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이먼의 롱폼> 3화는 애플이 모바일 운영 체제인 iOS의 최신 버전부터 바꾼 개인정보보호 조치를 두고 페이스북과 왜 충돌하게 됐는지 상세히 들여다봅니다. 페이스북의 사업 모델을 크게 흔들 수 있는 조치를 애플은 왜 실행했는지, 본격화되는 반독점 조사 그리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커지는 개인정보보호 조치 강화 요구와도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한 번에 주욱 살펴볼 수 있어요. 재밌어서 늘 짧은 '롱폼'인데요. 오늘도 즐거이 읽으시길 바랄게요.
+ 테크 및 미디어 전문 칼럼니스트인 사이먼의 롱폼(Longform)은 "테크 비즈가 바꾸고 있는 세상 모습을 짧지 않게 전해드립니다"를 기치로 올해 1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찾아오고 있어요. 뭐든 압축적이고 짧게 만드는 숏폼(Short-form)의 시대에, 충분한 맥락과 내용을 담아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테크 비즈의 주요 이슈 분석을 롱폼(Long-form) 형식으로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발행된 <사이먼의 롱폼>도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커피팟의 롱폼 아카이브를 확인해 주세요. [사이먼의 롱폼] #3화 애플과 페이스북의 정면 대결이 남긴 것 페이스북의 광고 기능을 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페이스북의 광고는 큰 광고비를 사용할 수 없는 단체나 소규모 매장, 기업들에는 신이 내린 선물이다. 약 20년 전 구글 검색엔진이 처음 나왔을 때 느꼈던 충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광고는 수백, 수천만 원을 써서 누가 볼지도 알 수 없는 곳에 무작위로 뿌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페이스북은 단돈 몇천 원, 몇만 원 만으로도 타겟 오디언스에게 광고를 도달시켜주겠다고 약속하기 때문이다.
약속만 하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광고가 "OO일보 1면 하단에 게재"했고, "몇 부가 발행되었다" 정도의 정보를 줬다면 페이스북 광고는 정확하게 몇 명이 내 광고를 봤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전화 한 통 필요 없이 몇 분 만에 페이스북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가령 당신이 강원도 양양에 힙스터 취향에 맞는 카페를 차렸다면 그곳에 올 만한 사람들을 타겟으로 광고를 할 수 있다. 서핑을 취미로 하고 있거나, 강원도 여행을 자주 하는 20대를 골라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페이스북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더 많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도 운영하기 때문에 편리하게 골라서 광고를 하면 된다). 눈길을 끄는 문구와 예쁜 사진, 그리고 신용카드만 있으면 끝이다. 단순한 알림 메시지의 파괴력물론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사용자들의 정보를 아주 꼼꼼하게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타게팅은 사용자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광고주에게는 꿈의 도구가 되는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수집이 광고의 대상이 되는 사용자들에게는 악몽이 되는 건 당연하다. 이 둘은 페이스북이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지난해 말, 애플이 자사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iOS 최신 버전에서 앱이 수집하는 개인정보에 좀 더 투명하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했을 때 페이스북은 마치 애플이 핵무기를 전진 배치하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분노하며 애플을 상대로 전면전을 선언했다. 저커버그는 애플에 고통을 가하겠다(inflict pain)는 선정적인 표현까지 사용해가면서 분노를 표현했고, (온라인 미디어답지 않게) 주요 일간 종이신문에 전면광고를 게재하면서 애플의 조치에 항의했다.
그런데, 정확하게 애플이 무슨 조치를 취했기에 페이스북이 사활을 건 반응을 보였을까? 아래에 보이는 애플 CEO 팀 쿡의 트윗이 문제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당신의 행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하시겠습니까?" 팀 쿡은 자신의 트윗에서 "우리는 사용자가 수집, 사용되는 자신의 정보에 대해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페이스북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정보를 다른 앱과 웹사이트에서 계속해서 수집할 수 있지만, iOS14에 들어간 앱 추적 투명성(ATT, App Tracking Transparency)은 페이스북이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반드시 사용자의 동의를 얻게 한다"고 쓰면서 앞으로 아이폰 사용자들이 보게 될 알림 메시지 하나를 이미지로 보여줬다.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이 메시지 하나가 (광고로 벌어들이는 게 거의 전부인) 페이스북의 수익에서 수조 원을 날려버릴 수 있는 가공할 무기인 것이다.
