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의 조건

[부엉이의 차트피셜] 1970년대의 악몽이 재현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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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3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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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로 이란에서의 전쟁은 최소 2~3주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또 언제 상황이 바뀔지, 그리고 언제 또 미국 대통령의 말들이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전쟁이 쉽게 끝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죠.  

전쟁이 장기화되면 인플레이션은 물론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집니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인플레이션을 꼭 유발했죠.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려면 다행히도 그 조건은 꽤 까다롭습니다. 

오늘 [부엉이의 차트피셜]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조건과 환경을 살펴보고, 현재 전쟁으로 인한 전반적인 경제 영향을 역사적으로 어떤 시점과 비교하면서 바라봐야 하는지를 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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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의 차트피셜] #거시경제 #스태그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의 조건
1970년대의 악몽이 재현될까?
미국의 이란 공습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가 침체를 겪고 있음에도 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은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와 오일쇼크가 겹치며 다수의 선진국이 동시에, 그리고 장기간 고인플레이션에 시달린 전후 최초의 사례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이 재연될 수 있을지 가늠하려면, 당시 물가가 왜 10년 이상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계는 그 원인으로 오일쇼크와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같은 '예측 불가능한 충격'과 '정책 당국의 대응 실패'를 함께 꼽는다.

특히 치명적이었던 것은 통화 긴축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는 당시 정책 당국의 오판이었다. 이 믿음이 선제적 금리 인상을 가로막았고, 결국 인플레이션을 구조화시켰다. 

먼저, OPEC의 석유 금수 조치는 1970년대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핵심 원인이다.

1973년 10월 욤 키푸르 전쟁을 계기로 아랍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한 서방 국가들에 대한 원유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이 조치로 국제 유가는 불과 수개월 만에 4배 가까이 폭등했고,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렸다.

1979년에는 이란 혁명으로 촉발된 두 번째 오일쇼크가 다시 한번 유가를 급등시켰고, 원유 의존도가 높은 선진국들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졌다. 

한편 OPEC의 금수 조치는 어느 정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의 산물이기도 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1944년 구축된 국제 통화 질서로, 미 달러화의 가치를 금 1온스당 35달러에 고정하고 다른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달러에 연동시킨 달러 본위 금환 본위제였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재정 지출 확대와 통화 팽창으로 달러를 더 이상 금 가격에 고정 시킬 수 없게 되자, 1971년 닉슨 대통령은 달러와 금의 교환 창구를 전격 폐쇄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원유를 달러로 거래하는 산유국의 실질 수입이 줄어들고, 이는 OPEC이 달러 가치 하락분을 상쇄하기 위해 유가를 인상하도록 압박하는 유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BCA 리서치에 따르면, 브레턴우즈 붕괴 이후 금과 구리 등 여타 원자재 가격이 먼저 급등했고 유가는 이를 뒤따른 양상이 나타났다. 전 미 연준의장 폴 볼커(Paul Volker) 역시 지나치게 완화적인 통화 여건이 원유 가격을 끌어올린 환경을 조성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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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튼우즈 체제가 1971년을 끝으로 붕괴한 것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전조였다. (이미지: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UN 통화 회의, AP)
통화 긴축이라는 수단을 부정한 결과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통화 긴축이 효과 없는 수단이라는 금융당국의 잘못된 인식도 사태를 크게 악화시켰다. 1970년부터 1978년까지 대인플레이션 기간의 절반 이상을 연준 의장으로 재직한 아서 번스(Arthur Burns)는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닉슨(Nixon) 대통령의 선거를 돕기 위해 의도적으로 금리를 낮게 유지했다.

"통화 정책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특히 캐나다와 영국 같은 다른 나라들의 경험이 이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아서 번스가 1971년 3월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에 참석해 한 발언이다. 아서 번스의 후임으로 1979년까지 단기 재임한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도 인플레이션이 연준 이사회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믿었다. 그 역시 인플레이션 퇴치보다 경제 성장 촉진에 전념했으며, 물가 상승을 감수하더라도 경기를 부양하는 쪽을 택했다. 

이런 인식은 1978년 경제자문위원회가 "인플레이션은 성장을 둔화시키고 실업률을 높이는 정책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라고 주장한 데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치솟는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과 물가를 방치한 중앙은행의 무책임이 맞물리면서 사람들은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앞으로도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면, 노동자는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기업은 미래 비용 상승을 선반영해 제품 가격을 올린다. 이렇게 기대 인플레이션이 실제 임금과 가격에 반영되면 인플레이션은 더욱 높아지고, 이는 다시 기대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고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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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83년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 연준 기준금리 / WTI 추이 (데이터: Fred)
결과적으로 1970년대는 지속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았다.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두 차례의 오일쇼크가 겹치면서 1974년에 11%를 넘어섰고 1980년에는 약 14%에 달하는 정점을 기록했다. 

