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플레이션이 간절한 나라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화. 아직은 일본 여행하기 좋을 때
일본은 왜 전 세계가 금리를 올리는 와중에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시장에 여전히 돈을 풀고 있을까요? 일본의 경제 정책은 왜 지금 세계 경제가 가는 방향과 거꾸로 가는 걸까요?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전해줍니다. 일본이 왜 엔저 기조를 유지하고, 왜 지금 디플레이션 탈출에 사활을 건 베팅을 하는지를 명확하게 풀어줍니다.

소위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일본의 장기적인 경제 불황이 소개되곤 하는데요. 일본은 세계 정세와 경제가 어지러운 현재 상황 속에서 오랜 불황을 끊어낼 기회를 찾고 있어요.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3위 규모의 경제를 유지 중이며 여전히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본의 상황이 지금 우리에게도 왜 중요한지 다시 곱씹어볼 수 있습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화.

인플레이션이 간절한 나라

feat. 아직은 일본 여행하기 좋을 때

세계 각국이 인플레이션과 싸우느라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시장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고 있는 와중에 나 홀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지난 가을 엔화가 30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일본은행은 한 달 반 동안 4차례에 걸쳐 무려 87조 엔(약 831조 원)을 풀어 환율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반대로 지난 여름에는 국채 수익률 관리 차원에서(=저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무제한 국채 매입 정책을 확장했는가 하면, 작년 11월에는 사상 최대인 55조 7000억 엔(약 532조 원)의 경기 부양책을 내놓는 등 여전히 시장에 어마어마한 양의 돈을 풀고 있다.

시장에 풀린 돈의 양이 많으면 화폐 가치는 당연히 떨어진다. 한쪽에서는 돈을 풀고, 한쪽에서는 화폐 가치를 방어하는 일본, 이 앞뒤가 안맞는 통화 정책의 배경은 뭘까? 무엇보다, 언제까지 일본은 초엔저를 고수할 수 있을까?

엔화는 계속 버티고 일본이 원하는 수준의 엔저를 유지할 수 있을까?  

10년? 30년을 기다렸다
지난 30년간 디플레이션이라는 괴물과 지긋지긋한 전쟁을 계속해온 일본의 목표는 비교적 명확하다. 급작스러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다소간의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어떻게든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해서 소득 상승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이 목표만 달성할 수 있다면 엔화는 궁극적으로 안정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금리인상과 이로 인한 경기침체도 어느 정도 연착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쿠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입장에서는 취임 이후 거의 10년을 기다려온 절호의 찬스인 셈이다. 쿠로다 총재는 일본 경제를 서서히 그러나 착실하게 침몰시켜 온 디플레이션을 끝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물가가 내려가면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은 성장 없는 경제의 상징과도 같다. 무엇보다 물가의 장기적 하락은 소득도 함께 내려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의 성장 엔진이 멈추고 질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과 자산 소득이 줄어드는데 물가만 싸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전 세계 원자재 가격의 급등은 마침내 일본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끌어올렸다. 올해 일본은 일본은행의 목표였던 2%를 훨씬 넘은 3% 인플레이션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지난 30년 동안 "물가는 내려가는 것"이라고만 믿어왔던 일본 기업과 국민들의 사고방식이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허용하여 30년 디플레이션의 심리적 철옹성을 무너뜨리고 "물가가 오를 수도 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일본의 핵심 물가 지수는 최근 40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미지 캡처: 로이터)

문제는 임금이야!
실제로 일본 내각부의 정기 조사 결과에 따르면 60%가 넘는 일본 국민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구매력 감소에도 불구하고 향후 수년간 물가가 5%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우선 2%의 인플레이션을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초저금리와 대규모 양적완화로 시장에 돈을 풀어 디플레이션 탈출을 유도하려 했던 아베노믹스의 절정인 2014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인플레이션이 실질 소득 상승으로 이어지기만 한다면, 일본의 30년 디플레이션 악몽도 끝이 보인다는 것이 일본은행과 일본 정부의 간절한 바람이다. 그동안 꾸준히 소득이 상승해온 미국이나 유럽과는 본질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성격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에 지금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엔저로 인한 환율 수혜로 실적이 개선된 기업들이 고용과 임금 인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은행은 매년 봄 노조들이 임금협상을 주도하는 춘투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일본 최대의 노조연합인 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는 2023년 전년 대비 5% (기본급 3%) 인상을 목표치로 정했다고 한다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임금 인상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 또다시 디플레이션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증가하고, 다시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증가하는 선순환이 건강한 인플레이션의 기본이다. 내년 4월 임기가 끝나는 쿠로다 총재로서는 최소한의 임무를 완수하게 되고, 그동안의 저금리와 양적완화에서 출구 전략을 짜는 것은 신임 총재의 숙제가 된다.  

엔저는 양날의 칼이다. 수출 기업에게는 축복이지만, 수입 물가가 올라가면서 일반 소비자들의 부담이 올라간다. 특히 전 세계가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건강한 수준'을 넘어선 인플레이션에 골치를 썩고 있는 시점에선 더욱 그렇다. 

기업들은 임금 인상에 그 어느 때보다 전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적 개선이 임금 인상을 상쇄할 만큼 크지 않을 경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많이 옮긴 데다, 자동차 전자제품 등 일본이 전통의 강자였던 섹터에서도 이미 지는 해가 된 지 오래다. 최악의 경우 기업들의 실적만 악화되고 다시 불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

결국 선순환이든, 악순환이든 '첫 번째 고리'가 중요한데, 이 고리를 위해 누가 총대를 멜 것이냐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하지만 기업들 입장에서도 디플레이션 탈출은 간절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리스크 분담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오래 이어져 온 디플레이션 탈출에 사활을 걸고 베팅을 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 쇼핑할 시간?

일본은행이 엔저를 고수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엔화는 올해 들어서만 30% 가까이 가치가 하락했다. 일본 주식의 관점에서 보면 가만히 있어도 가격이 30% 떨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외 투자자들에게는 우량 주식을 사들일 절호의 기회이다. 일본에는 30년 불황에도 살아남은 탄탄한 기업들이 아직 많다. 

만약 해외 투자자들이 과거 2012~2014년의 아베노믹스 기간에 그랬듯 일본 주식 쇼핑에 나선다면 달러가 일본으로 흘러 들어올 것이고, 일본은행도 환율 정책에 훨씬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환율의 과도한 급락은 막을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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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안젤라는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주목해야 할 거시 경제 변화와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Long-from) 아티클입니다. 급격히 변하는 거시 경제 지형 속에서 놓치지 않고 주목해야 할 이야기를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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