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 버블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39화. 금값 상승의 근본적인 이유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요즘 금 가격 살펴보고 계신가요? 

급격한 상승을 이어온 금은 지난 10월에 최고치를 찍은 이후 잠시 조정의 시간을 거친 후에 다시 최고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좀처럼 꺾일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죠. 

아무리 주식 시장을 비롯한 자산 시장의 기세가 이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걸까요? 

금 가격의 현재 상승은 1970년대에 금본위제가 막내리던 시기까지로 돌아가봐야 그 원인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진단을 할 수 있습니다. 달러가 기축 통화가 되고, 미국이 금융업을 중심으로 성장을 도모하면서 제조업을 포기하다시피 했다가, 최근 들어 다시 제조업의 부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이 더 상승할 여력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제조업의 부흥을 위해서는 강달러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고 현재 미국 행정부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달러가 기축 통화로서 미국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 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을 주도하는 주요 인물인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의 입장이죠. 강달러가 수출에 좋지 않으며, 이것이 제조업이 발전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짚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바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달러를 흔드는 모습은 금과 같은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를 계속 키우는 원인입니다. 주식과 같은 다른 자산이 오르는 와중에 금도 오르는 이상 현상을 만들고 있고요. 

시장은 현재 AI 투자 버블의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의 상승은 다른 자산 시장보다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짚습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39화. #금
금의 버블
금값 상승의 근본적인 이유
2025년 한 해 동안 가장 뜨거웠던 아이템을 한 가지만 들라면 많은 이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소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들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곡 <골든(Golden)>은 빌보드차트를 비롯한 전세계 뮤직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거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런데 콘텐츠 미디어와는 전혀 관계없는 자본시장에서도 올 한해의 주역은 골든, 아니 골드였다. 

국제 시장에서 금값은 연초 이후 65% 가까이 오르며 압도적인 상승세를 보여주었다. 10월에 한 번 가격이 꺾이며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었으나, 11월 이후 (사실 지난 2년간 계속 나왔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AI 버블론이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돌기 시작하면서 랠리를 재개, 연말을 앞둔 이 번주에는 온스당 4300달러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내년에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보고 있다. 

비단 금뿐만이 아니다. 은값 역시 조용히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오르고 있다. 사실 은이 금보다 더 올랐다. 2025년 들어 은값은 무려 120% 넘게 폭등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금 가격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상승해 왔다. (이미지: 트레이딩 이코노믹스)
달러 대신 모으고 있는 금
일반적으로 금과 은은 각국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의 가치가 떨어질 때 대체 자산으로서 인기가 높다. 화폐의 가치(보통 돈을 빌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가격인 "금리"로 환산한다)는 경제 상황과 그에 따른 중앙은행들의 통화 정책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경제가 과열되어 인플레이션이 심하거나, 반대로 경제가 좋지 않아서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시장에 돈을 풀면 화폐의 가치는 떨어진다. 이럴 때 투자자들이 제일 먼저 눈을 돌리는 투자 자산이 바로 금이다.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Precious Metal)'이 대체 자산으로 인기가 높은 것은 화폐와 정반대 되는 속성 때문이다. 바로 매장량과 유통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1970년대 이전까지 달러화는 물론 전 세계 통화의 가치는 바로 이 금값에 연동되어 있었다. 1944년 미국 뉴햄프셔 주 브레튼우즈에 모인 각국 대표들은, 미국 달러를 금값(1온스당 35달러)에 고정시키고, 다른 국가의 통화들은 달러에 고정환율(±1% 변동 허용)로 연동시키는 외환시장 시스템을 구축했다. 흔히 "브레튼우즈 체제"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2차 대전으로 파탄이 나다시피 한 세계 경제 질서 회복에 기여했으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자리 잡은 20세기 후반은 인류 역사에서 기술의 발전 속도가 가장 빨랐던 시기였다. 이러한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그와 맞먹는 생산성의 향상과 경제 성장을 불러왔다. 경제가 빛의 속도로 성장하는데 화폐량이 이를 현저하게 하회하면, 즉 화폐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디플레이션이 올 수밖에 없다. 금이 "귀"금속인 이유는 그 매장량이 지극히 적기 때문이다. 

설사 필요한 만큼 채굴할 수 있을 정도로 금의 매장량이 많다고 해도, 채굴 속도가 경제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아예 매장량이 극소량이라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뻔하다. 모든 국가가 금 확보에 눈이 시뻘개질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 대신 금 확보에만 열을 올리게 되고, 국가는 금을 가장 빨리,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법–수출에 목을 매게 된다. 바로 중상주의의 재현이다.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더 많이 해서 무조건 무역 흑자를 쌓아야 했던 20세기 전반 이전의 중상주의는 필연적으로 식민지 확보 경쟁과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졌고, 결국 1929년의 대공황,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전후의 온갖 중소규모 전쟁을 발생시켰다. (이 당시는 금이 아니라 은이었지만,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는 광물 자원이라는 점에서는 금과 다르지 않다)

이걸 방지하자고 만든 게 브레튼우즈 체제인데,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의 속도가 모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으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른바 "트리핀 딜레마"다.

달러가 많아도 문제이고, 적어도 문제이고. 
'트리핀 딜레마' 그 이후
예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은 금본위 제도는 유동성과 신뢰성이라는 두개의 축 사이에서 존속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한다.

달러화의 공급이 늘어나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여 달러화의 신뢰도가 하락하고, 미국이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기 위해 달러화 공급을 줄이면 국제 무역과 자본 거래 감소로 인해 세계 경제가 위축된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경상수지가 흑자든 적자든 경제 위기는 피할 수 없게 된다. 

결정타는 베트남전쟁이었다.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전쟁 비용을 들이부으면서 미국은 어마어마한 양의 달러를 찍어내야만 했다. 이미 1950년대 이후 유럽과 일본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미국은 국제수지 적자에 직면해 있었는데,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한 통화량 증가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고 달러 가치는 폭락했다.

그러자 자국이 보유한 달러 자산의 가치 하락을 우려한 국가들이 금 태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요구였다. 결국 1971년 닉슨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금본위제 포기는 단기적으로는 달러의 위상을 회복시켰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에게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였다.

금이라는 최후의 고삐가 풀리면서 너도나도 달러를 찾기 시작했다. 


글쓴이: 안젤라의 한글 이름은 박누리이다.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중국필패>, <재닛 옐런>,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급변하는 거시경제 환경과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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