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자경단이 돌아온 시장의 모습

[부엉이의 차트피셜] 26화. The Bond Vigilantes, 그들이 돌아오는 이유

2024년 12월 6일 금요일
나라에 엄중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눈 앞에 놓인 일을 침착히 진행하고, 일상이 정상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죠. 부디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라면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그에 일조할 수 있다면 일조하면서요.

지성의 사회와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것은 침착하게 본연의 일을 해나가는 것이라고도 생각됩니다. 모두들 침착하게 일상을 누리시고, 사랑하는 이들과도 소중한 시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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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채권 자경단(The Bond Vigilantes)이 돌아온 전 세계 금융 시장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과거부터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때때로 보여주기도 한 이들은 2000년대 이후에는 시장에 출격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장기 국채 금리의 수준도 높지 않았고, 인플레이션이 크게 유발될 만한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2020년 팬데믹 이후 특히 미국을 비롯한 기존 선진 시장 각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서 이 자경단이 출몰할 조건들이 갖춰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2022년에는 새로 취임한 영국의 리즈 트러스(Liz Truss) 총리가 (당시 많은 이들을 갸우뚱하게 했던) 법인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 삭감 등으로 인한 재정 적자 확대 우려를 키우면서 이들이 대거 영국 국채를 매도하는 현상이 일어났죠.

이 현상으로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금융 시장은 급격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이 영향은 리즈 트러스 총리가 영국 역사상 최단 기간에 사임을 하게 된 총리로 기록되는 것으로 이어졌고요. 한동안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던 채권 자경단의 강력한 귀환이라고도 볼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귀환한 이들은 2024년에도 또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고, 여차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도 출몰할 가능성이 있다고 오늘 [부엉이의 차트피셜]은 짚습니다. 과연 어떤 상황에서 이들이 나타날까요? 지금 그럴만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들이 등장한다면 시장에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어떤 영향이 끼쳐질까요? 

다음 한 해에 대해서도 중요한 힌트가 되는 그 이야기 살펴보시죠.

[부엉이의 차트피셜]
채권 자경단이 돌아왔다
The Bond Vigilantes, 그들이 돌아오는 이유

제임스 카빌(James Carville),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정책 자문은 클린턴 재임 시절 아래와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환생할 수 있다면 대통령이나 교황, 혹은 4할대 야구 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채권 시장이 되고 싶다. 모두를 겁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빌은 채권 시장의 영향력이 아주 크다는 점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의 말처럼, 채권 시장은 때로 정부 정책에 강력한 압박을 가하며 경제 흐름을 좌우해 왔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 시절, 채권 자경단(The Bond Vigilantes)이 그 위력을 발휘했던 시기가 대표적이다.

클린턴 대통령(1993년~2001년)이 재임하는 동안 정부 경제 정책은 채권 시장의 눈치를 봐야 했다. 채권 투자자들은 정부의 재정 지출 증가 조짐이 보이면 국채를 매도해 장기 금리를 급등시켰다. 지나친 금리 상승에 주식 시장이 조정받고, 경기도 둔화되면서 대통령도 채권 시장 동향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미국 경제는 침체에서 막 벗어나 회복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연방 정부는 여전히 세수보다 지출이 많아 국가 부채가 증가하는 상황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단기 경기부양책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복지 정책에 우호적인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정부 재정 지출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기준금리를 올리자, 채권 금리가 급등했다. 해당 기간 연준이 기준금리를 3%에서 6%까지 올린 탓에 단기 금리가 상승했고, 연방 정부의 재정 지출 우려는 장기(10년) 금리를 압박했다. 

1993~1997년 미국 기준금리, 국채 10년 금리, 소비자물가상승률 추이 (데이터: 블룸버그)
채권 시장이 정부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클린턴 재임 시절이었다.
1993년 10월 15일부터 1994년 11월 7일까지 미국 국채 10년 금리는 5.19%에서 8.05%까지 3%가량 올랐다.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밑돌았기 때문에 실질 장기 금리는 보기 드물게 높은 수준이었다. 고금리가 금융시장과 실물 경기 양쪽을 압박했다. 

결국 클린턴 행정부는 재무장관인 로버트 루빈(Robert Rubin)의 조언에 따라 재정 적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대통령은 공약했던 경기부양책을 포기했으며, 대신 세금 인상과 정부 지출 삭감을 선택했다.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클린턴 임기 말에는 재정 흑자를 달성하고 정부 부채 규모가 감소했다.

