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가 밝기 무섭게 느닷없이 전 세계의 이목이 그린란드에 집중되었다. 트럼프가 공공연하게 (덴마크의 영토인) 그린란드를 병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미합중국 대통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아 가지겠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며 처음에는 모두가 눈과 귀를 의심했지만, 이내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래 최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채권 시장이 발작을 일으켰고, 또다시 트럼프는 한 발짝 물러섰다. 하지만 연초를 뜨겁게 달군 '그린란드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막을 내리는 대신 여러가지 함의를 가진 상징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기억될 확률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NATO로 대변되는 대서양 양안의 전후 질서가 완전히 끝장났다. 전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끊임없이 NATO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던졌으며 그 역할과 권위를 축소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탈퇴를 부르짖었다. 상호 방위 의무라는 신성불가침한 가치가 땅에 떨어진 와중에, 동맹국이자 NATO 회원국의 영토를 "내놓으라"는 요구에 유럽은 그야말로 '현타'를 맞았다.
트럼프 정권이 NATO를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의 돈으로 유럽이 그동안 안보 무임승차를 해왔다는 것이지만, 사실 2차 대전 종전 이후 유럽은 줄곧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일종의 충격 완충 지대 역할을 해왔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무너진 후 유럽의 쓸모는 예전 같지 않고,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는 연이은 독재와 부패로 경제적으로는 도저히 예전의 위상을 찾을 수 없고, 그리하여 미국의 주적은 더 이상 소련이 아닌 중국이라고들 하다. 하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유사시에 미국과 핵으로 최후의 승부를 볼 수 있는 군사대국이다.
"유럽의 안보가 곧 미국의 안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을지 몰라도 유럽의 안보는 미국의 안보에서 "여전히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직접적인 계기는 당연히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었지만, 공식적으로 참전하기 이전부터 루즈벨트 정부는 만의 하나 최후의 보루인 영국이 무릎을 꿇을 경우 미국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나치 제국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 우려의 대상이 독일에서 소련-러시아로 바뀌었을 뿐이다. 특히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렘반도를 무단으로 점령하고, 2022년에는 끝내 우크라이나 본토를 침공함으로써 여전히 군사적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임을 입증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를 운운하며 정작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끊겠다고 하면서,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그린란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병합하는 게 낫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세웠다. |
파리 소재 EU 전략문제연구소의 스티븐 에버츠 소장은 미국의 NATO 동맹국들이 미국으로부터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에서 이제는 미국이 "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고 말한다.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는 미국의 안전 보장을 애초에 신뢰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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