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큰 규모의 손실을 기록한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의 안정성 우려가 불거지면서 유럽 은행들의 조달 비용이 치솟았다. 스위스 규제 당국은 스위스 1위 은행인 UBS(Union Bank of Switzerland)와 2위인 크레디트 스위스를 합병시켜 간신히 사태를 수습했다.
다행히도 크레디트 스위스 구제 이후 추가적인 뱅크런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긴박했던 3월이 지나간 후 현재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아가는 모양새다.
은행 위기는 전통적인 금융산업과 거래가 먼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됐다. 1983년 설립된 실리콘밸리 은행은 주로 스타트업과 테크 기업에게 대출을 주선했다. 또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을 서로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도 했다.
스타트업들이 투자받은 돈을 실리콘밸리 은행에 예치하면서 은행의 운명은 테크 산업에 단단히 엮였다.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한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First Republic Bank)도 부유한 테크 기업 직원과 설립자들을 상대로 대출을 해주고 예금을 받으면서 테크 산업 노출이 커지게 됐다.
2020년 이후 테크 주식들이 급등하는 기간 실리콘밸리은행과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의 주가는 나스닥 움직임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2020~2021년 테크 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실리콘밸리 은행도 큰 수혜를 받았다. 테크 기업들에 투자금이 쏟아지면서 예금 규모가 급증한 것이다. 실리콘밸리 은행은 넘쳐나는 예금을 부도 위험이 없는 장기 국채와 정부 보증 모기지 채권에 투자했다.
연방준비은행(연준)의 이자율 인상과 함께 스타트업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실리콘밸리 은행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추가 자금 조달에 실패한 스타트업들이 은행에 예치한 현금을 꺼내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객들의 예금 인출에 대응하기 위해 앞서 투자했던 장기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매각하면서 장부상 손실이 발생했다.
부도 위험이 없는 정부 채권이지만 금리 상승으로 평가손이 발생한 상황이라 당장 매각하면 손실이 확정된다. 해당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할 수 있다면 매입 금리(만기수익률(YTM) 기준)를 매년 수익으로 계상할 수 있지만 예금이 계속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매각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최근 금리 인상으로 테크 기업과 스타트업들이 가장 취약해졌기 때문에 해당 산업에 노출이 가장 큰 은행에서 위기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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