미시간대 소비자 설문에서 집계된 5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1979~1980년에 10%를 웃돌았다. 같은 기간 실업률도 높게 유지되면서 높은 물가와 낮은 성장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10년 이상 지속됐다.

오늘날에도 존경받는 대표적인 미 연준의장인 폴 볼커(Paul Volcker)가 이 악순환을 끊어냈다. 1979년 8월 연준의장에 취임한 볼커는 그해 10월 6일 이례적인 토요일 밤 기자회견을 소집해 통화 공급량 억제를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긴축 정책을 전격 발표했다. 이후 연방기금금리는 1981년에 20%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경기침체와 실업률 급등, 정계와 민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볼커는 긴축 기조를 유지했고, 그 결과 인플레이션은 1983년에 3%대로 떨어지며 마침내 통제되기 시작했다. 과거 의장들이 부정했던 통화정책이 물가 통제에 분명한 효과가 있음이 증명됐다.

아직은 스태그플레이션 신호가 없다
그렇다면 중앙은행들이 1970년대에 저질렀던 실수를 다시 저지를 수 있을까? 

오늘날, 중앙은행이 성장을 충분히 둔화시킬 만큼 금리를 올리면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볼커가 이끄는 연준과 영란은행의 단호한 통화 긴축은 통제 불가능해 보였던 인플레이션을 격퇴하여 통화 긴축의 효과를 증명했다. 영란은행 역시 1970년대 후반 인플레이션이 20%를 넘어서자 대폭적인 금리 인상으로 대응해 물가 안정을 되찾았다. 

IMF가 1973~2014년 기간 56개국을 대상으로 111개 인플레이션 사례를 조사한 광범위한 연구에서도, 인플레이션 해소에 성공한 국가들은 훨씬 강한 통화정책 긴축을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 해소 국가는 실질 단기금리를 평균 약 1% 인상한 반면, 해소에 실패한 국가는 평균 4.5% 인하했다. 

2022년 인플레이션의 파도가 다시 전 세계를 덮쳤을 때도 연준과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통화 긴축 행렬에 동참해 인플레이션을 안정시켰다. 2026년에도 높은 에너지 비용이 소비자물가에 전이되어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든다면, 중앙은행들은 다시 금리를 올려 이를 잠재울 것이다. 

현재는 기대 인플레이션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이면, 노동자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기업이 선제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임금-가격 나선이 작동하지 않는다. 미시간대 소비자 설문에 따르면, 미국의 5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2026년 2월 기준 3.3%로, 10%를 웃돌았던 1979~1980년 대비 안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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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이후 미시건대 5년 기대 인플레이션 / 5년 후 5년 선도 미국 기대 인플레이션 (자료: Fred)
비록 2월 미시건대 소비자 설문에는 유가가 본격적으로 치솟은 3월 자료가 아직 반영되지 않았지만, 금융 시장 가격을 기반으로한 5년 후 선도 기대인플레이션은 3월 말 2% 수준으로 급락했다. 유가 상승이 향후 경기 침체를 유발해서 물가가 안정되리라는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JP모건은 인플레이션 기대의 안정성이 중앙은행의 신뢰도를 유지하는 핵심 조건이며, 이것이 흔들리지 않는 한 이번 에너지 충격이 1970년대처럼 구조적·장기적 인플레이션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1990년 걸프전의 교훈부터 바라봐야  
공급 충격에도 불구하고 이미 흔들리고 있는 미국 경제에 대규모 에너지 쇼크가 가해지면, 중기적으로 물가 상승 우려는 사라지고 고전적 경기침체로 귀결될 수도 있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유가가 배럴당 약 16달러에서 10월에 40달러 이상으로 폭등했다. 침공 3주 후 FOMC 회의가 열렸는데, 경제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7월에는 고용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 LBO 붐의 여파로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되고 있었다.

