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의 빅테크 읽기] 34화. 누가 잡아도 잘 쓰일 칼이 된 FTC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반독점법 규제 의지는 큰 기대 속에 시작되었습니다. 특히나 1989년생 위원장 리나 칸을 내세워서 '빅테크 규제 필요성'을 큰 이슈로 만든 것도 좋은 한 수였죠. 하지만 대중들이 보기에 FTC의 지난 3년 간의 성과는 지지부진합니다. 뉴스를 통해서는 FTC가 또 마이크로소프트 혹은 메타에 대한 소송에서 졌다는 결과가 대서특필 되었고, 무리수를 둔다는 인상이 짙어졌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대표 연방 기관 중 하나가 3년 간 빈 손이었고, 효과 없는 제재만 가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AI의 물결과 빅테크의 이어지는 호실적에 모든 것이 가려지고 있는 듯하지만, 규제를 위한 '빌드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FTC가 해 온 작업들을 살펴보면 당장 주목을 끌었던 케이스들에서는 패배했어도, 미래의 독점을 더 심화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차단하며 제 할 일을 해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2022년에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제동을 건 것이었습니다. 이미 엔비디아가 가지고 있던 경쟁력과 산업 우위를 보고 있던 이들은 엔비디아가 ARM까지 인수를 하게 되면, 곧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는 새로운 산업에서 독점 기업의 탄생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 것이죠. (물론 AI 칩에 대한 지금의 (사실상) 독점 구조는 엔비디아가 오래 쌓아온 기술 경쟁력이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FTC는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치는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의 자체 브랜드(PB) 상품 '검색 순위 조작'에 대한 제재를 가하면서, 아마존의 자체 레이블(PL) 상품이 더 돋보이도록 한 행위에 FTC가 소송을 제기한 것을 예로 들기도 했죠. FTC의 소송 결과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변호인단 중 하나와 싸우면서 어떤 결과를 낼 지는 확실치 않지만, 갈수록 탄탄한 케이스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어려운 싸움이지만, 산업 독점력의 심화를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여론을 환기하는 작업도 이들이 하고 있다는 점을 오늘 [키티의 빅테크 읽기]는 짚습니다. 또한 최근 들어서는 빅테크 규제 필요성에 대해 미국 정치 진영 어느 쪽이건 강조하고 있기에, FTC가 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잘 드는 칼'로 쓰일 가능성도 있음을 지적합니다. |
[키티의 빅테크 읽기] 34화. 쿠팡도 잡는 미 연방거래위원회의 쓰임 누가 잡아도 잘 쓰일 칼이 된 FTC |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음 정부가 테크정책을 어떻게 펼칠지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빅테크들이 대거 소송당하거나 인수합병을 저지당하는 한편, AI 산업이 급부상했다. 이 한가운데 반독점, 불공정,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이슈를 규제하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있다. 그동안 FTC, 특히 리나 칸 위원장은 보수진영과 보수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테크 기업과 맞붙는 큰 소송(마이크로소프트-액티비전 인수합병과 메타의 위딘 인수 반대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배하면서 "세금으로 지는 싸움을 한다"며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비난을 받았다. 위원회 운영 또한 삐걱거렸다. 그의 취임 후 위원회 직원 수십 명이 퇴사하고 위원회 평균 업무만족도가 급전직하했으며 공화당 추천 FTC 위원이 칸을 공개 비판하며 사퇴하는 등 내홍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도 FTC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밝은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23년 9월 칸 위원장이 (드디어) 아마존 소송을 제기한 이후부터 FTC는 AI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두는 한편 빅테크들이 AI 스타트업에 각종 우회적인 방식으로 투자하는 방식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있다.
