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를 준비하는 자세

[부엉이의 차트피셜] 23화. 완벽한 연착륙의 조건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2024년 9월 6일 금요일
미국 경제는 현재 기준으로 '연착륙'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금리 인상을 완료하고 경기 확장 국면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이 내친김에 '완벽한 연착륙'까지 이루어내려는 마음을 이번 8월에 열린 잭슨홀 컨퍼런스에서 내비치면서요.

하지만 시장에서는 과거 경기침체가 발생하던 때의 위기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기침체를 피해 간 것 같지만, 결국은 경기침체를 지연시키고 있었다는 징후들이고요.

과연 최근 시장에서 일어난 이 일련의 현상들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지난 8월 초 일본 시장을 시작으로 나타났던 증시 변동성은 이미 과열된 시장에서 자산 가격 반전이 일어날 수 있는 신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욕심처럼 '완벽한 연착륙'이 진행된다면 좋겠지만, 1990년대에 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 연준의장이 이끌었던 완벽한 연착륙을 재현하기에는 현재 그 조건이 많이 다른데요.

어떤 조건들이 어떻게 다른지 오늘 [부엉이의 차트피셜]이 차근히 살펴봅니다. 비관적인 전망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냥 낙관적일 수 없는 상황임이 분명하기에 짚어봐야 할 이야기들입니다.

[부엉이의 차트피셜]
경기침체를 준비하는 자세
완벽한 연착륙의 조건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과연 제롬 파월은 '완벽한 연착륙'이란 과업을 완수할 수 있을까? (이미지: 포렉스라이브)

"과업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물가를 안정화시킨 가운데, 강한 고용 시장을 유지하는데 큰 진전을 이뤘습니다"

제롬 파웰 연준 의장은 2024년 8월 23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 컨퍼런스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 경제가 연착륙에 성공했음을 자축했다.

파웰 의장은 '통화정책의 전파와 효과에 대한 재평가(Reassessing the Effectiveness and Transmission of Monetary Policy)*'라는 연설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 2%에 근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2% 근처에서 유지될 것을 자신했다. 고용 측면에서도 과열된 고용시장을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균형 수준까지만 가라앉혔다고 평가했다.

1990년대 이후 발생한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을 제어하기 위해 연준은 빠른 속도와 폭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결과적으로 경기침체 없이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으나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금리 인상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경기침체를 우려했다. 2022년에는 주식, 부동산 등 자산 시장에 큰 조정이 발생했고, 제조업 경기도 크게 둔화됐다. 하지만 2023년 이후에는 증시와 주거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 가격도 원래 자리로 돌아왔고, 미국 경제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2023년 상반기에는 높은 금리를 견디지 못한 일부 미국 지방은행들이 파산하면서 금융 위기설도 떠올랐다. 중앙은행이 은행들에게 금융 지원책을 내놓고, 연방 예금보험공사가 파산한 은행의 예금자 예금을 전액 보장하기로 결정하는 등 빠른 대응을 내놓으면서 은행 위기도 진정됐다.
미국 기준금리와 소비자물가 지수 추이 (데이터: 블룸버그) 
물가 상승률이 199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9%대에 도달하면서 연준의 긴축 정책도 가장 강한 강도로 시행됐다. 팬데믹 이후 0%에서 유지되던 기준금리는 5.50%까지 가파르게 올랐으며, 물가 상승률은 점차 하향 안정화되는 중이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끝낸 지 1년이 흘렀다. 연준은 물가를 제어하기 위해 2022년 기준금리를 4.25% 인상했고, 2023년에는 1.00% 올렸다. 연준은 2023년 7월 인상을 마지막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통화 긴축 마무리 후 1년래 GDP가 1% 미만으로 감소하거나, 전미경제학협회(NBER)가 경기침체로 진단하지 않은 경우를 연착륙이라고 본다. 연준이 긴축을 시작한 이후 미국 경제는 단 한 분기도 수축하지 않았고, 실업률은 바닥에서 1%가량 올랐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수치상으로 연준은 분명 연착륙을 달성했다. 그리고 이제 파웰 의장은 한발 더 나아가 금리를 인하하여 둔화되는 고용 시장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경기 확장을 연장하려 한다.

같은 연설에서 한 아래 이야기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물가 안정이 지속되는 한 강한 고용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완벽한 연착륙'을 달성 하려 하는 것이다. 금리 인상 완료 후 경기 확장 국면은 수년 이상 이어간 사례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의장이 달성한 1994년의 긴축이 유일하다. 그린스펀 의장은 완벽한 연착에 성공하고 '마에스트로'라는 칭호를 얻었다. 

연준이 긴축을 마무리한 후, (비록 1년 이내 연착륙은 달성했더라도) 경기침체와 자산 시장의 큰 하락을 완전히 피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긴축 마무리 후 시차를 두고 경기 침체가 발생했다. 2008년 경기침체도 2006년 6월에 마지막 금리 인상을 마무리한 후 1년 반 뒤에 시작됐다. 2000년 IT버블은 연준이 마지막 금리 인상을 단행한 2000년 6월 직전에 이미 붕괴되고 있었다. 

