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핵심인 중국 경제의 부활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26화. 중국은 소비 진작을 위해 건전 재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까?

2024년 10월 18일 금요일
오늘 이야기는 최근 증시 지표를 통해 급격히 호전되는 듯 보였던 중국 경제의 실제 상황을 전합니다. 결국 통화 정책을 통해 돈을 풀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대로 된 재정 정책들이 나와야 하는 상황임을 짚어보면서요.

무엇보다 중국 정부가 처한 상황이 과거의 일본과 어떻게 똑같은지, 그래서 어떤 방향의 정책을 펴야 하는지까지 살펴보는데요. 지난 8월과 9월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을 통해 각각 일본은 엔(통화)에만 매달리는 상황, 미국은 고용이 경제 호전의 핵심이라는 점을 짚었다면 지금 중국은 경제 회복을 위해 소비가 핵심임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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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중국 이야기부터 보신 후 미국과 일본의 이야기까지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시리즈'로 다시 살펴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핵심 국가들의 상황을 통해 말 그대로 '거시적인 경제 시선'을 갖출 수 있습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소비가 핵심인 중국 경제의 부활
중국은 소비 진작을 위해 건전 재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까?

중국 정부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동안 확연한 경기 침체 조짐 속에서도 "부동산이 주도하는 경제는 끝났다", "생산 진작을 통해 경기 침체를 돌파하겠다" 등등 인위적인 경기 부양보다는 중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강조해 왔지만,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연간 경제 성장률 5%" 마저 흔들리자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지난 9월 24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판궁성 행장, 리윈쩌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장, 우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 등이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 부양 패키지를 발표했다. 우선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를 인하하여 금융시장에 장기 유동성 1조 위안(약 190조 원)을 공급하고, 사실상 정책 금리 역할을 하는 7일물 역레포 금리를 0.2%포인트 낮춰 중기와 단기 유동성 역시 완화할 것임을 밝혔다. 또한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고 지방 국유기업의 주택 매입 대출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으며, 증시 부양에도 8000억 위안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한 마디로 통화 정책, 부동산 대책, 증시 부양책 등 '토탈 패키지'를 투하한 것이다. 여기에 연내에 지급준비율*을 추가로 0.25~0.5%포인트 더 인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을 시행할 때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이 정책 금리(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자금을 공급하거나 반대로 자금을 흡수할 때 적용하는 금리. 기준 금리라고도 한다) 조절인데, 인민은행은 정책 금리보다 지급준비율을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
* 지급준비율이란, 시중은행들이 고객들로부터 받은 예금 중 얼마만큼을 중앙은행에 예치해야 하는지를 규제하는 비율이다.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을 내리면, 은행들은 그만큼의 돈을 더 대출해 줄 수 있으므로, 시중에 유동성이 더 풀리게 된다.  

중국은 중앙은행 총재가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통화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자체도 드문 일인데, 이날 이 자리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 3대 금융 당국 수장이 총출동, 더 이상 경제 엔진이 식어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셈이다. 그만큼 중국의 경기 하락이 심상치 않다고 봤다는 뜻이다.

판 행장은 이날 경기 부양 패키지의 목적 중 하나로 "물가의 완만한 반등"을 꼽았는데, 이는 이미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진입했거나 적어도 진입하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만으로는 갈길이 먼 상황이다. (이미지: 언스플래쉬)
근데 이 정도로 충분한 걸까?
골드만삭스는 "지급준비율과 정책 금리를 동시에 내린 것도, 그 폭이 상당히 큰 것도 주목할 만한데, 여기다 보기 드물게 인민은행이 전면에 나서서 향후 통화 정책의 가이던스를 제시했다"며 경기 침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려가 그만큼 심각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골드만삭스의 아시아퍼시픽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앤드류 틸튼은 "통화 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라면서도 "적어도 중국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증시는 즉각 반응했다. 상하이, 선전, 홍콩 지수가 모두 4% 넘게 급등했고 중국의 소비 심리가 되살아나리라는 기대 속에 유럽 주식 시장에서는 LVMH, 케링, 에르메스 등 럭셔리 소비재 종목들이 일제히 상승했다. 9월 24일 경기 부양책 발표 이후 중국 증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고의 한 주를 기록하며 '골든 위크'를 보냈다. 9월 24일부터 10월 8일까지 (국경절 연휴 제외) 단 5거래일 동안 상하이종합지수는 21.89%, 선전 종합지수는 36.3% 치솟으며 2022년 이후 하락분(21.30%)을 모두 만회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통화 정책과 증시 부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통화 정책을 보자. 현재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돈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데, 그 부동산의 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사람들이 쓸 돈이 줄어들고, 경제에 돈이 돌지 않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은행들이 기업과 가계에 돈을 더 많이, 더 쉽게 빌려주라는 것이 그 목적인데,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진 기업과 가계는 이미 신규 대출을 받기보다는 기존의 대출을 상환하거나 조금이라도 남는 돈이 있으면 소비 대신 저축을 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대출 수요가 쪼그라든 상황에서 은행들에게 추가 유동성을 투입한다고 해봐야, 즉 빌릴 사람이 없는데 빌려줄 돈이 늘어난들,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은행들도 빚이 많다.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신규로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하는 대신 빚을 갚는 데 쓰면 시중에 돈이 돌 리가 없다. (이런 현상을 "유동성 함정"이라고 부른다) 

부동산 문제가 핵심이라는 사실은 중국 정부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는 지방 국유기업들이 부동산 개발업자들로부터 미분양 부동산 재고를 매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지어놓고 팔리지 않고 있는 부동산 매물들이 중국 전역에 수억 채에 달한다. 경제의 숨통이 트이려면 이 빈집들을 처리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급선무다.

중국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누구나 알듯이 부동산이다. (이미지: CNBC)
두 박자 늦은 타이밍  
증시 부양으로 기업과 가계에 여윳돈을 만들어주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었다. 증권사, 보험사, 연기금 등에게 5000억 위안(약 96조 원)의 주식 매입 자금을 대출해 주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기업들에게는 3000억 원(약 58조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돈으로 끌어올리는 주가는 결국 때가 되면 꺼지게 마련이다. 경기가 하락하고 기업들의 매출이 꺾이는 데 인위적인 주가 부양과 자사주 매입으로 증시가 반짝 부활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강세장이 계속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현재 중국 기업들의 펀더멘털에 가장 큰 리스크 요소는 다름 아닌 중국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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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를 소개합니다.
안젤라는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주목해야 할 거시경제 변화와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Long-from) 아티클입니다. 급격히 변하는 거시경제 지형 속에서 놓치지 않고 주목해야 할 이야기를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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