딘 언리미티드(Within Unlimited)' 인수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아마존에 대해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소송에서 이기지 않더라도 이들 빅테크의 확대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아마존은 규제 압력 때문에 자사 브랜드의 아이템 숫자를 현저히 줄였고, 아예 PB 사업 철수를 내부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구글이라는 글자가 안 보여도 대부분 스마트폰의 브라우저에 적용된 검색 엔진은 구글이다. |
중간선거가 빅테크에 미치는 영향 9월 말 기준으로 약 6주 앞으로 다가온 미국 중간선거가 과연 빅테크 규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중간선거는 무조건 여당이 진다는 규칙이 이번엔 깨질 가능성이 크다. 상원은 민주당이 근소한 차이로 수성하거나 오히려 1~2석 더 얻을 수도 있다. 하원은 여전히 공화당 우세가 점쳐지지만, 당초 큰 폭으로 민주당이 지리라 예측되었던 것에 비하면 민주당이 선전하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임신 중단 합법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 이로써 중도층, 여성들이 대거 분노의 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민주당이 상원을 수성하고 하원은 공화당에 내준다고 하면, 빅테크 규제 전망은 어떻게 될까. 우선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가진 메타와 구글의 경우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손봐줘야겠다"라며 벼르는 공화당 의원들이 꽤 많기 때문에 어떤 당이 우위를 차지하든 의회에서 문제제기가 계속될 것이다. 표현의 자유 이슈는 주로 공화당 의원들이 주체가 되어 "빅테크 기업들이 우파 목소리를 온라인상에서 탄압한다"는 의구심에서 시작된 정파적 논리지만, 정파적 논리를 넘어서서 이제 빅테크에 대해 논리적으로 파고들거나아예 책까지 내는 공화당 의원들도 나오기 시작했다는 게 몇 년 전과의 차이다. 원래 중간선거 후 11, 12월의 미 의회를 레임덕 세션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회기 시작 전 별다른 입법 동력이 없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적어도 여러 빅테크 관련 법안 중 양원 모두 상임위를 통과해서 본회의만 통과하면 되는 '온라인에서의 혁신과 선택 법안(AICO: American Innovation and Choice Online Act)'의 경우이 레임덕 세션 동안에라도 통과시킬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이 법이 통과되면 아마존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구글 또한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빅테크 기업의 입장에서는 사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서로 단결하지 않고 분열할수록 유리하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지금처럼 대규모 법안들이 발의는 됐으나 정체된 상태에서는 다수당이 상하원 모두 바뀌면 상임위 구성을 비롯해 많은 내부적 조율이 필요하므로 더더욱 그렇다. |
파타고니아와 빅테크 모두 중간선거를 비롯한 정치 이벤트에 계속 그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중간선거를 지나면 양당 모두 다음 대선 준비에 돌입한다. 다음 대선 후보가 누가 되느냐, 양당에서 누가 '큰손'으로 떠오를지가 빅테크에게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여전히 지난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 의사당 습격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트럼프의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 자택에서 기밀 서류를 FBI가 압수하는 사건에 대한 내용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가 지지한 극우 후보들이 각 주의 경선에서는 대승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걸로 점쳐지고 있다. 그중 한 후보가 테크 거물 피터 틸(Peter Thiel)의 오른팔로 알려졌던 블레이크 매스터스. 애리조나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로 나서서 트럼프의 지지 하에 '낙태 반대'를 비롯해 "가정에서 남자 혼자 벌어도 되게끔 하겠다"라는 식의 극우파 메시지를 퍼뜨려 위험한 후보로 점찍혔는데, 민주당 후보와 맞붙을 본선이 되자 극렬 낙태 반대 메시지를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슬그머니 지우는 등의 행보를 보인다. 틸은 본선에서 더 이상 매스터스에게 정치 자금을 투여하지 않을 계획이라 상원 탈환을 노리는(즉 한두 석이 아쉬운)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 사건은 '트럼프 사당화'만이 집권을 위한 필승 전략인 것처럼 생각한 공화당 지도부의 내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피터 틸은 정치 후원에 전념하면서 오랫동안 지켜온 메타의 이사직도 내놓았는데, 킹메이커로 불리운 틸이 이번 선거를 통해 교훈을 얻어 온건한 후보에게도 지원할지, 아니면 자신의 평소 소신대로 '완전히 때려 부수겠다는' 극우파 후보를 계속 밀지 앞으로가 주목된다.