1월부터는 오픈AI의 마이크로소프트 투자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6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플렉션AI 공동 창업자와 직원 대부분을 스카웃한 것과 관련해 소위 '애퀴하이어(acquihire, 사실상 인수해 고용한)' 형태가 아닌지, 정부 반독점 조사 회피 전술인지에 대한 조사도 시작했다. 이외에도 앤트로픽-알파벳 관계를 비롯해 다른 AI 기업과 빅테크 기업의 지분 투자도 광범위하게 조사 중이다. 빅테크들이 AI 스타트업을 직접 인수하는 대신 투자 대가로 클라우드 컴퓨팅 지출, 이사회 자리, 독점 계약 등을 요구했는지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반경쟁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하면 FTC나 법무부가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
2022년에 엔비디아가 ARM까지 인수했다면 그 미래 가치에 대한 기대감은 지금보다도 훨씬 컸을 것이다. 시장에 불균형적인 독점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FTC는 그래도 꾸준히 해왔다. |
독점이 본격화 되기 전 방지에 초점 FTC가 AI 산업을 보는 기본 목표는 독점이 본격화되기 전 대처하는 데 있다. 이렇게 FTC의 의도를 시장에 전달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데 대중적 소통은 필수적이다. 이에 AI를 주제로 한 칸 위원장의 언론, 행사 노출이 작년 크게 늘었다. 그중에서도 소통 전략적 판단이 돋보인 두 가지 케이스가 있다. 칸 위원장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가 개최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공개 대화를 나눴다. 아마존 소송이 제기된 직후였다. 빅테크가 주도하는 AI 산업에서 큰 로비 조직이 없는 소위 '리틀 테크' 기업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의지였다. 다양한 테크산업 규제 기조에 대한 질의응답에서 칸 위원장은 강력한 경쟁 강화 정책이 '리틀 테크(스타트업)'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들이 매각을 하려 해도 빅테크 한군데 빼고는 매각할 데가 없는 것보다 더 다양한 옵션을 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칸 위원장은 AI에 있어 오픈소스가 시장을 열어젖히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하는 등 AI 산업에 대한 이해도도 드러냈다. 이 대화에서 칸은 스타트업들이 AI 분야에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소그룹 모임 등을 통해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칸 위원장의 대중 소통 최정점에는 지난 4월 심야 토크쇼인 더 데일리 쇼 출연이 있다. 칸이 그만큼의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호감도가 높아졌음을 증명한다. 칸은 이 쇼에서 아마존 소송을 비롯해 FTC가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하는 한편 다양한 분야에서 대기업 집중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직접적 타격을 쉽고 명료하게 설명해 여러 번 박수를 받았다. 유튜브에서도 158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번 편은 FTC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는 대중이 많아지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연방거래위원장의 반독점법 이야기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것이다. 많은 댓글도 FTC 정책에 대한 호감 여론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인터뷰에서는 심야 토크쇼 레전드인 존 스튜어트가 빅테크 기업들의 권력에 대한 대중의 우려와 공포를 이야기한다. 그는 예전부터 칸 위원장과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애플 후원 팟캐스트와 방송을 제작하던 시기 애플로부터 "리나 칸을 출연시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폭로했다. 스튜어트는 방송에서 마이크로소프트 AI 조직장으로 자리를 옮긴 전직 인플렉션 AI 대표인 무스타파 술레이만(Mustafa Sulleyman)이 “AI는 노동 대체 수단(labor-replacing tool)”이라고 말한 걸 콕 짚어내면서 "지금 우리보고 수단이라고 한 거냐?"라고 버럭한다.
술레이만의 이 인터뷰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FTC의 조사에 좋게 작용할 리는 없다. |
존 스튜어트는 <더 데일리 쇼>에 출연한 리나 칸이 연방거래위원장으로 해 온 일들에 대해 편하게 펼칠 수 있는 장을 열어줬다. (이미지: 더 데일리 쇼) |
반대편도 끌어안고 있는 상황FTC가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단어도 나왔다. 리나 칸을 비판하는 사설을 수십 회나 게재했던 월스트리트저널은 칸을 칭찬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등장을 들어 "칸서버티브(Khanservative: Kahn + Conservative(보수))"라는 신조어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칸서버티브'들에 트럼프의 최측근이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맷 게이츠(플로리다주 하원의원)다. 게이츠는 하원에서 친트럼프계 소수 의원들의 모임을 이끌고 있는 하원의 핵심 권력이다. 그런 게이츠가 공개 석상에서 칸을 칭찬하고 있다. "리나 칸은 명석하다. 다음 FTC 위원장이 누가 되었든 칸 위원장이 약탈적 기업들에게 취한 조치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라고 까지 하면서. 그가 바이든 행정부 공무원에 대해 이 정도의 우호적 발언을 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또 다른 정치인은 트럼프 캠페인의 유력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오하이오주 상원의원)다. “상당수 공화당 정치인들이 리나 칸을 악인으로 묘사하는데, 바이든 정부 공직자 중에서 리나 칸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한 밴스는 "구글(알파벳)을 분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밴스의 옹호 발언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리나 칸은 유임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차기 공화당 행정부가 꾸려질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진 헤리티지 재단의 4년 주기 정책 청사진인 <프로젝트 2025>를 보면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역할과 반독점 정책에 대한 보수주의적 관점이 4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명시하고 있다. (헤리티지 재단은 법무부가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을 지지하는 서한을 다른 보수 성향의 단체들과 함께 제출하기도 했다.)
