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이조스의 실수

워싱턴포스트는 엑스가 될 수 있을까?

2025년 3월 14일 금요일
워싱턴포스트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는 중이라고 지난 1월에 전해드렸는데요. 결국 전속력으로 그 길을 가는 중입니다. 오너인 제프 베이조스는 기존의 워싱턴포스트의 논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방향을 밀어붙이기로 마음을 먹은 듯합니다. 

하지만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분명히 '워싱턴포스트의 이익'에는 해가 되는 방향입니다. 그렇다고 장기적으로 어떻게 턴어라운드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경영진은 제대로 제시하고 있지도 못합니다. 지금의 방향이 결국 회사와 그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좋을지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는 상황이죠.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요? 워싱턴포스트를 어떤 미디어로 만들고 싶은 걸까요? 

아니, 질문이 잘못되었을 수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를 어떻게 활용하고 싶은 걸까요?"가 맞는 질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디어 노트] #뉴스미디어 #카라스위셔
제프 베이조스의 실수 
워싱턴포스트는 엑스가 될 수 없다
제프 베이조스가 시작한 워싱턴포스트의 위기는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미 대선 정국에서만 30만 명의 구독자를 잃었던 워싱턴포스트는 파격적인 할인을 지속하면서 다시금 구독자 수를 회복하는 듯 했습니다. 자세한 수치는 밝히지 않았지만 30~40만 명의 구독자를 다시 불러들였다고 하니, 전체 구독자 수 250만 명 선을 다시 회복한 듯 했죠. 

하지만 지난 3월 초부터 제프 베이조스가 본격적으로 워싱턴포스트의 편집 방향에 관여를 하기 시작하면서 겨우 진정된 위기는 다시 시작됩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오핀니언 면, 즉 사설란을 앞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자유 시장"을 수호하는 방향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인데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개인의 자유와 자유 시장을 수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지키고 대변해 왔다고 할 수도 있는 대표적인 종합지인 워싱턴포스트의 논조를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과 일치시키라는 지시는 누가 봐도 이해하지 못할 처사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당연히 내부적인 반발도 거셌고, 독자들의 반발도 또 커졌습니다. 단 며칠 새 7만 5000여 명의 구독자가 또 빠져나갔으며, 애써 회복한 수치를 워싱턴포스트는 다시 잃었습니다. 제프 베이조스가 추구하는 현재 방향은 워싱턴포스트의 '고객'들과 완전히 정반대임을 다시금 증명하는 사례가 되었죠. 

작년에만 1억 달러(약 1450억 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진 워싱턴포스트를 두고 제프 베이조스는 왜 손해가 더 커지는 선택을 하는 것일까요? 더군다나 작년의 실적도 기존의 구독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더 크게 확대된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지금 정권에 밉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대표적인 리버럴 매체이자, 트럼프 대통령 비판에 앞장서 온 워싱턴포스트를 변신시키지 않으면 자신의 다른 '큰' 사업들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특히 정부 계약도 중요한 블루오리진 같은 우주비행 사업에서 말이죠. 

물론 제프 베이조스가 자신의 본래 성향을 드러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혹은 변한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보고요. 본래 시장에는 적정한 규제도 필요하다고 보는 리버럴 진영의 논리보다는 극단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리버테리언(libertarian)'의 입장을 추구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제프 베이조스의 지금 선택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단기적으로 신문의 논조를 뒤집고, 신문의 방향을 아예 달리하고, 완전히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는 미디어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워싱턴포스트'라는 제호가 남아 있는 한, 그리고 그 역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쉽지 않을 일입니다.

큰 변신을 이루어내고 싶다면, 워싱턴포스트의 레거시까지 해체해야 합니다.
'롱 게임'을 본다고 해도   
제프 베이조스는 어쩌면 미디어를 활용한 '롱 게임'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그러한 것처럼 소셜미디어인 트위터를 엑스로 리브랜딩하고, 자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메가폰으로 워싱턴포스트를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당장은 장기적인 변화를 추진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야 할 때라고 판단한 듯합니다.