다시 파타고니아로 돌아가서 파타고니아의 이번 선언으로 기업이 하는 사회적 신념을 위한 약속의 진정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피터 틸과 같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큰돈을 아끼지 않는 기업인이 기후위기 대응 측에 있다면 그는 이본 쉬나드일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는 정책과 방향을 제시했던 빅테크의 제프 베이조스나 팀 쿡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미 빅테크의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진실성은 전문 리서치조차도 회의감을 표시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보다는 탄소감축 위주로 소극적 대응을 한다는 지적이다.) 과연 파타고니아는 공개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외치는 대선 후보(거의 100% 민주당일 가능성이 크다)에 대한 정치자금 조직인 슈퍼팩(Super PAC: Super Political Action Committee)을 지원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후보가 그의 슈퍼팩 자금을 받을 것인가? 하지만 중요하게는, "그런 방식이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과연 장려할 만한 것일까?”라는 질문도 해보게 된다. 다양성을 옹호하고 기후위기 대응에 진심이라는 빅테크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성의 임신 중단권리나 기후위기 대응에 제동을 거는 보수 판사를 육성하는 단체에 자금을 댄다고 할 때 (심지어 기부 사실을 오픈할 필요도 없다면) 그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
☕️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키티의 한글 이름은 홍윤희이다. 이커머스 기업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소셜임팩트를 담당한 바 있다. 딸의 장애를 계기로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자는 취지의 협동조합 무의(Muui)를 운영하며 2021년 초 카카오임팩트 펠로우로 선정됐다. IT, 미국 정치, 장애, 다양성, 커뮤니케이션 등의 주제를 넘나들며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글을 쓴다. 한국일보, KBS 제3라디오, IT뉴스 미디어인 아웃스탠딩 등에 정기 기고와 출연 중이다.
[키티의 빅테크 읽기]는 미국 빅테크와 테크 산업이 끼치는 경제사회 및 정치적인 영향에 대해 다루는 롱폼(Long-form) 아티클이에요. 전체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맥락과 행간을 놓치지 않는 시선을 전합니다. |
good@coffeepot.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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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라는 파타고니아의 선언, 즉 창립자 이본 쉬나드 가족이 회사를 통째로 기후위기 대응에 기부하겠다는 선언은 비즈니스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쉬나드 일가의 기부 방식도 특이하다. 회사를 팔아서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식의 전통적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커피팟이 앞서 전한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펼칠 홀드패스트 컬렉티브(Holdfast Collective)는 파타고니아 주식의 98%를 넘겨받았다. 향후 회사의 의사 결정은 파타고니아 목적 신탁에서 하게 되는데, 전체 주식의 2%에 해당하는 회사의 모든 의결권을 양도받았다.
이본 쉬나드가 신탁에 자신의 지분을 기부하면서 1750만 달러의 세금을 납부하지만 배배 꼬아서 본다면 목적 신탁에 넣은 소수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1750만 달러(약 250억 원)의 세금은 이 증여에 대한 것이다. 반면 면세가 되는 비영리 재단에 98%의 주식을 기부했다. 파타고니아의 기업 가치가 30억 달러(약 4조 3100억 원)이므로 원칙적으론 40%에 해당하는 12억 달러(약 1조 7240억 원)의 증여세가 부여되었어야 하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을 피해 간 셈이다.
