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2화. 공급망에서부터 금리까지의 연쇄적인 고리 이란 전쟁은 이미 겉잡을 수 없는 길로 걸어들어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타코(TACO)' 엑싯을 바라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이 매일 보여주고 있죠.
이번 이란 전쟁이 벌써 보여주는 교훈은 단 하나의 해협에서 석유라는 단 하나의 자원 운송이 막힌다면 연결된 모든 것들이 삽시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반적인 에너지 공급망에서부터 식량의 공급까지 불안정해지고, 결국엔 가격이 치솟아 물가가 오르고 스태그플레이션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죠.
이번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현재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부터 그 영향의 반경을 되짚는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수많은 뉴스가 쏟아지고 말들이 오가고 있는 와중에 지금 벌어지는 전쟁이 보여주는 핵심 줄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2화. 호르무즈에서 시작되는 스태그플레이션 |
솔직히 말하면, 답이 없다. 지난 월요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매우 강력한 대화"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과 그 어떤 대화도 하고 있지 않다고 받아쳤다. 전 세계가 초조하게 이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대화 성사 여부 자체도 불분명하다. 당연히, 가장 큰 문제는 이 사태를 촉발시킨 당사자이자, 좋든 싫든 미국의 최고 지도자인 트럼프의 말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중동 지역에 대한 철저한 무지를 바탕으로 상황을 완전히 오판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1월 취임 이후 트럼프의 대외 정책에는 일관적인 패턴이 있었다.
상대방을 기습적으로 타격하는 카드를 일단 '질러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후, 이를 지렛대 삼아 최대한 나에게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관세 전쟁이 그랬고, 베네수엘라가 그랬다. 만약 이 방법이 먹히지 않으면 소위 "타코(TACO)" 전략, 즉 자기 멋대로 승리를 선언한 뒤 슬그머니 발을 빼는 선택지가 있었다. 그린란드가 그랬다. 트럼프는 이란에도 이 방식이 먹힐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트럼프가 이 전쟁을 왜 시작했는지 그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엡스틴 파일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해석이 분분하나, 일단 여기서는 경제 외적인 부분은 다루지 않기로 한다.) 이란을 폭격하고, 핵시설을 파괴하면, 가뜩이나 최근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해서 민심을 잃은 정권이 흔들리고, 결국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트럼프가 오판한 것은 울며겨자먹기로 협상 테이블에 나온 다른 나라들은 글로벌 무역과 공급망으로 촘촘히 엮여 있어 자국 경제를 희생시켜가며 미국에 맞설 수 없는 국가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란은 다르다. 40년의 경제 제재로 인해 역설적으로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낮다. 같은 무슬림이지만 남보다도 못한 아랍 수니파 국가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해왔다. 이웃나라들과 민족도, 종파도 다른 이란은 수십년 동안 이 지역의 "고립된 왕따"로 버티면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어떻게든 살아갈 방도를 찾아왔다.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대한 열망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 자기들의 손으로 뽑은 민주 정권을 쿠데타로 전복시키고 절대왕정 수립을 획책한 미국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
전 세계가 저 좁은 해협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 느끼고 있다. (이미지: 나사(NASA)) |
전쟁이 시작된지 4주가 지났지만, 트럼프가 원하던 그림과는 비슷해지지도 않았다. 트럼프는 중재자로 나선 파키스탄을 통해서 이란에 종전을 위한 합의한 15개 조항을 보냈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요구하면서 제재 해제와 한 달간의 휴전을 제안했지만 이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 15개 조항은 지난 6월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타격 이후 제시했던 합의안과 거의 유사한 내용이다.
그때 거부했던 안을 지금 받을 이유가 이란에게는 없다. 게다가 미국과는 합의에 도달한다고 해도, 미국이 이스라엘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신용도 없다. (미국이 강력하게 정전을 희망한다는 시그널을 보내자,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단독 공습을 이어갔다.)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 정치적인 지형만 보자면 유리한 쪽은 이란이다. 대규모 민주화 시위와 정부의 유혈진압으로 분열의 조짐이 보이던 이란 국내 정치는 외세의 공격에 맞서 내부 결속을 강조하는 쪽으로 급격하게 돌아서고 있다. 심지어 이제 호르무즈 해협으로 전 세계의 에너지·화학공업을 인질화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현재 이란은 중동 석유 시장을 거의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안쪽 지역 묶여있는 석유와 천연가스는 약 3억 배럴에 달하며, 이 수치는 지금도 매일 약 2000만 배럴씩 증가하고 있다. (전쟁 발발 전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는 전 세계 거래량의 25%에 달했다.)
반면 미국은 스텝이 단단히 꼬였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이래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세계 최대의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및 수출국으로 전 세계 LNG 해상 교역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카타르의 가스 생산 시설이 폭격을 받으면서 글로벌 천연가스 공급망도 무너졌다. 한국과 일본을 필두로 중동산 원유와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이미 아우성이다.
미국 국내의 석유 제품 수요도 문제다. 미국은 산유국이지만 원유 그 자체를 쓸 수는 없다. 미국 서부의 경우 항공유와 자동차용 휘발유의 상당량을 한국에서 수입한다. 중동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한국의 정유사들이 정제해서 다시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이다. 한국에 원유가 들어오지 못하면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알래스카, 하와이의 비행기들이 항공유를 공급받지 못한다.
