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IMF 위기에 빠질까?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야"

2025년 9월 29일 월요일
유럽의 경제와 산업 소식은 파편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소식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 경제적 협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EU와 영국 등의 경제에 대해서는 일반 대중의 관심이 크게 갈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더욱 가깝게 들리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재정 적자가 심해져 경제가 어렵다는 소식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재정적자가 심해진 이유는 귀가 솔깃해질, 많은 사람들이 동경해 온 프랑스 특유의 복지, 정확히는 "과다 복지"라고 전해지고 역시나 극단적으로 갈라진 정치의 현실이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근데 과연 프랑스는 지금 시끌시끌하게 전해지는 것만큼 큰 경제적 위기에 봉착한 걸까요? 

사실 프랑스가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해 불거진 재정 적자와 그로 인해 불거진 경제 위기는 정치 위기에 가깝습니다. 프랑사의 재정 적자가 몇 년간 늘어나기는 했지만, 큰 위기를 불러올 수준은 아니고 어쨌거나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유럽에서 2번째로 큰 경제대국인 프랑스의 문제는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고, 유로존 전체가 흔들리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대응이 빠르게 필요합니다. 인기가 없어진 마크롱 정부와 다시 지명될 수밖에 없었던 새로운 총리가 극단적으로 갈라진 정치 지형에서 적정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위기가 심화할 수 있습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거시경제 #재정악화
프랑스가 IMF 위기에 빠질까?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야"
지난달부터 뜬금없이 "프랑스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는 루머가 소셜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재정 적자 문제를 놓고 1년 사이에 두 명의 총리가 사임하는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 나온 가짜뉴스였지만 "복지를 퍼주는 좌파 포퓰리즘 정부의 말로"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보수 인플루언서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정말로 프랑스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과다 복지로 인해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일까? 사실은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경제학자들은 프랑스 재정 위기의 요인을 두 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한다. 하나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인한 유럽 에너지 쇼크를 맞아 실시한 대규모 위기 대응책이고, 다른 하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부터 시행한 광범위하고 영구적인 감세 정책이다. 

프랑스는 1974년 이래 한 번도 균형 재정이었던 적이 없다. 1971년 제 1차 오일쇼크가 전후 고속 성장 시대에 종지부를 찍으면서부터다. 유럽 좌파의 본진답게 두터운 사회 보장 제도와 공공 고용 등이 재정에 부담을 주어온 것도 맞다. 그러나 프랑스의 재정 적자는 2000년대 초까지는 GDP 대비 3%를 크게 넘지 않았다.

프랑스의 재정 적자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것은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각국 정부가 필사적으로 돈을 풀면서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 위기는 이후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 금융 위기로 번지면서 2010년대 초반까지 유럽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프랑스의 재정 적자는 2009년 GDP 대비 7.2%를 찍으며 피크를 쳤지만, 이후 금융 위기가 가라앉고 (균형 재정이 무너지면 우주도 함께 무너진다고 믿는 독일의 입김이 센) EU가 지속적으로 균형 재정을 요구하면서 3~4%대로 돌아갔다. 

다시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였다. 관광업, 농업이 국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랑스 경제는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았고, 정부는 긴급 구호와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2020년 프랑스의 GDP 대비 재정 적자는 8.9%, 2021년 1분기에는 무려 9.7%에 달했다.

여기까지는 많은 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행보였다. 팬데믹이 끝나고 경제가 회복하면서 재정 적자 관리에 신경 썼다면 2010년대 초반 금융 위기 직후처럼 다시 적자폭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마크롱은 강력한 감세 정책을 실행했고, 프랑스의 기업 생태계를 활성화 시키는 방향성을 밀어붙였다. © 로이터
감세 효과가 지속되지 않은 이유  
사실 마크롱의 전임자이자 좌파인 사회당 소속인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상당히 건전해진 재정을 넘겨주었다. 올랑드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제를 본래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전방위적인 증세를 단행했고, 기업의 R&D 세액 공제와 고용 인센티브도 도입했다. 그 결과 2017년 마크롱이 취임했을 당시 국가 부채는 감소 추세였고, 재정 적자는 GDP의 3.4%에 불과했다. 덕분에 마크롱은 어느 정도 재정적 여유를 가지고 첫 임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직후부터 강력한 감세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데에 있었다. 중도우파인 마크롱은 이전까지 모든 자산에 과세되던 부유세(wealth tax)를 부동산에만 과세하는 것으로 축소하고, 납세자의 종합소득에 합산 과세하던 금융소득세(이자소득, 배당소득, 양도소득) 역시 분리 정액 과세로 변경했다. 법인세는 33%에서 25%로 인하했다. 

금융 자산이 많은 부유층에게 유리한 이러한 세제 개편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논란이 많았다. 마크롱은 정계 입문 전에는 로스차일드 그룹에서 투자은행가로 일한 바 있는데, 국민들의 저축 계좌에 쌓여있는 현금이 기업 투자로 흘러들어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프랑스를 더 매력적인 나라로 만들겠다는 비전이었다. 2년이 지난 2019년까지도 이러한 의도는 현실화되지 않았고, 경제 전문가들은 마크롱의 정책에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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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젤라의 한글 이름은 박누리이다.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중국필패>, <재닛 옐런>,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급변하는 거시경제 환경과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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