잠깐, 그렇다면 파타고니아의 이 통 큰 결정이 사실은 증여세 회피 전략에 불과한 걸까?뉴욕대에서 세법과 비영리 단체를 연구하는 다니엘 헤멀(Daniel Hemel)은 쉬나드의 결정이 이타적이긴 하나 분명히 세법의 어떤 부분을 이용한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쉬나드 가족이 세금을 회피하겠다는 일념으로 이번 결정을 내린 건 아니다. 지배구조를 유지한 이유는 기업공개를 하거나 기업을 타인에게 매각하게 되면 파타고니아의 기업 신념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최초로 전한 뉴욕타임스를 통해 이미 언급되었듯 이본 쉬나드는 본인이 포브스 부자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고, 자녀들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억만장자일 필요가 없다"는 신념을 고수한다.
그렇다면 쉬나드 일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가장 큰 의도는 파타고니아의 수익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세법 규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NGO 중 일반에게 더 익숙한 형태는 미국 세법 501(c) 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선단체(charitable organization)'다. 게이츠 재단 등 상당수의 기업인이 설립한 공익재단이 이에 속한다. 재단 기부금에 대해 세제 혜택이 있어서 기업가들이 은퇴 후 이 형태로 공익법인을 만든다. 이형태의 단체는 기업 지분을 20% 이상 소유할 수 없다. 또한 기부 내역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홀드패스트 컬렉티브는 미국 세법 중 501(c)(4)(이하 "501c4") 규정에 의해 설립된 ‘사회복지단체(social welfare organization)’다. 501c4 단체중에는 '미스 아메리카'재단이나 지역 스포츠 리그 등도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NGO가 들어있다.
'사회복지단체’는 집행 비용중 50% 미만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가능하다. 예를 들어 단체 설립 목적에 맞는 정치 후보자를 후원할 수도 있고 로비에 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기부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기부자는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볼 수 없다.
브레이킹 '배드(Bad)' 아닌 '굿(Good)'
그동안에도 파타고니아는 매출의 1%를 기후위기 대응에 쓰고 공급망에서의 탄소배출을 공격적으로 줄이는 한편 공정한 공급망 구조를 구축하는데 힘써 왔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국립 공원의 면적을 축소하려고 하는 움직임에 반대 광고를 게재하는 등의 정치적 목소리도 내왔다. 그런데 이번 결정으로 아예 파타고니아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적극적인 정치 활동의 전진 기지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사실 501c4 단체는그동안 '검은돈(dark money)’, 즉 출처를 알 수 없는 후원금을 모으는 수단이란 악명을 떨쳐왔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 세력의 반발로 지역에 기반을 둔 풀뿌리 보수주의 조직인 (그 유명한) '티파티(Tea Party)'운동이 2009년부터 펼쳐졌는데 501c4 단체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지역정치에 자금을 공급해 왔다.
이를 견제하려는 흐름은 정치적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13년 오바마 정부하에서 미 국세청이 501c4 단체들에 대한 조사에 나섰는데 보수 정치인들이 강력히 반발하는 한편 진보적 언론에서도 ‘'501c4 전체가 문제인데 보수 단체만 타겟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비판했다. 결국 2015년 공화당이 주도한 의회는 501c4 단체들의 설립요건을 오히려 더 완화하고 혜택을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번 쉬나드의 결정은 '음험하게 활용 될수도 있는' 501c4 단체 설립 목적을 신선하게 비튼 사례다. 누가 단체에 기여금을 냈는지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 규정이 검은돈의 온상으로 비판받아왔는데 그런 선례를 시원하게 깨버린 것이다. 그래서 NPR에서는 쉬나드의 홀드패스트 설립에 대해 평범한 교사가 마약 거래상이 되는 유명 넷플리스 드라마 <브레이킹배드>에 빗대서<브레이킹 '굿(Good)'>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기업이 소위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사기업이 흔히 걷는 길을 과감하게 박차 버렸다는 의미다.