정책 전환과 함께 국채 시장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이 사건은 채권 시장이 정부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책 전환은 채권 시장의 우려를 완화시켰지만, 긴축 정책은 1994년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잃는 데 일조했다.

제임스 카빌이 그래서 "채권 시장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토로한 것이다.

채권 시장에 자경단이 돌아온 것은 좋은 신호일까?  
채권 자경단(The Bond Vigilantes)의 탄생
1984년 경제학자 에드워드 야데니(Edward Yardeni)는 '채권 자경단(The Bond Vigilantes)'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나 정부의 재정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우려가 있을 때, 채권 투자자들이 국채를 투매해서 금리를 급등시키고 중앙은행과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경제 전반에 걸쳐 차입 비용이 상승하여 투자와 소비가 위축된다. 국채 금리 급등으로 경제가 위축되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경제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이 낮아진다. 또, 정부는 지나친 금리 급등으로 경제가 침체에 접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재정 적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여 채권 금리를 안정시킬 유인이 생긴다. 

채권 자경단은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집단이 아니다. 자경단은 '지역 주민이 범죄나 재난에 대비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한 경비 단체'를 의미한다. 채권 자경단은 적자 재정으로 국채 발행이 증가하거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까 두려운 독립적인 투자자들이다. 이들이 채권을 매도하면서 금리가 오르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면 장기적으로 국가 채무 부담이 줄어든다. 명목 물가가 상승하면 과거에 발행한 채권의 실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유인을 갖는다. 반면에 과도한 재정 적자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거나 국채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채권 투자자는 손실을 입는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국가가 낮은 인플레이션을 유지하도록 정치적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

채권 투자자들이 손해를 막기 위해 채권을 매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정치적 위협이 된다. 다수의 투자자가 채권을 매각해서 장기 국채 금리가 부담이 될 정도로 오르면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거나 경기 과열을 식히는 방식으로 금리는 낮춰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연준의 연구에 따르면 채권(금융) 시장이 발달한국가일수록 채권(금융) 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국가 대비 인플레이션이 3~4% 정도 낮게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권 투자자들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채권 시장과 자경단의 존재는 낮은 인플레이션에 분명한 도움을 준다.

미국 명목 GDP 성장률, 국채 10년 금리 장기 추이 (데이터: 블룸버그)
2000년대 이후에는 채권 자경단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채권 자경단이 한동안 사라졌던 이유
에드워드 야데니(Edward Yardeni)는 단순히 명목 GDP 성장률과 장기 국채(10년) 금리 수준을 비교하는 것으로 채권 자경단의 활동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국채 금리가 물가와 경제 성장률을 합한 명목 GDP 성장률보다 낮다면 금리는 완화적인 수준이고, 높다면 금리가 긴축적인 수준이다. 채권 자경단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면 채권 금리가 명목 GDP 성장률을 넘어서 긴축적인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채권을 투매할 것이다. 장기 금리가 충분히 긴축적인 수준에서 유지되면 경제 활력이 저하되면서 경제 성장률과 인플레이션도 낮아진다.

2000년대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장기 국채 금리는 명목 GDP 성장률보다 낮았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대규모 적자 지출을 감행하고 연준이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등 인플레이션이 우려될 만한 정책이 시행됐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연준이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을 통해 국채를 매입하면서 채권 자경단 활동이 막을 내렸다. 채권 금리는 경기 싸이클을 따라 오르내렸으나, 결코 정부 정책에 부담을 주는 수준까지 상승하지 못했다. 

몇몇 투자자들은 채권 자경단을 자처하며 채권 매도 포지션을 취하거나, 파생 상품을 이용해 금리가 상승하는 방향으로 베팅을 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채권왕(Bond King)이라고 불리는 핌코(Pacific Investment Management Company)의 빌 그로쓰(Bill Gross)도 있었다.

빌 그로쓰는 "인위적으로 수익률 상승을 억제하면 언젠가는 수익률이 다시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채권 투자자에게 손실이 발생한다. 그는 1970년대 인플레이션 시절을 떠올리며 2010년 말부터 국채 보유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2011년 4월에는 국채 비중을 0%로 줄이고 파생상품을 이용해서 매도 포지션을 추가했다. 하지만 2011년 8월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주가가 폭락했고,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국 재무부 채권 가격이 폭등했다. 국채 10년 금리는 8월에 1962년 이후 최저 수준인 2% 아래로 떨어졌고, 채권왕의 위신이 떨어졌다.

