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가장 먼저 나서고

우선 미국과 영국은 유럽의 계획과 상관없이 러시아산 석유의 수입 중단을 알렸어요. 이들에 비해 더 구체적인 계획과 방안을 세우고 대응을 해야 하는 유럽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유럽의 가장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면서 러시아 자원 의존도가 높은 독일이 통 크게 나섰어요. 독일은 러시아와 독일을 직통으로 잇는 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드 스트림 2(Nord Stream 2)의 승인 중단을 알렸고, 최근에는 무려 2000억 유로(약 271조 원) 규모의 재생에너지 투자 계획을 밝혔는데요. 205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세운 풍력과 태양 에너지 기반 재생에너지 100% 비율을 2035년까지 끌어당기겠다는 계획이에요. 

석탄과 석유 그리고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화석 연료를 단 13년 내에 줄이겠다는 계획은 야심차 보여요. 더군다나 러시아에 천연가스 수급의 50% 넘게 의존하는 이들이 짧은 기간에 이를 이룰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있는데요. 2000억 유로라는 투자 계획을 들고 나온 이유는 이 문제를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에요. 이번을 기회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도 더 빨리 달성하겠다는 메시지도 명확하게 낸 것이고요. 큰 투자에 대해 더 큰 정당성까지 부여한 것이죠.

현재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는 (이런 제재가) 전시에 어떻게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이제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는 핵심 비용인 에너지 구매까지 끊어 그 압박을 절정으로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죠. 에너지 판매 외에는 경제 기반이 얇은 러시아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고요. 향후 닥쳐올 경제 위기까지 생각한다면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움직임이에요.

일단 당장 수급은 어떻게?

현재 유럽이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석유, 가스 그리고 석탄의 값은 하루에 최대 10억 달러(약 1조 2300억 원)에 이르러요. 그렇기에 하루빨리 수입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EU 내부에서 모아진 상황이고, 향후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결정은 각국에 맡기겠지만 이들 에너지의 수입을 다른 국가에서 할 것을 당부하고 있죠. 

이 중에서 석탄은 풀기 가장 쉬운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어요. EU 전체 수입량의 70%는 미국과 호주로부터 당장 대체할 수 있다고 유럽의 석탄 무역 기구인 유라콜(Euracoal)은 분석하고 있어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유럽이 석탄 발전소 가동률을 높인다면 당장 연말까지 러시아 가스 수입량의 15%를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고요.

석유의 경우에는 물론 더 복잡한 셈법이 작용해야 하는데요. 이론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UAE, 그리고 이라크로부터의 수입량을 늘리면 단 몇 개월만에 러시아산을 모두 대체할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생산량 증대에 회의적인 상황이기에 현재 미국도 증산 설득에 나서고 있죠. (물론 최근 미국 경제 최대 이슈인 물가 안정을 위해서도 석유 가격 안정은 필요한 상황이에요) 그동안의 제재로 현재 국제 시장에서 거래가 금지되었던 이란과 베네수엘라 원유도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미국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어요. 이란과 베네수엘라가 논의되는 것은 그만큼 전방위적으로 해법을 찾고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죠. 

하지만 당장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를 시장에서 지워나가는 건 큰 비용을 수반해요. 수급 불안정성이 더해져 가격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는 트레이더들은 현재 배럴당 110달러에 이른 석유 가격이 3월 내 150~200달러 이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하고 있죠. 위와 같이 러시아 석탄과 석유를 대체하는 계획을 실현하려면 유럽이 감당해야 하는 추가 비용은 1000억 유로(약 135조 원)*가 넘을 것으로 예상돼요. 

* 블룸버그의 계산에 따르면 석탄 대체 수입은 200억 유로(약 27조 원) 그리고 석유 대체 수입은 800억 유로(약 108조 원)에요. 

가스 수급은 더 어렵지만

석탄과 석유의 경우,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 공조로 (물론 쉽지는 않지만) 빨리 해결이 가능한 문제로 보고 있어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유럽의 난방을 책임지는 천연가스예요. 작년 가을에 러시아는 이미 가스 수급을 무기로 유럽과 크게 대척했죠. 가스 수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노르웨이, 알제리, 그리고 아제르바이잔과 더 많은 파이프를 연결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예요. 다음 겨울이 오기 전까지 현재 러시아 가스 수급의 최대 50%를 줄이려면 액화 천연가스(LNG) 등의 수입 증대도 이루어져야 하고요. IEA는 이 외에도 새로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석탄, 원자력, 바이오매스 등의 사용이 모두 증대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고 있죠.

이를 위해 추산되는 추가 비용은 약 600~1000억 유로(약 81~135조 원)에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과 미국 등으로부터 LNG 수입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되기에 그 비용은 더 커질 수도 있고요. 결론적으로 유럽이 러시아의 화석 연료를 대체하려면 현재 추정으로 올해만 최대 2000억 유로(약 271조 원)에 이르는 비용을 치러야 하는데요. 결코 만만한 금액은 아니죠.

'오일 엠바고'와 같은 상황 대비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가스의 의존도를 하루빨리 끝내는 것이 이를 유지하는 비용보다 적을 것이라는 분석을 냈는데요. 단기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많겠지만, 가스 수급을 러시아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경제, 정치, 사회적인 비용 그리고 향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임을 고려하면 지금의 선택은 최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런 상황 속에서 유럽은 유럽 전역 빌딩의 온도를 섭씨 1도 낮춘다면 러시아로부터 가스 수입량의 최대 7%를 올해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는 1973년 중동의 국가들이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들에 원유 수출을 금지했던 (1차 오일 쇼크로도 불리는) '오일 엠바고(Oil Embargo)'로 인해 짝수날에는 짝수 번호를 가진 차량만 주유를 할 수 있는 등 갑작스런 위기에 대응하는 데 시민들의 협조와 희생를 요청했던 당시를 연상케 하고 있어요.*
* 오일 엠바고 당시 미국은 시민들이 각 가정의 온도 유지 기준을 낮추고, 차량 운행 속도를 시간당 55마일(약 88km) 이하로 할 것을 독려하면서, 1975년까지 석유 소비를 줄여나갔어요. 

만약 유럽이 빌딩 온도를 낮추는 선택을 한다면 이는 우크라이나를 지키자는 캠페인에 동참한다는 의미까지 부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죠. 부차적으로 현재 치솟는 에너지 가격으로 인한 각종 공과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설득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요. 물론 이런 상황은 현재 상황이 얼마나 시급하고 엄중한 지의 메시지도 시민들에게 전할 것으로 예상돼요.

어려운 상황 속 밝은 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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