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1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신생 신생 기업인 AOL이 거대 미디어 기업인 타임워너를 어떻게 삼켰는지를 자세히 다룬 기사를 실었다. 이 합병은 처음부터 엉망진창이었으며, AOL의 부풀려진 주가와 닷컴 버블의 붕괴로 인해 무산되었다. 타임워너 내부의 많은 올드 미디어 신봉자들은 인터넷 업계의 어려움에 흥분했고,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에 대한 애정을 잃고, 이전의 '정상적인' 방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김칫국을 마셨다. 하지만 더 이상 기존의 방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디지털에 대한 반작용이 컸던 그 (처참한 닷컴 버블) 시기에도 나는 처칠의 말을 빌려 당시 사태를 "시작의 끝(the end of the beginning)"이라고 표현했다. 음악, 영화, 책 등 모든 것이 여전히 끊임없이 디지털화될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언젠가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해줄 기술과 미디어의 결합은 무능한 타임워너의 리더들에 의해 지연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끝났다고? 그럴 리가 없었고, 바로 그때 나도 익사하지 않기를 바라며 직접 창업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 경력의 모든 변화는 약간의 불평에서 시작되었고, 나는 이미 월트 모스버그에게 칼럼니스트로 일하는 것에 대해 많은 불평을 하고 있었다(월스트리트저널에 쓴 칼럼은 아이러니하게도 '붐 타운(Boom Town)'이라는 제목이었다). 나는 내가 더는 거의 믿지 않는 매체로부터 받는 기대의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매주 마치 '반성문'을 쓰는듯한 현실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2005년에도 월스트리트저널이 계속해서 디지털을 경시하고 토요일 '인쇄판'을 계획하는 동안에, 에디터들이 모여 '젊은' 사람들이 신문을 읽게 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회의들에서 나는 마음이 계속 조급해졌다. 내 마음대로라면 프린트를 버리고 완전히 디지털로 전환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하지만 독자층은 나이가 많은 백인으로 점점 더 치우치고 있었으며, 그들은 그들의 '신문'을 좋아했다.
나는 내가 훌륭한 기자이지 좋은 직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월트에게 전화를 걸어 새롭고 신선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을 듣고서는 "우리 그 일 언제 시작할까?"라고 되물었다. 월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그런 그의 마음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우리는 고민 끝에 월트가 가진 영향력을 활용해 우리가 새로운 벤처를 '스컹크웍스(Skunkworks, 높은 자율성이 주어지는 사내 별도 프로젝트)'로 시작할 수 있도록 월스트리트저널 경영진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테크 업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이 용어는 모선에서 (필요한 것을) 탈취해 더 작고 더 빠르게 움직이는 해적선을 만드는 혁신가들을 가리킨다. 우리는 뉴스 전달 방식을 혁신하고 라이브 이벤트를 주최할 수 있는 입담 좋은 말썽꾸러기들로 구성된 팀을 만들고 싶었다. 뉴스 조직에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태도와 개성을 갖춘 디지털 전용 매체를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속한 다우존스 제국을 훑으면서 권력자들과 상의했고, 대부분 외면했지만 새로운 상품을 팔고 싶어하는 광고 담당자의 마음을 결국 잡았다.