이 메시지는 "페이스북이 다른 앱과 웹사이트에서 당신이 하는 행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하시겠습니까?"라고 묻고 (그리고 괄호 안에 페이스북이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했다) 사용자에게 두 버튼 중 하나를 누르게 한다: '추적하지 말도록 한다'가 상단에, '허용한다'가 하단에 나온다. 그런데 한 조사에 따르면 애플의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서 55%가 iOS를 업데이트하면서 페이스북이 자신을 추적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고, 이렇게 할 경우 페이스북 매출이 7%가량 날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매출 손실이 그보다 훨씬 더 큰 50%에 달할 거라고 주장한다. 비즈니스 모델의 정당성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 은행들이 고객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다가 발각된 일이 있었다. 미국의 은행들은 고객들이 잔고를 초과해서 수표를 발행하거나 직불카드(debit card)를 사용할 경우 벌금(overdraft fee)을 물리는데 그 액수가 엄청나다. 2011년 한 해에만 이런 벌금으로 소비자들이 낸 돈이 300억 달러(약 33조 9750억 원)가 넘었고, 이는 고스란히 은행의 수입이 된다. 그런데 일부 은행들이 고객이 모르게 벌금을 뜯어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잔고가 40달러 밖에 없는 고객이 하루에 10달러, 10달러, 40달러를 썼다면 마지막에 지출한 40달러가 잔고를 초과한 지출이 되기 때문에 한 번의 벌금이 붙게 되는데, 이걸 처리하는 순서를 바꿔서 10달러, 40달러, 10달러의 순으로 지출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고객은 두 번의 잔고 초과지출을 했기 때문에 은행은 벌금을 두 번 뜯어낼 수 있다. 이를 꼼꼼하게 살펴본 사람이라면 은행에 항의해서 벌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들여다보는 사람이 별로 없고, 작정하고 돈을 돌려받기로 해도 전화기를 붙들고 30, 40분을 기다려가면서 항의를 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결국 은행들은 "프로그램상의 오류"라는 핑계로 엄청난 돈을 뜯어냈고, 이 방법을 고안해낸 사람은 승진까지 했다. 물론 이 사기가 들통나서 은행들은 거액의 과징금을 물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본 후였다. 이렇게 돈을 버는 방식은 소비자, 혹은 사용자가 특정한 행동을 할 것을, 혹은 하지 않을 것에 베팅하는 셈이다. 일정 숫자의 사람들이 전화로 항의를 하고 벌금을 돌려받더라도 훨씬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은행은 큰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이제껏 기대고 있었던 것이 사용자들의 관성이었다. 사용자들은 애플이 iOS를 업데이트하기 전에도 추적을 막을 수 있었다. 단지 세팅에 들어가서 몇 단계를 지나 그걸 꺼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애플은 과거에 옵트아웃(opt-out) 방식이었던 것을 옵트인(opt-in)으로 바꾼 것뿐이다. 페이스북 앱 사용자들에게 "추적을 허용하겠느냐"고 묻고, 사용자들이 의식적으로 추적을 허용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한 것이다. 팀 쿡이 페이스북을 나무라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단순히 사용자의 게으름에, 혹은 페이스북 앱이 얼마나 많은 추적을 하는지를 모르는 무지에 기업의 매출이 달려있다면 그게 과연 정당한 사업이냐고 묻는 것이다.애플의 계산 사용자가 이런 선택을 하게 하는 건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만 있었으면 애플은 이미 오래전에 이런 조치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애플은 왜 이제서야 이 문제를 꺼내고, 갑자기 사용자 편에 서는 듯한 행동을 하는 걸까? 이것이 페이스북이 애플의 의도를 의심하게 만든 대목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선보이고 플랫폼으로 키울 때는 가능한 한 기업이 자신의 플랫폼에 올라타게 만들어야 했다. 엄격한 기준은 필요했지만, 이들이 앱을 기반으로 (광고와 같은) 각자의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1위가 페이스북, 2위가 페이스북 메신저, 3위가 인스타그램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페이스북이 가진 서비스인 동시에 모두 무료 앱이다.