작년에 제프 베이조스가 새로운 CEO인 영국의 텔레그래프와 월스트리트저널 출신의 윌 루이스를 고용하고 여러가지 변화를 줄 때에도 "아 새로운 방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미 대선 정국 전후를 통틀어 보여준 모습은 워싱턴포스트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굳건한 독자 베이스를 만들어 새로운 사업도 추진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의 위치에 올랐던 때를 완전히 배반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지난 2022년 이후 제대로 된 성장을 이어가지 못한 것은 이들이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만큼 외연을 더 확장하지 못했고, 사람들이 더 구독을 할 좋은 이야기들을 생산해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치 섹션에 비중이 쏠렸고, 경제와 비즈니스를 포함해 사람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분야에서 그 역량을 키우지 못했고요. 큰 성공 뒤에 그 성공을 이어 나가지 못하면서 내리막길을 탔죠. 

그래서 최근에 새롭게 내놓은 방향은 이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와 과학 그리고 테크 분야의 비중을 높이고, 더 넓은 오디언스에게 다가가자는 그림을 경영진은 제시했죠. 편집국에도 이와 같은 방향을 설명하고요. 그러면서 편집국장인 맷 머레이는 "앞으로 뉴스룸은 엘리트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독자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방향으로 갈것이다"라고 표현을 했죠.

하지만 여기서 바로 새로운 방향에 혼란스러워하는 직원들의 반박이 나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엘리트'만을 대변하는 이야기들을 써왔다면, 어떻게 (최대) 300만 명이라는 유료 구독자를 만들고 뉴욕타임스를 위협하는 지위까지 올랐겠나?"라고 말이죠. 현재 250만 명이 조금 안 되는 유료 구독자의 수도 '엘리트'를 위한 신문이라면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워싱턴포스트의 문제는 그 논조와 '수준'에 있지 않았습니다. 커피팟을 통해서도 그 부진에 대해 분석해 왔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디지털 미디어로써 성공적으로 기능을 하기 위한 새로운 콘텐츠와 제품을 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워싱턴포스트라는 레거시 미디어가 대규모 유료 오디언스를 만들고, 더 국제적인 미디어로도 점프하기 위해서는 뉴욕타임스의 길을 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길이 제시된다고 누구나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가능성이 있는 가장 유력한 미디어가 워싱턴포스트였고, 성공적으로 수행을 하고 있었죠. 그것도 오너인 제프 베이조스의 강력한 지원과 결합이 된 덕분에요. 

구체적인 로드맵이 짜여졌다면 "워싱턴포스트는 앞으로 핵심 지표를 무엇으로 볼 것이며, 유료 구독자 몇백만 명, 웹과 앱 MAU 몇천만 명을 계획하고 있다"라는 선언부터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경영진이 지금 강조하는 대로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기업의 지표를 말해야 하죠. 그리고 실적을 어떻게 개선해 갈지에 대해서도요. 

하지만 이를 위한 투자와 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이제 추가 지원은 없고, 그렇다고 새로운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울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리더들이 영입된 것도 아니고, 그저 신문의 방향을 바꾸기 위한 작업이 전방위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기자들과 뉴스룸이 변화를 싫어하고, 협조하지 않는다"라는 제프 베이조스의 생각이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조직이 더 성장하기 위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은 실재할 수밖에 없고,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허나 현재 그의 모습이, 워싱턴포스트라는 미디어 기업을 자생하면서 성장을 추구하는 미디어 기업으로 만들어 나가지 않을거라는 의심을 강화해 주고 있다는 것이 우선의 문제입니다.

