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6화. 성장과 건전재정의 동상이몽 문제 일본의 다카이치 내각이 370조 엔(약 3300조 원) 규모의 투자를 통한 성장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복잡합니다. 엔화는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국채 금리는 30년래 최고치를 넘나드는 가운데, 정부가 이 '호네부토 방침' 초안에서 그 독립성이 중요한 일본은행(BOJ)의 저금리 유지를 사실상 압박하는 문구를 넣었다가 빼는 일까지 있었죠. 이번 해프닝에서 일본 정부의 조급한 속내도 읽힙니다. 결국 핵심은 야심차게 만든 성장 서사를 뒷받침할 재원 조달인데, 이를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과 어떻게 맞물리게 하면서 해결해 나가느냐입니다.
다만 더 큰 문제는 일본의 실질적인 경제 현황입니다. 일본 가계의 실질임금은 4년 연속 마이너스이며, 엥겔지수가 25년래 최고치에 이르러 생활물가 압박까지 받는 중이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식료품 소비세 인하 재원도 확실하게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건전재정까지 유지하면서 의도하는 성장 서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어려운 시험대에 놓인 일본의 상황을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이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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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6화 일본의 성장 서사가 만들어지려면 |
7월 31일 일본은행(BOJ) 정책회의를 앞두고 엔화는 달러당 163엔대까지 밀리며 약 40년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1996년 이후 최고치를 넘나들고 있다.
지난 2월 중의원(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을 해산하는 승부수를 던진 뒤 "강하고 풍요로운 일본"을 기치로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연이어 야심찬 성장 전략을 내놓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로서는 뼈아픈 전개이다. 채권 시장이 다카이치 정권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지난 7월 21일 첫 "경제 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 방침", 이른바 '호네부토(骨太. 큰 틀, 뼈대라는 의미)' 방침을 확정 발표했다. 2026년 호네부토 방침은 건전 재정에 대한 정부의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다고 평가 받는다. 다카이치 내각은 민관 공동 투자를 통해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인데, 2040회계연도까지 누적 370조 엔(약 3300조 원)을 에너지 안보, 인공지능, 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쏟아붓겠다는 것이 골자다.
* 매년 6월 발표되는 호네부토 방침의 유래는 200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구조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경제 정책의 뼈대'라는 의미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민주당 정권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2013년 아베 신조 내각에서 부활했다. 아베노믹스도,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도 모두 호네부토 방침을 통해 공식화되었다. 일본 정부가 자국 경제 방향을 제시하는 최상위 정책 문서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청사진이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6월 30일에 공개된 초안에는 통화정책이 "민간 수요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문구가 담겨 있었는데, 이는 사실상 일본은행에 금리 인상 자제를 요구하며 저금리를 유도하는 것으로 읽혔다. 다카이치 내각은 2027 회계연도를 '책임 있는 적극재정 원년'으로 삼고, 2040년까지 인공지능(AI) 등 분야에 370조 엔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재정 건전화'라는 표현도 빠졌다. |
다카이치의 호네부토는 실현 가능한 걸까? (이미지: 일본 총리실, 블룸버그) |
호네부토 방침은 엔화 가치 하락세에도 기름을 끼얹었다. "BOJ의 적절한 금융정책 운영이 매우 중요하다"라는 문구가 추가되면서이다. 시장은 정부가 BOJ로 하여금 저금리 정책을 계속 가져가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해석했고, 이는 곧바로 일본·미국 금리 차가 고착화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로 이어졌다.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BOJ의 통화 정책이 정부에 좌우되면서 고물가에 제때 대응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1년 뒤 달러-엔 환율 전망치를 기존 155엔에서 165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일본 정부는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문제의 표현을 삭제하고, 최종안에는 구체적인 통화정책 수단은 전적으로 일본은행의 판단에 맡기며 그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내각에서 규제 개혁, 경제 재정 정책 등을 맡고 있는 키우치 미노루 특명담당대신은 "금융정책의 구체적인 결정은 BOJ에 맡겨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 변함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재정 건전성 우려에 대해서도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면서 시장 신뢰를 유지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초 8월 초로 예정되어 있었던 식료품 소비세 인하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채권 시장의 경계심은 호네부토 방침 발표 이전부터 이미 고조돼 있었다. 호네부토 방침 발표 이후 10년물 국채 금리는 7월 6일 장중 2.830%까지 치솟아 거의 30년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20년물과 30년물 금리도 각각 지난 몇년을 통틀어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특히 30년물은 4%를 넘어섰다. 재정 리스크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물가 상승 압력에 대한 경계심까지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전 일본은행 심의위원 타카히데 키우치는 다카이치 정부가 지지율 하락과 엔화·국채 가치 하락이라는 두 가지 역풍을 동시에 맞고 있으며, 아직 어느 쪽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구체적인 수치와 근거로 건전 재정에 대한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현재 일본 정부는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3조 엔 규모의 추경을 준비하면서도 그 재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국채 총발행량은 늘리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 말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
엔은 지금 40년만의 최저 수준이다. (이미지: 트레이딩 이코노믹스) |
닛케이는 국채 10년물 금리가 2.8%를 넘어서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배경에는 다카이치 총리의 확장적 재정 정책이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여력에 미칠 영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고 짚었다.
