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광고도 함부로 하면 '그린워싱' 공교롭게도 FSB 보고서 발표 다음 날인 4월 29일, 영국의 광고감시 당국 광고표준위원회(ASA)가 영국계 다국적 은행 HSBC의 그린워싱 광고에 경고 처분을 내릴 예정이라는 파이낸셜타임스 보도가 나왔습니다. HSBC는 지난해 10월 브리스톨과 런던에 2개의 광고를 걸었는데요. 하나는 기업 고객이 넷제로(Net Zero, 탄소 순배출량 0)로 전환하는 데에 앞으로 1조 달러의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HSBC가 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125만 톤의 탄소를 포집하겠다는 광고였죠. 당국은 이 광고들로 인해서 고객들이 "아, HSBC가 환경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구나’"생각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은행 계좌 개설이나 주택 담보 대출 등 HSBC 상품 소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죠. 그런데 당국이 HSBC의 공시 자료 등을 뜯어보니, HSBC는 석유 및 가스 프로젝트에 재정을 지원해 연간 358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네요. 2040년까지 발전용 유연탄 광산 사업에 자금 조달을 지속하는 계획도 있었고요.
"지구에 좋다"는 말, 입증할 수 있어야 당국이 HSBC UK에 내릴 권고안 초안에는 "향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환경 관련 내용을 내세울 경우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정보를 빠뜨리지 말라"는 명령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만약 이런 경고가 최종적으로 내려진다면 유의미한 선례가 될 예정이에요. 은행이 친환경 마케팅을 벌이는 게 소비자들의 금융 소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친환경제품 같은 소비재의 그린워싱 적발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겠죠. 영국 ASA는 지난해 9월부터 그린워싱 광고 감시를 강화한 상태예요. 지난해 한국에 진출해 비건 시장과 바리스타 업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몬드유 '알프로(Alpro)'도 지난해 10월 시범 사례로 엄단을 당했죠. 알프로는 당시 '지구에 좋다(Good for the planet)'라는 문구로 마케팅을 펼쳤는데요.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 격인 영국 경쟁시장청(CMA)과 ASA가 이 광고를 금지하는 처분을 내렸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고 입증할 수 없다(misleading and unsubstantiated)"는 이유였어요.
그린워싱 뒤에 있는 홍보 브레인들 이처럼 주요국가 당국들이 그린워싱에 서슬퍼런 시선을 보내는 뒷배경에는 '그린피스', ‘클라이언트어스’ 같은 환경단체들이 있습니다. 기업활동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들이 자료를 모아서 제보를 반복하니까 정부 입장에서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 없겠죠. 이들의 감시활동은 기후 공시 강화 움직임에 탄력을 받아서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어요. 이들이 역시나 가장 큰 관심을 쏟는 이들은 '빅오일'이라고 불리는 석유 기업들이고요. 최근 큰 관심을 받는 사례는 빅오일인 '토탈에너지스'의 사명 변경 관련 다툼인데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옛 CFP(프랑스석유회사), 전 '토탈(Total)'은 지난해 사명을 '토탈에너지스'로 바꿨어요. 그리고는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대대적인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을 펼치고 있죠.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토탈이 리브랜딩으로 대중을 호도하며 유럽 소비자 보호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우간다 신규 유전 개발에 앞장서고 충분한 탄소중립 계획을 내놓지 않은채 구호로만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며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는 거죠. 그린피스 프랑스의 법률고문은 "토탈은 더 많은 화석연료를 생산해 판매하면서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납득시키려고 교활한 선동(sly propaganda)을 하고 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어요. 환경단체들은 에너지 기업들의 이런 '홍보 브레인'을 직접 때리는 전략도 구사하고 있어요. 바로 PR(Public Relations, 홍보) 컨설팅 그룹들인데요. 파이낸셜타임스가 인용한 브라운대학교에서 나온 한 최근 논문은 "PR 회사가 '기후 정치(climate politics)'에서 핵심적이고 조직적인 배우들"이라며 "석유 기업의 광고 마케팅은 환경 담론을 왜곡하는 전략"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죠. 환경단체들은 '에델만(Edelman)' 같은 글로벌 PR그룹에 감시·비판을 강화하고 있고, 이는 미국 의회가 엑손모빌 등 석유 기업의 광고·마케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PR 회사도 조사 대상이 되는 결과를 만들었어요. (환경단체와 이들 석유 기업의 '프레임 싸움'은 가끔 보면 치열한 스포츠 라이벌전 같은 모습입니다. 물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기도 하지만요)