그러나 다니엘 헤멀 교수는 여전히 501c4 세법 규정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홀드패스트의 경우 기부자인 파타고니아를 투명하게 이미 공개했지만, 501c4 단체는 여전히 누가 준지 모르는 돈을 정치적 목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검은돈(dark money)’은 미국의 정치 환경을 현저히 왜곡시켰다. 앞서 티파티 등 보수 단체들이 501c4 규정을 활용했다지만, 사실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로 이 규정을 활용해 실질적인 정치 캠페인을 벌여 왔다. 2020년 미국 대선 때는 501(c) 세금 코드로 설립된 공익단체, 자선단체를 통해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더 많은 모금을 했다는 뉴욕타임스의 분석도 있었다.
501(c) 단체가 본래 활용되는 방식
"리나 칸의 업적은 지금으로서는 빈손이다."
카라 스위셔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피벗(Pivot)>에서 스콧 갤로웨이 뉴욕대 교수는 연방거래위원회(FTC) 리나 칸 위원장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최연소 위원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칸은 1년 넘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물론 위원회의 인원 구성 자체가 미루어지면서 중요한 결정 자체를 위원회 표결 자체에 부칠수 있게 된 것이 얼마 안 된 탓도 있다.
위원회 내부의 직원 만족도가 연방 정부 기관 중에서도 하위권이라는 보도를 비롯해 '리나 칸 흔들기'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악조건을 고려하더라도, 칸이 임명 전부터 '빅테크 저승사자'로 알려지면서 그가 위원장이 되면 당장 알파벳이나 아마존이 쪼개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지나치게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칸의 발목을 잡은 건 결정적으로 '자원 부족'이다. 지난 9월 20일 미국 상원 법사위에서는 연방거래위원회의 칸 위원장과 법무부 반독점국 조나단 캔터(Jonathan Kanter) 국장을 불러 지금까지의 반독점법 집행 사항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는데, 두 사람 모두 '자원 부족'을 호소했다.
이에 법사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에이미 클로버샤(Amy Klobuchar) 상원의원이 한 말이다.
"인원 부족이라는 말, 무슨 말인지 잘 압니다. 상원 법사위에도 담당 변호사가 3명이 있는데, 이분들이 빅테크 기업의 로비스트와 변호사 수천 명을 상대해야 하죠. (현재 FTC가 아마존을 겨냥해 조사 중인) 자사 상품 우대(self-preferencing) 분야에만 최소 2700명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인해전술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규제기관을 압박하는 ‘로비스트’는 어디 출신일까? 빅테크 기업에서 직접 파견되거나 이들이 고용한 로펌 변호사들도 있고, 501(c) 코드에 의거해 설립돼 빅테크의 후원을 받는 사회단체 소속 로비스트나 연구자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나 칸의 전 직장인 오픈 마켓 연구소(Open Markets Institute) 또한 501(c)(3)에 의거한 단체다. 오픈 마켓 연구소는 빅테크의 문제점을 의회를 통해 지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빅테크의 노골적 로비에도 활용
빅테크들이 후원하고 있는 여러 비영리 단체 중 가장 노골적으로 반독점법, 제재 추진에 반대하는 곳은 '반독점 연합(Alliance on Antitrust)'이다. 의회와 FTC, 법무부의 흐름에 조직적으로 반대해 왔다. 이 조직은 보수 법관 임명과 옹호를 위해 설립된 501c4 비영리 단체인 '정의를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Justice)'의 부속 단체이기도 하다. 구글로부터 '가장 실질적인 기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단체들은 때로는 연구소의 형태로, 때로는 이익단체의 형태로, 때로는 익명의 기부자에게 기부금을 받아 특정한 정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엄청난 로비를 마주하는 건 입법부, 행정부를 막론하므로 빅테크 기업들을 효과적으로 제재하지 못했다는 평판을 칸이 뒤집어쓰는 건 부당한 부분이 있다. 미 의회도 작년에 빅테크 제재 법안들을 야심 차게 선보였지만, 이 중 실제 통과에 가장 가까운 법안은 아마존의 PB 상품이나 구글의 자사 서비스가 검색에서 우선시되는 '자사 상품 우대'를 규제하는 내용이 핵심인 '온라인에서의 혁신과 선택 법안(AICO: American Innovation and Choice Online Act)’ 한 가지에 불과하다.
