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바의 몰락과 첨단 일본의 현재

[정인의 미래 경제사] 2화. 몰락한 제국은 부활할 수 있을까?
2023년 12월 28일 목요일
2024년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역시 반도체가 될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계속 벌이는 반도체 전쟁은 지속해서 큰 화두가 될 것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 경쟁에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의 기업들은 협업과 경쟁을 이어 나갈 것으로 예상되죠. 미국이 지난해 제정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와 반도체법(CHIPS Act)가 불러일으키는 변화는 이미 커졌고, 2024년에는 더욱 큰 변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긴박하게 첨단 산업의 공급망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미국 공급망 재편의 주요 축인 일본의 기업들이 과거의 위력을 보여줄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물론 전기차 등 주요 첨단 산업의 주도권을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 등지의 기업들에게 빼앗긴지도 오래이죠. 이 와중에 일본 첨단 기술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기업 중 하나였던 도시바의 상장폐지 소식은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148년이나 사업을 이어온 도시바는 어쩌다가 상장폐지를 하고, 기업 전반을 다시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걸까요?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소위 잃어버린 30년을 지나온 일본 경제 상황에 더해 반복되어 온 경영 전략 실패와 스캔들까지 겹겹이 쌓여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죠. 

몰락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도시바의 부활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영이 실패하고, 사람들이 오고가도 이들에게는 기술이 남아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라는 점을 오늘 [정인의 미래 경제사]가 짚습니다. 도시바라는 한 기업을 넘어서 이런 기술을 보유한 일본의 산업이 앞으로 미국의 주도하에 벌어지는 반도체 전쟁 속에서 부활할 수 있느냐를 바라봐야 한다는 점과 함께요.

도시바가 상장폐지에까지 이른 과정에서 어떤 실책과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지,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었는지를 다소 긴 호흡이지만 꼭 필요한 맥락을 추려내 전합니다. 역사가 된 일본의 기업과 그 과정에서 피어난 새로운 기업들 그리고 현재 기술 패권이 바꾸는 전 세계 산업 지형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정인의 미래 경제사(史)]
도시바의 상장폐지와 첨단 일본의 현재
몰락한 제국은 부활할 수 있을까? 
2023년 12월 20일, 일본 반도체 산업의 핵심이었던 도시바가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됐다. 

도시바는 메이지 유신 직후인 1875년 설립됐다. 당시에는 '다나카 제작소'라는 이름으로 산업용 전기제품을 주로 생산했다. 1939년에는 '도쿄전기'와 합병하며 '도쿄시바우라전기', 줄여서 '도시바'가 됐다. 10년 후인 1949년에는 도쿄증시에 상장했다. 

도시바가 상장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일본은 미국의 정치경제적 도움과 한국전쟁 특수를 기반으로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며 전후 복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소비시장이 커졌다. 중산층이 성장함에 따라 도시바도 소비자가 사용하는 가전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일본은 다시 세계 최고의 산업대국 반열에 올랐다. 도시바는 일본이라는 국가와 함께 고도성장한 거인이었다. 1959년에는 트랜지스터 TV를 개발했고, 1985년에는 세계 최초로 노트북다운 노트북을 만들어냈다. 바로 다음 해인 1986년에는 세계 최초로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했다. DRAM과 함께 우리나라에 중요한 메모리 반도체다. 

낸드 플래시는 HDD에 비해 저장 용량이 적기는 하지만 장치 크기가 훨씬 작다. 휘발성 메모리인 DRAM과 달리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날아가지 않는다. USB가 바로 낸드 플래시를 이용한 휴대용 저장 장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처럼 메모리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기업들이 국가 수출액의 20%을 차지하는 덕분에 전 국민이 'DRAM'이라든지 '낸드 플래시' 같은 기술 용어를 알게 됐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른 데다 전력도 덜 소비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휴대용 전자기기의 소형화 및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최근 10년간은 데이터센터 구축은 물론 전기차와 AI의 발전에도 필수 요소가 됐다. 팬데믹을 거치고 비대면 경제가 성장하면서 낸드 플래시의 중요성은 새삼 커졌다. 

여기서 두 가지 핵심적인 질문이 등장한다.

  • 도시바가 개발했다는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간판 상품이 되었나?
  • 148년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조형한 도시바에 왜 상장 폐지라는 운명이 닥쳤는가?

질문과 답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동북아시아에 반도체 산업의 위상이 어떤지, 도시바의 몰락은 언제부터 시작해 어떻게 끝맺었는지 연대기를 통해 차례대로 살펴봐야 한다.
도시바를 비롯해 세계 첨단 기술을 이끌던 일본 기업들의 존재감은 작아진 지 오래이다. 여전한 저력이 될 수 있는 기반 기술은 여전히 뛰어나지만, 이들이 세계 기술 패권 경쟁의 주도권을 잃은 지는 오래이다.  
1. 동북아의 '드래곤볼'인 반도체
전쟁 폐허를 서성이는 부랑자가 세계 질서의 앞자리로 이동하기까지 일본과 우리나라는 둘 다 제조업에 대한 국가적 열망이 있었다. "기술력이 부족해서" 제국으로서 완성되지 못했고, "기술력이 부족해서" 피식민지가 되는 아픔을 맛보았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한때 미국을 넘봤던 힘이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덧입혀진 기술력에서 나왔다고 여겼다. 우리나라는 고도성장기, 일본이든 어디든 기술을 가져오기 위해 몸부림쳤다. 부국강병을 위한 '산업보국'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맥락이다. 완성차와 함께 반도체는 이 맥락에 가장 어울리는 공산품이다.