앱에서 사용자가 지출하는 금액의 30%를 가져가는 애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플랫폼을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 정작 돈은 한 푼도 내지 않는, 그러면서도 디지털 광고료는 구글과 함께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많이 사용하는 앱 4, 5위는 구글의 G메일과 유튜브 앱이다. 물론 이것도 애플에는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앱이다) 것이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러니 애플로서는 자신이 돈을 벌 기회를 주지 않는, 광고를 비즈니스 모델로 가진 기업의 수익원을 깨뜨리는 게 도움이 된다. 페이스북은 애플이 페이스북 앱을 유료로 전환하게 만들기 위해 프라이버시를 들고나왔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전혀 일리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무시하기 힘든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미국의 안과 밖에서 빅테크에 가해지는 압력이다. 지난 1화( 빅테크와 반독점 전쟁의 서막)에서 설명한 것처럼 애플과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은 현재 미국 정부와 의회로부터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는 중이고,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독점과 개인정보 수집 문제 등으로 끊임없는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빅테크에서는 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들의 비즈니스 관행을 청소하고, 선제적인(proactive) 제스처를 보여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 구글이 제3자가 개발한 쿠키를 통한 정보수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대외적인 이미지까지 좋아지니 결국 애플의 개인정보보호 강화 조치는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까지 잡을 수 있는 편리한 무기가 아닐 수 없다. 사태의 진전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저커버그가 클럽하우스에 등장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다. 저커버그가 클럽하우스에 나온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등장해서는 페이스북이 애플과 벌이고 있는 전쟁을 언급하며 자신의 (바뀐) 생각을 이야기한 것이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애플이 아무리 그래도 우린 끄떡 없다"고 피력했다. (이미지: 클럽하우스 'PRESSCLUB' 클럽) 이 자리에서 저커버그는 우리 회사에 큰 타격이라고 외치던 지난 몇 달과는 달리 "애플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의 변화가 페이스북 제품을 더욱 "유리한 위치(stronger position)"에 놓이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했다. 그는 애플의 조치가 페이스북의 광고를 사용하는 소상공인들(small businesses)이 고객을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하면서도 "애플의 (정책) 변화가 더 많은 기업이 페이스북 플랫폼 위에서 커머스를 운영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이 사용자의 데이터를 이용해서 찾아낸 고객들은 페이스북 플랫폼 밖에서 기업의 제품,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이게 애플의 조치로 어려워지니 아예 플랫폼 안에서 커머스를 처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페이스북이 어떤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페이스북이 애플과 싸움을 계속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이자 다음 날인 지난 금요일(3월 19일)에 페이스북의 주가가 4% 상승하면서 시장의 기대를 반영했다. 물론 애플의 조치로 인해 개인정보보호가 획기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애플 제품의 사용자들이 이미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단지 전면에 가져왔을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애플의 움직임이 현재 테크 업계의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사용자 정보에 대한 보호 요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고, 점점 더 많은 사용자가 이 문제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변화한 온도를 실감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선출과 그의 재임 기간을 지나면서 쌓여온 빅테크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분노와 각성은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조리 차지한 민주당에서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반응, 혹은 대응을 할 필요를 느끼는 기업들은 플랫폼 기업들이고, 그 플랫폼에 올라타고 있는 기업들은 플랫폼 기업이 취하게 되는 조치를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애플과 페이스북의 대결은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변화의 패턴을 제일 먼저 보여준 예에 불과할지 모른다. ☕️ 글쓴이를 소개합니다사이먼(Simon)의 한글 이름은 박상현이다. 현재 조선일보, 중앙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에 테크 산업과 미디어 및 사회에 관한 칼럼을, 피렌체의 식탁과 씨로켓 브리핑의 뉴스레터에 각각 미국 정치와 미디어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메디아티(Mediati)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뉴욕의 페이스 대학교(Pace University)에 방문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라스트 캠페인> 등의 역서가 있다. 올해부터 커피팟에도 글을 연재한다. 🎤 커피팟을 소개해 주세요! "해외 비즈 이슈의 흐름과 맥락을 알려줘요." "새로운 산업 트렌드를 팔로우할 수 있어요." (구독 전이라면) 아래 버튼을 누르시면 돼요! ☕️ good@coffeepot.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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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과거에 옵트아웃(opt-out) 방식이었던 것을 옵트인(opt-in)으로 바꾼 것뿐이다. 페이스북 앱 사용자들에게 "추적을 허용하겠느냐"고 묻고, 사용자들이 의식적으로 추적을 허용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한 것이다. 팀 쿡이 페이스북을 나무라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단순히 사용자의 게으름에, 혹은 페이스북 앱이 얼마나 많은 추적을 하는지를 모르는 무지에 기업의 매출이 달려있다면 그게 과연 정당한 사업이냐고 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