"우리는 오늘날 시장에서 민주주의 제도와 시민 사회를 훼손하기 위해 경제력(종종 시장, 심지어 독점력)을 휘두르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 헤리티지 재단 <프로젝트 2025> FTC 섹션 중 제안서에서는 레이건 정부 시절의 '소비자 후생을 중심으로 한 경제 효율성'과 '정부 개입 최소화, 시장 자율성 중시'라는 기조가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명시한다. 특히 테크 기업의 경우 민주주의 제도와 시민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소셜미디어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는 지적이다.
물론 보고서에서도 "FTC의 역할 확대에 대해 보수 진영 내에서도 이견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빅테크에 대해서는 전통적 경제 이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빅테크 기업에 대한 새로운 반독점 접근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것만으로도 칸은 미 반독점 정책에 있어서 확실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
'칸서버티브'에 대해 깊게 조명한 월스트리트저널. '칸서버티브'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지: 월스트리트저널) |
쿠팡 제재에도 영향을 끼친 리나 칸? 반독점 규제에 있어 그동안 미국은 유럽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이제 미국 경쟁 당국의 빅테크에 대한 조사와 문제 제기, 소송 증가는 미국에만 그치지 않고 전 세계 경쟁 정책을 집행하는 '선행 사례'가 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칸 위원장이 예일대 학생 시절 빅테크의 반경쟁 행태를 분석할 때 모델로 삼았던 아마존에 대한 분석과 FTC 취임 후 제기한 소송은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참고로 FTC는 2023년에 아마존에만 무려 4개의 소송을 제기했었다)
바로 지난 6월 13일 한국 공정위의 쿠팡에 대한 과징금 부과다. 쿠팡은 잘 알려진 것처럼 아마존 모델을 본떠 성공을 거뒀다. 공정위는 쿠팡이 자체 브랜드(PB) 상품에 대한 리뷰단 운영을 통해 검색 순위를 자체 브랜드(PB) 제품에 유리하게 만드는 한편 쿠팡에 입점한 입점 업체에는 불리하게 작용해 소비자를 기만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물론 FTC-아마존 소송은 소장만 제기된 상태로 재판 시작 전이므로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자사 우대(self-preferencing)' 규제라는 측면에서 세계 경쟁 당국의 흐름과 공정위의 이번 제재는 큰 틀에서 같다. 쿠팡을 공정위에 처음 신고한 변호사도 리나 칸과 FTC를 언급한다.
언론에는 주로 FTC가 대형 소송에서 졌다는 부분이 대서특필된다. 그러나 FTC의 액션으로 인해 빅테크들이 기존 비즈니스 행태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더 큰 영향력이 있다. 예를 들어 테크 기업들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불공정 행위를 쉽게 할 수 있다"라는 칸 위원장의 끈질긴 문제 제기는 실제 성과로 나타났다. FTC가 아마존에 소송을 제기하기 전인 작년 8월, 로이터 기사에 따르면 아마존은 PL 상품 몇 종을 결국 접었다. '수익성과 규제 우려'가 그 이유로 꼽혔다.
