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TX의 최종 기록: 전통적인 금융 범죄

[정인의 미래 경제사(史)] 1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2023년 11월 30일 목요일
2020년, 커피팟이 뉴스레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팬데믹은 터졌고, 그 이후 전 세계 경제 상황은 유례없는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각종 자산 시장의 변동성은 이전에 볼 수 없던 모습을 보이면서 혼란한 시간을 지나왔어요. 물론 그 혼란한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보고 성공적인 투자를 이어왔다는 스토리도 이어졌죠.

그리고 많은 스토리의 일면에는 팬데믹 동안 부활한 코인이 있습니다. 시장에 넘치는 유동성은 어쨌든 코인 시장의 활황을 만들었고, 사람들 사이에 "지금 뛰어들지 않으면 안 돼"라는 FOMO(Fear Of Missing Out)를 일게 했죠. 그 결과, 그들의 비전처럼 금융 시장을 대체하는 길을 만들진 못했어도, 어쨌든 이전보다 굳건하게 금융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장의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암호화폐 거래소 FTX와 그 창업자인 샘 뱅크먼-프리드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그들은 거래량과 자산을 부풀리고, 실체 없는 이익을 기준으로 대출을 받고 또 다른 코인 등에 투자를 이어갔죠. 고객이 예치한 돈까지 자신들이 세운 다른 회사에 대출로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고, 세상을 집어삼킬 기세로 성장했던 이들은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자) 한순간에 추락합니다. 결국 샘 뱅크먼-프리드는 금융 사기와 돈세탁 등에 대한 유죄가 최근 인정되어 무려 115년의 형에 대한 최종 선고를 앞두게 되었고요.

이렇게 순식간에 크고 추락한 이들의 약 3년간의 행각은 나중에 어떻게 기록될까요? 이 거대한 사태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봐야 할까요? 2008년의 리만브라더스 사태 때 처럼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도 모르는 파생 상품을 모두가 판매하고 있던 현실이나, 거대한 회계 부정으로 매출을 뻥튀기했던 2001년의 엔론 사태를 많은 이들이 끄집어내는데요. 

오늘은 이 거대한 경제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지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결국 전통적인 금융 범죄의 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FTX 사태의 본질이라는 점을 짚습니다. 경제사적으로 어떻게 기록될 지, 미래에 또 이 사태가 어떻게 소환될 지, 그래서 무슨 시사점이 있는지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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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찾아온 [정인의 미래 경제사(史)]미래에 중요하게 기록될 경제사적 사건 혹은 현상에 대한 해설을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중요한 사건을 기반으로 현재와 미래의 시선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힌트가 되는 이야기를 전하려고 해요. 

샷 추가하면 커피팟의 아티클들 꾸준히 받아보실 수 있어요! 

[정인의 미래 경제사(史)]
FTX의 최종 기록: 전통적인 금융 범죄
현재 FTX 웹사이트 현황. (이미지: FTX 웹사이트 캡처)
믿음과 타이밍의 문제가 된 코인 벌이
코인 시장이 무너지는 듯 보이던 2021년, 주변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만세를 불렀다. 코인은 실물과 교환가치가 없고, 부가가치를 반영하지 않으며 그 어떤 정부도 지급을 보증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언제고 휴지 조각이 될 예정이었고, 그 약속된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코인이 화폐인지 아닌지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코인 시장은 몰락하기에 이미 너무 많은 기대를 안고 있다. 언젠가는 오를 것이기에 급락한 지금 사둬야 한다는, 실제 조금이라도 오르면 지난 영광이 몇 배로 재현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수요가 달려들 때 공급 역할을 수행하고 빠질 계획으로 판에 뛰어든다. 폰지 사기의 원리다.

물론 무한하게 지속 가능한 폰지 사기가 존재한다고 간주되기도 한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우리가 당연스레 사용해 온 명목 화폐가 바로 그런 믿음 위에서 작동한다고 했다. 낙관적으로 보자면, 장차 코인 산업에도 그 이름이 붙을 가능성이 있다. 산업이 지속되는 동안 현실에서 진짜 부가가치를 생산하게 될 수도 있다. 지금 투자자들이 그 가능성에 투자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튤립과 달리 비트코인과 전 세계 금융시장은 연결돼 있다. 사람들은 이미 24시간 돌아가는 거대한 시장에서 아무런 규제 없이 큰 돈을 잃거나 벌어보았다. 결국 올해 11월, 비트코인은 개당 가격 5000만 원에 가닿고 내려와 숨을 고른다.

비트코인이 처음으로 개당 1000만 원을 넘었던 2017년 12월과 팬데믹이 불러온 2021년의 '돈 복사' 코인 광풍 시기에 비하면 언론도 업계도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대신 다른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튤립은 거품이 깃든 시장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이다. 코인 시장이 튤립 파동의 결말을 맞지는 않았다. 
업계를 넘은 레전드가 되려 했지만
11월 2일(현지시간), 1992년생으로 포브스 선정 전 세계 부호 랭킹 60위까지 올랐던 샘 뱅크먼 프리드(SBF)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가 설립한 가상화폐거래소인 FTX가 뱅크런을 일으키며 파산한 지 꼭 1년 만이다.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전신 사기와 상품 사기, 증권 사기, 자금세탁 등 SBF의 7가지 혐의가 모두 유죄라고 판단했다. (전신 사기는 전화, 이메일, 웹사이트 같은 전자통신수단을 이용해 사기행각을 벌이는 범죄다) 각 혐의마다 최대 5년에서 20년 사이 징역형이 선고되므로, 최대 115년형이 가능하다. 1심 판결은 2024년 3월 확정된다.

