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을 벤앤제리스의 자세 ✏️ DRAFT #004. 유니레버는 왜 벤앤제리스가 불편해졌을까? |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은 한국에서 대성공은 아니더라도 인지도를 높이며 자리 잡는 중인 미국의 아이스크림 브랜드이죠. 사실 벤앤제리스의 인기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 훨씬 크고, 그 브랜드가 대중에게 전하는 이미지는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인 파타고니아와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기업 모두 사람들이 좋아하는 뛰어난 제품을 바탕으로 환경과 사회 문제 해결이 수익을 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명과 미션을 가지고 있죠.
물론 파타고니아는 환경 보호에 방점이 맞춰져 있는 활동을 진행해 오면서 그 명성을 쌓았고, 벤앤제리스는 각종 정치사회 이슈를 넘너들면서 목소리를 내오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직접 벌이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두 기업의 이런 특성은 모두 창업자들의 정신과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고요.
파타고니아는 2022년에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와 그 가족이 회사를 통째로 기부하기 전까지 창업자 일가가 소유한 사기업이었습니다. 창업가가 완전히 회사에 대한 컨트롤을 잃지 않고, 회사의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는 구조로 회사와 그 주식이 모두 기부된 것이죠. 하지만 벤앤제리스는 1990년대 중후반 잘 나가던 사업이 잠시 주춤하고 가치가 떨어지자 더 큰 손 기업들의 인수 대상이 되어 결국 유니레버에 회사를 매각하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다행히 인수 이후에도 벤앤제리스는 사업이 잘 성장했고, 유니레버의 전체 400여 개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보석'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가 되었죠. 하지만 최근 유니레버가 이런 벤앤제리스를 포함한 아이스크림 사업 전체를 분사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의 핵심은 벤앤제리스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벤앤제리스와 유니레버는 꽤 오래 전부터 불편한 동행을 유지해 온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유니레버가 벤앤제리스라는 브랜드로 얻는 이익이 컸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아이스크림 사업의 미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벤앤제리스가 모회사에 끼칠 수 있는 부담을 덜어내는 결정을 조금 일찍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
[리테일] #아이스크림과평화를외치는 유니레버는 왜 벤앤제리스가 불편해졌을까? |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 벤앤제리스는 현재도 별도의 독립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고, 창업자인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가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큽니다. 이들은 벤앤제리스의 이른바 '사회 공헌 활동'을 주도하기도 하고, 때때로 공개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기도 하죠.
다국적 식품 및 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의 자회사 중 하나인 벤앤제리스가 어떻게 이런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의아해하는 시선도 많습니다. 2000년에 유니레버가 회사를 인수할 당시 내걸었던 조건이 독립 이사회의 존재였고, 벤앤제리스는 다수의 이사진을 선임할 권한을 받았죠. 물론 유니레버도 소수의 이사진 선임 권한이 있지만요. 게다가 이 조건은 유니레버가 벤앤제리스를 매각할지라도 유지해야 합니다.
이전까지는 벤앤제리스가 내는 목소리가 유니레버는 불편해도 싫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품질 좋은 아이스크림은 잘 팔리면서 사업이 확장을 계속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파타고니아와 마찬가지로) 벤앤제리스가 내는 목소리와 그 특유의 브랜드 이미지가 사업이 잘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이들도 인정하고 있었죠.
그렇기에 벤앤제리스는 회사 초기부터 수립한 세 가지 미션 - 1) 최고 품질의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데 집중, 2) 지속 가능한 경제적 성장, 3)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회 공헌' - 을 계속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국내외 정치 사회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크게 내왔죠. |
벤앤제리스는 홈페이지에도 "우릴 유니레버 자회사로 알고 있겠지만, 우리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원들을 한번 살펴봐"라고 써놓았죠. (이미지: 벤앤제리스) |
어두운 아이스크림 사업의 미래 벤앤제리스는 전 세계 33개국에 진출해 있고, 연간 매출은 2022년을 기준으로 22억 달러(약 2조 9500억 원, 당시 유로모니터 추정)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더 흔히 아는 매그넘과 하겐다즈에 이어 전 세계 시장점유율이 3번째로 큰 아이스크림 브랜드이죠. 참고로 유니레버는 매그넘도 소유하고 있고, 팝시클과 같은 브랜드도 소유하고 있는 아이스크림 제국이기도 해요. 2023년을 기준으로 아이스크림 브랜드 전체 매출은 79억 유로(약 11조 4700억 원)였고요.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해 온 유니레버의 네트워크가 각 브랜드의 존재감을 높였고, 벤앤제리스도 그 덕을 보면서 사업이 잘 성장해 올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죠. 하지만 최근 들어서 아이스크림 사업부는 최근 들어 유니레버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작년을 기준으로 물가 상승 속에서도 유니레버의 5개 사업부 중 가장 작은 성장률(2.3%)을 보였습니다. 판매량은 6% 하락했고, 성장률이 2.3%였던 건 가격이 8.8%나 올랐기 때문이었죠.