그 다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름이었는데, 로드아일랜드 주 뉴포트에 있는 TED 컨퍼런스 제작자 리처드 사울 워먼(Richard Saul Wurman)의 저택을 방문한 월트와 내가 그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그냥 D라고 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뭐든 될 수 있는 글자이다. 유쾌하고(Delightful). 도전적인(Demanding). 파괴적인(Disruptive)." 우리는 마지막 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고 'D: 올 띵스 디지털(All things Digital)'로 이름을 정했다. 메인 컨퍼런스도 같은 이름으로 했다. (우리가 월스트리트저널을 떠난 후 컨퍼런스의 이름은 '코드(Code)'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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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 책 등 모든 것이 여전히 끊임없이 디지털화될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언젠가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해줄 기술과 미디어의 결합은 무능한 타임워너의 리더들에 의해 지연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끝났다고? 그럴 리가 없었고, 바로 그때 나도 익사하지 않기를 바라며 직접 창업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 경력의 모든 변화는 약간의 불평에서 시작되었고, 나는 이미 월트 모스버그에게 칼럼니스트로 일하는 것에 대해 많은 불평을 하고 있었다(월스트리트저널에 쓴 칼럼은 아이러니하게도 '붐 타운(Boom Town)'이라는 제목이었다). 나는 내가 더는 거의 믿지 않는 매체로부터 받는 기대의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매주 마치 '반성문'을 쓰는듯한 현실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2005년에도 월스트리트저널이 계속해서 디지털을 경시하고 토요일 '인쇄판'을 계획하는 동안에, 에디터들이 모여 '젊은' 사람들이 신문을 읽게 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회의들에서 나는 마음이 계속 조급해졌다. 내 마음대로라면 프린트를 버리고 완전히 디지털로 전환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하지만 독자층은 나이가 많은 백인으로 점점 더 치우치고 있었으며, 그들은 그들의 '신문'을 좋아했다.
나는 내가 훌륭한 기자이지 좋은 직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월트에게 전화를 걸어 새롭고 신선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을 듣고서는 "우리 그 일 언제 시작할까?"라고 되물었다. 월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그런 그의 마음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우리는 고민 끝에 월트가 가진 영향력을 활용해 우리가 새로운 벤처를 '스컹크웍스(Skunkworks, 높은 자율성이 주어지는 사내 별도 프로젝트)'로 시작할 수 있도록 월스트리트저널 경영진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테크 업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이 용어는 모선에서 (필요한 것을) 탈취해 더 작고 더 빠르게 움직이는 해적선을 만드는 혁신가들을 가리킨다. 우리는 뉴스 전달 방식을 혁신하고 라이브 이벤트를 주최할 수 있는 입담 좋은 말썽꾸러기들로 구성된 팀을 만들고 싶었다. 뉴스 조직에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태도와 개성을 갖춘 디지털 전용 매체를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속한 다우존스 제국을 훑으면서 권력자들과 상의했고, 대부분 외면했지만 새로운 상품을 팔고 싶어하는 광고 담당자의 마음을 결국 잡았다.
우리는 마지막 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고 'D: 올 띵스 디지털(All things Digital)'로 이름을 정했다. 메인 컨퍼런스도 같은 이름으로 했다. (우리가 월스트리트저널을 떠난 후 컨퍼런스의 이름은 '코드(Code)'로 바뀌었다.)
"그는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 공황 발작을 일으킨다" 한 페이스북 임원이 몇 년 전에 내게 경고했었다. "기절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가 덧붙인 설명이었다. 나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저커버그에게 너무 모질게 대하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물론 통하지 않았다. 월터와 나는 메인 무대에서 크지 않은 체구의 그 청년을 몰아붙였고, 점점 창백해지던 그의 얼굴에 물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크는 내 주변에서는 항상 겁이 많은 타입이었다. 사실 2006년 팔로알토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게 처음 한 말은 "(당신은) 내가 X자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들었어" 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가 테크 역사상 가장 부주의하고 위험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믿게 되었다. 4년 후, 페이스북이 급성장하면서 마크는 곧 출시될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와 페이스북은 자신의 묘사에 대해 담당 할리우드 경영진에게 불만을 토로했고, 이는 당연히 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저커버그에게 웃어넘기라고 조언하고 시사회에 가서 그를 연기한 배우 제시 아이젠버그와 포옹이라도 하라고 말했다. "내러티브를 통제해, 마크"라고 하면서 말이다. "당신이 좋아하든 원하지 않든 영화는 개봉할 거다. 결국 당신은 그들보다 더 부유하고 유명해질 테니 뭣 하러 그렇게 신경을 쓰냐."
나중에 그는 결국 아이젠버그와 함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에 출연하는 등의 쿨한 모습을 보였지만, 저커버그는 이 컨퍼런스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화면에 나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나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박힐 것이다"라고 그는 당시 주름도 없던 이마를 찡그리며 내게 말했다. 이제 막 26살이 된 마크는 인생이 길다는 것과 앞으로의 마라톤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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