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도 이번엔 내려야 하는 결정
이번 전쟁은 서방 테크 기업(중국 기업인 바이트댄스의 틱톡도 포함해)들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경제 규모가 큰 국가에서 서비스 철수와 제재를 감수한 거의 첫 사례다. (OECD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규모는 세계 11위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글로벌 테크 플랫폼들이 동남아시아, 중동, 남아메리카에서 독재정권이나 극우 정치세력이 생산하는 혐오 콘텐츠나 가짜 뉴스 규제에 적극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미얀마에서는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가짜 뉴스가 페이스북을 통해 퍼지면서 로힝야족 탄압이 정당화됐다. 2021년 12월에는 로힝야족 난민 20여 명이 영국 로펌을 통해 페이스북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로힝야족을 겨냥한 혐오와 폭력 선동 포스팅을 페이스북이 방치했다는 이유다.
필리핀의 경우 '인터넷이 곧 페이스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 페이스북 사용 비율이 높고 두테르테 정권은 2016년 페이스북을 활용해 정권을 잡았다. 정권에 비판적인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는 2021년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에 해가 된다며 비난했다. 이후 트위터가 필리핀에서 오는 5월 총선에 출마할 예정인 독재자 아들 마르코스의 가짜 정보 확산에 제재를 가하는 등 조처가 취해지고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확실히 이들 테크 기업들에게는 전환점이다.글로벌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특성상 사기업이지만 전 세계 민주주의 수호라는 공적 책무의 무게를 함께 져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인터넷의 개방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성장한 이들 기업들이 더 이상 "사기업이니 어쩔 수 없다"라며 은근슬쩍 꼬리를 내리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이다. 국제사회가 목소리를 모아 러시아를 비난하고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어 테크 플랫폼이 서방의 편을 드는 게 비교적 쉬워지기도 했다.
이들 기업에게는 완전히 상반된 압박이 들어온다. 우크라이나 디지털 전환 장관인 미카일로 페도로프는 애플 CEO 팀 쿡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2022년, 탱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좋은 답은 현대 기술"이라며 러시아에서 사업 철수를 요구했다. 페도로프 장관은 메타, 알파벳, 애플, 넷플릭스 등 다른 테크 기업들도 러시아에서 아예 서비스를 철수하거나 제한하여 러시아 국민들이 정부에 반발하도록 뒤흔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대다수 테크 기업들이 신규 광고 수주나 러시아 내에서의 상품 생산 중단 등을 택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들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하기도 어렵다. 단순히 비즈니스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소셜미디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다.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러시아가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소셜미디어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수호하는 중요한 정보 인프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큰 선택의 기로에 놓인 테크 기업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지난 80년간 세계엔 국지전은 있었으나 슈퍼파워 국가들이 참전하는 세계대전 위기까지 간 적은 없었다. 러시아가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까지는 말이다. 평화협상은 지지부진하고 재래식 무기를 동원한 전쟁 장기화가 확실시되고 있다. 코너에 몰린 러시아가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면 세계대전 위기에 더 가까워진다.
이번 전쟁이 20세기 세계대전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등장이다. 엔터테이너 출신의 우크라이나 불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인에게 호소하고 EU와 미국 그리고 일본 의회 의원들 앞에 화상회의로 연설하며 서방세계의 여론을 단결시키고 서방 세계 지도자들을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호도하기 위해 젤렌스키가 국민들에게 전쟁을 포기하라고 독려하는 딥페이크 영상을 퍼뜨렸다.
땅에서는 진짜 전쟁이, 소셜미디어에서는 선전전이, 배후에서는 사이버테러와 사이버전도 펼쳐지고 있다. 가짜 정보(disinformation)와 대안 진실(alternative truth)의 처리 방법에 대해 늘 골머리를 썩어 왔던 빅테크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세계와 연결되는 소셜미디어 차단
러시아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극단주의 옹호'의 이유로 금지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러시아에 우호적으로 전쟁 소식을 전하는 러시아 미디어에 라벨을 붙이고 알고리즘에 영향을 줘서 노출을 약화시킨 데 대해 러시아 통신위원회가 보복 조치를 한 게 각각 3월 4일(페이스북)과 14일(인스타그램)이었다. 이 두 조처 간 날짜 차이는 이미 국민 사이에 익숙한 글로벌 IT서비스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고민을 보여주기도 한다. 페이스북(러시아 인구 7% 사용)에 비해 인스타그램(51% 사용)의 사용률이 높다.
