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의 빅테크 읽기] 5화. 리나 칸은 '세기의 선장'이 될 수 있을까? 타임지 올해의 인물 타이틀은 테슬라와 스페이스엑스의 일론 머스크가 가져갔지만, 전체 산업계에 가장 큰 임팩트를 주며 등장한 인물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의 리나 칸(Lina Khan)이에요.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의 CEO가 된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려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올라섰죠. 오랜 기간 굳어진 미국의 기업정책 방향을 바꿔나가는 시작점에 선 32세의 리나 칸은 이제 수십 년에 걸쳐 영향을 줄 거대한 작업 앞에 서 있습니다. [키티의 빅테크 읽기] 5화는 올해를 마무리하며 이런 리나 칸의 짧은 여정과 앞으로 놓인 험난한 길을 짚어 봤어요.
빅테크 전체를 긴장하게 하고 이미 기업정책의 물밑 지형에 큰 변화를 시작한 리나 칸은 올해 커피팟에도 그 이름이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이에요. 그가 이미 어떤 변화를 끌어내고 있고, 어떤 방향의 기업정책을 만들어나가려 하는지 차근히 살펴보시길 바랄게요. [키티의 빅테크 읽기] 5화. 리나 칸은 '세기의 선장'이 될 수 있을까? 미국 기업정책 방향성을 끝내 바꿀 수 있다면 바이든 행정부 출범 1년이 됐다. 바이든 취임 때만 하더라도 워싱턴 정가에서 무려 40년 동안 상원의원을 했던 온건한 바이든이 무슨 혁신적인 정책을 내겠냐며 많은 이가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바이든 개혁 드라이브는 민주당의 입법상 우위가 매우 아슬아슬해 의회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빌드 백 베터(Build Back Better)’로 불리는 바이든식 뉴딜* 법안(사회적 복지지출 확대와 기후위기 대응안을 포함한) 통과가 12월 중순에 좌절됐다. 민주당과 공화당 의석수가 각각 반반을 차지하는 미 상원에서 석탄을 생산하는 주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 1명을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 뉴딜(New Deal)은 1929년 월스트리트 주식시장의 대폭락(“검은 목요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미국의 경제 대공황 이후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193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경제 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입안한 정책을 가리킨다. 미국은 이때 만들어진 퇴직연금, 실업보험 및 복리 후생 제도 등이 포함된 사회보장법이 현재 사회보장제도의 기초가 되었고, 미국 주식시장을 감시하는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이때 만들어졌다. ‘뉴딜'과 ‘검은’으로 시작되는 수많은 인용은 모두 이 당시에서 따 온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한 가지 영역에서 바이든 정부는 지난 반세기의 그 어느 미국 정부보다 현저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바로 '연방 반독점 정책의 재정립’이다. 반독점 학계에서 혜성처럼 떠오른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교수인 32세의 리나 칸(Lina Khan)을 지난 6월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으로 임명한 게 그 시작이다. 리나 칸의 임명은 여러모로 역사적이다. 우선 연방거래위원장의 이름이 이렇게 언론에 자주 언급된 적이 없다. 경제, 투자 전문 언론들은 칸이 인준되자 "신임 보안관이 마을에 나타났다"는 식으로 칸을 경계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사를 실었다. 특히 오핀니언란이 보수적인 경제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칸에 대한 비판 기사를 하루에도 3개씩 쓰는 등 반응이 두드러졌다. 정치 전문 매체인 더힐(TheHill) TV의 <라이징> 진행자가 “(대표적인 보수 매체) 폭스뉴스가 (젊은 진보적 여성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 Alexandria Orcasio-Cortes) 뉴욕주 하원의원을 집착적으로 비판적 취재를 하는 것과 똑같이 월스트리트저널은 리나 칸을 대하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리나 칸이 한때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될 뻔하기도 했었다는 건 흥미롭다) 리나 칸은 그간의 학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과 지식을 쌓아왔다. 왜 그토록 무서워할까? 그렇다면 32세의 연방거래위원장 리나 칸이 뭐가 그리 무섭길래 이렇게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일까? 리나 칸은 파키스탄계로 11살 때 부모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다. 칸은 윌리암스대에서 정치이론을 전공하고 예일대 로스쿨을 나왔다. (이미 이전 커피팟 아티클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고, 이제 너무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로스쿨 시절 칸이 쓴 < 아마존의 반독점 패러독스>라는 페이퍼가 칸을 반독점계에서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지금 미국 기업정책의 든든한 기초가 되는 '소비자 후생(Consumer Welfare)'*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보수 대법관인 로버트 보크(Robert Bork)의 책 <반독점 패러독스>를 재치있게 비꼰 제목으로 이 페이퍼는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되는 등 화제를 모았다. *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에 대해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이 낮아진다면 시장을 독점했다고 해서 규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1970년대 이후로 미국 정부와 법원이 독점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놓았다. 