캘리포니아의 휘발유 가격은 이미 두 배로 급등해서 갤런(3.8리터)당 6달러에 육박한 상태이며, 경유 가격은 7달러가 넘어섰다.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면 일반 시민들이 고통받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국토가 넓고 대중교통이 미비해서 자동차 없이는 꼼짝없이 손발이 묶이는 미국인들은 타격이 크다. 게다가 에너지를 흥청망청 쓰기로 악명 높은 미국은 유럽이나 아시아처럼 자동차나 가정용 전기 제품, 산업용 설비의 에너지 효율이 높지도 않다. 이 모든 것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정권에는 재앙이 될 수 있다. |
지난 10년간 유가 흐름을 보면 지금 유가의 변동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더 잘 볼 수 있다. (이미지: 트레이딩이코노믹스 브렌트유 가격 현황) |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전쟁이 지금 당장 끝난다 하더라도 이번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가 완전히 해결되는 데에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에너지 안보 분야를 담당했던 전 백악관 고문 제프리 파이엇(Geoffrey Pyatt) 역시 "에너지 시장은 다음 단계의 전투가 전개되고 있는 전쟁터"라며, "이란은 트럼프 정권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명확하게 시장을 이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안일함에서 패닉으로 뒤집혔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마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것처럼 자신들이 생각보다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뒤늦게 그동안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했던 전략 비축유 방출 논의를 시작했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묶여있던 러시아산 석유 1억 배럴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했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해 미 해군의 호위와 추가 보험 지원도 약속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오바마 행정부의 에너지부 장관이었던 어니스트 모니즈는 "지금 미국이 해야 하는 것은 하루에 1000만 배럴의 석유를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일축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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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젤라의 한글 이름은 박누리이다.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 중국필패>, < 재닛 옐런>, <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급변하는 거시경제 환경과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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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매우 강력한 대화"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과 그 어떤 대화도 하고 있지 않다고 받아쳤다. 전 세계가 초조하게 이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대화 성사 여부 자체도 불분명하다. 당연히, 가장 큰 문제는 이 사태를 촉발시킨 당사자이자, 좋든 싫든 미국의 최고 지도자인 트럼프의 말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중동 지역에 대한 철저한 무지를 바탕으로 상황을 완전히 오판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1월 취임 이후 트럼프의 대외 정책에는 일관적인 패턴이 있었다.
트럼프는 이란에도 이 방식이 먹힐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트럼프가 이 전쟁을 왜 시작했는지 그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엡스틴 파일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해석이 분분하나, 일단 여기서는 경제 외적인 부분은 다루지 않기로 한다.) 이란을 폭격하고, 핵시설을 파괴하면, 가뜩이나 최근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해서 민심을 잃은 정권이 흔들리고, 결국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트럼프가 오판한 것은 울며겨자먹기로 협상 테이블에 나온 다른 나라들은 글로벌 무역과 공급망으로 촘촘히 엮여 있어 자국 경제를 희생시켜가며 미국에 맞설 수 없는 국가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란은 다르다. 40년의 경제 제재로 인해 역설적으로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낮다. 같은 무슬림이지만 남보다도 못한 아랍 수니파 국가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해왔다. 이웃나라들과 민족도, 종파도 다른 이란은 수십년 동안 이 지역의 "고립된 왕따"로 버티면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어떻게든 살아갈 방도를 찾아왔다.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 정치적인 지형만 보자면 유리한 쪽은 이란이다. 대규모 민주화 시위와 정부의 유혈진압으로 분열의 조짐이 보이던 이란 국내 정치는 외세의 공격에 맞서 내부 결속을 강조하는 쪽으로 급격하게 돌아서고 있다. 심지어 이제 호르무즈 해협으로 전 세계의 에너지·화학공업을 인질화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현재 이란은 중동 석유 시장을 거의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안쪽 지역 묶여있는 석유와 천연가스는 약 3억 배럴에 달하며, 이 수치는 지금도 매일 약 2000만 배럴씩 증가하고 있다. (전쟁 발발 전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는 전 세계 거래량의 25%에 달했다.)
반면 미국은 스텝이 단단히 꼬였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이래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세계 최대의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및 수출국으로 전 세계 LNG 해상 교역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카타르의 가스 생산 시설이 폭격을 받으면서 글로벌 천연가스 공급망도 무너졌다. 한국과 일본을 필두로 중동산 원유와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이미 아우성이다.
미국 국내의 석유 제품 수요도 문제다. 미국은 산유국이지만 원유 그 자체를 쓸 수는 없다. 미국 서부의 경우 항공유와 자동차용 휘발유의 상당량을 한국에서 수입한다. 중동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한국의 정유사들이 정제해서 다시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이다. 한국에 원유가 들어오지 못하면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알래스카, 하와이의 비행기들이 항공유를 공급받지 못한다.
백악관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안일함에서 패닉으로 뒤집혔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마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것처럼 자신들이 생각보다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뒤늦게 그동안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했던 전략 비축유 방출 논의를 시작했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묶여있던 러시아산 석유 1억 배럴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했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해 미 해군의 호위와 추가 보험 지원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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