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타코의 뒤끝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0화. 자본 시장의 한계 시험하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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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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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욕심은 한탕의 해프닝으로 또 끝났습니다. 늘 그러했듯이 모두를 두렵게 하는 뉴스를 만들면서 이목을 끌었지만, 결과적으로 최선의 방어를 택한 유럽의 강경 모드에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죠.

유럽이 택한 최선의 방어는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던지겠다는 신호였습니다. 전체 물량의 약 10%를 가지고 있으니 채권 시장은 크게 반응하고, 전반적인 자본 시장이 또 한바탕 흔들렸죠.  

자본 시장이 흔들리자 '타코(TACO, Trump Always Chickens Out)'를 택한 트럼프의 모습은 향후 미국과 유럽의 안보 동맹 지형뿐만 아니라 자본으로 얽힌 관계도 크게 바꿔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대로라면 유럽이 더는 미 국채를 사줄 이유가 없죠.

최근 미국은 달러 가치가 지속 하락하는 모습에 불안해하고 있기도 합니다. 금리가 오르는 와중에 약달러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는 트럼프가 반복적으로 시장의 한계를 시험할수록 조금씩 미국과 멀어지는 자본이 늘어난다는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이 계속 커지면 그 후과는 무엇일까요? 이번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그린란드 사태로 인해 국제정치 지형과 함께 자본 시장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 수 있는지, 미국은 어떤 타격을 받을 수 있는지를 그립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0화.
그린란드 타코의 뒤끝
자본 시장의 한계 시험하는 트럼프
2026년 새해가 밝기 무섭게 느닷없이 전 세계의 이목이 그린란드에 집중되었다. 트럼프가 공공연하게 (덴마크의 영토인) 그린란드를 병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미합중국 대통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아 가지겠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며 처음에는 모두가 눈과 귀를 의심했지만, 이내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래 최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채권 시장이 발작을 일으켰고, 또다시 트럼프는 한 발짝 물러섰다. 하지만 연초를 뜨겁게 달군 '그린란드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막을 내리는 대신 여러가지 함의를 가진 상징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기억될 확률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NATO로 대변되는 대서양 양안의 전후 질서가 완전히 끝장났다. 전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끊임없이 NATO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던졌으며 그 역할과 권위를 축소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탈퇴를 부르짖었다. 상호 방위 의무라는 신성불가침한 가치가 땅에 떨어진 와중에, 동맹국이자 NATO 회원국의 영토를 "내놓으라"는 요구에 유럽은 그야말로 '현타'를 맞았다. 

트럼프 정권이 NATO를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의 돈으로 유럽이 그동안 안보 무임승차를 해왔다는 것이지만, 사실 2차 대전 종전 이후 유럽은 줄곧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일종의 충격 완충 지대 역할을 해왔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무너진 후 유럽의 쓸모는 예전 같지 않고,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는 연이은 독재와 부패로 경제적으로는 도저히 예전의 위상을 찾을 수 없고, 그리하여 미국의 주적은 더 이상 소련이 아닌 중국이라고들 하다. 하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유사시에 미국과 핵으로 최후의 승부를 볼 수 있는 군사대국이다.

"유럽의 안보가 곧 미국의 안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을지 몰라도 유럽의 안보는 미국의 안보에서 "여전히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직접적인 계기는 당연히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었지만, 공식적으로 참전하기 이전부터 루즈벨트 정부는 만의 하나 최후의 보루인 영국이 무릎을 꿇을 경우 미국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나치 제국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 우려의 대상이 독일에서 소련-러시아로 바뀌었을 뿐이다. 특히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렘반도를 무단으로 점령하고, 2022년에는 끝내 우크라이나 본토를 침공함으로써 여전히 군사적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임을 입증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를 운운하며 정작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끊겠다고 하면서,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그린란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병합하는 게 낫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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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기만 했던 곳이 갑자기 전 세계 자본 시장을 흔드는 진원이 되기도 했다. © AP
결국 채권 시장이 막은 미국  
유럽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하루아침에 미국이 서로를 지켜주는 동맹국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토를 강탈하려는 '잠재적 적국'이 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당연히 유럽 각국의 국민 정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유럽은 이례적으로 발 빠르게 단합된 행보를 보여주었다. 당장 주권 침해를 당한 덴마크는 물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8개국이 공동으로 병합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가 이들 국가에게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서자 930억 유로(약 159조 원)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맞불을 놓고 미국 기업의 EU 시장 진출을 대대적으로 제한하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 방안 검토에 들어가는 등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태세를 분명히 했다.

무엇보다 미국 국채의 약 10%를 들고 있는 유럽과의 관계가 얼어붙자 채권 시장은 경기를 일으켰다. 결국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강제로 병합할 의사는 없다며 마지못해 물러섰다. 

그린란드 사태가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가기는 했지만, 오바마 정권 시절 주 NATO 미국대사를 지낸 이보 달더는 "1941년 이래 NATO의 뿌리였던 유럽의 안보는 곧 미국의 안보라는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다. 끝났다."라고 단언했다. NATO와 회원국이 거의 겹치는 EU는 중요한 어젠다에서 통일된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각국의 상이한 정치 지형과 경제 구조 때문에 파열음만 내다가 결국 아무 결론을 내지 못하는데, 이제는 좋으나 싫으나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포스트 NATO 시대를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 EU 방위 담당 집행위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소위 '물적 방위 태세'에 있어 미국의 역량을 어떻게 완전히 대체할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파리 소재 EU 전략문제연구소의 스티븐 에버츠 소장은 미국의 NATO 동맹국들이 미국으로부터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에서 이제는 미국이 "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고 말한다.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는 미국의 안전 보장을 애초에 신뢰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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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젤라의 한글 이름은 박누리이다.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중국필패>, <재닛 옐런>,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급변하는 거시경제 환경과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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