|
FTC가 아마존을 규제하는 것이라고 비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쿠팡의 이번 행위는 아마존의 행위를 쏙 빼닮았다. (이미지: 공정거래위원회, 쿠팡) |
'잘 드는 칼'이 된 FTC의 쓰임 일부 보수층의 칸 옹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재선되면 칸이 유임될 가능성은 낮다. (물론 본인이 원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폭 강화된 인수합병 조건은 어느 정도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기부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트럼프 캠프는 최근 민주당 아성인 샌프란시스코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인 데이빗 색스의 주도로 기부금 모금 행사를 열었다. 암호화폐 옹호자들이 트럼프에게 대거 기부하면서 트럼프는 스스로를 '크립토 대통령'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암호화폐 세력을 비롯한 트럼프의 상당수 테크 산업 기부자들은 기존 빅테크 체제를 뒤흔들려는 새로운 세력에 가깝다. 트럼프와 가까워진 일론 머스크도 그렇고, 트럼프에게 꾸준히 기부했던 페이팔 마피아의 수장이었던 피터 틸도 마찬가지다. 머스크는 오픈AI와 제휴한 MS나 애플에 대해 적대적이고, 피터 틸은 구글을 적으로 여긴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가 보기에 '기존 세력'인 빅테크들의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여전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아마존, 메타 등 일부 빅테크 기업들과 공개적으로 각을 세운 바 있다. 대통령 권한을 대폭 확대하려는 트럼프의 특성상 (그리고 J.D. 밴스와 같이 구글 등 빅테크를 견제하는 성향의 부통령이나 각료들이 트럼프 행정부로 들어온다면) 지금도 열심히 테크 기업들의 고삐를 조이고 있는 FTC를 어느 정도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어떤 대통령이 들어서든 소위 '잘 드는 칼'이 된 FTC가 어떻게 활용될지 주목되는 지점이다.
|
☕️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키티의 한글 이름은 홍윤희이다. 대표적인 이커머스 기업에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리드했고, 소셜임팩트를 담당했다. 딸의 장애를 계기로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자는 취지의 협동조합 무의(Muui)를 운영하며 2021년 초 카카오임팩트 펠로우로 선정됐다. IT, 미국 정치, 장애, 다양성, 커뮤니케이션 등의 주제를 넘나들며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글을 쓴다. 한국일보와 이투데이에 정기 기고 중이며, 장애-유니버설 디자인-ESG-사회혁신 등의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한다.
|
good@coffeepot.me
ⓒ COFFEEPOT 2024
|
|
|
그동안 FTC, 특히 리나 칸 위원장은 보수진영과 보수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테크 기업과 맞붙는 큰 소송(마이크로소프트-액티비전 인수합병과 메타의 위딘 인수 반대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배하면서 "세금으로 지는 싸움을 한다"며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비난을 받았다. 위원회 운영 또한 삐걱거렸다. 그의 취임 후 위원회 직원 수십 명이 퇴사하고 위원회 평균 업무만족도가 급전직하했으며 공화당 추천 FTC 위원이 칸을 공개 비판하며 사퇴하는 등 내홍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도 FTC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밝은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23년 9월 칸 위원장이 (드디어) 아마존 소송을 제기한 이후부터 FTC는 AI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두는 한편 빅테크들이 AI 스타트업에 각종 우회적인 방식으로 투자하는 방식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있다.
빅테크들이 AI 스타트업을 직접 인수하는 대신 투자 대가로 클라우드 컴퓨팅 지출, 이사회 자리, 독점 계약 등을 요구했는지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반경쟁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하면 FTC나 법무부가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칸 위원장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가 개최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공개 대화를 나눴다. 아마존 소송이 제기된 직후였다. 빅테크가 주도하는 AI 산업에서 큰 로비 조직이 없는 소위 '리틀 테크' 기업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의지였다. 다양한 테크산업 규제 기조에 대한 질의응답에서 칸 위원장은 강력한 경쟁 강화 정책이 '리틀 테크(스타트업)'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유튜브에서도 158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번 편은 FTC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는 대중이 많아지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연방거래위원장의 반독점법 이야기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것이다. 많은 댓글도 FTC 정책에 대한 호감 여론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FTC가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단어도 나왔다. 리나 칸을 비판하는 사설을 수십 회나 게재했던 월스트리트저널은 칸을 칭찬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등장을 들어 "칸서버티브(Khanservative: Kahn + Conservative(보수))"라는 신조어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칸서버티브'들에 트럼프의 최측근이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맷 게이츠(플로리다주 하원의원)다. 게이츠는 하원에서 친트럼프계 소수 의원들의 모임을 이끌고 있는 하원의 핵심 권력이다. 그런 게이츠가 공개 석상에서 칸을 칭찬하고 있다. "리나 칸은 명석하다. 다음 FTC 위원장이 누가 되었든 칸 위원장이 약탈적 기업들에게 취한 조치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라고 까지 하면서. 그가 바이든 행정부 공무원에 대해 이 정도의 우호적 발언을 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제안서에서는 레이건 정부 시절의 '소비자 후생을 중심으로 한 경제 효율성'과 '정부 개입 최소화, 시장 자율성 중시'라는 기조가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명시한다. 특히 테크 기업의 경우 민주주의 제도와 시민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소셜미디어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는 지적이다.