클로버샤 의원은 카라 스위셔와의 코드 컨퍼런스(Code Conference) 인터뷰에서 "엄청난 (로비) 자금과 맞서 싸우는 실정(It is an incredible amount of money I’m up against)”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은 상하원 양원 본회의 투표와 대통령 서명을 마치면 되는데, 상원에서는 1월부터 본회의 표결을 기다리고 있으며 하원에서는 1년 이상을 기다리는 중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아직 투표 일정을 잡지도 않았다.
실제로 클로버샤 의원이 입 밖에 내서 말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진보 언론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이 소재한 캘리포니아주 의원 중 상당수가 이번 법안을 찬성하지 않는 데다 민주당의 상하원 거물급 의원조차도 빅테크 로비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래도 할 일은 하고 있다
그렇다면 FTC는 그저 로비스트들에게 무력화되어 정말 아무 성과도 못 내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FTC는 항공, 반도체를 비롯해 14건의 기업 합병을 사전 차단했다. 테크 기업을 직접 겨냥하진 않았지만, 우회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그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목적인 결정도 있었다. 예를 들어 FTC가 7월 '소비자 수리권'에 대한 조처를 발표한 후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수리 소비자에게 유리하도록 AS 규정을 바꾸기도 했다.
9월에는 코차바(Kochava)라는 앱 마케팅 기업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코차바는 사용자의 위치 정보를 비롯한 사용자 정보를 앱 마케팅을 하려는 기업에 판매한다. FTC는 코차바가 위치 정보를 팔면서 민감한 정보, 예를 들어 임신 중단 시술 병원, 학대 여성 상담소 등의 정보를 제대로 가리지 않았고, 기업 고객이 단순히 '비즈니스 목적'으로 정보를 구매한다는 것보다 더 상세하게 목적을 기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이 정보가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타이밍만 보면 의아하다. 연방 차원의 통합적인 데이터 프라이버시 법안에 대한 수요는 있으나 아직 발의도 안 된 상태라서 이길 확률은 더 낮다. FTC가 승소하려면 코차바의 사용자 데이터를 구입해 간 기업에서 이 정보를 악용했다는 걸 FTC가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 소송을 FTC가 제기한 것은 리나 칸이 '소비자 정보 보호'에 진심이니 기업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시그널이다. 사용자 정보 판매라는 비즈니스 모델에 더 엄격한 소비자 보호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의지다.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면 웬만하면 기업 인수합병은 승인하겠다"라는 것이 기존의 FTC였다면 리나 칸의 FTC는 좀 더 꼼꼼하고 엄격하게 소비자 이익 기준을 판단한다. 이종산업을 인수할 때는 관대하던 기존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아마존의 아이로봇(로봇 청소기 룸바(Roomba) 제조사) 인수에 대해서도 FTC는 9월 27일 두 번째 질의서를 보내는 등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어찌 보면 칸의 고난은 불 보듯 뻔했다. 새로운 소비자 이익 기준을 법원에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관련 케이스들에 보수적인 법관이 임명되도록 로비하려는 사회단체에 빅테크들이 기부금을 내고 있다면 어려움은 배가되는 게 당연하다.