중국은 여기에 다소 늦게 발을 들였는데, 21세기가 되자마자 후발주자라는 약점이 무색할 정도로 강력한 산업국가로 부상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약진해서,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와 생산하는 파운드리 두 종류의 회사 모두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2018년 수면 위에 드러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은 결국 '반도체 전쟁'으로 수렴했다. 미국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액은 6900억 달러(약 890조 5140억 원)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반도체 분야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은 시스템반도체를 제조하는 ASML의 EUV 장비에서부터 DRAM과 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 반도체 장비와 제조 기술, 엔비디아의 AI칩 판매까지 중국에 흘러가지 못하도록 제재하고 있다. 중국은 2020년까지는 그에 대응해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들과 교역량을 더욱 늘린 것으로 드러났다. 첨단 장비를 제외한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율도 늘었다. 

미래 경제 질서를 결정할 반도체 생산 역량에 비하면 다른 요소는 아무래도 좋은 탓이다. 과거 미국과 체제경쟁을 벌이던 소련이 반도체 기술력에서 미국에 밀리며 전자공업과 소프트웨어산업에 뒤처진 역사가 있다. 이후 미국을 넘봤던 일본도 미국과 반도체 대결을 벌였다. 

반도체는 5G 통신은 물론 클라우드, IoT, 자율주행과 멀티모달 등 AI, 바이오 등 최첨단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부품인 동시에 각종 첨단무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민군 겸용 기술이다. 반도체는 체제 경쟁의 축이다. 
반도체는 드래곤볼이 되었다. 기술 패권 경쟁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반도체 산업을 구축하고 있으면 더더욱 못 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반면 반도체 산업에 발을 담그지 못하면 기술 패권 경쟁을 따라갈 수 없다.
2. 결국 미국 수요가 중요한 일본
반도체의 중심은 서쪽으로 나아간다는 말이 있다. 미국 기술 혁신의 상징인 실리콘밸리는 1960년대 탄생했다. 도시바를 포함한 일본 기업들은 1970년대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DRAM 시장은 인텔과 IBM 등 미국 테크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낮은 불량품 비율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일본 정부의 산업 육성책과 금융지원책도 큰 힘이 됐다. 동북아시아의 대기업들은 내수 독점을 통해 마련한 수익으로 수출 동력을 만들었다.

기술 발전으로 대용량 컴퓨터와 통신장비 수요가 폭증하던 1980년대, DRAM 수요도 함께 폭발했다. 그 시기 도시바와 NEC, 히타치의 반도체는 미국 기업이 독점하던 시장을 완벽하게 대체했다.

1980년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점유율을 모두 합하면 80%가 넘는 해도 있었다. 미국 기업과 벌인 DRAM 치킨게임에서 일본 기업은 완승을 거뒀다. 1984년 4달러였던 64k DRAM 가격이 1985년이 되자 30센트까지 떨어질 정도의 저가 경쟁이었다. 그러자 미국은 '슈퍼301조'를 내세워 일본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보복하기 시작했고, 보복관세를 얻어맞은 일본산 반도체는 가격경쟁력을 잃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기업들이 미국 시장 수출에 의존한다. 미국 시장과 산업이 경쟁에서 끝까지 무너지게 두지 못하는 것이 미국 중심으로 짜인 글로벌 경제 구조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수출로 먹고 사는 기업과 국가는 물건을 사야만 하는 나라의 지갑 사정도 생각해야만 한다.

다음해인 1986년, 일본은 미국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 저가형 반도체 수출 금지 등 자국에 불리한 조건으로 채워진 1차 미일 반도체 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소위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이라고 늘 지목되는 1985년 플라자 합의가 끼친 악영향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특히 일본 엔화의 가치 절상이 목적이었던 플라자 합의는 결과적으로 일본의 양적 완화에 그에 따른 1980년대의 버블 경제로 이어지게 했다. 그리고 거품이 걷히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시작되었다. 이미지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사진 앞쪽 오른쪽)과 일본 총리인 나카소네 야스히로(왼쪽)가 플라자 합의 4개월 전인 1985년 5월에 G7 정상회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당시 미국과 일본 정상의 만남은 플라자 합의의 방향을 설정했다고 알려졌다. (이미지: AFP)
'재팬 배싱'의 효과: 
삼성(한국)과 TSMC(대만)의 성장
이후 중국과의 반도체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일본이 이처럼 한창 대립각을 세우는 중이었고, 반도체 경기마저 어려웠던 1983년에 삼성은 DRAM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일본 메모리 내수 시장의 20%를 외국 기업에 할당하도록 강제한 반도체 협정 덕에 틈새를 공략할 수 있었다.

