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의 유산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4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끝까지 지켜낸 조용한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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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9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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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 미 연준의장 임기를 끝까지 마치고 의장 자리를 물련준 제롬 파월은 향후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요? 전임 연준 의장들과의 비교는 무의미합니다. 모두가 보낸 시간과 그 안의 변수들이 늘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롬 파월에 관해서 확실한 것은 그가 누구도 마주하지 않았던 팬데믹을 지나왔고, 누구도 마주하지 않았던 현직 미 대통령의 노골적인 압박을 견디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켜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변수만으로도 전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그의 통화 정책 운영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제롬 파월이 확실히 남긴 유산과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헌사'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중요한 가치를 지켜낸 미 연준의장에 대한 또 하나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제롬파월 #연준의장
제롬 파월의 유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끝까지 지켜낸 조용한 투사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8년의 임기를 꽉 채우고 의장직에서 퇴임했다.

여기서 "꽉 채우고"라는 표현을 굳이 쓴 이유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임기를 중간에 포기하거나 밀려나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꽉 채운"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8년 취임 당시만 해도 연준의 역사에서, 아니 중앙은행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존재가 되리라고 예측한 이는 없었다. 그리고 파월은 이러한 위업을 달성해 낸 것은 혁신적인 경제학 이론이나 시대의 흐름을 바꾼 과감한 결단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와 그 자리가 요구하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 파월의 미덕이었고, 그 미덕이 저명한 경제학자도 아니고, 심지어 경제학 전공자도 아니었던 그로 하여금 중앙은행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기게 했다. 

이번 이야기는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으나 역사의 거인으로 퇴장하게 된 제롬 '제이' 파월에게 보내는 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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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외부 요인으로 인한 경제적 변동성이나 정치적으로나 역사상 가장 험난한 시기를 거친 미 연준의장 중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지: AP)
버냉키, 옐런, 그리고 파월의 계보  
"첫 번째 선택은 커녕 두 번째 선택지조차 아니었다."

오바마 백악관의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제이슨 퍼먼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당시 연준 이사직 후보인 파월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정권을 뺏긴 공화당이 신임 연준 이사 자리는 절대 민주당 추천 인사에게 줄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었고, 오바마의 경제 자문들은 수많은 보수 성향 거시경제학자들을 만나 연준 이사직을 제의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재무부 관계자 한 사람이 파월의 이름을 꺼냈다. 퍼먼은 자신이 얼마나 "뜨악"했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파월은 한번도 거시경제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파월은 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로스쿨을 졸업한 뒤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은행과 사모펀드에서 M&A 변호사로 경력을 쌓았다. 월스트리트 시절의 인맥으로 재무부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재무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학구적인 분위기가 강한 연준과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와 부의장 재닛 옐런은 아이비리그 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석·박사를 마친 후 교수가 되어 경제학을 가르쳐온, 전형적인 엘리트 거시경제학자들이었다. 간혹 변호사 출신들이 이사진에 합류하기도 했지만, 파월처럼 경제학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버냉키나 옐런처럼 수십 년 동안 갈고닦은 학문적 이론으로 무장한 학자들이 우글거리는 연준에서, 파월은 금융계에서의 실전 경험을 무기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 냈다. 파월이 연준에 합류했을 무렵 미국 경제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 위기의 여파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버냉키는 "필요하다면 헬리콥터로 달러를 뿌려서라도 대공황을 막겠다"는 결의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까지 얻어가며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지만, 경기 회복은 느리고, 더디고,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 "대침체(The Great Recession)"라고 불린 이 시기의 특징은 "고용 없는 회복"이었다. 실물 경기가 금융 경기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과 초저금리는 장기적으로 자산 인플레와 양극화를 유발할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우려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며 총대를 멘 사람이 파월이었다.

결국 버냉키는 파월의 의견을 받아들여 양적완화를 점진적으로 줄이는 (테이퍼링) 쪽으로 정책을 전환한다. 
참고로 여기에 정치적인 성향이 작용했던 것은 아니다. 버냉키와 파월은 둘 다 공화당 지지자였다. 이후 버냉키의 뒤를 이어 의장이 되는 부의장 옐런은 민주당 지지자였다.

