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톨의 비결

석유 트레이더의 거버넌스

2025년 9월 25일 목요일
세계 최대의 에너지 트레이더인 비톨(Vitol)이 내놓은 장기 석유 수요 등의 에너지 전망은 그들이 시장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음에도 시장 참여자들이 신뢰하면서 참고하는 자료입니다. 시장의 수급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제품별로 비교적 정확한 전망을 한다고 평가 받죠. 단점은 실제 기술 발전에 따른 전력망 변화 등을 예측에 반영하는 것이 느리다는 것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망을 중립적인 시각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에너지 전환과 기후 정책을 전망에 더 크게 반영하기에 각종 변수로 인해 적용되지 못하는 정책과 이에 따른 실제 석유 수요의 예측이 엇나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실제 시장의 수급 상황과 트레이딩 현황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죠. 합리적인 거시적인 전망을 내놓지만, 시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입니다. 

에너지 트레이더나 투자자가 아닌 시장 전망을 드라이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리포트를 참고하는 것이 나을까요? 둘 다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 전망이지만, "실제 석유 수요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비톨의 전망이 현실적입니다.

그 이름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매일 세상에서 가장 많은 양의 석유를 거래하고 있는 이들이 가진 방대한 수급 데이터가 그 전망에 정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현실적인 전망은 지난 몇 년간 비톨이 올린 막대한 수익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자원트레이딩
비톨의 비결
석유 트레이더의 거버넌스
비톨(Vitol)이라는 기업을 아시나요?

아마 에너지 업계가 아닌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질문을 하면 100명 중 최소 90명 이상은 모른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비상장 기업으로 늘 자신들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운영 방식을 고수해 온 이들은 최근 3년 간 평균 순이익이 120억 달러(약 16조 9100억 원)를 넘는, 세계에서 최대 매출과 수익을 내는 에너지 트레이더입니다.

이들은 엄밀히 따지면 러시아가 일으킨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벌어지는 기간에 가장 많은 돈을 번 에너지 트레이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부터도 비톨은 세계 최대의 에너지 트레이더 중 하나로 업계에서는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1966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설립된 이 트레이딩 오피스, 아니 당시에는 원유 바지(barge) 한두 개를 고객과 연결시키던 이 작은 사업자는 현재는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고 영국이 합쳐 소비하는 양보다 많은 석유를 매일 거래하는 메이저가 되었습니다. 

매출이 2024년엔 3300억 달러(약 465조 원), 2023년엔 4000억 달러(약 563조 원), 2022년엔 5000억 달러(약 704조 원)에 가까웠는데, 이는 전쟁 이후 급격한 변동을 보인 자원 가격으로 인한 변화이죠. 에너지 트레이딩 시장의 경우 워낙 자원 가격의 변동성이 높아 매출보다는 그 시황을 타고 이익을 얼마나 더 냈는지가 주요한 평가 기준입니다. 비톨의 경우에는 물량의 60% 이상이 원유를 비롯한 석유 제품이고, 30%가 가스, 그리고 나머지 10%는 전력 거래와 탄소배출권, 바이오연료가 중심이 됩니다.

참고로 2022년에 기록한 5000억 달러(약 704조 원) 규모의 매출은 세계 최대 수준입니다. 월마트를 제외하면 말이죠.

비톨은 예전부터 업계에서도 그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었습니다. 많은 에너지 분야 기업들이 그렇기도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조명을 받는 것을 꺼려했고, 늘 조용히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았죠. 라이벌 트레이더라고 할 수 있는 머큐리아나 건보(Gunvor) 같은 후발 업체들이 석유뿐만 아니라 가스와 석탄을 비롯한 각종 광물을 트레이딩 하면서 각 시장에서 존재감을 일부러 드러내는 가격 제안 등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올리던 수익도 아주 큰 수준이었습니다. 에너지 시장에 일어난 아주 큰 변수를 가장 큰 이익으로 만든 기업이 비톨이기도 합니다. (데이터: 비톨)
조용한 거버넌스가 사업의 핵심  
석유를 중심으로 한 포지션의 영향도 있지만, 비톨은 세계 최대의 공급선들을 상대로 물량을 확보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군더더기 없다는 것은 좋은 가격을 제안하고, 좋은 가격에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죠. 이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요처와 트레이딩 기법이 안정화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인데요.

비톨이 에너지 업계에서는 드문 거버넌스 구조를 가졌기에 이러한 전략적 운영이 지속 가능하다고도 분석됩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최근 비톨의 실적을 조명하는 이야기를 통해 이 점을 짚었는데요. 비톨은 비상장 기업이지만, 지분의 5% 이상을 소유한 강력한 대주주가 없습니다.
.
.
.

구독하고 꾸준히 받아보세요!

현업 전문가들의 글로벌 산업 이야기

현업 전문가들이 글로벌 산업의 구조를 읽고, 비즈니스의 맥락과 새로운 관점을 전합니다.

각 산업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을 분석합니다. 크게 보이지 않지만, 명확한 신호들을 발견하면서요. 커피팟 플러스 구독하고 산업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매일' 받아보세요!


커피팟 Coffeepot
good@coffeepot.me
© Coffeepot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