FTX는 지난해 11월 파산하기 전까지 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하나였다. 다양한 코인과 파생상품이 거래됐고 거래량도 풍부한 데다 UI/UX까지 편리하다는 이유로 선호됐다. 중간에 어떤 실적이나 부가가치도 증명할 필요 없이 얼마나 높은 호가가 등장하는가, 그 호가가 받아들여지는가가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판에서는 거래량이 굉장히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움직이는 유동성이 실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권도형의 루나/테라 사태(2022) 이후 침체된 국내 코인 업계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명 코인 거래소인 빗썸을 인수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었다. FTX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이 루나/테라 사태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돌이켜 보면 다소 우습기도 하다. SBF가 FTX보다 먼저 차린 트레이딩 회사, 알라메다 리서치는 루나에 큰돈을 투자했고, 잃었다. SBF는 알라메다의 손실을 메우려고 FTX에 들어온 고객의 돈을 유용했다.

SBF가 유죄 판결을 받은 지 12일 뒤인 11월 14일,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설립자 자오 창펑(CZ)도 자금세탁과 관련해 유죄를 인정했다. 지난 6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13개 증권법 위반 혐의로 바이낸스와 바이낸스 US, CZ를 기소한 지 약 7개월 만이었다. 그는 징역 18개월을 사는 대신 5000만 달러(약 640억 원)의 벌금을 내기로 하고, 바이낸스의 CEO 자리도 사퇴했다. 바이낸스사도 43억 달러(약 5조 5440억 원)의 벌금과 보상금을 미 정부에 지불하게 됐다.

코인 산업계의 '레전드'들에게는 그야말로 음울한 11월이다. 그런데 레전드의 몰락이 코인 산업을 흔들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상승 분위기가 감지되는데, 일단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ETF를 승인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업계를 들뜨게 만들고 있다. 바이낸스는 CZ의 사임 직후 하루 만에 9억 6000만 달러(약 1조 2370억 원)가 빠져나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점이 좋은 소식으로 작용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코인 산업은 어쨌든 금융 시장에서 하나의 축이다.
소비자 기만하는 금융 관행의 전통
여기서 비트코인이 진짜 투자자산인가,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혹은 없는가, 혹은 투자를 지금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등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직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적절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주제이다. 투자는 투명한 정보가 제공되는 한 근본적으로 개인의 책임이기도 하고.  

문제는 '투명한 정보' 부분이다. 전통적인 금융이라고 해서 SBF가 선고받은 각종 사기와 부정에서 결백하지는 못하다. 소비자를 기만하는 금융 관행이라는 측면에서 FTX 파산과 SBF가 저지른 범죄는 아주 유서 깊은 것이었다. 

"이 자산은 안전하며, 심지어 계속 성장하며 우상향하므로 지금 사두셨다가 원하실 때 팔아 이익을 보시라"는 달콤한 영업과,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안전하지도 성장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감춘 쓰디쓴 기만의 콜라보. 

그렇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한, 무한하지 않은 폰지 사기다. 여기서 SBF가 FTX의 자산 안전성을 어떻게 복잡하게 설계했는지, 파탄 지경에 이른 수익성을 얼마나 정교하게 감췄는지 여부는 본질이 아니다.

SBF의 유죄 혐의가 인정된 당일, 뉴욕 검찰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수사를 통해 입증되기에는 너무 복잡하거나 너무 강력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기꾼들에게 경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인 산업은 새로운 것일지 몰라도, FTX와 얽힌 일련의 사건들은 아주 오래된 범죄들과 다를 바 하나 없었다는 의견과 함께. 

그도 그럴 것이, 회계 부정이라거나 자금 세탁, 고객의 돈을 유용하는 기만적인 행위라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유명한 사건들이 있다. 바로 엔론 사태와 리먼브러더스 쇼크다.

FTX의 파산이 가시화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난 유령들을 무덤에서 불러냈다. '코인판 엔론'이라든가 '코인 업계 리먼'이라는 식이었다. 여기에 대해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번에 오픈AI의 이사회 멤버가 되기도 했다)는 FTX 파산이 리먼브러더스 쇼크보다는 엔론 사태와 더 비슷한, 고전적인 금융 사기의 결과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각 '사태'의 경과를 나열해 보면 FTX가 왜 소비자를 기만하는 전통을 잇고, 이들과 견주는 '경제사적 사태'인지를 볼 수 있다. 각 이야기의 줄기는 달라도 꼬리에 꼬리는 물고 이어진다.

1. 엔론 사태(2001년)
엔론은 1985년 두 천연가스 유통회사, 인터노스와 휴스턴 내추럴 가스의 인수합병으로 탄생했다. 이때 이미 50억 달러 채무를 지고 시작했는데, 각종 회계 기법으로 해당 부채를 감추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엔론은 15년 만인 2000년,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거래되는 에너지 총량의 20%를 담당하는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이 되었고, 매출액 기준 미국 제 7위의 대기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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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론, 리만브라더스, 그리고 FTX는 어떻게 꼬리를 물고 이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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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김정인입니다. 책 <오늘 배워 내일 써먹는 경제상식>,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의 저자입니다. 심각한 ADHD를 지녀 암기력과 주의집중력이 약해요. 덕분에 남들만큼 알아두기 위해 매사 원인 혹은 시작점부터 맥락을 찾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해로 암기를 대신한달까요. 직접 기운 맥락이 다른 이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때 기뻐합니다.

[정인의 미래 경제사(史)]는 미래에 중요하게 기록될 경제사적 사건 혹은 현상에 대한 해설을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일어난 일을 통해 되짚어봐야 할 점을 찾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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