물론 보고서에서도 "FTC의 역할 확대에 대해 보수 진영 내에서도 이견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빅테크에 대해서는 전통적 경제 이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빅테크 기업에 대한 새로운 반독점 접근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독점 규제에 있어 그동안 미국은 유럽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이제 미국 경쟁 당국의 빅테크에 대한 조사와 문제 제기, 소송 증가는 미국에만 그치지 않고 전 세계 경쟁 정책을 집행하는 '선행 사례'가 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칸 위원장이 예일대 학생 시절 빅테크의 반경쟁 행태를 분석할 때 모델로 삼았던 아마존에 대한 분석과 FTC 취임 후 제기한 소송은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참고로 FTC는 2023년에 아마존에만 무려 4개의 소송을 제기했었다)
바로 지난 6월 13일 한국 공정위의 쿠팡에 대한 과징금 부과다. 쿠팡은 잘 알려진 것처럼 아마존 모델을 본떠 성공을 거뒀다. 공정위는 쿠팡이 자체 브랜드(PB) 상품에 대한 리뷰단 운영을 통해 검색 순위를 자체 브랜드(PB) 제품에 유리하게 만드는 한편 쿠팡에 입점한 입점 업체에는 불리하게 작용해 소비자를 기만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여기서 공정위가 예로 든 사례가 미 FTC의 아마존 소송이다. FTC 소장에는 "아마존이 PL(Private Label) 상품을 보여주는 '전문가 추천' 위젯을 상품 검색 페이지 윗부분에 노출하고 자연적인 검색 결과가 밀려 내려가는 형태로 제3자 판매업체 상품에 비해 PL을 우대하여 결국 검색 결과의 품질을 저하시켰다(degrade search quality)"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테크 기업들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불공정 행위를 쉽게 할 수 있다"라는 칸 위원장의 끈질긴 문제 제기는 실제 성과로 나타났다. FTC가 아마존에 소송을 제기하기 전인 작년 8월, 로이터 기사에 따르면 아마존은 PL 상품 몇 종을 결국 접었다. '수익성과 규제 우려'가 그 이유로 꼽혔다.
그런데 한편으로 암호화폐 세력을 비롯한 트럼프의 상당수 테크 산업 기부자들은 기존 빅테크 체제를 뒤흔들려는 새로운 세력에 가깝다. 트럼프와 가까워진 일론 머스크도 그렇고, 트럼프에게 꾸준히 기부했던 페이팔 마피아의 수장이었던 피터 틸도 마찬가지다. 머스크는 오픈AI와 제휴한 MS나 애플에 대해 적대적이고, 피터 틸은 구글을 적으로 여긴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가 보기에 '기존 세력'인 빅테크들의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여전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아마존, 메타 등 일부 빅테크 기업들과 공개적으로 각을 세운 바 있다. 대통령 권한을 대폭 확대하려는 트럼프의 특성상 (그리고 J.D. 밴스와 같이 구글 등 빅테크를 견제하는 성향의 부통령이나 각료들이 트럼프 행정부로 들어온다면) 지금도 열심히 테크 기업들의 고삐를 조이고 있는 FTC를 어느 정도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어떤 대통령이 들어서든 소위 '잘 드는 칼'이 된 FTC가 어떻게 활용될지 주목되는 지점이다.
한국일보와 이투데이에 정기 기고 중이며, 장애-유니버설 디자인-ESG-사회혁신 등의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