빅테크의 싸움: 주 정부와 전 세계 규제기관
그러나 FTC나 미 연방 법무부만이 빅테크에 대항하는 건 아니다. 미국의 주 정부가 외국 규제기관의 사례를 따라 빅테크를 압박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9월에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이 고등법원에 아마존을 '불공정 경쟁'으로 제소했다. 아마존이 서드파티(Third Party) 판매자들에게 월마트나 타깃과 같은 경쟁 사이트에서 더 싼 가격에 제품을 판매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계약에 서명하라고 요구했으며 이를 따르지 않는 판매자들은 아마존 검색 결과에서 불리하게 했기 때문에 소비자 가격에까지 영향을 주는 반독점 행위라는 것이다.
아마존의 경우 같은 케이스가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워싱턴 DC 법무장관은 유사 제소를 진행했다가 구두 심리에서 거절당한 후 8월에 다시 제소를 추진했다.
미국 주 정부의 이런 잇단 행보는 독일이나 캐나다가 아마존을 상대로 제기한 제소 건과도 비슷하다. 이를 두고 반독점을 연구해 온 '미국 자유 경제 프로젝트(American Economic Liberties Project)'의 맷 스톨러(Matt Stoller) 디렉터는 "반독점을 향한 민주주의 실험이 예전에는 미국 내 50개 주에서 주로 이뤄졌다면 이젠 전 세계가 이런 종류의 규제기관을 모두 갖추면서 서로 영향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승률을 높이기 위해 전술도 조금씩 바뀐다.
예를 들어 이번 '캘리포니아 vs 아마존' 소송에서 법무장관은 아마존이 독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신 '불공정 경쟁'이라는 좀 더 광범위한 차원의 법 조항을 적용했다. 아마존이 여러 '시장 획정' 기준을 들어서 '독점' 논리에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 주 정부의 사례 등이 쌓이면 결국 FTC와 미 연방 법무부의 빅테크에 대한 유사 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연방 법무부는 구글과 애플을 상대로, FTC는 메타 및 아마존과 각을 세우고 있다.
법무부는 구글이 애플, 삼성 등과 (휴대폰의 디폴트 브라우저에 구글 검색 엔진이 적용되도록) 계약을 맺고 비용을 지급해 검색 엔진 1위를 수성하려 한 행위에 대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애플 앱스토어 운영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FTC는 메타가 피트니스 VR앱인 '수퍼내추럴'을 만드는 '위딘 언리미티드(Within Unlimited)' 인수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아마존에 대해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소송에서 이기지 않더라도 이들 빅테크의 확대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아마존은 규제 압력 때문에 자사 브랜드의 아이템 숫자를 현저히 줄였고, 아예 PB 사업 철수를 내부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이라는 글자가 안 보여도 대부분 스마트폰의 브라우저에 적용된 검색 엔진은 구글이다.
중간선거가 빅테크에 미치는 영향
9월 말 기준으로 약 6주 앞으로 다가온 미국 중간선거가 과연 빅테크 규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중간선거는 무조건 여당이 진다는 규칙이 이번엔 깨질 가능성이 크다.
상원은 민주당이 근소한 차이로 수성하거나 오히려 1~2석 더 얻을 수도 있다. 하원은 여전히 공화당 우세가 점쳐지지만, 당초 큰 폭으로 민주당이 지리라 예측되었던 것에 비하면 민주당이 선전하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임신 중단 합법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 이로써 중도층, 여성들이 대거 분노의 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민주당이 상원을 수성하고 하원은 공화당에 내준다고 하면, 빅테크 규제 전망은 어떻게 될까.
우선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가진 메타와 구글의 경우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손봐줘야겠다"라며 벼르는 공화당 의원들이 꽤 많기 때문에 어떤 당이 우위를 차지하든 의회에서 문제제기가 계속될 것이다. 표현의 자유 이슈는 주로 공화당 의원들이 주체가 되어 "빅테크 기업들이 우파 목소리를 온라인상에서 탄압한다"는 의구심에서 시작된 정파적 논리지만, 정파적 논리를 넘어서서 이제 빅테크에 대해 논리적으로 파고들거나아예 책까지 내는 공화당 의원들도 나오기 시작했다는 게 몇 년 전과의 차이다.
