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다가온 식량 위기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3화. 전쟁이 만드는 새로운 전략 자원, 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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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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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석유 가격과 함께 출렁이고 있는 자원이 있습니다. 바로 비료입니다. 

비료 역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나오는 물량이 상당해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는데요. 석유 가격이 이미 급등한 현재, 세계 곳곳에서는 식량 재배 농가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이르고 있고, 이제 실제 매대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비료 공급 부족은 곧 식량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가격 인상의 여파는 아직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크게 체감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비료 공급 차질이 빚어진 글로벌 사우스에서는 식량 위기가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선진국에서도 각종 식료품 가격의 인상이 더 커지는 것으로 이 여파가 멈추지 않습니다. 전반적인 공급 부족의 문제로 번지게 됩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3화 #자원 #비료
조용히 다가온 식량 위기
전쟁이 만드는 새로운 전략 자원, 비료
이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예견되었던 일이지만, 전 세계 식량 가격이 심상치 않다.

수확철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은 유가가 소비자들이 실감할 만큼은 급등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가격이 들썩이지는 않고 있지만, 아프리카, 아시아를 거쳐 전쟁을 시작한 당사자인 미국에 이르기까지 이미 조금씩 식량 대란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에너지 가격이다. 모든 식료품을 자급자족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거의 없다. 일부 품목은 자급자족이 가능하더라도, 다른 품목들은 수입 농산물, 축산물에 의존한다. 쉬운 예로 우리나라를 살펴보자.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30%대 초반이다. 주식인 쌀의 자급율은 100%를 넘나들지만, 그 외의 곡물 특히 밀, 옥수수, 대두, 보리 등등은 거의 전량을 수입하다시피 한다.

곡물을 실어 나르는 것은 화물선이다. 배를 띄우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연료가 필요하다. 연료 가격이 치솟고 있는데 곡물 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는 없다. 곡물은 식용뿐 아니라 가축의 사료용으로도 쓰인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 육류 가격도 오른다. 다행히(?) 겨울이 지난 후에 전쟁이 시작되기는 했으나, 겨울에 재배하는 채소는 대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다. 전부 기름이다. 

지난달 아티클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중동은 석유와 천연가스뿐 아니라 전 세계 비료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채소와 과일은 물론이고 곡물 역시 비료는 필요하다. 쌀 농사에 가장 널리 쓰이는 비료는 질소(N), 인산(P), 칼륨(K)이다. 수입에 의존하지 않는 쌀조차도 재배 비용이 높아지면 가격은 올라간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바레인은 바로 이 질소, 인산, 칼륨의 주요 수출국이며, 이들의 수출 경로는 석유와 마찬가지로 호르무즈 해협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국제비료협회에 따르면, 이들 국가는 질소 비료의 주요 형태인 요소(Urea)와 암모니아를 각각 세계 무역량의 3분의 1, 4분의 1을 공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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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식량은 비료와 석유가 만든다고 볼 수도 있다.
남아도는 쌀을 팔지 못하고
카타르에너지는 지난달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 이후 천연가스 공급이 끊기자 요소 생산을 중단했다. 다른 업체들은 요소를 계속 생산하며 항구 근처에 비축하고 운송이 재개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저장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이 언제 열릴 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소 가격은 1월 이후 세계적으로 70퍼센트 이상 올랐다. 

국제비료협회 회장 알즈베타 클라인은 저장 용량의 한계 때문에 생산자가 가동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고 경고했다. "비료 저장 용량은 10일에서 30일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는지 계산해 보라."

세계 2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 지구상에서 가장 농업 생산량이 많은 지역 중 하나인 메콩강 삼각주는 아열대성 기후와 비옥한 토양 덕분에 벼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자랑한다. 1900만 명의 인구가 연중 2~3모작으로 800만 톤의 쌀을 생산하며, 추수와 동시에 파종을 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쌀을 가득 실은 바지선들이 치솟는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박해 있다.

