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전환을 당기는 전쟁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6화. 에너지 안보와 바뀐 '돈'의 흐름
"러시아 가스 없이도 우린 잘 살 수 있다"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수입 금지를 실행 중인 EU는 이번 겨울 큰 고비를 넘기는 중이고 어느덧 이렇게 외치고 있어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벌인 전쟁은 유럽도 전시 상황과 같은 대비 태세를 하도록 만들었고, 시민들도 각종 절제를 통해 에너지를 아끼면서 우려됐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동참했죠.

위기를 넘긴 EU의 상황을 보면서 이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는 끝났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장기적으로 러시아가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더 커지고 있죠. 

러시아의 자원은 중국과 인도 등으로 수출 시장이 축소되었고, 이는 러시아의 '에너지 레버리지'를 미래에도 축소하는 요인이 되었어요. 그리고 이번 전쟁으로 인해 석유와 가스를 대체할 재생에너지의 필요가 팬데믹 직전부터 불었던 재생에너지 투자 바람보다도 크게 이는 중이에요. 이번엔 기저에서 돈의 흐름이 더 크게 바뀌면서 그 바람이 불고 있죠.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에너지 안보'의 의미를 짚어보고,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국 등지에서 어떤 흐름이 일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전합니다. 지금 일고 있는 큰 흐름은 장기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를 그려주고 있어요.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6화.
에너지 전환을 당기는 전쟁
에너지 안보 그리고 바뀐 '돈'의 흐름
2022년 겨울, 유럽은 춥고, 어두웠다. 연말연시 홀리데이 시즌을 맞이하여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며 빛나야 할 도시의 거리와 랜드마크들, 크리스마스 마켓이 모두 조명을 낮추거나 제한된 시간 동안만 점등을 허용했다. 파리의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도 불을 껐다. 핀란드에서는 겨울철의 오랜 전통인 사우나를 포기했다. 독일에서는 양초 판매가 급증했다는 웃지 못할 뉴스가 나왔다. 

이 모든 것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에너지 위기로 촉발된 현상들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럽 연합(EU)은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응수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는 아예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을 잠가버렸다. 21세기 들어 값싼 러시아산 가스의 수혜를 톡톡히 누려온 유럽으로서는 뼈아픈 일격이었다. 

유럽 최대 경제인 독일은 전쟁 전까지 러시아의 가장 큰 고객이자 전체 가스 사용량의 절반을 러시아에서 수입해왔다. 제아무리 유럽 시민들이 우크라이나와 연대한다고 한들, 당장 겨울에 난방비 폭탄을 맞아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게 러시아의 계산이었다. 이른바 '에너지의 무기화'다.  
먹구름이 짙어졌던 유럽이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위기에서 탈출하고 있다. "우린 할 수 있다"를 오랜만에 시전했다.  
오랜만에 기민하게 움직인 EU
철강, 화학공업 등 에너지 소비량이 큰 산업계가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찾아온 지난 12월부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의 난방비, 전기료 인증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잇따라 올라오기도 했다.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한 EU의 경제적 피해는 1조 유로(약 137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EU와 유럽 국가들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미국 및 카타르 등으로 공급 다변화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평시라면 수많은 정치적 장애물을 맞닥뜨렸을 천연가스 터미널 (천연가스는 수출국에서 액체 상태로 적재, 운반한 뒤 수입국에서 기체 상태로 변환하여 각 수요처로 공급하기 때문에, 이에 필요한 설비를 갖춰놓은 시설) 건설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인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는 와중에 7000억 유로(약 961조 3870억 원)가 넘는 지원금도 뿌렸다. 

정부들이 공급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안 에너지의 최종 소비자인 기업과 가정도 수요 절감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에서는 실내 난방 온도를 19~20℃ 이하로 제한되었고, 시민들은 예년 대비 많게는 수십 배 오른 난방비와 전기료를 줄이기 위해 온갖 묘수를 짜냈다. 모건 스탠리에 따르면 EU 최대 경제인 독일의 에너지 사용량은 과거 5년 평균 대비 16퍼센트나 떨어졌다. 

해가 바뀌고 봄이 성큼 다가온 현재, 유럽의 에너지 사정은 어떨까. 유럽의 에너지 비축율은 오히려 평년보다 높은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2021년 유럽의 에너지 비축율은 52% 수준이었으나, 2022년 겨울에는 84%에 달했고, 독일은 무려 91%의 비축율을 자랑했다.