그린스펀에 이어 두 번째 마에스트로가 되려는 파웰 의장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까?
제롬 파월은 과연 마에스트로가 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경기침체부터 막아줘야 한다. (이미지: 게티이미지, 아마존)

통화 긴축의 영향부터 점검해 보면

경기침체를 전망하기 전에 통화 긴축이 어떤 경로로 경제 수요를 둔화시키고, 이번 긴축 싸이클에서 어떤 요인이 경기침체를 예방했는지 점검해 보자. 

통화 긴축은 다음 네 가지 경로를 통해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1. 경제 전반에 자본 조달 비용(Cost of Capital)을 높인다. 금리 인상은 기업과 가계의 전반적인 차입 비용을 높이고, 부채 조달을 요구하는 상업 및 주거용 부동산 투자와 내구재 소비를 감소시킨다. 통화 정책의 시차로 인해 금리 인상이 멈춘 2년 뒤까지 긴축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기업들이 채권으로 자금을 많이 조달하는 미국의 경우 통화 긴축의 영향이 더욱 지연될 수 있다. 낮은 금리로 기발행된 채권의 만기가 도래할 때까지 조달 비용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높은 금리로 채권을 차환 발행해야 금리 인상의 영향이 피부로 느껴진다. 자본 조달 비용 상승은 가장 중요한 통화 정책 경로이다.

  2. 은행의 대출 태도가 엄격 해진다. 은행이 대출 총량을 줄이면서 전반적인 대출 이자율이 오르고 은행 대출을 통한 투자와 소비가 감소한다. 경제 주체들의 은행 차입 비중이 높은 유럽과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는 경로이다. 은행 대출 금리는 주로 변동 금리로 금리 인상 영향이 즉각 전가되는 경향이 있다.

  3. 환율 절상은 수입 수요를 늘리고 수출을 감소시키는 영향이 있다. 다만, 미국같이 규모가 큰 나라에서는 환율 경로가 주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4. 금리가 오르면 자산 가격이 하락하여 소비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통화 정책의 자산 가격 경로는 이론적일 뿐, 경험적으로는 경기침체 직전까지 자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어떻게 경기침체를 피했을까 

우선, 미국 경제는 이례적으로 강한 과열 상태에서 둔화되기 시작했다. 노동 시장 수요가 비정상적으로 풍부한 상황이었고, 인플레이션도 목표보다 훨씬 높았다. 따라서 노동 시장의 과열과 축적된 인플레이션 압력이 해소되기까지 평소 긴축 싸이클보다 장기간의 고금리가 필요했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고용 지표들은 노동 수요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을 가리킨다.

둘째, 미국 정부가 반도체와 2차 전지 등 핵심 제조업을 자국 내 투자하도록 독려하면서 인위적으로 상업 투자가 촉진됐다. 또, 테크 기업들의 AI 관련 투자가 증가하면서 데이터 센터와 전력 설비 투자도 크게 증가했다. 2024년 미국 민간 기업들이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 금액은 사상 최대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관련 주식 중심의 증시 하락이 향후 인공지능 관련 투자가 감소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셋째, 통화 정책의 시차는 지연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이번 긴축의 영향이 완전히 나타나지 않았을 수 있다. 특히 직접 금융 비중이 높은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통화 긴축 영향이 늦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연준이 금리를 소폭 내리더라도 향후 나타날 지연된 긴축 효과를 상쇄하지 못할 수도 있다. 
VIX 변동성 지수 / S&P500지수 추이 (데이터: 블룸버그)
VIX 지수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산출하는 변동성 지수이다. 공포지수라고 불리며 시장의 불안정성이나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질 때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S&P500 변동성 지수는 8월 폭락 전까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 갑자기 치솟았다.

하지만 시장에서 들려오는 위기의 징후들 

경제와 자산 가격이 추세를 바꾸기 전에 금융시장이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신호를 주기도 한다. 우선, 잔잔하게 꾸준히 상승하던 증시가 아래위로 크게 요동치기 시작하면 큰 하락장의 전조일 수 있다. 

지난 8월 5일, 아시아 시장에서 주요 증시가 폭락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특히 니케이 지수는 1987년 이후 하루 낙폭으로 최대인 12% 폭락했다. 곧이어 열린 미국 증시에서 대형 기술주를 중심으로 투매가 나타나서 장중 기록적인 급락이 나타났으나, 당일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S&P500 지수는 낙폭을 되돌린 3% 하락으로 마감했다.

다음날 니케이 지수는 전일 낙폭을 대부분 회복하여 10% 상승했다. 주가지수의 변동성을 측정하는 VIX지수는 2023년 11월 이후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 2024년 8월 5일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았다.

