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이어야 했던 이유
첫째, 내부고발자들이 흔히 겪어야 하는 고난을 피하기 위한 장치가 보인다. 내부고발자들은 고발 당사 기업에게 명예훼손소송을 비롯해 반드시 공격당한다. 명예훼손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명분이다. 그런데 하우겐이 상원 청문회나 언론에 밝힌 '내부고발 이유', '향후 페이스북 규제 방향성' 등을 보면 페이스북이 쉽사리 맞소송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우겐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페이스북을 상대로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현재의 이슈가 단순히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주주 이익에도 반한다"는 게 이유이다. 앞으로 페이스북을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는 오히려 "쪼개면 안 된다. 자칫 인스타그램에 콘텐츠 규제 자원이 몰리면서 페이스북에는 가짜정보가 난무할 수 있다"는 기업 친화적 해법을 낸다.
둘째,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즈가 아니라 친기업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을 폭로 매체로 섭외한 이유도 짐작해볼 수 있다. 빅테크 규제는 민주-공화당 양당이 원칙에는 합의하고 있으나 무얼 주제로 잡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론적으로는 의견이 갈린다. 이런 가운데 하우겐은 "기업을 쪼개는 대신 이들이 가진 데이터나 알고리듬에 대한 극도의 투명성을 요구하자"고 주장한다. 실제로 하우겐은 상원 청문회에서 이례적으로 민주-공화 양당 상원의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얽히고설킨 규제 방향성을 하나로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현실적 규제 방향(공화당에서 좋아할 만한)과 도덕적 근거(민주당에서 좋아할 만한)를 모두 제시한 걸로 보인다. 이런 정치적 복잡성 속에서 최대한 공격당하지 않으면서 아젠다 세팅을 할 만한 비중있는 매체로써 월스트리트저널이 적합했다고 판단한 걸로 보인다. 늘 그렇지만 달 대신 손가락을, 메시지 대신 메신저를 보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참고로 월스트리트저널은 폭스 뉴스 등을 소유한 미디어 거인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k)이 소유한 매체로 취재 기사를 쓰는 편집국은 중도 성향이고, 논설위원실은 보수 성향이다.)
내부고발자인 하우겐이 치밀한 전략을 구사한 데 비해 정작 페이스북은 지금까지 대중과 정치권의 분노를 가라앉힐 만한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키즈 인스타그램'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지만, 그 정도로 끝날 것 같지 않다. (거기에다 타이밍도 얄궂게 하우겐의 상원 청문회 바로 전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사이트가 무려 5시간이 넘게 다운되었다.)
산타클라라 대학교 부설 리더십윤리 센터의 앤 스키트(Ann Skeet)는 저커버그의 방어적 반응이 "고교 토론대회에서 무조건 이기려고 하는 참가자 자세"와 같다고 지적했다. 지는 것을 못 참아 경쟁사와의 경쟁을 전쟁에 비유하는 저커버그 특유의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에서 절반 넘는 의결권을 가지고 있어 실질적이고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저커버그를 견제하기 위해 독립적 이사회 의장을 선임하자는 의견이 주주총회에서 나온 적도 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주주총회에서는 급기야 "페이스북이 독재 기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