정부의 돈 잔치가 이루어지면 채권 자경단은 늘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지: 월스트리트저널, 채드 크로우
하지만 다시 강력하게 귀환한 채권 자경단
2022년 9월, 채권 자경단이 영국 땅에 나타났다. 2000년 이후 아르헨티나, 그리스 등 국가 채무 불이행 문제가 불거진 일부 불량 국가의 금리가 급등하는 사태는 종종 있었지만, 기축 통화를 사용하는 주요 선진국의 금리가 인플레이션 우려로 폭등한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2021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서 자경단이 다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자경단은 영향력을 행사해서 영국의 신임 총리를 사임시키기도 했다. 리즈 트러스(Liz Truss) 총리는 세금 삭감으로 가처분 소득을 높이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려는 정책을 발표했다. 우선, 대규모 감세 계획을 발표하고 최고 소득세율(45%)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또 법인세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인플레이션율은 이미 10%에 근접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 적자 확대 계획은 채권 투자자들에게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이들은 국채를 대거 매도하기 시작했다. 

미국 달러 대비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1971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고, 국채 금리는 급등했다. 국채 금리가 지나치게 상승하자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국채를 매입해서 시장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채권 금리 상승을 막을 수 없었다. 금리가 급등하자 영국의 연기금들이 보유한 장기 채권에서 평가 손실이 발생했다. 연기금들이 유동성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매도하면서 금리가 더욱 상승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정부가 세금 삭감 정책을 철회하면서 장기 국채금리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결국 리즈 트러스 총리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영국 역사상 가장 짧게 재임했다.

영국의 국채 10년 금리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어떤 시점에서 이들이 등장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데이터: 블룸버그)
채권 자경단이 미국과 같은 거대 금융시장에서 정부 정책에 다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유명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는 자경단의 귀환을 기다리는 듯하다. 그는 최근 투자 컨퍼런스에서 전체 포트폴리오 중 15~20%를 미국 국채에 대한 매도 포지션으로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재정적으로 방만한 상황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1970년대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포지션을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6년까지 유지할 계획이다.
* 드러켄밀러는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를 관리했던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이며 파운드화를 매도하여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일화로 유명하다.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스콧 베센트가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주인공으로 소개되기도 했는데 드러켄밀러가 그를 고용했고,  책임자였다.

현재 주요국의 정부 부채 부담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에서 채권 자경단의 재등장 가능성과 그 영향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금융위기 이전의 약 두 배 수준인 120%에 이르렀다. 과거보다 심각해진 부채 부담 속에서 이를 해결할 뚜렷한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빚을 줄이려면 나라의 지출보다 소득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미국 재정 수지는 올해도 GDP 대비 5% 수준의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정치적 반발로 감세와 재정 삭감이 쉽지 않을 것이다. 재정 적자를 줄이려면 세금을 인상하거나, 사회보장 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이 국가 채무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크게 인상하거나, 지출을 줄일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

정부와 국민들은 금융위기부터 코로나 판데믹까지 장기간 이어진 적극적인 통화와 재정 부양 탓에 국가 채무가 늘어나는 것에 둔감해졌다. 미국 의회 예산처(CBO)는 대선 전에 이미 민주당과 공화당 어느 쪽이 집권해도 국가 채무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의 높은 정부 부채와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우려는 채권 자경단이 다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있다. 국가가 국민들 몰래 채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이 채권 투자자들에게 해를 끼친다면 자경단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것이다. 


글쓴이: 부엉이. 다양한 금융기관에서 채권 관련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 자산운용사에서 채권형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채권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가치투자에도 관심이 많다. 워런 버핏의 열렬한 추종자로 버크셔 헤서웨이 주주총회를 2차례 방문하고 다수의 관련 기고도 했다.

[부엉이의 차트피셜]은 매월 1회 찾아옵니다. 친숙하지만은 않은, 하지만 누구에게나 중요한 금리와 채권 시장을 비롯한 금융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주요 지표와 차트를 기반으로 풀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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