2008년 금융위기 전에는 퀀트 퀘이크(Quant Quake)라 불리는 사건이 있었다. 2007년 8월 여러 증권사와 헤지펀드들의 알고리즘 투자 전략이 갑작스럽게 투매를 시작하며 기록적인 손실을 기록했다. 우연하게도 2007년 8월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 Paribas가 모기지 채권 손실로 인해 머니마켓펀드(MMF)의 상환을 중지하면서 금융위기의 단초가 시작됐다. 

2018년 2월에는 볼마게돈(Volmageddon)이라 불리는 지수 변동성이 갑작스럽게 치솟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 사태로 낮은 시장 변동성에 투자하는 많은 상품과 펀드가 폐쇄됐다. 이 사건으로 2월 미국 증시는 일시적으로 큰 조정을 받았으나, 9월까지 상승하여 낙폭을 모두 만회했다. 하지만 10월 이후 증시가 급락을 거듭하면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해서 시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2007년 8월 퀀트 퀘이크(Quant Quake)와 2018년 2월 볼마게돈(Volmageddon) 모두 발생 직전까지 시장 변동성이 이례적으로 낮았다는 점, 갑작스럽게 변동성이 치솟았다는 점, 그리고 몇 달 후 증시 급락이 시작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VIX 변동성 지수 / S&P500지수 추이 (데이터: 블룸버그)
시장이 낮은 변동성을 지속하다 갑자기 유동치는 현상은 큰 하락장의 전조인 경우가 있다.

갑작스러운 변동성 상승은 어째서 하락장의 징조가 될까?

장기간 지속된 낮은 변동성이 시장 참여자들의 과도한 낙관, 지나친 레버리지의 사용, 특정 포지션에 누적되고 있는 쏠림의 결과일 수 있다. 쏠림이 되돌리면서 변동성이 커지고, 레버리지 포지션이 청산되면 시장 참여자들의 낙관적인 전망도 깨지기 마련이다. 

최근 역전이 해소된 미국 2년/10년 장단기 금리차도 유심히 봐야 한다.

미국 국채 2년과 10년 금리는 연준이 긴축을 시작한 이후 2년 이상 역전되어 있었으나, 최근 역전이 해소되었다.
미국 국채 2년/10년 금리차 추이 (이미지: fred.stlouisfed.org)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회색 음영)에 돌입하기 직전 미국 2년/10년 금리차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로 역전이 해소되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기침체 신호로 알려져 있다. 어째서 장단기 금리 역전이 해소되는 것도 위험 신호일까?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이후 경기침체가 발생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과거 경기가 둔화가 짙어지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단기 금리들이 장기금리보다 빠르게 하락하면서 금리 역전이 해소되었다. 하지만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를 피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연준이 긴축을 시작한 후 미국 2년/10년 금리는 2006년 7월부터 역전되었다. 아직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았지만, 2년 금리를 포함한 단기 구간 금리가 앞으로 단행될 금리 인하를 선제적으로 반영하여 크게 하락하면서 역전이 해소되었다.

과거 장단기 금리 역전 사례를 살펴보면 2년/10년 금리가 첫 역전되고 평균적으로 19개월 후 경기침체가 발생했다. 역전 해소기에는 2년/10년 금리 역전이 해소되고 평균적으로 3개월 후 경기침체가 발생했다. 2024년 9월 현재 금리가 역전된 지 26개월이 지났고, 역전이 해소된 지 1주일이 흘렀다.

9월에 예상되는 금리 인하에도 경기침체는 불가피할 것인가?

과거 장단기 금리 역전 사례와 경기침체까지 기간 (자료: 골드만삭스, IM증권)


경기침체를 준비하는 자세는 어때야 할까?

연준이 완벽한 연착륙을 달성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자산 가격이 비싸지 않았던 1994년과는 다르게 미국 증시와 일부 국가의 부동산 시장은 이미 과열 징후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 국면은 자산 가격의 반전이 머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당장 눈앞에 있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이번 긴축 싸이클은 긴축 초기부터 기록적인 장단기 금리 역전 폭과 은행 파산 등 전문가들도 헷갈리게 하는 위험 신호들을 보내면서도 침체를 피해 왔다. 내년에도 미국 민간 기업들이 설비투자와 연구 개발비를 증액한다면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민간 투자로 경기 확장이 더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정말 조심해야 할 때다.

증시 하락은 경기를 3~6개월 선행하는 경향이 있다. 예상보다 경기 확장 국면이 길어져서 내년 하반기 침체가 발생한다고 가정해도, 증시는 상반기부터 본격 하락할 수 있다. 증시가 이미 하락 신호를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부엉이는 다양한 금융기관에서 채권 관련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 자산운용사에서 채권형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채권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가치투자에도 관심이 많다. 워런 버핏의 열렬한 추종자로 버크셔 헤서웨이 주주총회를 2차례 방문하고 다수의 관련 기고도 했다.

[부엉이의 차트피셜]은 매월 1회 찾아옵니다. 친숙하지만은 않은, 하지만 누구에게나 중요한 금리와 채권 시장을 비롯한 금융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주요 지표와 차트를 기반으로 풀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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