앨런 그린스펀(Greenspan) 의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경기침체를 예상하지 않았고, 의장은 공급 충격의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는 와중에 경기가 둔화되자 그린스펀 의장은 "현재 환경에서 우리가 경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제한적이며, 펜타곤이 우리보다 더 큰 정책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연준의 관망은 이후 몇 달간 계속됐다. 10월에도 위원들은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다고 믿었고, 문제가 단기에 그칠 것으로 보았다. 11월에는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12월에는 경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의장도 경기침체(Recession)가 도래했음을 인정했다. 이는 사후적으로 밝혀진 경기침체 시작점으로부터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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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걸프전 전후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 연준 기준금리 / WTI 추이 (데이터: Fred)
1990년 7월부터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소비자 물가 상승을 유발했으나 경기침체가 발생하면서 유가와 물가 모두 안정되었다.
1990년 걸프전 당시와 현시점은 두 가지 유사점이 있다.

첫째, 인플레이션 때문에 경기침체를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 금리 인하가 불가능하다. 유가가 하락하고 고용이 뚜렷하게 악화된 이후에야 인하가 가능한 상황이며, 1990년에도 경기침체가 명확해진 후에야 인하 기조로 선회했다. 

둘째, 경기는 정점을 찍고 하강 중이다. 연준은 1988~1989년의 긴축 사이클을 마무리하고 소프트랜딩에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유가 급등이 가해지기 직전인 1990년 상반기 GDP 성장률은 이미 약 3%로 둔화 추세에 있었고, LBO 붐이 남긴 신용 압박이 기업 부문에 부담을 주고 있었다.

2026년에도 노동 시장이 우려스럽다. 2월 고용은 예상 밖으로 감소했고, 실업률은 바닥에서 오르고 있다. 사모 신용 시장에서도 파열음이 들린다. 저금리 시대에 레버리지를 키워온 사모 대출 펀드들이 유동성 부족으로 잇달아 상환 불가를 선언하는 중이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돌아올 이유
역사적으로 전쟁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애나 슈워츠(Anna Schwartz)는 전쟁이 인플레이션 국면을 열었다고 지적한다. 물가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도 급등했다. 1947년 인플레이션은 20%를 넘어섰는데, 이는 전시 가격 통제 해제, 공급 부족, 그리고 억눌렸던 수요의 분출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물가는 한국전쟁(1950년 6월~1953년 7월) 때도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물자 배급과 공급 부족을 기억하는 가계들이 상품을 사재기하면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리처드 번스타인은 전쟁이 자원을 생산적인 경제 활동에서 비생산적인 전쟁 수행으로 분배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미국이 이미 대규모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공급·해상·항공 운송 교란 같은 공급망 차질이 벌어지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 

최근 국가 간 분쟁과 대규모 전쟁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이후 동구권 국가들이 세계 경제에 편입되면서 값싼 노동력과 자원이 글로벌 공급망에 합류했고, 지정학적 분쟁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 '평화의 배당금'이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어진 저물가 기조의 구조적 배경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흐름이 뒤집히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전략 경쟁, 그리고 이번 이란 전쟁까지, 세계화의 후퇴와 공급망 분절이 가속화되면서 과거 저물가를 낳았던 조건들이 역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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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필연히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 (이미지: 뉴욕타임스)
또, 역사는 독립적인 중앙은행을 갖지 못한 나라들에서 인플레이션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닉슨 대통령이 아서 번스를 길들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이 금리를 내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법부까지 동원해 압박하고 있다. 차기 연준 의장 지명자인 케빈 워시가 대통령의 의중을 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에 퍼져 있으며, 앞으로도 통화정책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확대가 예상된다. 

지금 당장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이 재연될 가능성은 낮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아직 안정적이고, 중앙은행들은 1970년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우려는 여전히 살아있다. 역사는 인플레이션이 구조화된 이후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경제적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음을 보여줬다.

세계화의 후퇴, 지정학적 분쟁의 상시화, 그리고 통화정책에 대한 정치적 압력 증대라는 구조적 흐름이 동시에 강화되고 있다. 이 흐름들이 동시에 작동할 때는 1970년대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글쓴이: 부엉이의 이름은 이기원이다. 다양한 금융기관에서 채권 관련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 자산운용사에서 채권형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채권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가치투자에도 관심이 많다. 워런 버핏의 열렬한 추종자로 버크셔 헤서웨이 주주총회를 2차례 방문하고 다수의 관련 기고도 했다.

[부엉이의 차트피셜]은 친숙하지만은 않은, 하지만 누구에게나 중요한 금리와 채권 시장을 비롯한 금융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주요 지표와 차트를 기반으로 풀어드려요.


오늘 [부엉이의 차트피셜]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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