결국 글로벌 기준 마련이 빨리 되어야 정부 당국이나 환경단체로부터 그린워싱이라는 지적을 받은 회사들이 순순히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사과하고 있을까요? 뉴스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들 나름의 근거를 내세우면서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친환경을 위해 정말로 노력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죠. 천연가스나 원자력 발전이 친환경이냐 아니냐 같은 논쟁까지 들어가면 입장에 따라 더욱 첨예하게 엇갈리고요.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ESG 공시를 강화해야 한다"라는 거시적인 선언은 이제는 이견의 여지가 거의 없어졌어요. 그러나 세부적으로 '언제 어떻게 하느냐'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업과 기관 등의 ESG 실무자분들이 머리가 아픈 이유이기도 하겠고요. 결국 지금 시점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제대로 된 글로벌 기준의 정립'으로 보여요. EU 택소노미(Taxonomy,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으로 인정되는 목록을 담은 분류 체계), 국제지속가능성표준위원회(ISSB) ESG 공시기준, 미국 SEC의 기후 공시 기준 등에 온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저마다 한 마디씩 얹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FSB도 최근 보고서에서 "이 이슈는 부문간 경계나 국경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국가별 규제를 관통하는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촉구했어요.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도 앞으로 중요히 대응해야 할 이슈이겠죠. |
[전기차] #포드 #미국시장
1. 픽업트럭 제국의 전기차 역습 시작?
포드가 지난주부터 전기 픽업트럭을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경쟁 모델 대비 출시가 1년 가까이 빨랐고 전기 트럭 시장을 선점하려고 했던 리비안(Rivian)보다 올해 더 빠르게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포드는 미국의 핵심 시장인 픽업트럭을 직접 공략하면서 테슬라를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고삐를 당기고 있는데요. 픽업트럭이 가장 많이 팔리는 차종인 미국의 전기차 시장을 더 빨리 확대할 수 있는 움직임이기도 해요.
목표 올려 잡은 포드
미국 시장에서는 픽업트럭이 가장 잘 팔리는 차종이고 포드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F 시리즈 픽업트럭은 45년 연속해서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린 모델이고(2020년에 78만 대, 2021년에 73만 대), 아이폰에 이어 가장 많은 매출을 낸 제품이라고 해요. 포드뿐 아니라 전기차 제조사들이 미국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픽업트럭 시장을 반드시 공략해야 해요. 그래서 대부분의 제조사가 전기 트럭 모델 출시를 준비했어요.
놀라운 것은 포드의 재빠른 생산 확장 계획이었고 그것을 실현해 낸 능력이에요. 포드는 지난 4월 26일 F-150의 전기차 버전인 F-150 라이트닝을 출시하며 현재까지 약 2000대의 차량을 생산했다고 밝혔어요. 포드가 초기 투자자로도 참여한 리비안은 작년부터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지난 4월 25일까지 총 2425대만을 생산했고, GM이나 테슬라는 트럭 제품을 내년부터 본격 출시하는데요. 포드가 자국 내 가장 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였다고 평가할 수 있어요.
물론 포드도 모두가 영향을 받는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해요. 하지만 여전히 목표 생산량을 아주 공격적으로 잡고 있어요. 당초 포드는 연간 4만 대의 전기 트럭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였는데요. 올해 초 그 목표를 3배 높은 15만 대로 상향 조정했어요. F-150 라이트닝 예약 주문이 20만 건 이상 몰렸던 것이 이유에요. (참고로 경쟁 차량인 GM의 쉐보레 실버라도는 14만 대의 주문을 받았고, 리비안은 총 예약 수가 8.5만 대였어요.)