미국 경제가 발전하고 시장과 기업이 변하면서 시장을 독점한 기업이 꼭 나쁘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키티의 빅테크 읽기 1화. 서막을 지난 반독점 싸움 참고 ) 칸의 페이퍼는 이전 반세기 동안 굳건히 자리 잡은 '소비자 후생' 중심 주류 반독점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대법관인 로버트 보크를 비롯해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 등 법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소비자 후생만 해치지 않는다면 기업은 얼마든지 커져도 된다”는 반독점법 해석이 그 근간이다. 여기에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작은 정부’가 끼얹어졌다. 그 결과 지난 40년 동안 미국 정부의 기업정책 기조는 “우리는 손 안 댈 테니 기업들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였다. 민주당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오바마 정부는 당시 부상하고 있던 빅테크 기업들에 매우 관대했다. 백악관을 가장 자주 들락날락한 기업 관계자들이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이기도 했고, 오바마 정부가 끝나자 내각 멤버들이 아마존, 우버 등 빅테크 기업들로 대거 이직했다. 2010년경 당시 경제 위기에서 막 회생하기 시작한 미국에서 "혁신적인 테크기업들이 미국 기업의 위상을 드높인다"는 소위 '국뽕'에 정부가 손을 들어준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40년 동안 친기업, 친IT기업 정책을 펼치면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600여 건의 IT 관련 기업합병이 승인됐다.월스트리트저널은 지속적으로 리나 칸을 비판하는 칼럼을 실었다. (이미지: 더힐 TV 유튜브 캡처) 현장에서 익힌 감까지 있고
- "최대 유통업체 중 하나가 됐지만 도통 이익을 낼 생각이 없는 아마존, 소비자는 열광하고 경쟁은 사그라든다." - 뉴욕타임스, <경쟁이 약해지자, 할인을 줄이는 아마존(2013. 7. 4)> 중 "록펠러가 가진 가장 인상적인 특성은 인내심이다" - 아이다 타벨(Ida Tarbell), <스탠다드오일 컴퍼니 역사(A History of the Standard Oil Company)> 중 -
리나 칸의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 페이퍼는 소개 글 첫 문구부터 강력하다. 아마존과 100년 전의 독점기업이었던 스탠다드오일(Standard Oil)*을 소유한 록펠러(Rockefeller)를 대비시킨다. 두 기업의 특징은 '인내'다. 스탠다드오일이나 아마존이나 같은 독점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렬하게 부각한다.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자본, 전략, 인내심을 동원한다. 경쟁자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해 경쟁자를 무너뜨린다. 때로는 잠재 경쟁자를 인수해 없애버린다. * 스탠다드오일은 이후 반독점법인 셔먼법(Sherman Antitrust Act of 1890)이 적용돼 분할된다. 34개로 분리된 기업 중 최대 기업들인 엑손과 모빌이 훗날 합쳐 한때 전 세계에서 기업가치가 가장 큰 기업이 되는 엑손모빌이 된다. 물론 미국의 양대 빅오일인 쉐브론(Chevron)도 스탠다드오일의 일원이었다.
이런 페이퍼를 쓸 수 있었던 건 칸이 진보 성향 연구기관인 '오픈 마켓 인스티튜트(Open Markets institute)'의 연구원으로 참여했던 경험 때문. 칸은 달걀, 닭고기, 초콜릿, 세제부터 e북에 이르기까지 업계 전반에 걸쳐 소수의 기업으로 합병(consolidate)되면 해당 업계 납품업체, 노동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어떤 영향이 가는지 생생히 취재했다. 특히 이때 칸이 깊숙이 취재했던 게 대형 육가공 업체들인 퍼듀(Perdue)와 타이슨 푸드(Tyson Foods)을 비롯해 몇몇 기업이 과점하고 있는 양계 시장 구조였다. 양계농장에서 일하는 농장주들은 개별적인 협상력을 갖지 못하고 대형 양계기업에 계란과 닭고기를 납품한다. 이들 대형 기업들에 완전히 종속되어 현대판 소작농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농장주들은 이들 대기업이 계란과 닭고기 구조를 좌지우지한다며 소송을 걸기도 했다.
시장주의적인 접근과 시선 칸이 IT기업 저승사자처럼 묘사되는 데 대해 진보 성향 법률학자들은 반발한다. 칸의 연구는 IT기업뿐 아니라 미국 산업 전체적으로 만연한 독점, 과점 현상이 노동시장, 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이렇게 일부 기업에 납품가격 등이 좌지우지되고 노동자들에게도 악영향이 가면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에 해를 입힌다는 주장이다. 즉 이 현상을 지적하고 물꼬를 바꾸려는 칸은 오히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시장주의자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보수 경제 매체들이 칸이 어리다는 이유로 깍아내리거나 무시하는 기사를 많이 냈지만, 진보학자들은 칸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지지하고 있다. - 칸은 2009년 경제 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중산층에 국가 기업정책이 미치는 영향력을 바로 느낄 수 있는 밀레니얼 세대다.
- 소비재나 유통같이 서민들이 쉽게 알 수 있는 현장 사례를 마치 기사 쓰듯 생생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라는 게 오히려 장점이다. 학계에서만 회자하는 논문이 아니라 정책 입안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장점이다.
