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질을 잊은 보잉의 위기

[정인의 미래 경제사] 3화. 비용이 기술보다 중요해질 때
2024년 2월 1일 목요일
보잉의 비행기는 올해 들어서만 벌써 다섯 번의 사고를 냈습니다. 미국 알래스카 항공의 보잉 737 맥스9 동체의 비상구가 파열되는 사고에 이어, 여러 기종이 다양한 문제를 드러내면서 사고를 냈죠. 1월에만 다섯 건이니 안전과 품질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항공기 제조사에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진 사고는 보잉의 얼마 되지 않은 어두운 역사도 다시 상기시키게 했습니다. 팬데믹이 찾아오면서 덮어지기도 했던, 불과 지난 2018년과 2019년의 비극적인 추락 사고들 이후에도 별다른 교훈을 얻은 것 같지 않은 보잉의 모습이 지적되고 있죠.

보잉의 문제가 단기적인 혹은 일회성의 품질 이슈가 아니라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압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잉이 만천하에 알린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보잉이 엔지니어링과 품질이라는 본질을 잊은 채 비용 절감에만 몰두해 온 문제가 크다는 것도 널리 알려지고 있고요.

결국 문제가 드러났을 때 고치지 않았던 보잉은 이제 과점 시장의 라이벌인 에어버스에 큰 격차로 뒤질 수도 있다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보잉이라는 이름은 '첨단과 기술'의 상징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사고와 위기'가 그들을 상장하는 키워드가 된 현실을 직시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최근의 사고들은 훗날 보잉 쇠락의 결정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정인의 미래 경제사(史)]
본질을 잊은 보잉의 위기
비용이 기술보다 중요해질 때
2024년 1월 한 달 사이 다섯 번 사고가 난 항공기 제조업체가 있다. 

  • 1월 5일, 포틀랜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알래스카항공 보잉737 맥스9 동체 측면 비상구 덮개 파열
  • 1월 17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스위스에서 귀국길에 탑승하려던 보잉737이 산소 누출 문제로 이륙 실패
  • 1월 19일, 아틀라스항공 보잉747-8 화물기가 마이애미에서 푸에르토리코로 향하던 도중 엔진에서 화재 발생
  • 1월 23일, 델타항공 보잉757 항공기가 애틀랜타 하츠필드 잭슨 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도중 앞바퀴가 동체에서 이탈, 분리
  • 1월 24일, 아시아나항공 보잉 B747 화물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 이륙 직후 엔진에서 화재 발생

바로 세계 최대의 항공기 제조업체이자 방산업체인 보잉이다. 외신은 보잉이 만든 항공기에서 발생하는 연쇄적인 사고들을 다시금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올해 1월, 파이낸셜 타임스의 가장 중요했던 '더 빅 리드(The Big Read)'의 주제는 이런 보잉의 문제와 함께 에어버스와 이루는 과점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다. 보잉이 가진 문제는 보잉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문제가 된다.
최근의 사고들만이 보잉에 그림자를 드리운 건 아니다. 문제는 꽤 오래되었다.
보잉이 무너져 온 길고도 빠른 과정
항공기 제조업체가 항공사로부터 대금을 완전히 받는 시점은 기체가 항공사로 인도돼 소유권이 이전되는 시점이다. 2020년, 에어버스는 항공기 인도 실적에서 보잉을 추월했다. 2011년 이후 처음이었다. 2015년에서 2018년 사이 보잉의 주가는 에어버스의 두 배까지 불어났었다.

보잉이 단기간 내 에어버스를 다시 누를 수 있을 것인지, 시장은 회의적이다. 사실 에어버스가 벌써 시상대 위에 올라와 있는 듯하다. 에어버스의 현금 흐름은 보잉보다 훨씬 좋다. 보잉은 2018년부터 시작된 항공 사고로 소송비용과 각종 합의금을 지출해야 하고, 경영진의 오판으로 인한 현금 부족 등으로 400억 달러(약 53조 3000억 원)나 되는 부채를 껴안고 있다. 

2018년과 2019년에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두 번의 사고를 일으킨 737 맥스8 기종은 그 시점 보잉에서 가장 중요한 비행기였다. 회사 전체 상업기 주문량의 80% 가까이 차지할 정도였다. 보잉은 전 세계에서 맥스8의 운항이 정지된 이후에도 주문 회복을 기다리며 고객 없는 제품을 월 52대씩 10개월이나 찍어냈다. 게다가 항공기를 세워두는 것도, 세워둔 채로 성능을 유지·관리하는 것도 분기마다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다. 이후에는 팬데믹이 닥쳤다. 이때 손상된 현금 흐름은 치명적이었다. 

