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넘게 지켜본 테크의 미디어 말살

1편. 크레이그리스트, 야후, 구글, 그리고 그 이후
2024년 2월 18일 일요일
미국 테크 미디어의 현재진행형 전설인 저널리스트 카라 스위셔는 최근 새로운 책을 냈습니다. 제목은 <번 북: 테크 러브스토리(Burn Book: A Tech Love Story)>로 1990년초부터 취재를 해오고 직접 미디어 비즈니스까지 일궈온 그가 테크 업계를 바라보는 회고록이기도 하죠. '번 북'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의 테크 업계가 태동해 온 때부터 바라본 이 업계의 불편한 사실도 '세게' 말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게 하죠. 

본래는 그의 선배이자 멘토인 또 다른 테크 미디어의 전설인 월트 모스버그가 회고록을 먼저 쓰기를 기다렸지만, 2017년에 은퇴한 모스버그는 아직은 회고록을 내지 않고 있고, 출판사인 사이먼&슈스터에서는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는 스위셔의 회고록도 몇 년간 종용했다고 해요. 그도 아직 회고록을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내게 된 이유는 (비록 그렇게 직접 표현하진 않았지만) 너무나도 힘이 커져버린 테크 업계와 그 리더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런 카라 스위셔가 테크 업계에 대해 비판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시선은 (당연히) 비판적이지만, 테크 업계가 일으킨 변화 그리고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가 이제 다만 바라는 것은 그 테크와 비즈니스를 이끄는 리더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고, 그들이 늘 말하는 대로 더 나은 방향으로 기술과 그를 둘러싼 세상을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것이죠.

오늘 전해드리는 이야기는 책 출판을 계기로 인터뷰는 물론 주요 미디어에 (오랜만에) 아티클 기고도 왕성해진 카라 스위셔가 뉴욕매거진의 인텔리전서에 발행한 롱폼 아티클인데요. 그가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고, 기대를 거는 테크 업계와 그 리더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태동기부터의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스위셔는 이 아티클을 통해서 지난 30년 이상의 시간 동안 발전해 온 인터넷과 테크 업계의 모습을 훑고, 향후 미디어의 역할도 말합니다. '인터넷'으로 시작한 테크 업계의 모습을 통해 현재까지의 발전 과정을 짚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역사서가 되기도 합니다.

기존의 많은 산업을 혁신하며, '파괴적인' 힘을 발휘해 온 각종 기술과 디지털화는 세상의 '긍정적인' 진보를 가져다주었지만, 때론 이 기술들을 통해 비즈니스를 일구고 이끄는 사람들이 세상의 많은 부분을 혼란스럽게 하면서 세상을 후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들 때면 테크 업계의 긍정적인 면과 어두운 면을 그 태동기 당시부터 바라보면서, 때론 그들이 두려워하지만 존중할 수밖에 없는 저널리스트가 된 카라 스위셔의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 30년이 넘게 테크를 취재하고, 스스로도 비즈니스를 일구고,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하는 이야기들이기에 더욱 그 가치가 있고요.  

긴 글이기에 2편으로 나누었고, 오늘 우선 1편을 전해드립니다. 제목은 <30년 넘게 지켜봐 온 테크의 미디어 말살 - 천천히 진행되는 재앙의 최전선(Over Three Decades, Tech Obliterated Media - My front-row seat to a slow-moving catastrophe)>로 도발적이지만, 침착하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현재까지의 테크 업계 모습과 주요 인물들을 '리뷰'합니다.

[미디어] #카라스위셔 
30년 넘게 지켜본 테크의 미디어 말살
천천히 진행되는 재앙의 최전선
1990년대 초, 나는 워싱턴 포스트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이제 막 30살이 된 나는 뉴스룸에서 '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디지털 미디어 스타트업들이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얼마 못 갈 것으로 본 이 산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변화를 이해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나는 더 많은 사실을 깨달아 가면서, 마치 어린아이에게 나무를 설명하듯이 새로운 인터넷 세상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았다.