현재 경제의 중심축이 되는 세대가 느끼는 문제점을 명확히 짚어낼 수 있고, 지극히 시장주의적인 접근을 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문법에 맞는 커뮤니케이션까지 할 수 있는 그가 이제 FTC라는 공룡 조직을 바꿔 나가면서 제 기능을 하게 하는데 적임자라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퍼듀와 타이슨 푸드에 대한 소송 관련 기사. 빅테크뿐만 아니라 달걀과 닭고기 그리고 초콜릿에 이르기까지 시장의 다양한 상품에 대한 경험을 직접 취재를 통해 쌓았다. (이미지: Morning AG Clips 기사 캡처) 하지만 이미 무기력했던 FTC 사실 FTC는 1980년대 AT&T 분할과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 소송 이후 이렇다 할 큰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기업들이 몸집을 불리는 것을 거의 손 놓고 보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2019년까지 FTC가 승인한 테크기업 인수합병 건이 600건이 넘는다는 건 그 한 방증이다. 진보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경제자유프로젝트(American Economic Liberties Project)의 맷 스트롤러(Matt Stroller)는 지난 40년간 "FTC는 아무 일도 안 한 수준을 넘어서 오히려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다." 혹평한다. FTC는 기업규제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 흐름이 크게 바뀔 때 논쟁의 핵심에 서는 기관이기도 하다. FTC가 정부와 크게 충돌한 사건 두 번을 보면 그간의 FTC 기조를 이해할 수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첫 번째 사례를 보면 대공황(1929년)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추진하자 FTC가 '반기업적’이라며 공개적으로 뉴딜에 반대했다. 루스벨트는 FTC 위원장을 해고해 버린다. 대법원이 들고 일어났다. 루스벨트의 경제 개혁안에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루스벨트는 대법원과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뉴딜 정책을 지지한 국민들이 이런 루스벨트의 손을 들어준다. 압도적인 표로 재선된 루스벨트는 대법관의 종신 임기를 폐지하고 70세 넘으면 은퇴하라는 법원개혁법을 통과시키려 한다. 법원개혁법은 통과되지 못했지만, 대법원은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루스벨트의 뉴딜 경제개혁법에 다시는 위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물론 FTC에 힘을 실어주지 않다 보니 FTC 스스로도 형식적인 대응을 하거나, 실제로 복잡한 업계 구조를 리소스 부족으로 파악을 못 해서 대범한 대형 반독점 소송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 소송 같은 대형 케이스도 상당 부분은 합의로 끝났다. FTC에 소송을 당하더라도 기업이 막후에서 합의하고 과징금을 냈다고 발표하면 오히려 과징금의 몇 배 이상 주가가 오르는 사례도 있었다. (그 사례가 바로 메타(구 페이스북)다) 그 사이 산업군별로 독점 또는 과점 체계가 들어섰고, 지금의 빅테크가 수백 개의 업체를 인수하는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소비자 후생만 헤치지 않는다면 기업은 얼마든지 켜져도 된다"는 그간의 기업정책 구조를 바꾸는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 '샷 추가' 부탁드려요! 그래서 리나 칸은 앞으로 미국의 기업정책 방향을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다음 내용은 '샷 추가' 후 확인해 보시길 부탁드릴게요. 커피팟은 산업 지형을 계속 바꿔나갈 빅테크와 이들을 견제하는 움직임에 대해 계속 흥미롭게 보실 수 있도록 풀어나갈 예정이에요.
+ 다음주에는 2021년의 마지막 뉴스레터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한 해 잘 마무리하는 뜻깊은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키티의 한글 이름은 홍윤희이다. 이커머스 기업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소셜임팩트를 담당하고 있다. 딸의 장애를 계기로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자는 취지의 협동조합 무의(Muui)를 운영하며 2021년 초 카카오임팩트 펠로우로 선정됐다. IT, 미국 정치, 장애, 다양성, 커뮤니케이션 등의 주제를 넘나들며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글을 쓴다. 한국일보, KBS 제3라디오 등에 정기 기고와 출연 중이다.
[키티의 빅테크 읽기]는 본격화되는 미국 빅테크에 대한 규제 흐름과 이의 영향에 대해 다룰 롱폼(Long-form) 아티클이에요. 테크 산업을 넘어 전체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맥락과 행간을 놓치지 않는 시선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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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뉴딜 정책을 지지한 국민들이 이런 루스벨트의 손을 들어준다. 압도적인 표로 재선된 루스벨트는 대법관의 종신 임기를 폐지하고 70세 넘으면 은퇴하라는 법원개혁법을 통과시키려 한다. 법원개혁법은 통과되지 못했지만, 대법원은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루스벨트의 뉴딜 경제개혁법에 다시는 위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는 루스벨트의 뉴딜 이후 국가 주도로 경제를 확대하고 기업을 규제하는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마침 1980년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FTC의 권한과 예산은 대폭 축소됐다. 이렇게 ‘기업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식의 기업정책은 이후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의 클린턴, 오바마 정부까지 40년 동안 지속하면서 FTC는 말 그대로 '기업은 되도록 안 건드리고' 조용히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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