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쿼이어 캐피털이 전한 메시지

절체절명의 순간일까? feat. 서브스택에도 멈춘 펀딩
지난주, 대표적인 시드 투자자이자 엑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가 포트폴리오사들에게 어려운 상황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담아 보낸 이메일은 한국에서도 스타트업계를 중심으로 바이럴되었는데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세쿼이어 캐피털이 이번 주에 포트폴리오 기업들에게 전한 52페이지짜리 슬라이드의 이야기도 역시나 주목을 받았어요. 오늘은 중요한 순간에 늘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온 이들의 이번 이야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무슨 메시지인지 살펴봤습니다.

[벤처캐피털] #세쿼이어 #YC #스타트업
이번엔 절체절명의 순간?
세쿼이어 캐피털은 구글과 애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오라클, 링크드인, 에어비앤비 등 지금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많은 기업들과 서비스에 투자해온 벤처캐피털이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발발 당시를 포함해 중요한 순간마다 이들이 내온 경고의 목소리는 늘 큰 주목을 받아왔는데요.

이번에는 현재의 경제 상황이 스타트업들에게는 "절체절명의 (혹은 혹독한 시련의) 순간(Crucible Moment)"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어요. 최악을 대비하라는 메시지가 담겼죠. 디인포메이션이 이 슬라이드 데크를 확보해 공개했어요.
예측이 틀릴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 예상할 수 있는 그림이에요. 팬데믹 발발 이후 그린 'V'자형 그림은 그려질 수 없다고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예측하고 있죠. 이 링크 통해 전체 내용 살펴보세요. © 세쿼이어 캐피털
팬데믹 예측은 틀렸지만 
2020년에 팬데믹이 찾아오고 시장이 혼란에 빠지자 2008년 금융위기 못지 않은 '블랙 스완(Black Swan)' 모먼트가 찾아왔다며 경고하고 나섰지만, 적극적인 재정 및 통화 정책으로 오히려 각종 금융 및 자본 시장은 활황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고, 역대 가장 큰 규모의 투자가 각 분야의 새로운 기업들에도 이루어져 왔죠. 이전에 볼 수 없던 기업공개(IPO) 러시와 더불어 스팩(SPAC) 상장이라는 '트렌드'도 만들어졌고요. 이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과 ESG 바람이 불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투자자들은 새로운 흐름에 큰 투자를 했어요.

세쿼이어 캐피털도 팬데믹 이후의 경고에 대해 자신들이 틀렸다는 점을 의식했어요. 하지만 팬데믹 때와 같이 이번엔 'V'자 모형의 회복은 없을 것이라는 경고를 구체적으로 했어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어려운 경제 상황이 소비를 얼어붙게 하고, 정부가 다시 금리를 내리고 양적완화에 나서는 시기가 오기까지는 오래 걸릴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투자자들과 기업들이 저렴하게 쓸 수 있던 자본이 이제는 너무 비싸졌고 이런 상황이 빨리 바뀌지 않을 점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이번 사이클은 급격히 경기가 하강했다가 점진적으로 (혹은 느리게) 회복하는 그림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에요. 투자자들은 (당연히도) 당장 가까운 미래에 '수익'이라는 결과를 낼 수 있는 기업들을 쳐다볼 것이라고 보고요.

지금은 빨리 움직이고 적응할 때
이들이 낸 핵심적인 의견은 돈을 아끼라는 것이기도 해요. 큰 위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당장 현재 보유 중인 현금을 아낄 방법을 마련하라고 경고하고 있죠. 지금은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새로운 프로젝트나 연구개발과 마케팅 등의 활동을 우선 빨리(30일 내) 멈출 때라고 하면서요. 

물론 현금이 얼마나 남아있느냐가 중요하고, 스타트업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매출이 크지 않고 아직 수익이 크게 나지 않는 기업들의 경우에는 예측하지 못한 큰 어려움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죠. 힘든 상황에서 자본을 아끼고, 상황이 개선될 때 빨리 달릴 준비를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달라고도 하고 있어요. 

현재 시장이 특히나 차갑게 식어온 시장으로는 주문배달 시장을 대표적으로 예를 들 수 있을 텐데요. 인스타카트와 같이 큰 투자를 바탕으로 식료품 배달 영역을 키워온 대표적인 스타트업은 물론 도심 내 고스트 스토어를 늘리고, 할인 및 쿠폰 경쟁을 통해 마케팅 비용을 극대화해 온 고퍼프, 게티르, 고릴라스, 볼트 등 벤처캐피털들이 경쟁적으로 자본을 투입해 온 업체들은 계속 길에 흘려온 현금을 어떻게 아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죠. 지금까지 사용자를 확보하는 '성장' 경쟁을 해왔다면, 이들은 이제 추가 투자를 받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을 가정하고 경기가 하강하는 국면에서도 수익을 낼 방법을 증명해야 하는 경쟁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죠. 

현재의 상황은 위워크, 우버와 리프트 등 공격적인 성장 추진에 비해 초라한 수익으로 어려움에 빠졌던 공유 경제의 빅스타트업들의 사례도 참고해야 하는 상황이 다시 되기도 했고요. 사실 이들의 사례를 반추해야 한다는 것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부터도 나온 이야기였지만, 팬데믹이 키운 유례 없는 투자 붐은 시장 참여자들이 다시 이런 상황을 잊게끔 했죠. 지난 2년여의 시간은 그야말로 성장하는 기업들의 전성시대이기도 했고요.
한 세대가 한 번 겪을까 말까한 위기이지만, 미래 세대에도 에어비앤비가 남아있도록 계획을 세우겠다고 했죠. 에어비앤비는 초기 성장 시기부터 최근까지의 사례도 (긍정적으로) 많이 인용돼요. © 세쿼이어 캐피털
와이콤비네이터도 전한 메시지
서두에서 언급한 와이콤비네이터도 포트폴리오 스타트업들에게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이들은 와이콤비네이터의 공동 창업가이기도 한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이 2015년에 쓴 "Default Alive or Default Dead"라는 글을 링크하면서 "당신들의 목표는 '디폴트 얼라이브'가 되어야 한다"라고 전했어요.

