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지 않을 (기존) 매거진의 시대

[미디어 노트] 미디어 기능에만 머물면 안되는 시대
2024년 9월 24일 화요일

[미디어 노트]
다시 오지 않을 매거진의 시대
미디어만으로는 비즈니스가 되지 않는 시대

매거진, 즉 잡지의 시대가 저문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종이 신문과 마찬가지로 종이 잡지의 생명력은 디지털 전환의 시대가 빨라지면서 발행 부수를 줄이고, 웹사이트와 앱을 통해 독자들을 찾아 나섰는데요. 성공적으로 전환을 이루고 여전히 그 레거시를 이어가는 사례들도 있지만, 산업 전체적으로는 지속해서 축소가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2000년대 초중반 미국 잡지 산업의 부흥기에 그 매출 규모가 460억 달러(약 61조 원)에 이르렀는데, 2021년에 집계된 결과를 보면 260억 달러(약 35조 원)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20여 년 만에 산업 전체적으로는 거의 반쪽이 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구독료와 더불어 역시나 광고가 큰 부분을 차지했던 이 매출은 다 어디로 간걸까요?

네,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늘 말씀드리기도 하듯, 구글과 페이스북이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이후 생겨난 수많은 디지털 플랫폼들도 이를 나눠 가졌습니다.

산업이 크게 뒤집어진 이래 디지털 전환에 실패한 무수히 많은 잡지들이 있고, 디지털 전환을 하고서도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하는 레거시 잡지들도 많습니다. 잡지의 아이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보그와 타임 모두 종이 잡지가 여전히 그 브랜드의 레거시를 이어가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발행 부수를 줄였음은 물론 디지털 전환을 한 이후에 지속 성장의 길을 만들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산업이 계속 작아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디지털 전환기로 한 차례 시장이 정리된 이후 그 감소 속도는 이제 줄어들었지만, 매거진 산업의 앞길이 밝아 보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디지털 퍼블리셔로의 완전한 전환을 이어간다면 기존의 잡지 형식의 텍스트와 콘텐츠 그리고 사진과 이미지 말고도 다른 종류의 콘텐츠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넓은 의미의 매거진 업계에는 새로운 시도들이 생겨나고, 디지털을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신문과 뉴스 미디어들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이 지속되는 것과 비견해 볼 수 있는데요. 

과연 매거진은 아직 의미 있는 콘텐츠와 포맷으로 기능할 수 있는 걸까요? 최근에 몇 가지 새로운 시도들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거진이라는 미디어의 기능이 앞으로도 유효할 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사례들이기도 합니다.

결국 콘텐츠만의 힘으로 매거진이라는 미디어 사업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콘텐츠를 기반으로 만드는 새로운 기회들이 미디어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라켓은 구찌와 같은 브랜드와 협업을 하는 이슈(왼쪽)를 내기도 하고, 왕년의 대스타인 안드레 아가씨와의 화보를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찍는 이슈를 내면서 매거진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바로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통해 부가적인 수익을 더 창출할 수 있는 방향이죠. 구찌와 협업을 한 24호는 해당 호의 제작 비용을 거의 전부 구찌에서 지원했습니다. (이미지: 라켓)
한 테니스 잡지가 비추는 업계 모습

우선 최근 단연 화제가 크게 된 매거진을 꼽으라고 하면 테니스 매거진인 라켓(Racquet)이 있습니다. 라켓은 프로 테니스와 선수들 그리고 테니스 용품과 패션 등 테니스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콘텐츠 미디어로 시작한 매거진입니다. 광고를 위한 용품과 관련 패션 소개만이 중심이 되지 않고 예술과 패션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에세이와 아티클을 포함해 테니스 업계에 대한 특종과 선수 인터뷰, 비판적인 인뎁스 등 말 그대로 미디어의 기능을 하면서 유명해진 잡지이기도 했습니다. 2016년에 창간되었고, 시들었던 테니스에 대한 인기가 올라가면서 최근 더욱 주목을 받아오기도 했죠.

하지만 최근 이들이 주목을 더 크게 받은 건 공동창업자들 간의 갈등이 커지면서 소송 싸움으로까지 번졌기 때문인데요. 뉴욕타임스가 최근 이에 대해 내놓은 인뎁스에 의하면, 이들의 갈등은 두 창업자가 매거진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매거진의 편집장(에디터)이었던 데이비드 샤프텔(David Shaftel)은 라켓이 매거진의 기능에 더욱 충실하면서 미디어 콘텐츠를 더 확장해 나갈 것을 주장했고, 발행인인 케이틀린 톰슨(Caitlin Thompson)은 라켓이 매거진에 머물지 않고 커지는 테니스 업계에서 이벤트 사업과 각종 커머스 사업으로 더 확장하는 방향을 강하게 밀어붙였어요.