왜 전기 픽업트럭일까
픽업트럭은 미국 자동차 시장을 대표하는 차종이에요. 재작년도 마찬가지고 2021년에 가장 많이 팔린 차 1, 2, 3위가 모두 픽업트럭이었어요. 포드의 F 시리즈에 이어 스텔란티스의 램(RAM)이 57만 대, GM의 쉐보레 실버라도가 42만 대 팔렸어요. 작년 상위 20개 차종 중 5개가 픽업트럭이고,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15%에요. SUV와 크로스오버 차종 11개까지 더하면 34%가 될 정도로 미국은 대형차가 핵심인 시장이고 그중에서도 픽업트럭의 인기가 가장 좋아요.
픽업트럭 시장 공략이 미국에서는 전기차 대중화에 중요한 기점이긴 하지만, 초기 판매 시점부터 기존 픽업트럭과 전기 픽업트럭의 타깃 고객이 같을 거라고 보지 않고 있어요. 이유는 픽업트럭의 주력 구매층이 전기차를 선호하는 고객군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포드는 이번에 F-150 라이트닝을 예약한 사람들은 주로 테슬라가 아니면 관심이 없었던 얼리어답터들로, 이전에 포드 브랜드나 픽업트럭을 접해보지 않았던 이들이라고 밝혔어요.
미국에서 픽업트럭은 보통은 거친 환경에서 생업을 도와주는 존재에요. 일상을 지탱해주는 자동차이기 때문에 픽업트럭 이용자들은 이런 차량의 전동화를 보수적으로 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전기 픽업트럭이 보수적인 성향의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린다면 미국 시장의 전동화는 예상보다 더 빨라질 수 있어요.
포드의 CEO인 짐 팔리는 토잉(towing, 견인능력) 등 픽업트럭의 필수적인 성능에 대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는다며, 일상에서 전기 픽업트럭이 증명해 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기존 픽업트럭과 동일한 힘과 성능을 발휘하면서 디젤 차량보다 유지비가 더 낮다는 점을 소비자들이 체감하기만 한다면 변화가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
F-150 라이트닝의 성능은 전통적인 픽업트럭의 성능에 크게 떨어지지 않아요. 일단 토잉 능력이 1만 파운드(약 4.6톤)로 내연기관 트럭의 1.3만 파운드(약 5.8톤)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나지 않아요. 커다란 프렁크(앞트렁크)를 포함한 넉넉한 적재용량, 종종 전기가 단전되는 (잠재고객이 많은) 중남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정전 시 집안에 전기를 임시로 공급해 줄 수 있는 기능까지 추가했어요. 가장 중요한 가격도 기존 픽업트럭과 큰 차이가 나지 않도록 했어요. 엔트리 급은 약 4만 달러에서 시작해요. 시중의 전기 픽업트럭 대비 절반 가격이에요. 기존 F-150과 50% 가까이 부품을 공유하며 생산 단가를 낮췄다고 해요.
포드는 전기차 전환 성공을 위해서 꼭 확보해야 하는 대상인 픽업트럭 구매자들의 니즈에 맞춘 장치들을 차량에 세심하게 추가했어요. 이들은 현재로서는 10년 뒤에 픽업트럭 판매량의 30~40%를 전기 픽업트럭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지원과 새로운 차량의 퍼포먼스와 고객 반응에 따라 이 수치는 앞으로 달라질 수 있죠.
포드는 올해 6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밝혔어요. 테슬라는 올해 독일과 미국에 두 개의 기가팩토리를 추가로 가동하며 총 150만 대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요. 아직 둘 간의 차이는 커요.
하지만 포드가 목표대로 올해 F-150 라이트닝 15만 대를 성공적으로 인도하고, 시장이 가장 큰 차종의 고객군을 선점한다면 테슬라가 독주하던 지형은 다른 양상이 될 수 있어요. 더 중요한 건 미국 시장의 전체적인 전기차 비율을 더 빠르게 끌어올리게 될 수도 있고요. 가장 많이 팔리는 차종 그리고 전기차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아직 잘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전기차 고객으로 만들면서요. 포드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더 빠른 전기차 전환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과연 전기차가 대형화되어도 충분히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어요. 최근 미국 비즈니스 뉴스 매체인 쿼츠(Quartz)는 허머 EV와 같은 대형 전기차는 도요타 코롤라처럼 일부 연료 효율이 뛰어난 내연기관차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고 지적했어요. 무거운 차체를 움직이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이에요.