원래 중간선거 후 11, 12월의 미 의회를 레임덕 세션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회기 시작 전 별다른 입법 동력이 없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적어도 여러 빅테크 관련 법안 중 양원 모두 상임위를 통과해서 본회의만 통과하면 되는 '온라인에서의 혁신과 선택 법안(AICO: American Innovation and Choice Online Act)'의 경우이 레임덕 세션 동안에라도 통과시킬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이 법이 통과되면 아마존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구글 또한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빅테크 기업의 입장에서는 사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서로 단결하지 않고 분열할수록 유리하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지금처럼 대규모 법안들이 발의는 됐으나 정체된 상태에서는 다수당이 상하원 모두 바뀌면 상임위 구성을 비롯해 많은 내부적 조율이 필요하므로 더더욱 그렇다.
중간선거를 지나면 양당 모두 다음 대선 준비에 돌입한다. 다음 대선 후보가 누가 되느냐, 양당에서 누가 '큰손'으로 떠오를지가 빅테크에게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여전히 지난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 의사당 습격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트럼프의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 자택에서 기밀 서류를 FBI가 압수하는 사건에 대한 내용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가 지지한 극우 후보들이 각 주의 경선에서는 대승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걸로 점쳐지고 있다. 그중 한 후보가 테크 거물 피터 틸(Peter Thiel)의 오른팔로 알려졌던 블레이크 매스터스. 애리조나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로 나서서 트럼프의 지지 하에 '낙태 반대'를 비롯해 "가정에서 남자 혼자 벌어도 되게끔 하겠다"라는 식의 극우파 메시지를 퍼뜨려 위험한 후보로 점찍혔는데, 민주당 후보와 맞붙을 본선이 되자 극렬 낙태 반대 메시지를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슬그머니 지우는 등의 행보를 보인다.
틸은 본선에서 더 이상 매스터스에게 정치 자금을 투여하지 않을 계획이라 상원 탈환을 노리는(즉 한두 석이 아쉬운)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 사건은 '트럼프 사당화'만이 집권을 위한 필승 전략인 것처럼 생각한 공화당 지도부의 내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피터 틸은 정치 후원에 전념하면서 오랫동안 지켜온 메타의 이사직도 내놓았는데, 킹메이커로 불리운 틸이 이번 선거를 통해 교훈을 얻어 온건한 후보에게도 지원할지, 아니면 자신의 평소 소신대로 '완전히 때려 부수겠다는' 극우파 후보를 계속 밀지 앞으로가 주목된다.
다시 파타고니아로 돌아가서
파타고니아의 이번 선언으로 기업이 하는 사회적 신념을 위한 약속의 진정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피터 틸과 같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큰돈을 아끼지 않는 기업인이 기후위기 대응 측에 있다면 그는 이본 쉬나드일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는 정책과 방향을 제시했던 빅테크의 제프 베이조스나 팀 쿡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미 빅테크의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진실성은 전문 리서치조차도 회의감을 표시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보다는 탄소감축 위주로 소극적 대응을 한다는 지적이다.)
과연 파타고니아는 공개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외치는 대선 후보(거의 100% 민주당일 가능성이 크다)에 대한 정치자금 조직인 슈퍼팩(Super PAC: Super Political Action Committee)을 지원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후보가 그의 슈퍼팩 자금을 받을 것인가?
하지만 중요하게는, "그런 방식이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과연 장려할 만한 것일까?”라는 질문도 해보게 된다. 다양성을 옹호하고 기후위기 대응에 진심이라는 빅테크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성의 임신 중단권리나 기후위기 대응에 제동을 거는 보수 판사를 육성하는 단체에 자금을 댄다고 할 때 (심지어 기부 사실을 오픈할 필요도 없다면) 그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