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의 도박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1화. 사나에노믹스의 베팅은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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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7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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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식 시장도 좋지만 일본 주식 시장도 활황입니다.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라는 요소가 가장 크다고 꼽히지만, 엔저와 인플레이션의 믹스는 시장에 자신감을 크게 심어준 상황이죠. 게다가 지난 2월 8일의 중의원 선거를 대승으로 이끈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추진하는 소위 '사나에노믹스'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되고 있고요. 

하지만 재정 건전성을 포기하고서라도 재정을 무한정 지원해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국가 주도 전력 산업 투자에 나서는 모습은 위험하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대규모 재정 확대와 감세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데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느냐의 문제에 대한 답은 없는 상황이죠.

이쯤 되면 4년 전에 영국의 모습이 재현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시장에서 일 수 있습니다. 당시 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는 대규모 재정 확대 정책과 감세를 동시에 추진하는 안을 내었다가 영국의 금융 시장이 경기를 일으키면서 발표한 정책 대부분을 철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죠. 중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한 다카이치 사나에가 추진할 이런 모습을 견제할 세력이 없기에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걱정을 더 하는 중입니다.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이를 다카이치 총리의 '도박'이라고 봅니다. 현재 시장의 기대와 분위기와는 다른 시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험한 도박이라고 볼 근거도 명확하다는 것을 전합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1화.
다카이치의 도박
사나에노믹스의 베팅은 성공할까?
일본 정부는 지난 수요일(2월 25일) 일본은행 차기 정책심의위원으로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의 사토 아야노(佐藤綾野) 교수와 츄오 대학의 아사다 토이치로(浅田統一郎) 명예교수를 지명, 국회에 제출했다.

일본은행 정책심의회는 미국의 연준 이사회나 우리나라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해당하는 정책결정기구로, 기준금리(단기 정책금리) 및 자산 매입 규모 등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하고 의결한다. 1년에 8회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통해 금리 수준 및 통화 정책 방향을 발표한다. 

사토 교수와 아사다 명예교수의 지명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이 지난 2월 8일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후 경제 관련으로는 가장 주목 받은 의사결정이었고, 그 결과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급락했다. 두 사람 모두 일본의 고질적인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해 저금리와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하는 이른바 "리플레이션(Reflation)"파로 분류된다.

아사다 명예교수는 2023년 일본 경제가 성장 궤도에 복귀할 때까지 재정 부양과 완화적 통화 정책의 조합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토 교수 역시 다카이치 총리를 비롯하여 리플레이션 정책을 선호하는 자민당 의원들과 밀접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지명으로 초저금리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고 금리 인상을 지속하려는 우에다 카즈오 일본은행 총재의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 시장의 해석이다. 

사실 신호는 이미 전날부터 있었다. 2월 16일 다카이치 총리가 우에다 총재와 가진 약 15분간의 짧은 면담에서 금리 인상 지속에 난색을 표했다는 마이니치신문의 보도가 2월 24일 나오며 엔화 가치는 속절없이 떨어졌다. 

반응한 것은 외환 시장만이 아니었다. 일본 초장기 국채 금리 역시 신임 정책심의위원 지명 뉴스 오름폭을 확대했다. 2월 25일 오후 일본 국채 40년물 금리는 한때 10bp 상승하며 3.6150%를 기록했고, 30년물 금리도 장중 9bp 상승해 3.3650%를 찍었다. 이는 한 달 내 가장 가파른 금리 상승 폭이다. 인플레이션 심화와 재정 건전성 관련 우려가 초장기 채권 매도세를 부채질했다는 분석이다. 

사실상 다카이치의 "원맨쇼"라고 평가받았던 중의원 선거 이후, 곧 공석이 되는 정책심의위원 두 자리를 계속 눈여겨보고 있었다. 일본은행의 독립성이나 향후 통화정책에 대한 다카이치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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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중의원 선거 이후 사실상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추진하는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은 없는 상태이다. (이미지: 일본 총리실)
일본은행과 정부의 엇박자?  
지난주 금요일(2월 20일) 다카이치는 선거 후 첫 국회 정책 연설에서 이른바 "책임감 있고 주도적인 재정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금리 인상/인하를 결정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는 물가상승률에 대하여 다카이치와 일본은행의 견해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거의 모든 선진국 중앙은행들과 마찬가지로) 물가상승률 2%를 금리 인상 기준으로 보고 있다.

반면 다카이치는 2021년 저서 <아름답고 강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향하여>에서 "진정으로 견실한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3%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이상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장 역시 물가상승률이 2%를 넘더라도 다카이치는 정부 지출 확대를 밀어붙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UBS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아다치 마사미치는 이번 정책심의위원 지명에 대하여 "다카이치가 (시장의 반응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 우려된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많은 문제를 해결한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 같다. 책을 썼던 5년 전과 비교해 변한 것이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우에다 총재가 정책심의회를 강력하게 장악하고 있고, 이번에 교체되는 기존 위원 두 명 역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선호하는 부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지명이 일본은행의 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3월 31일 임기가 만료되는 노구치 아사히 위원은 리플레이션파, 6월 퇴임하는 나카가와 위원은 중립 성향으로 간주되어 왔다. 정책심의회는 총재 1명, 부총재 2명을 포함해 총 9명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오래전부터 금리 인상에 대해 경계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작년 12월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0.75%)이 주택 담보 대출 및 설비 투자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으며 추가 인상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회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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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은 최근 꾸준히 금리를 올려왔다. 다카이치 정부와 엇박자가 날 수 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다. (데이터: 일본은행, 이미지: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아베노믹스의 장녀
2010년대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내세우며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리플레이션주의자들로 정책심의회를 채웠다. 전성기에는 9명 중 4명이 리플레이션 파였다. 이러한 기조는 아베의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 정권에서도 이어졌다. 이후  기시다 후미오-이시바 시게루 정권에서는 일본은행이 통화 정책 정상화로 선회하면서 리플레이션주의자들의 비중도 따라서 감소했다.

이번에 사토 교수와 아사다 명예교수가 국회의 승인을 거쳐 취임하더라도, 리플레이션파는 여전히 정책심의회 내부에서 소수파에 불과하며, 우에다 총재의 금리 인상 기조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일본 은행 내부의 분위기이기는 하다. 

문제는 이번 지명이 "시작에 불과한" 경우다. 아베 정권 당시 정부가 일본은행 인사권을 장악하고 대규모 통화완화 정책을 시행하도록 압력을 가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리(통화 정책)은 이른바 "사나에노믹스"가 주장하는 세개의 화살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나머지 두 개는 강력한 지출 확대를 통한 재정 정책, 마지막 세 번째 화살은 규제 완화,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동 시장 개혁 등 장기 성장 전략과 경제 체질 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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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젤라의 한글 이름은 박누리이다.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중국필패>, <재닛 옐런>,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급변하는 거시경제 환경과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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