발전소에서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비중이 높아지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직까지는 전기를 생산하는 데 화석연료 사용 비율이 높기 때문에 대형 전기 차량을 충전할 때 소요되는 전력의 탄소 배출량이 효율이 좋은 내연기관차가 직접적으로 배출하는 탄소량보다 많다는 의미에요.
내연기관차든 전기차든 크기가 큰 자동차는 에너지를 필연적으로 더 많이 소모하는 관계로 친환경적이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작은 전기차를 권할 수는 없죠. 물론 내연기관 허머보다는 전기차 허머가 62% 적은 탄소를 배출하고, 평균적으로는 같은 모델의 전기차는 탄소 배출량이 40% 감소한다고 하니 대형 차량 이용자들이 내연기관차를 고수하는 것보다는 전기차를 택하는 게 당연히 낫다고 해요.
[ESG] #친환경마케팅 #그린워싱
2. "지구에 좋아요" 함부로 광고하면 역풍
'ESG 공시(ESG reporting)'라는 단어가 이제 낯설지 않을 만큼 뉴스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ESG 중 환경 관련 공시가 가장 중요하다 보니 아예 ‘기후 관련 공시’(climate-related reporting)라고 표현하는 곳도 많죠. 지난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후 공시 의무화 초안을 발표한 이후에 관련 논의에 불이 붙었습니다. 각 산업계에서 저마다 "대응해야 한다", "기준이 필요하다" 등 얘기를 쏟아내고 있어요.
지난 4월 28일에는 국제 금융 감독 기준을 만드는 국제기구인 금융안정위원회(FSB)가 보고서를 통해 "각국의 금융 당국들이 기후 리스크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기후 위기로 늘어난 산불, 홍수. 가뭄 등 이상 현상이 금융 산업에도 큰 리스크가 되고 있으니 현시점에서 적극적인 대응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죠.
은행 광고도 함부로 하면 '그린워싱'
공교롭게도 FSB 보고서 발표 다음 날인 4월 29일, 영국의 광고감시 당국 광고표준위원회(ASA)가 영국계 다국적 은행 HSBC의 그린워싱 광고에 경고 처분을 내릴 예정이라는 파이낸셜타임스 보도가 나왔습니다.
HSBC는 지난해 10월 브리스톨과 런던에 2개의 광고를 걸었는데요. 하나는 기업 고객이 넷제로(Net Zero, 탄소 순배출량 0)로 전환하는 데에 앞으로 1조 달러의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HSBC가 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125만 톤의 탄소를 포집하겠다는 광고였죠.
당국은 이 광고들로 인해서 고객들이 "아, HSBC가 환경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구나’"생각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은행 계좌 개설이나 주택 담보 대출 등 HSBC 상품 소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죠. 그런데 당국이 HSBC의 공시 자료 등을 뜯어보니, HSBC는 석유 및 가스 프로젝트에 재정을 지원해 연간 358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네요. 2040년까지 발전용 유연탄 광산 사업에 자금 조달을 지속하는 계획도 있었고요.
"지구에 좋다"는 말, 입증할 수 있어야
당국이 HSBC UK에 내릴 권고안 초안에는 "향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환경 관련 내용을 내세울 경우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정보를 빠뜨리지 말라"는 명령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만약 이런 경고가 최종적으로 내려진다면 유의미한 선례가 될 예정이에요. 은행이 친환경 마케팅을 벌이는 게 소비자들의 금융 소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친환경제품 같은 소비재의 그린워싱 적발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겠죠.
영국 ASA는 지난해 9월부터 그린워싱 광고 감시를 강화한 상태예요. 지난해 한국에 진출해 비건 시장과 바리스타 업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몬드유 '알프로(Alpro)'도 지난해 10월 시범 사례로 엄단을 당했죠. 알프로는 당시 '지구에 좋다(Good for the planet)'라는 문구로 마케팅을 펼쳤는데요.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 격인 영국 경쟁시장청(CMA)과 ASA가 이 광고를 금지하는 처분을 내렸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고 입증할 수 없다(misleading and unsubstantiated)"는 이유였어요.