정미소들 역시 전기 방아를 멈췄다. 농부들은 5월 파종 계획을 포기했다. 연료비와 비료값의 동반 폭등으로 차라리 땅을 버려두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메콩강 삼각주는 쌀뿐만 아니라 과일, 심지어 새우 같은 수산물까지 생산한다. 이 모든 것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비용이 급등한 것이다. 

석유 비축량이 적은 베트남은 전쟁 개시 일주일 만에 연료 배급제를 시행했고, 도시 주민들과 제조업자들, 농부들이 제한된 자원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이것은 베트남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쌀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필리핀이지만, 일부는 아프리카와 미국으로도 수출된다. 필리핀은 필리핀대로 수입한 쌀을 전국의 도매상으로 운송할 디젤유가 없다.

방글라데시 북부 디나지푸르 지역의 쌀 농가들은 관개 펌프와 탈곡기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기름이 없다. 관개 시스템이 멈춰 서면서 익어가는 벼에 당장 필요한 물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5개의 국영 비료 공장 중 4개가 가스 부족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심지어 반대 방향인 중동으로 가는 쌀도 길이 막혔다. 중동에서 주로 소비하는 비스마티 쌀은 인도에서 생산해서 호르무즈를 통과해 들어가기 때문이다.

결국 아시아 전역에 쌀이 쌓이면서 생산 비용은 오르는데 도매 가격은 하락하는 단기적인 역설을 만들어내고 있다. 곡물보다 비축이 어려운 채소나 과일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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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치솟았던 때만큼 오르진 않았지만, 요소(Urea) 가격 역시 위험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미지: 트레이딩 이코노믹스)
라즈베리 가격이 보여주는 것 
지난달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이번 전쟁이 미국의 식료품(수입 농산물)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품목으로 라즈베리를 꼽았다.

"신선 농산물의 여왕"으로 불리는 라즈베리는 매우 에너지 집약적인 과일이다. 토양이 너무 습하면 죽어버리므로 인위적으로 습도를 관리해야 한다. 과육이 매우 보드랍고 무르기 때문에 기계 수확이 어렵고 사람이 직접 따야 한다. 냉장 트럭(디젤 엔진)에, 충분한 완충 공간을 확보하여 가볍게 쌓아야 한다. 심지어 비행기로 운송할 때도 냉장 보관은 필수이다.

게다가 요즘 과일을 대용량으로 사는 가정은 없다. 대개는 일회용 PET 용기에 소량 포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전쟁 이전에는 아예 모르거나 잊고 있었지만, 플라스틱은 석유로 만든다. 

1월 이후 미국의 디젤유 가격은 이미 50% 가까이 뛰었고, 그 결과 라즈베리 가격은 두배가 되었다. 연료 가격이 오르면 그 비용은 공급망을 통해 거의 즉각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모든 물건의 가격에 반영된다. (라즈베리는 한국에서 널리 먹는 과일은 아니지만, 대신 같은 베리류인 딸기로 바꿔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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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베리나 딸기 같은 과일도 석유 가격이 오르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미국 농무부는 올해 식품 가격이 전체 인플레이션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 3%정도로 보았다. 3월, 농무부는 이 수치를 6.1%로 수정 발표했다. (물론, 전쟁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 이전에도 관세와 이민자 추방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농업 섹터는 심한 타격을 입었다. 미국의 농업은 불법 이민자들의 저가 노동 없이는 사실상 돌아가지 않는다. 여기에 기후 위기로 인한 세계 각지의 폭염, 폭우는 덤이다.)

라즈베리의 예를 들기는 했지만, 사실 거의 모든 신선 농산물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씨를 뿌리는 순간부터 식탁에 오르는 순간까지, 모든 식품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트랙터, 트럭, 선박은 디젤로 움직이며 콜드 체인, 제분소, 가공 공장은 전기로 돌아간다. 기름이다. 산지에서 지역의 유통 허브로, 도시의 물류 창고로, 최종적으로 상점에 도착할 때까지 이 모든 이동 행위가 전부 기름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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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젤라의 한글 이름은 박누리이다.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중국필패>, <재닛 옐런>,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급변하는 거시경제 환경과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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