통화 정책은 안정적 물가 상승을 위해 적절히 운영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구는 원론적인 수준일 뿐이었지만, 사실은 중앙은행의 영역인 통화 정책에 대해서 정부가 말을 얹는다는 것 자체가 일본은행의 독립성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스는 조금 다른 관점의 진단을 내놓았다. 370조 엔(약 3300조 원) 이라는 지난 수십년간 구경하지 못했던 초대형 성장 전략이 일본을 재정·산업 정책의 중대한 전환점에 세웠다며, 일본 정부가 향후 엔화 방어보다 국채 금리 관리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국내 저축을 동원하고 기관 투자자들의 국내 자산 배분을 유도하는 한편, 필요하다면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을 통해 수익률 곡선 관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
일본은행은 결국 금리 동결을 발표했다. (이미지: 블룸버그) |
다카이치 내각의 재정 정책에 정면으로 맞선 일본은행의 속내는 복잡하다. 일본은행은 지난 6월 정책금리를 25bp 인상해 드디어 1%대로 끌어올렸다. 1995년 이후 처음으로 정책금리가 1%를 찍은 것이다.
초엔저와 물가의 고공행진이 겹친 상황에서,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 축소(테이퍼링) 역시 계속하며 점진적인 금리 정상화 기조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물가 상승률은 4년째 목표치인 2% 안팎을 기록 중이고, 엔저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과 견조한 임금 인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 일본은행 내에서는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부가 대놓고 금리 인상을 반대하고 나오는 국면에서 과연 일본은행이 중앙은행 독립성을 주장하며 나홀로 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모두가 회의적이다. 실제로 시장은 일본은행이 금리를 동결하는 쪽에 베팅했다.
7월 31일 오전, 일본은행 정책회의는 예상대로 기준금리 동결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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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젤라의 한글 이름은 박누리이다.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 최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 기업의 코스닥 상장을 이끌었다. 현재는 피지컬 AI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중국필패>, <재닛 옐런>,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급변하는 거시경제 환경과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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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프닝에서 일본 정부의 조급한 속내도 읽힙니다. 결국 핵심은 야심차게 만든 성장 서사를 뒷받침할 재원 조달인데, 이를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과 어떻게 맞물리게 하면서 해결해 나가느냐입니다.
다만 더 큰 문제는 일본의 실질적인 경제 현황입니다. 일본 가계의 실질임금은 4년 연속 마이너스이며, 엥겔지수가 25년래 최고치에 이르러 생활물가 압박까지 받는 중이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식료품 소비세 인하 재원도 확실하게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건전재정까지 유지하면서 의도하는 성장 서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어려운 시험대에 놓인 일본의 상황을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이 짚어봅니다.
성장과 건전재정의 동상이몽 문제부터 풀어야
다카이치 내각은 지난 7월 21일 첫 "경제 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 방침", 이른바 '호네부토(骨太. 큰 틀, 뼈대라는 의미)' 방침을 확정 발표했다. 2026년 호네부토 방침은 건전 재정에 대한 정부의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다고 평가 받는다. 다카이치 내각은 민관 공동 투자를 통해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인데, 2040회계연도까지 누적 370조 엔(약 3300조 원)을 에너지 안보, 인공지능, 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쏟아붓겠다는 것이 골자다.
문제는 이 청사진이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이다.
호네부토 방침은 엔화 가치 하락세에도 기름을 끼얹었다. "BOJ의 적절한 금융정책 운영이 매우 중요하다"라는 문구가 추가되면서이다. 시장은 정부가 BOJ로 하여금 저금리 정책을 계속 가져가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해석했고, 이는 곧바로 일본·미국 금리 차가 고착화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로 이어졌다.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BOJ의 통화 정책이 정부에 좌우되면서 고물가에 제때 대응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1년 뒤 달러-엔 환율 전망치를 기존 155엔에서 165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일본 정부는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문제의 표현을 삭제하고, 최종안에는 구체적인 통화정책 수단은 전적으로 일본은행의 판단에 맡기며 그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내각에서 규제 개혁, 경제 재정 정책 등을 맡고 있는 키우치 미노루 특명담당대신은 "금융정책의 구체적인 결정은 BOJ에 맡겨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 변함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재정 건전성 우려에 대해서도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면서 시장 신뢰를 유지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초 8월 초로 예정되어 있었던 식료품 소비세 인하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채권 시장의 경계심은 호네부토 방침 발표 이전부터 이미 고조돼 있었다. 호네부토 방침 발표 이후 10년물 국채 금리는 7월 6일 장중 2.830%까지 치솟아 거의 30년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20년물과 30년물 금리도 각각 지난 몇년을 통틀어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특히 30년물은 4%를 넘어섰다. 재정 리스크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물가 상승 압력에 대한 경계심까지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전 일본은행 심의위원 타카히데 키우치는 다카이치 정부가 지지율 하락과 엔화·국채 가치 하락이라는 두 가지 역풍을 동시에 맞고 있으며, 아직 어느 쪽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구체적인 수치와 근거로 건전 재정에 대한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현재 일본 정부는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3조 엔 규모의 추경을 준비하면서도 그 재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국채 총발행량은 늘리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 말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정부가 대놓고 금리 인상을 반대하고 나오는 국면에서 과연 일본은행이 중앙은행 독립성을 주장하며 나홀로 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모두가 회의적이다. 실제로 시장은 일본은행이 금리를 동결하는 쪽에 베팅했다.
7월 31일 오전, 일본은행 정책회의는 예상대로 기준금리 동결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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