카라 스위셔도 워싱턴포스트 인수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업계에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죠. 그리고 인수에 실패하고 새로운 미디어를 시작한다면 그 이목도 끌 수 있는 선택이고요. (이미지: 뉴욕매거진 아티클 캡처)
카라 스위셔의 도전
이런 상황 속에서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겠다고 선언했던 언론인 카라 스위셔는 여전히 그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크 큐반과 같은 억만장자들도 자신의 계획을 밀어주겠다고 약속을 한 상황이라면서요. 그에 의하면 현재 워싱턴포스트 인수에 함께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억만장자들의 리스트는 수십명도 넘는다고 합니다. 어쨌든 충분한 돈은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물론 이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기업을 기반으로 억만장자가 된 마크 큐반의 경우에는 카라 스위셔가 직접 이름을 밝히면서 거론을 했고, 카라 스위셔가 미디어 업계 전반에 가진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카라 스위셔라는 인물, 즉 그 개인의 현재 시장 가치만 해도 수천만 달러에 이릅니다. 현재 스캇 갤로웨이와 운영하는 팟캐스트인 '피벗' 하나만 해도 복스 미디어와의 연간 계약 규모가 수천만 달러를 상회한 것으로 알려졌죠. 

다만 제프 베이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특히 카라 스위셔에게 매각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일단 카라 스위셔가 이끄는 컨소티엄에게 매각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이 오랜 레거시의 미디어 운영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임과 동시에 개인적인 패배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인 그가 이런 선택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프 베이조스에게는 이제 워싱턴포스트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그 방향이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 그리고 때론 자신이나 그 사업을 위한 메가폰이 되기도 하는 미디어이죠.

근데 그의 계획대로 논조를 바꾸고, 조직을 슬림화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워싱턴포스트는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다시 수익을 내고 수많은 구독자 혹은 사용자를 확보한 성공적인 사업이 될 수 있을까요?

아마존이라는 기업을 일군 그가, 영민하게 세상을 읽을 줄 아는 그가,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 레거시가 뿌리 깊은 이름이 1~2년 동안의 작업을 통해 완전히 변신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 방향으로 간다면 이 미디어가 단기간 내에 다시 수익을 안정적으로 내기는 어렵다는 것을요.

만약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세상을 영민하게 바라보는 그도 이제는 세상을 너무 쉽게 보고 있는 억만장자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경영자라기보다는 어찌 보면 그도 세상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쥔 사람이면서 그와 비슷한 사람들 혹은 정치권력과 오랜 기간 교류하는 것이 비즈니스가 된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 테고요.

만약에 지금의 상황이 이어진다면 워싱턴포스트는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혁신을 추구하던 때에 세웠던 저널리즘의 원칙이나 이와 비슷한 어떠한 철학 없이 조직을 완전히 바꾸는 작업을 하는 것은 사람과 현상을 취재하고 그것에 관점을 담아 정보를 전하는 미디어에 적용될 수가 없습니다. 이 분야에서 진정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이들이 그러한 조직을 위해서 일하기 위해 모이지 않을 것이고요. (아 물론, 워싱턴포스트를 신규 AI 미디어 기업으로 변신시키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그래서 카라 스위셔는 이 와중에 새로운 '신문' 정확히는 디지털 미디어를 세우겠다는 구상도 가능함을 여기저기 슬쩍 흘리기도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서 구독을 취소한 독자들은 현재 디애틀란틱과 뉴욕타임스 등을 대체 구독하고 있는 것으로 시장에서는 그 흐름을 보고 있는데요. 워싱턴포스트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들도 현재 대표적인 미디어 곳곳으로 이동을 하는 중입니다. 

오히려 워싱턴포스트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과도 경쟁을 하는, 미국의 '신문판'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기에 적기는 지금일 수 있습니다. 현재 워싱턴포스트 등에서 퇴사를 하고 시장에 나오는 뛰어난 저널리즘 인력과 테크 조직을 결합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경영진이 있다면요.

카라 스위셔가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워싱턴포스트 인수를 하겠다고 계속 크게 말해온 이유가 바로 자연스레 새로운 미디어 설립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함인 것이죠.

제프 베이조스의 선택이 실수가 될 수 있는 건, 워싱턴포스트와 직접 경쟁을 하는 이들의 성장이 가팔라지는 흐름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미국 미디어 업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저널리스트들이 모여 새로운 이들과 새로운 조직을 의욕 있게 만든다면, 워싱턴포스트는 더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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