팬데믹 이후 항공기 주문과 인도 수 회복 속도도 에어버스가 더 빠르다. 보잉은 여전히 항공기 품질 문제와 경영진의 리더십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문제를 짚어보려면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한다. 1997년 보잉은 경쟁사였던 맥도넬 더글라스와 합병했다. 그런데 맥도넬 더글라스의 경영진이 보잉의 경영진이 됐기 때문에, "보잉이 보잉의 돈으로 보잉을 인수했다"는 말이 나왔다. 

몇 년 지나지 않아 GE에서 27년간 일하며 제트엔진을 만들었고, 멕도넬 더글라스에서는 CEO로서 군용기를 만들었던 해리 스톤사이퍼가 보잉을 이끌게 됐다. GE는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경영 방식으로 이름난 제조기업이다. 제조 비용 절감과 인건비 조정을 통한 경영 효율화,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상승으로 주주의 이익을 키운다. 배당 성향도 높다. 주주들은 보잉이 GE 방식대로 운영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GE는 정말 위대한 기업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미국의 모든 것을 만들고, 미국 제조 대기업들의 CEO를 육성, 배출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GE는 2018년 대규모 회계부정 사태를 일으켰고, 2021년에는 세 개의 회사로 그룹이 해체(break up)됐다. 'GE 방식대로' 굴러온 보잉도 GE의 경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보잉의 비행기들은 뜰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미지: 로이터)
엔지니어링을 뒷전으로 만든 결과
2005년, 보잉은 직접 운영하던 캔자스 공장을 매각했다. 이 공장과 함께 스피릿에어로시스템(Spirit AeroSystems)이 분사되어 나갔다. 월스트리트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비용 절감과 생산 효율화를 위해서였다. 이제 보잉에서는 이전같았으면 기술 개발에 들어갈 돈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더 많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스톤사이퍼 이전 보잉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보잉은 멕도넬 더글라스와 합병하기 직전에도 회계조작을 저질렀고, 생산 시스템도 낙후됐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최소한 제작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직접 덤벼볼 엔지니어가 많았다. 4만 명이 넘는 엔지니어가 보잉의 가족이었고, 보잉은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문화로 유명했다. 그러나 2001년, 보잉의 경영진들은 엔지니어들의 도시이자 회사의 창립지인 시애틀을 떠나 시카고로 본사를 옮겼다. 9/11 테러가 가져온 항공업계 침체기에는 생산인력의 최대 30%에 달하는 약 3만 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2004년, 스톤사이퍼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내가 보잉의 기업 문화를 바꿨다고 하는데, 그게 의도였다. 위대한 엔지니어링 회사가 아니라 (더 효율적인) 사업으로 굴러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When people say I changed the culture of Boeing, that was the intent, so it’s run like a business rather than a great engineering firm)."

다음 해, 스톤사이퍼는 여성 임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그의 후임으로 온 짐 맥너니도, 또 그의 후임으로 온 케빈 맥알리스터도, 또 그의 후임으로 온 뮬렌버그도 역시 GE 출신이었다. 보잉의 경영 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2018년 (자동실속방지시스템(MCAS) 오작동으로 밝혀진 737 맥스8 기종의 사고) 이후 외신은 너무 오랫동안 이어져 온 'GE식의 경영 효율화'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20년에 후임으로 등장한 데이브 칼훈도 GE 출신이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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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잉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요?
지속된 사고는 결국 어떤 결과를 야기할까요? 보잉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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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김정인입니다. 책 <오늘 배워 내일 써먹는 경제상식>,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의 저자입니다. 심각한 ADHD를 지녀 암기력과 주의집중력이 약해요. 덕분에 남들만큼 알아두기 위해 매사 원인 혹은 시작점부터 맥락을 찾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해로 암기를 대신한달까요. 직접 기운 맥락이 다른 이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때 기뻐합니다.

[정인의 미래 경제사(史)]는 미래에 중요하게 기록될 경제사적 사건 혹은 현상에 대한 해설을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일어난 일을 통해 되짚어봐야 할 점을 찾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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