3월 21일에는 아예 이 두 서비스 모두 러시아 내에서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러시아 군인을 공격해야 한다는 포스팅을 올리면 원래 메타 정책상 '폭력 조장'의 이유로 제재가 되는데, 메타가 일시적으로 '증오 표현 정책'을 수정해 포스팅 제재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러시아 정부는 VPN을 통한 우회 접속도 막을 계획이다. (단, 러시아에서 국민 66%가 사용하고 있어 한국 카카오톡 정도의 지위를 가진 왓츠앱(WhatsApp)은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다)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사안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디어에서 '전쟁(war)'이라고 부르는 것을 금지하고 '특별 군사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으로 대체하게끔 했다. 법을 만들어 이에 항거하는 미디어와 언론인들은 10~15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게 법을 통과시키는 등 미디어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 (북한과 같은 수준의 통제다) 러시아는 이 기회에 아예 러시아 정부에 우호적인 토종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론칭한다는 계획이다. 러시아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 버리는 것이다.
러시아에 진출한 외국 기업, 특히 IT-테크 기업을 러시아 정부가 감시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야당 지도자가 만든 선거 관련 앱인 스마트 보팅을 러시아 정부가 알파벳과 애플을 압박하여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삭제하게 만든 게 2021년 9월이다. (스마트 보팅은 푸틴의 부패를 폭로해 현재 수감 중인 야권 지도자 알렉산더 나발니가 만들었으며 푸틴에 대항하는 선거 후보들을 지지하도록 독려하는 앱이었다)
러시아는 외국 기업이 진출할 때 반드시 물리적으로 현지 사무실을 내도록 강제하고 있다.* 정치적 사안이 발생하면 러시아 지사 직원들이 자칫 볼모로 잡힐 수 있다. 알파벳과 애플이 러시아 정부의 위협에 굴복한 건 사업적 전망도 중요하지만 현지 사무실 직원들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 참고: 사실 러시아만 이런 법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중국에 홍콩이 재편입되면서 홍콩에도 러시아와 비슷한 법이 생겼지만 테크 기업들이 실제로 쫓겨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슈퍼파워로서 체면도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빅테크도 이번엔 내려야 하는 결정
이번 전쟁은 서방 테크 기업(중국 기업인 바이트댄스의 틱톡도 포함해)들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경제 규모가 큰 국가에서 서비스 철수와 제재를 감수한 거의 첫 사례다. (OECD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규모는 세계 11위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글로벌 테크 플랫폼들이 동남아시아, 중동, 남아메리카에서 독재정권이나 극우 정치세력이 생산하는 혐오 콘텐츠나 가짜 뉴스 규제에 적극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미얀마에서는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가짜 뉴스가 페이스북을 통해 퍼지면서 로힝야족 탄압이 정당화됐다. 2021년 12월에는 로힝야족 난민 20여 명이 영국 로펌을 통해 페이스북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로힝야족을 겨냥한 혐오와 폭력 선동 포스팅을 페이스북이 방치했다는 이유다.
필리핀의 경우 '인터넷이 곧 페이스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 페이스북 사용 비율이 높고 두테르테 정권은 2016년 페이스북을 활용해 정권을 잡았다. 정권에 비판적인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는 2021년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에 해가 된다며 비난했다. 이후 트위터가 필리핀에서 오는 5월 총선에 출마할 예정인 독재자 아들 마르코스의 가짜 정보 확산에 제재를 가하는 등 조처가 취해지고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확실히 이들 테크 기업들에게는 전환점이다.글로벌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특성상 사기업이지만 전 세계 민주주의 수호라는 공적 책무의 무게를 함께 져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인터넷의 개방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성장한 이들 기업들이 더 이상 "사기업이니 어쩔 수 없다"라며 은근슬쩍 꼬리를 내리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이다. 국제사회가 목소리를 모아 러시아를 비난하고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어 테크 플랫폼이 서방의 편을 드는 게 비교적 쉬워지기도 했다.
이들 기업에게는 완전히 상반된 압박이 들어온다. 우크라이나 디지털 전환 장관인 미카일로 페도로프는 애플 CEO 팀 쿡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2022년, 탱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좋은 답은 현대 기술"이라며 러시아에서 사업 철수를 요구했다. 페도로프 장관은 메타, 알파벳, 애플, 넷플릭스 등 다른 테크 기업들도 러시아에서 아예 서비스를 철수하거나 제한하여 러시아 국민들이 정부에 반발하도록 뒤흔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대다수 테크 기업들이 신규 광고 수주나 러시아 내에서의 상품 생산 중단 등을 택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들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하기도 어렵다. 단순히 비즈니스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소셜미디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다.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러시아가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소셜미디어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수호하는 중요한 정보 인프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를 분열 전략에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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