'디폴트 얼라이브'는 "8~9개월 정도 된 스타트업의 비용이 일정하고, 매출 성장도 지난 몇 개월간의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남은 돈(투자금)으로 수익을 내는 상황에 이를 수 있을까?"를 질문했을 때 수익을 낼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에요. ('디폴트 데드'는 물론 그 반대 상황을 의미하죠) 

최근에도 수익성보다는 일단 '성장'을 위해 비용이 얼마이든 돈을 태우는 상황이 일반적이지만 지금은 '디폴트 얼라이브'가 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스타트업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에요. 앞으로 펀딩이 얼어붙을 테니 스타트업들에게 돈을 아끼라는 메시지를 낸 것이고요.

이 글에서 초기 에어비앤비의 사례가 인용되었는데요. 폴 그레이엄은 "에어비앤비는 와이콤비네이터의 투자를 받고 첫 번째 직원을 채용하는데 4개월을 기다렸다. 그 기간 동안 창업자들이 과하게 일을 했지만, 에어비앤비를 지금의 성공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작업이 되었다"라면서 이들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전했죠.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가 '디폴트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혹은 '디폴트로 종료를 해야 할 운명인지'를 판단하고, 그에 맞게 자금 운용 등의 전략을 짜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다시 에어비앤비의 사례와 교훈

세쿼이어 캐피털도 이번에 팬데믹이 발발한 이후 부킹이 순식간에 80% 이상 떨어졌던 에어비앤비의 대응 사례를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거의 모든 업계가 그러하기도 했지만, 당시 여행업계 전체는 전례 없는 위기에 모두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초기 에어비앤비의 대응은 긴박했지만 침착했어요. 

4월부터 팬데믹으로 인한 영향이 본격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에어비앤비는 투자자들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공감대를 얻기 위해 현금을 아끼고, 비용 효율화 작업에 들어가되 위기 이후까지 대비하겠다는 발표를 했어요. 어려워도 무작정 비용을 줄이는 '빌런'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롤모델'이 되는 기업이 되겠다는 다짐도 했죠. (물론 당시 7000명의 직원 중 1900명을 해고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지만요)

당시 에어비앤비는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했고, 이미 수익을 내는 모범생 스타트업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당시 상황만큼 불확실성이 큰 상황은 근래 없었어요. ...

 

☕️ 지금 투자가 멈춘 사례, 서브스택
팬데믹 동안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스타트업 중 하나이자, 유니콘이 되는 것을 목전에 두었던 서브스택(Substack)이 추진 중이던 시리즈 C 투자 유치를 멈추었다는 소식이 오늘 뉴욕타임스를 통해 전해졌어요

현재 6억 5000만 달러(약 8150억 원)의 기업가치를 평가 받고 있고, 새로운 투자를 유치한다면 유니콘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는데요. 이들은 얼어붙은 벤처캐피털 투자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이번 라운드에서 7500만 달러(약 940억 원)에서 1억 달러(약 1250억 원) 사이를 투자 받아, 최대 10억 달러(약 1조 2500억 원)의 기업가치를 노렸지만, 투자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여요.)

서브스택은 이메일 뉴스레터를 기반으로 유료 구독제를 운용하게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앤드리센 호로위츠 등으로부터 지금까지 8600만 달러(약 1080억 원)를 투자 받아 공격적으로 사업을 키워왔어요. 충분한 자본을 바탕으로 유명 작가와 크리에이터들에게 큰 선급금을 제시하고 섭외하면서 사용자를 키워왔고, 크리에이터 경제를 이끄는 스타트업 중 하나로 평가받으면서 성장했죠.

서브스택은 서브스택을 이용하는 작가 매출의 10%를 수수료로 받는 것이 주요 수익원인데요. 투자 유치를 다니면서 2021년 매출이 900만 달러(약 110억 원) 수준이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어요. 플랫폼에서 구독자가 가장 많은 크리에이터 혹은 작가 10명은  합쳐서 연간 총 2000만 달러(약 25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왔고요. 하지만 알려진 매출 규모는 큰 투자가 들어간 것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기도 해요. 수수료가 기반이 되는 수익 모델 외 다른 의미 있는 수익원이 없는 상황이고요.

이들은 크리에이터 경제의 성장에 맞춘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의미 있는 성장을 이루어왔다고 평가받아왔어요. 얼마 전엔 전용 앱도 출시하면서 사용자들을 더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이어가고 있었죠. 하지만 현재의 분위기에서 이들에게 좋은 조건으로 베팅하는 투자자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이죠. 현재로서는 성장에 초점을 맞춰 자금을 공격적으로 써 온 스타트업에게 펀딩이 멈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으로 보여요. 

물론 서브스택 측은 아직 성장을 이어가는 중이라면서 적극적으로 채용도 진행하는 상황이라고 밝혔지만, 다른 돌파구가 생기지 않는다면 이들도 허리띠를 예상보다 빨리 졸라매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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