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공습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가 침체를 겪고 있음에도 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은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와 오일쇼크가 겹치며 다수의 선진국이 동시에, 그리고 장기간 고인플레이션에 시달린 전후 최초의 사례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이 재연될 수 있을지 가늠하려면, 당시 물가가 왜 10년 이상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계는 그 원인으로 오일쇼크와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같은 '예측 불가능한 충격'과 '정책 당국의 대응 실패'를 함께 꼽는다. 특히 치명적이었던 것은 통화 긴축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는 당시 정책 당국의 오판이었다. 이 믿음이 선제적 금리 인상을 가로막았고, 결국 인플레이션을 구조화시켰다.
먼저, OPEC의 석유 금수 조치는 1970년대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핵심 원인이다.
1973년 10월 욤 키푸르 전쟁을 계기로 아랍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한 서방 국가들에 대한 원유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이 조치로 국제 유가는 불과 수개월 만에 4배 가까이 폭등했고,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렸다.
1979년에는 이란 혁명으로 촉발된 두 번째 오일쇼크가 다시 한번 유가를 급등시켰고, 원유 의존도가 높은 선진국들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졌다.
한편 OPEC의 금수 조치는 어느 정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의 산물이기도 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1944년 구축된 국제 통화 질서로, 미 달러화의 가치를 금 1온스당 35달러에 고정하고 다른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달러에 연동시킨 달러 본위 금환 본위제였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재정 지출 확대와 통화 팽창으로 달러를 더 이상 금 가격에 고정 시킬 수 없게 되자, 1971년 닉슨 대통령은 달러와 금의 교환 창구를 전격 폐쇄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원유를 달러로 거래하는 산유국의 실질 수입이 줄어들고, 이는 OPEC이 달러 가치 하락분을 상쇄하기 위해 유가를 인상하도록 압박하는 유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BCA 리서치에 따르면, 브레턴우즈 붕괴 이후 금과 구리 등 여타 원자재 가격이 먼저 급등했고 유가는 이를 뒤따른 양상이 나타났다. 전 미 연준의장 폴 볼커(Paul Volker) 역시 지나치게 완화적인 통화 여건이 원유 가격을 끌어올린 환경을 조성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
특히 치명적이었던 것은 통화 긴축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는 당시 정책 당국의 오판이었다. 이 믿음이 선제적 금리 인상을 가로막았고, 결국 인플레이션을 구조화시켰다.
이런 인식은 1978년 경제자문위원회가 "인플레이션은 성장을 둔화시키고 실업률을 높이는 정책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라고 주장한 데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치솟는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과 물가를 방치한 중앙은행의 무책임이 맞물리면서 사람들은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앞으로도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면, 노동자는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기업은 미래 비용 상승을 선반영해 제품 가격을 올린다. 이렇게 기대 인플레이션이 실제 임금과 가격에 반영되면 인플레이션은 더욱 높아지고, 이는 다시 기대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고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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