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금과 은은 각국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의 가치가 떨어질 때 대체 자산으로서 인기가 높다. 화폐의 가치(보통 돈을 빌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가격인 "금리"로 환산한다)는 경제 상황과 그에 따른 중앙은행들의 통화 정책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경제가 과열되어 인플레이션이 심하거나, 반대로 경제가 좋지 않아서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시장에 돈을 풀면 화폐의 가치는 떨어진다. 이럴 때 투자자들이 제일 먼저 눈을 돌리는 투자 자산이 바로 금이다.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Precious Metal)'이 대체 자산으로 인기가 높은 것은 화폐와 정반대 되는 속성 때문이다. 바로 매장량과 유통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1970년대 이전까지 달러화는 물론 전 세계 통화의 가치는 바로 이 금값에 연동되어 있었다. 1944년 미국 뉴햄프셔 주 브레튼우즈에 모인 각국 대표들은, 미국 달러를 금값(1온스당 35달러)에 고정시키고, 다른 국가의 통화들은 달러에 고정환율(±1% 변동 허용)로 연동시키는 외환시장 시스템을 구축했다. 흔히 "브레튼우즈 체제"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2차 대전으로 파탄이 나다시피 한 세계 경제 질서 회복에 기여했으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자리 잡은 20세기 후반은 인류 역사에서 기술의 발전 속도가 가장 빨랐던 시기였다. 이러한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그와 맞먹는 생산성의 향상과 경제 성장을 불러왔다. 경제가 빛의 속도로 성장하는데 화폐량이 이를 현저하게 하회하면, 즉 화폐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디플레이션이 올 수밖에 없다. 금이 "귀"금속인 이유는 그 매장량이 지극히 적기 때문이다.
설사 필요한 만큼 채굴할 수 있을 정도로 금의 매장량이 많다고 해도, 채굴 속도가 경제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아예 매장량이 극소량이라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뻔하다. 모든 국가가 금 확보에 눈이 시뻘개질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 대신 금 확보에만 열을 올리게 되고, 국가는 금을 가장 빨리,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법–수출에 목을 매게 된다. 바로 중상주의의 재현이다.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더 많이 해서 무조건 무역 흑자를 쌓아야 했던 20세기 전반 이전의 중상주의는 필연적으로 식민지 확보 경쟁과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졌고, 결국 1929년의 대공황,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전후의 온갖 중소규모 전쟁을 발생시켰다. (이 당시는 금이 아니라 은이었지만,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는 광물 자원이라는 점에서는 금과 다르지 않다) 이걸 방지하자고 만든 게 브레튼우즈 체제인데,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의 속도가 모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으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른바 "트리핀 딜레마"다. |
국제 시장에서 금값은 연초 이후 65% 가까이 오르며 압도적인 상승세를 보여주었다. 10월에 한 번 가격이 꺾이며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었으나, 11월 이후 (사실 지난 2년간 계속 나왔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AI 버블론이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돌기 시작하면서 랠리를 재개, 연말을 앞둔 이 번주에는 온스당 4300달러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내년에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보고 있다.
비단 금뿐만이 아니다. 은값 역시 조용히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오르고 있다. 사실 은이 금보다 더 올랐다. 2025년 들어 은값은 무려 120% 넘게 폭등했다.
이걸 방지하자고 만든 게 브레튼우즈 체제인데,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의 속도가 모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으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베트남전쟁이었다.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전쟁 비용을 들이부으면서 미국은 어마어마한 양의 달러를 찍어내야만 했다. 이미 1950년대 이후 유럽과 일본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미국은 국제수지 적자에 직면해 있었는데,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한 통화량 증가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고 달러 가치는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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