근본적으로 성장 방향과 그 속도가 다른 비전을 가진 이들은 그 의견을 좁힐 수 없었고, 결국 톰슨이 샤프텔을 해고하고 내쫓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라켓은 톰슨이 원했던 방향으로 그 성장을 추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기가 커진 테니스에 힘입어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US 오픈도 이번 연도에는 사람들이 유난히 몰렸고, 라켓은 대회 기간 중 성대한 이벤트를 열고 여러 브랜드들과 함께 행사를 여는 모습을 보였죠. 이제는 일 년에 서너 번(분기별) 발행하는 두꺼운 잡지를 기반으로 각종 이벤트와 각종 브랜드 광고를 기획하는 중이고, 이들은 현재로서는 각종 브랜드들과 매거진 제작 협업을 진행하고, 별도의 이벤트 사업 등을 통해 광고 및 스폰서십 수익을 기반으로 성장해 간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죠. 

반면 샤프텔은 해고된 이후 독립해 라켓의 기존 모습과 유사한 형태의 매거진인 '더 세컨드 서브'를 창간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렸던 방향의 퍼블리케이션을 만들어 가고 있죠. 라켓의 뉴스레터 구독자 리스트를 기반으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이 매거진은 현재 톰슨과 진행하는 소송의 중심에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테니스 업계의 특종과 업계의 이모저모에 대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미디어 매거진을 만들어 가는 모습입니다. '더 세컨드 서브'도 유명 저널리스트들이 참여하고 있고요. 이들도 물론 브랜드들의 광고를 싣고, 이를 주요 수익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테니스의 인기는 최근 몇 년간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커피팟을 통해서도 늘 짚었지만, 이제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전 세계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선진국'들은 특히 그 유행이 거의 비슷합니다. 한국에서 테니스가 유행하면 미국과 유럽에서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세계 톱 수준의 스타 플레이어가 새롭게 나오지를 않고 테니스 선수층이 얇아지면서 정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회복 중이며 그 산업도 이제 다시 커지고 있죠.

이렇게 커가는 산업에서 새로운 미디어가 파생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위 매거진들이 함께 활동하면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 자체가 산업이 커가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기도 하죠. 그리고 두 매거진이 추구하는 각기 다른 방향은 현재 매거진 산업을 포함해 커머스와 브랜드의 영역에 걸쳐 있는 콘텐츠 미디어들이 꼭 주목해야 하기도 합니다.

두 방향은 1) 미디어가 본연의 기능보다는 홍보와 광고에 초점을 맞춘 콘텐츠를 만들고 새로운 사업으로 확장하는 콘텐츠 기반 신규 비즈니스를 추구하느냐, 혹은 2) 미디어가 구독료와 광고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는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면서 '퍼블리셔'의 사업에 집중하느냐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모노클은 여전히 업계의 벤치마크 대상이고, 에어메일과 같은 뉴스레터를 기반으로 큰 매거진도 라이프스타일 콘텐츠와 관련 커머스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모노클, 에어메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기도

이들에 국한해서 보자면 어떤 방향이 성공할지는 판단하기 이릅니다. 일단 많은 이들은 현재 라켓이 추구하는 방향이 어찌 보면 니치(niche) 한 시장과 특정 종목에 집중하는 매거진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주목을 받으면서 성공을 거두는 새로운 매거진들이 대부분 이러한 모습을 보이고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모두가 종이 잡지의 성공 케이스라고 우러러본 영국의 '모노클(Monocle)'이 선봉에 섰고, 커머스가 주요 사업이 된 이들을 벤치마킹하려는 사례는 꾸준히 나오는 중이죠. 배니티 페어의 편집장이었던 그레이돈 카터(Graydon Carter)가 2019년에 창업한 에어메일(Air Mail)과 같은 뉴스레터 기반 미디어도 각종 이슈를 다루지만 쇼핑과 여행 등의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강조하고, 결국 오프라인 부티크 샵도 열어 운영하고 있어요. (참고로 이들은 현재 50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고, 최근에는 5000만 달러(약 670억 원)의 가치에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는 중이죠) 보그도 '보그 월드'라는 패션 이벤트를 열어 티켓을 판매하고 수익을 내는 것이 주요 사업 중 하나가 되었죠, 

새롭게 태어난 콘텐츠 미디어들은 처음에는 그들이 발행을 시작한 매거진이나 뉴스레터가 '미디어'라는 본연의 기능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이제는 광고와 스폰서십 그리고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이벤트와 커머스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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