물론 워싱턴포스트는 나에게 광범위한 디지털 주제를 다룰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근데 그 이유는 나 말고는 이를 다룰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CD-ROM과 같이 '멀티미디어 킬러'로 불렸지만 금방 사라졌던 수많은 기술을 포함해 다양한 디지털 주제를 다룰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나는 한 가지 예측을 했는데, 이는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그간 신문의 가장 중요한 수익원인 (각종 안내와 소식을 담은) '안내 광고란(Classified Ads)'이 사라지는 것을 시작으로 '올드 미디어'에 종말이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1995년, 샌프란시스코의 재기발랄한 프로그래머 크레이그 뉴마크는 친구들에게 지역 행사, 취업 기회, 판매 물품 목록을 이메일로 보내기 시작했다. 이듬해에 그는 크레이그스리스트(Craigslist)를 웹 기반 서비스로 전환했고, 결국 미국 전역과 전 세계로 서비스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크레이그리스트는 저 디자인 그대로 인터넷의 한 공간을 점유하며 여전히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린다. (이미지: 크레이그리스트)  
이 제품이 큰 성공을 거둘 것이 분명했고, 나는 워싱턴포스트에서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돈, 모든 인력, 모든 인센티브를 디지털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사들에게 독자들에게 디지털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비즈니스가 종이 신문이었기 때문에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나는 전설적인 발행인이자 놀랍도록 재미있는 캐서린 그레이엄*의 아들인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의 '다정한' CEO 돈 그레이엄에게 느린 디지털화에 대한 걱정을 여러 번 전달했다. 돈 그레이엄은 자신의 권력에 대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하고 심지어 부끄러워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내가 리테일의 쇠퇴에 대해 대형 리테일 광고주들을 공격하게 되는 기사를 쓸 때면 항상 나를 방해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던 그레이엄이 나에게 했던 최악의 말은 "아야(Ouch)" 였다. 그리고 그는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며 내 책상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그레이엄은 내가 뉴마크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관심을 보였지만, 크레이그리스트가 자신의 광고 사업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자 웃음을 터뜨렸다.
* 영화 <더 포스트>를 통해서도 캐서린 그레이엄이 어떻게 전설적인 발행인이 되었는지 볼 수 있다. (역자주)

"요금도 너무 비싸고, 고객 서비스도 형편없고, 정적이고, 무엇보다도 효과가 없다." 나는 그의 수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이 사업에 대해 충고를 했다. "아날로그 제품은 디지털 파괴의 완벽한 표적이 되기 때문에 사라질 것이다. 감방 옆에 누워서 죽을 때까지 죽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돈은 그 순간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 친절한 미소를 나에게 지었다. 그리고 "Ouch"라고 말했다.

물론 워싱턴포스트는 현재 빅테크 중 빅테크의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하고 있고, 다른 실리콘밸리 거물들도 기존 미디어를 인수하거나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디지털 세상이 인쇄 비즈니스 모델을 빨아들이고 축소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업계에서 수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2015년에 더 포스트에서 은퇴한 그레이엄은 이를 따라잡기 위해 여러 가지 활발한 디지털 노력을 기울였지만(그리고 페이스북 이사로도 활동했다), 이런 노력들이 출혈을 막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다른 미디어 경영진은 변화와 혁신에 반대하는 유전적 성향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다가오는 재앙을 수년 동안 끝내 인정하지 않고 (다 망해도 최후까지 지켜지고 사라질) 자신들의 기사 딸린 차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부분 백인 남성인, 유아적인 사고를 하는 집단이 결국 들어서게 되는데, 미디어와 역사에 대한 지식,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위험할 정도로 없는 이들이다.
1991년 퍼스널 테크놀로지를 주제로 한 월트 모스버그의 첫 번째 월스트리트저널 칼럼. 모스버그가 쓰는 이 칼럼은 2017년까지 거의 매주 이어진다. (이미지: 월스트리트저널)
1990년대 초반의 테크 보도는 둔한 괴짜들과 기술적인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불모지나 다름없었지만, 나는 이 분야가 폭발적이고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정말 이 일을 하려면 캘리포니아로 이사해야 했다.

나의 결심과 이주를 전적으로 지지해 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월트 모스버그는 이미 1991년에 "개인용 컴퓨터는 사용하기 너무 어렵고,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Personal computers are just too hard to use, and it isn’t your fault)"라는 기술 관련 최고의 명언으로 시작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인기 칼럼 "개인용 기술(퍼스널 테크놀로지)"로 테크 기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나는 AOL에 관한 책을 쓰면서 이 수염 난 구루에게 나를 소개했고,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월트와 나는 직업적 인연과 테크에 대한 공통적인 생각의 결합으로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1997년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에는 인터넷을 전담하는 기자가 없었기 때문에 월트는 최고 편집자인 폴 스타이거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채용해 달라고 요청했다(사실은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월트는 자신의 칼럼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을 위해 연간 수천만 달러의 광고 수입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에서 근무하던 마지막 날, 그레이엄과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는 내가 떠나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출판 시장의 침체, 정보의 홍수, 독자와 광고주 간의 관계 약화 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항상 미소를 잃지 않던 그레이엄은 내가 바보처럼 계속 말을 이어가자 부드럽게 웃었다.

"홍수가 오고 있다"라고 나는 그에게 경고했다. "그래서 나는 더 높은 곳을 찾고 있는 것이다"

...

☕️☕️ 흥미로운 테크 미디어 이야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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