옐런은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버냉키의 오른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고, 파월은 같은 공화당 지지자임에도 버냉키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버냉키는 그런 파월의 의견을 수용했다. 당시 연준 리더십의 직업적 청렴성(Professional Integrity)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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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부터 둘의 사이는 원만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의도대로 행동하지 않은 연준의장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당시에도 했다. (이미지: 뉴욕타임스)
트럼프의 파상공세를 이긴 '강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배경이 없는 파월이 의장직에까지 오르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파월이 연준 의장이 된 것은 때때로 우리가 목격하는 역사의 장난이랄까, 아이러니에 가까웠다.


2017년 백악관에 입성한 도널드 트럼프는 연임을 앞두고 있던 연준 의장 옐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시 미국 경제는 견조한 성장세와 함께 실업률은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이 모두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경제가 충분히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본 옐런은 그때까지 유지해왔던 초저금리 기조를 중단하고 점진적인 금리 정상화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자본조달 비용을 증가시켜 주식 시장에는 단기적인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임기에 증시 호황을 원했던 트럼프는 옐런을 사임시키고 "자신의 입맛대로 휘두를 수 있는" 신임 의장을 앉히기로 했다. 거물 경제학자라는 배경이 없는 파월은 트럼프의 눈에 이런 용도에 딱 맞아떨어지는 맞춤형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만만하게" 보았고, 어찌 보면 바로 그 때문에 연준 의장이 될 수 있었던 그 파월이 이후 8년간 트럼프에게 조용히, 그러나 굳건하게 맞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사수하는 최후의 보루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와 파월의 파열음은, 생각보다 빨리 터져나왔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파월이 전임 의장 옐런의 금리 인상 기조를 그대로 이어간 것이다. 2018년 말, 트럼프는 "파월을 해고할 방법을 찾았다"고 큰소리쳤다.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은 연준 의장을 해임할 수 없다.) 


연준이 연이어 금리를 인상하자 2019년 8월 트럼프는 급기야 소셜미디어에 "파월과 시진핑 중에서 누가 미국의 더 큰 적인가"라는 트윗을 게시한다. 전 세계 중앙은행과 경제 정책 입안자들의 가장 큰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잭슨홀 미팅 기간이었다. 당시 공교롭게도 파월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퍼먼은 너무 놀라서 자기 눈을 의심했는데, 파월이 그 트윗을 보고도 전혀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고 회고했다. 


이것이 파월과 트럼프의 질긴 악연의 시작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월 본인은 공화당원이지만 연준 의장으로서의 행보는 트럼프의 후임인 바이든 정권과 더 합이 좋았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해 다시 정권을 내준 바이든 정권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을 제때 잡지 못한 연준 의장이라는 오명과 비난도 함께 받아야 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백악관 컴백은 이 악연의 절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임기와는 달리 트럼프의 협박은 훨씬 노골적이었다. 대통령이 대놓고 자신을 해임하거나 심지어 (없는 형사 혐의를 만들어서) 기소하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파월은 그러한 위협에 굴복하지도,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했다. 기자 회견에서 한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이 당신을 해임할 권한이 있느냐"고 도발적인 질문을 하자 "없습니다" 단 한마디로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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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울프 같은 대표적인 경제 칼럼니스트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파월의 인플레이션 대응에 있어서는 점수를 박하게 준다. 하지만 누구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켜낸 업적에 대해서는 점수를 박하게 줄 수 없다. (이미지: 파이낸셜타임스)
독립성을 위해 파월이 발휘한 '정치력'  
하지만 파월이 순진하게(?) 자기 일만 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은 것은 아니다. 파월은 다른 방법으로 트럼프에 대응했다. 의회를 자기 편으로 만든 것이다. (애초에 손을 댄 사업마다 족족 파산한 트럼프가 닳고 닳은 월스트리트에서 M&A 변호사로 활약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번 파월을 그렇게 만만하게 본 것부터가 오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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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젤라의 한글 이름은 박누리이다.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 최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 기업의 코스닥 상장을 이끌었다. 현재는 피지컬 AI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중국필패>, <재닛 옐런>,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급변하는 거시경제 환경과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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