무엇보다 하늘이 EU와 우크라이나 편(?)이었다. 유례없이 따뜻했던 날씨 덕분에 유럽 시민들은 큰 희생 없이 겨울을 날 수 있었고, 러시아산 가스 없이도 최소한의 가스 공급망을 구축할 시간을 벌었다. 더욱이 올해 경기 전망이 안 좋은 유럽의 에너지 수요는 작년보다도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가스 가격의 안정
그 사이에 천연가스 가격은 어느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1년 전인 2022년 2월, 유럽의 천연가스 도매가를 나타내는 더치 TTF 선물 가격은 1메가와트시 당 88유로 정도였으나, 올해는 76유로 안팎에 불과하다. 겨울을 앞두고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에 대한 공포가 정점을 찍은 작년 8월에는 무려 340유로가 넘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확실히 안정됐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근거 없는 공포가 아니었다. 전쟁 전 러시아의 유럽 가스 시장 점유율은 40%대였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의 가스 가격은 여전히 높고 (2년 전과 대비하면 거의 5배에 가깝다), 가스비와 전기료를 내야 하는 소비자들의 고통 역시 그대로다. 공장들은 높은 에너지 비용 때문에 생산 차질과 가격 인상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를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EU가 러시아 제재 항목을 천연가스에서 석유 및 석유 제품으로까지 확대하면서 물류와 운송업계가 타격을 입을 것이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공포에 가까운 우려를 떨치고 이제 "러시아 가스 없어도 경제가 돌아간다"라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면서 EU와 유럽 국가들은 이제 전쟁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유럽 위원회는 이제 천연가스 가격의 안정 등으로 피할 수 없어 보였던 경기 침체를 피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따라 에너지 위기가 2023년 겨울에도 되돌아올 수 있음을 경고했지만, 사실 이번 겨울의 경험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가고 있는 시점에 일종의 탄소 절감 예행연습과도 같았다는 평가다. 반강제적으로 이 연습에 참여한 유럽의 반응은 "해볼 만하다"이다.
메우지 못할 것 같았던 가스 공급도 잘 버티며 메웠고, 가스 가격도 안정되었다. 
하지만 에너지는 변수가 많다
겨우내 따뜻하고 눈이 적게 내렸던 탓에 올여름 유럽은 건조하고 무더운 여름을 보내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겨울에 눈이 충분히 내리지 않으면 유럽 전체 발전량의 약 20%를 도맡는 수력 발전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2021년, 2022년 연속으로 폭염과 가뭄에 시달렸던 유럽으로서는 겨울 뿐 아니라 여름 역시 에너지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는 말이다. 가뭄은 수력 발전뿐 아니라 원전과 같은 에너지 생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선 원자로를 식히는 데에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전력의 약 70%를 원자력 발전으로 충당하는 프랑스의 경우, 역대급 가뭄이 찾아온 작년 여름 원전 가동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즉, 반드시 전쟁 때문이 아니더라도, 기후위기가 심각해질 수록 에너지 가격은 점점 올라간다. 기후위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게다가 러시아가 글로벌 시장의 큰손이었던 가스와 석유 가격이 폭등하자,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들, 그중에서도 수요가 큰 인도와 중국이 석탄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특히 3년간의 제로 코비드 정책을 마침내 포기하고 일상 회복을 선언한 중국은 산업용 에너지 수요가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석탄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석탄 발전이 기후 위기에 미치는 영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편 글로벌 석유 회사들은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며 고유가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엑손모빌, 쉐브론, BP, 쉘 같은 기업들은 탄소 배출 절감을 위해 생산량 축소를 요구해왔으나, 당장 원유 공급 부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이 덮치자, 각국 정부의 묵인하에 생산량을 대폭 늘렸고, 천문학적인 금액의 이익을 냈다. (그리고 이 돈을 주주들에게 배당 또는 자사주 매입으로 돌려줬다.)
석유와 가스가 그러했듯이 앞으로는 재생에너지가 곧 '안보'와 직결되는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는 영역이지만) 이번 전쟁은 재생에너지의 성장을 많이 앞당겼다는 분명한 신호들이 나온다. (이미지: 달리(DALL·E) 생성)
에너지가 곧 '안보'라는 것의 의미 
하지만 마냥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많은 나라들, 특히 선진국들은 이번 기회에 재생에너지 플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러시아의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국가안보에 치명적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유럽 전역에서 풍력과 태양광 발전의 보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국제 에너지 싱크탱크인 엠버(Ember)에 의하면 2022년에 유럽은 태양 에너지와 풍력이 차지하는 발전 비중(22%)이 처음으로 가스(20%)를 앞질렀다. 다시 돌아온 석탄의 성장도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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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안젤라는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주목해야 할 거시경제 변화와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Long-from) 아티클입니다. 급격히 변하는 거시경제 지형 속에서 놓치지 않고 주목해야 할 이야기를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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