그린워싱 뒤에 있는 홍보 브레인들
이처럼 주요국가 당국들이 그린워싱에 서슬퍼런 시선을 보내는 뒷배경에는 '그린피스', ‘클라이언트어스’ 같은 환경단체들이 있습니다. 기업활동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들이 자료를 모아서 제보를 반복하니까 정부 입장에서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 없겠죠. 이들의 감시활동은 기후 공시 강화 움직임에 탄력을 받아서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어요. 이들이 역시나 가장 큰 관심을 쏟는 이들은 '빅오일'이라고 불리는 석유 기업들이고요.
최근 큰 관심을 받는 사례는 빅오일인 '토탈에너지스'의 사명 변경 관련 다툼인데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옛 CFP(프랑스석유회사), 전 '토탈(Total)'은 지난해 사명을 '토탈에너지스'로 바꿨어요. 그리고는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대대적인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을 펼치고 있죠.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토탈이 리브랜딩으로 대중을 호도하며 유럽 소비자 보호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우간다 신규 유전 개발에 앞장서고 충분한 탄소중립 계획을 내놓지 않은채 구호로만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며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는 거죠. 그린피스 프랑스의 법률고문은 "토탈은 더 많은 화석연료를 생산해 판매하면서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납득시키려고 교활한 선동(sly propaganda)을 하고 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어요.
환경단체들은 에너지 기업들의 이런 '홍보 브레인'을 직접 때리는 전략도 구사하고 있어요. 바로 PR(Public Relations, 홍보) 컨설팅 그룹들인데요. 파이낸셜타임스가 인용한 브라운대학교에서 나온 한 최근 논문은 "PR 회사가 '기후 정치(climate politics)'에서 핵심적이고 조직적인 배우들"이라며 "석유 기업의 광고 마케팅은 환경 담론을 왜곡하는 전략"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죠.
환경단체들은 '에델만(Edelman)' 같은 글로벌 PR그룹에 감시·비판을 강화하고 있고, 이는 미국 의회가 엑손모빌 등 석유 기업의 광고·마케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PR 회사도 조사 대상이 되는 결과를 만들었어요. (환경단체와 이들 석유 기업의 '프레임 싸움'은 가끔 보면 치열한 스포츠 라이벌전 같은 모습입니다. 물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기도 하지만요)
결국 글로벌 기준 마련이 빨리 되어야
정부 당국이나 환경단체로부터 그린워싱이라는 지적을 받은 회사들이 순순히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사과하고 있을까요? 뉴스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들 나름의 근거를 내세우면서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친환경을 위해 정말로 노력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죠. 천연가스나 원자력 발전이 친환경이냐 아니냐 같은 논쟁까지 들어가면 입장에 따라 더욱 첨예하게 엇갈리고요.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ESG 공시를 강화해야 한다"라는 거시적인 선언은 이제는 이견의 여지가 거의 없어졌어요. 그러나 세부적으로 '언제 어떻게 하느냐'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업과 기관 등의 ESG 실무자분들이 머리가 아픈 이유이기도 하겠고요.
결국 지금 시점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제대로 된 글로벌 기준의 정립'으로 보여요. EU 택소노미(Taxonomy,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으로 인정되는 목록을 담은 분류 체계), 국제지속가능성표준위원회(ISSB) ESG 공시기준, 미국 SEC의 기후 공시 기준 등에 온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저마다 한 마디씩 얹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FSB도 최근 보고서에서 "이 이슈는 부문간 경계나 국경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국가별 규제를 관통하는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촉구했어요.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도 앞으로 중요히 대응해야 할 이슈이겠죠.
[에너지] #업데이트 #EU #우크라이나
3. 러시아 석유 수입은 차단될까?
지난 금요일의 커피팟에는 EU의 러시아 석유 금수 조처가 진전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드렸는데요. 어제부터 진행 중인 러시아에 대한 EU의 6차 경제 제재 논의에는 석유 수입 금지 조처가 중심 아젠다가 되었어요. 원유 및 정유 제품의 수입을 금지할 방법이 논의되고, 이번 주 내 회원국들이 합의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죠. 러시아에 흘러 들어가는 자금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도, 에너지 가격 급등 우려와 이에 따른 경제적인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재 방안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어요.