여기에 반도체 산업이 '설계'와 '생산'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며 다른 나라에도 기회가 왔다. 대만 파운드리 회사 TSMC가 1987년 설립됐다. 삼성도 반도체 생산에 투자를 계속했다.

1990년대 들어서도 미국의 '재팬 배싱(bashing)'은 지속됐다. 1991년 미국은 노트북 컴퓨터용 고급 평면 패널 스크린에 63% 관세를 물렸고, 도시바는 미국에서 노트북 생산을 중단했다. IBM과 애플 같은 제조업체는 일본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미국 정부에 반발했다. IBM의 대변인은 "미국 정부가 미국 컴퓨터 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부분에 보내는 퇴거 통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1991년은 2차 반도체 협정이 있었던 해이기도 하다. 이 협정은 1996년까지 5년 더 연장됐다. 1986년부터 1996년까지 시달린 노골적 규제에도 불구하고 도시바를 비롯한 기업들은 반도체 기술 표준을 선도했다. 엄격하고 정교한 기술 개발 덕분이었다.

그러나 1992년, 도시바는 인텔과 경쟁하기 위해 삼성에 낸드플래시 기술을 이전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삼성은 생산 설비에 과감하게 투자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점유율에서 도시바를 넘어섰다. 

경영 전략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기술 고도화로 경쟁력을 갖추려 했던 도시바와 달리 삼성은 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생산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DRAM 시장에서 2차 반도체 치킨 게임이 벌어졌고, (역사가 말하듯이) 시장은 삼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0년대 후반이 되자 반도체 이슈의 중심은 미국으로 더 움직였다. 이제는 중국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일본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손을 잡으며 부활을 선언했다. 2022년 5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반도체 협력 기본원칙을 세웠다. 두 달 후, 일본은 EU와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을 선언하는 공동성명을 냈고 인도와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각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어쨌든 일본은 여전히 반도체 생산 과정에 필수적인 소재와 정밀한 부품을 생산하는, 반도체 공급망 뒷편의 지배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 148년 역사를 지닌 도시바가 몰락한 것이다. 일본 반도체의 상징이었으며, 낸드플래시를 발명한 도시바가. 

부활과 몰락이 과연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일까. 실마리를 잡으려면 2000년대 도시바의 역사를 보아야 한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 수성과 TSMC의 파운드리 진출은 일본 반도체 산업 하락의 시작이었다. (이미지: 게티 이미지)   
3. 원전 르네상스가 무너트린 반도체 국가
2002년만 해도 소니의 CTO인 신이치 오카모토는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뛴다는 무어의 법칙이 우리에게는 너무 느리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경쟁이 치열한 메모리 반도체 대신 전기를 동력으로 바꾸는 데 쓰이는 전력반도체(IGBT)를 회사의 반도체 부문 주력으로 삼았다가 은근한 실패를 맛보고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야 큰 문제가 아니었다.

2005년, 도시바는 NEC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반도체 생산 기업이었다. 일본 전자기업들의 기세는 여전히 성했다. 그해 도시바는 소니, IBM과 함께 이전 세대에 비해 "50배 이상의 성능을 지녔다"는 셀칩(Cell Broadband Engine)을 개발했다. 

업계에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한 기술이었다. '듀얼 코어'니 '멀티 코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바로 이때였다. 셀칩이 대중화되면 인텔도 무너진다고도 했다. 인텔이 전세계 PC의 80%에 자사 반도체를 탑재시키고 있던 시점이다.

도시바와 소니, IBM은 2001년부터 텍사스에 각 회사 사명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STI 디자인센터'를 공동 운영하기까지 했다. 셀칩은 이 STI 디자인센터의 산물이었다. 반도체 여러 개를 병렬로 붙일 수 있었는데, 붙이는 만큼 성능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여러 개의 작업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CPU는 명령을 순차적으로 실행할 수밖에 없는 직렬 체계여서, 한 번에 한 가지 작업만 처리 가능했다. 
* 하지만 그때만 해도 복잡한 병렬처리를 요구하는 소프트웨어가 많지 않았던 탓에 셀칩은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나 셀칩 덕분에 병렬처리와 다중 코어 개념은 중요하게 자리잡았다. 

도시바와 같은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적 혁신이 업계의 모양을 마지막으로 빚어내던 마지막 시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도 도시바 반도체의 수익을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도시바의 반도체가 일본의 멋진 IP와 함께 소니의 컨트롤러 안에 담겼다. 도시바는 HDTV에도 최첨단 반도체를 넣기로 결정했다. 

이 시기는 각종 전자제품들이 보다 작고, 얇고, 전력을 덜 소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며 인류의 생활양식을 새롭게 정의할 지배력을 갖춰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도시바는 최악의 수를 두게 된다.

(2편에서 계속)


☕️☕️ 도시바는 무슨 악수를 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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