사실 아이스크림 사업은 큰 리테일 기업들이 점점 꺼려가는 사업이 되고 있습니다. 다른 식품이나 생필품과는 다르게 냉동 시스템을 포함한 별도의 물류 시스템을 갖춰야 해 비용이 높고,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그 핵심 이유이죠. (예를 들어, 도브 비누와 헬만 마요네즈는 같은 유통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죠) 게다가 비만 유발 음식으로 자주 지목되는 아이스크림의 미래 전망은 오젬픽 등의 (당뇨병 치료제라 쓰고) 체중 조절 약으로 읽는 약의 출현으로 특히 안 좋아지고 있다는 점도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되고요.
게다가 유니레버의 주가는 2019년에 정점을 치고, 이후 하락과 상승을 반복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내림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P&G와 네슬레 같은 기업에 비해서도 그 퍼포먼스가 계속 좋지 않았고요. 즉, 아이스크림 사업을 분사해 정리하려는 것은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비용을 절감하면서 이익을 높일 수 있는 핵심 사업에 집중해 회사의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의 일환인 것이기도 하죠.
머리 아픈 '사회 공헌'도 큰 이유 하지만 그 레거시만으로도 가치가 큰 브랜드가 여럿 포함된 사업 전체를 핵심에서 떼어내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합니다.
유니레버와 벤앤제리스의 관계에 균열이 더 크게 가기 시작한 것은 벤앤제리스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에서 자신들의 아이스크림 제품 판매를 거부한 2021년 부터입니다. 유니레버의 자회사이지만, 앞서도 언급한 별도의 독립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있기에 자체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 이들은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와중에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몇 안 되는 기업이기도 하죠.
지금까지 여러 이슈들에 대해서 지속해서 목소리를 크게 내왔지만, 특정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반대편에 있는 목소리의 백래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죠. 벤앤제리스는 꾸준히 같은 행보를 보여주었지만, 갈등이 고조되는 이슈에 더 목소리를 내는 벤앤제리스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재무적 리스크는 더욱 커지고 있다고 유니레버는 판단했을 것이라고도 예상됩니다.
게다가 2022년에 대지분을 획득하며 이사회에 합류한 넬슨 펠츠(Nelson Peltz, 특히 식품 기업 등에 오래 투자해 온 트라이언(Trian) 파트너스의 창업자)와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회사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참고로 넬슨 펠츠는 유대인이면서, 유대인 인권 단체인 시몬 비젠탈 센터의 이사이기도 했습니다. (시몬 비젠탈 센터가 지난달에 벤앤제리스를 반유대주의적이라고 하면서 불매 운동을 시작하자, 이사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현재 (진보적인) 디즈니와도 갈등이 이어지고 있고, 이사회 자리를 얻으려 하고 있죠.)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니레버가 아이스크림 사업을 정리하면서 아주 큰 전환점을 만드는 움직임이라고 평가를 했고, 투자자들과 주식 시장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사업적인' 결정이었느냐에는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벤앤제리스의 브랜드가 전체적인 사업과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컸을 수 있지만, 성급하게 핵심 브랜드들을 떼어낸다는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
유니레버라는 거대 기업에 속한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그 존재감은 너무나도 뚜렷하죠. (이미지: 유니레버) |
시간이 지난 후 결과를 봐야할 결정 본래 유니레버는 지난 2022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소유한 각 브랜드에게 사회 환경적 목적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크게 내던 기업이었어요. 근데 당시는 바로 ESG 열풍이 아직 불 때였죠. 물론 유니레버는 ESG의 부상 때문이 아니었어도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사회 환경적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더 크게 내던 기업이긴 했지만, 당시 분위기를 크게 타고자 하는 무리수로 보는 시선도 많았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벤앤제리스와 같은 브랜드가 여러 이슈에 대해 크게 내던 목소리가 매출 성장에 도움이 크게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던 때였죠.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고, 기업은 또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해야 함을 유니레버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의 본래 목적은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기도 하죠. 유니레버는 그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번 결정의 적절성과 유효함에 대해서 아쉽다는 목소리는 계속 나올 것으로도 예상됩니다.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자회사 리스크가 기업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지만, 현재 사업 자체의 건정성과 미래 가치를 적절히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죠.
벤엔제리스에게도 올 시험의 시간 벤앤제리스는 이번 결정으로 더 독립적인 기업이 되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그간에는 (그래도) 유니레버와 여러 갈등 요소들을 조정해 와야 했지만, 앞으로는 더 자유롭게 액션을 취할 수 있게 되었죠. 유니레버는 아이스크림 사업 전체를 매각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지만, 앞서도 강조했지만 매각이 되어도 벤앤제리스의 활동 반경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다만 짚어봐야 할 점은 1978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2000년에 인수되어, 이제 독립 회사로서 성장한 시간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다국적 기업의 우산 아래에서 '사업'이 커 온 시간이 더 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벤앤제리스라는 브랜드를 바라볼 때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유니레버의 우산이 아니더라도 잘 성장할 수 있느냐일 것입니다. 물론 당장 별도로 매각된 것도 아니고 사업부가 분사되어 독립적으로 아이스크림 사업이 운영되는 것이기에 큰 영향은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벤앤제리스가 만들어온 브랜드가 최근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업이 계속 잘 되어야 목소리의 크기도 유지될 수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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