각국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고
석유의 금수 조처는 원칙적으로 EU 회원국 27개 국가가 모두 동의해야 해요. 이번 제재가 합의에 이르면 석유 수입을 단계별로 줄여나가는 계획이 바로 시행되고, 올해 말부터는 전면적인 수입 금지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현재 EU 블록내 러시아산 에너지에 가장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본래 연말까지 금수 조처 일정을 연기하자는 입장이었는데요. 이들이 입장을 바꿔 일정을 당기는 데 찬성하면서 기류가 급격히 바뀌었어요. (참고로 독일은 최근 폴란드와 폴란드 그단스크 항구를 통한 원유 수입 협력을 추진하는 등 제재에 찬성할 조건을 마련했어요)
또 지난주 러시아의 국영 석유 기업인 가스프롬이 폴란드와 불가리아로 들어가는 가스를 차단하면서,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할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커졌어요. (두 국가는 가스 대금 결제를 가스프롬방크를 통해 루블화로 하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거절했죠) 어제 EU의 에너지 장관들이 긴급으로 모여 이에 대한 대응 방안도 논의했는데요. 격분한 폴란드는 당장 석유뿐만 아니라 천연가스의 수입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EU는 석유 수급량의 1/4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해 왔어요. 각 국가별로도 이 의존도는 천차만별이고, 금수 조처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도 차이가 큰데요. 헝가리의 경우에는 전체 수급량의 2/3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어요. 그리고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정제 시설 등을 포함한 관련 인프라도 러시아 기업들에 의존하고 있기에 선뜻 찬성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독일도 새로운 공급선을 확보하고 인프라를 정비하는데 몇 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죠.
이번엔 모두가 동의하지 않아도
러시아는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40% 이상)을 석유와 가스 수출 대금에 의존하고 있고, 석유 금수 조처는 지금까지 적용된 어떤 경제 제재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요. 금수 조처가 시행되기 전인 지난 4월에도 러시아산 석유 생산은 3월에 비해 10%(약 100만 배럴) 가까이 떨어진 상황인데요. 본격적인 금수 조처가 실행되면 러시아산 석유 생산을 더 빠르게 떨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도 예상돼요.
물론 고강도의 금수 조처가 시행되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요. 이에 따라 안 그래도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물가가 더 오르고, 최악의 경우에는 에너지 공급 부족 사태로 인해 시민들이 겪을 불편도 가정해야 하기에 신중론도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EU는 이번 금수 조처가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현재 러시아산 에너지에 의존도가 워낙 높은 헝가리는 제재를 반대하는 상황이고 슬로바키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그리스도 아직 회의적이에요. 모두가 동의할 방안이 나오려면 충격을 최소화할 방안이 나와야 할 텐데요. 일단 단계적으로 금수 조처를 진행하면서 회원국들이 대체 공급선을 확보할 방법을 고안할 예정이에요.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같은 경우에는 석유 금수 조치에서 일단 예외를 인정하고 이행을 연기하는 방안도 포함하고요. 금수 조처 외에도 이탈리아가 제안한 가격상한제 적용이나 관세 부과 등의 방법도 논의될 예정이에요.
우려되는 역효과도 차단해야
높아진 에너지 가격은 당분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으로도 예상돼요. 독일의 경제 장관인 로버트 하벡은 "이게 씁쓸하고 매몰찬 현실이다. 값싼 에너지 시대는 끝이 났다"라고까지 표현했는데요. 산업계와 소비자 모두 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일단 독일은 앞으로 수주 안에 러시아 석유를 모두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요. 이제 EU 수급 안정화를 가져오면서 가격이 계속 높아지는 상황을 방지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죠.
이번 제재는 러시아의 재정에 타격을 주는 것이 목표이지만, 오히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 (EU가 수입량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러시아가 벌어들이는 돈에는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수입이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돼요. 또 러시아가 할인된 가격으로 다른 지역의 개발도상국들에 석유 판매를 늘릴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고요.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금수 조처의 설계는 치밀해야 하죠.
조처가 효과를 발휘한다면 EU와 러시아 간의 긴장 관계는 더욱 커질 것으로도 예상돼요. 하지만 오랜 기간 이어지는 이 전쟁을 종료로 이끌 방안들이 실행되어야 할 때가 온 것으로 보고 있어요. 장기적으로도 EU가 에너지 때문에 러시아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끊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힘을 받고 있고요. 이번 석유 금수 조처는 어떻게 설계되고 합의에 이르느냐에 따라 향후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변수가 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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