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믿을 수 없는 미 연준의장이 오면

[부엉이의 차트피셜] 차기 미 연준의장 케빈 워시 분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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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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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미 연준의장으로 지목된 케빈 워시의 행보는 시장에서 엇갈린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더 높습니다. 가장 유력한 주자였던 트럼프의 '픽' 케빈 해셋이 월스트리트의 우려로 낙마하게 되었지만, 케빈 워시가 미 연준의 독립성을 더 잘 지킬 인물인지는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는 미 연준이 과하게 데이터에 의존을 한다며, 더 직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통화 정책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궁극적으로 미 연준의 역할을 금리 조절이라는 좁은 범위로 축소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요. 

이런 그의 주장들보다 더 위험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 그가 미 연준의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느냐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현 연준의장인 제롬 파월에 대한 믿음이 갈수록 강해져 왔고, 그가 이끌어 온 방향의 통화 정책에 큰 신뢰를 보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반대 방향으로 가겠다는 의도를 가진 미 연준의장이 들어온다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오늘 [부엉이의 차트피셜]을 통해 케빈 워시라는 인물을 분석해 보고, 미 연준의장이 마주한 현실과 그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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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의 차트피셜] #차기미연준의장 #통화정책
시장이 믿을 수 없는 미 연준의장이 오면
차기 미 연준의장 케빈 워시 분석하기

케빈 워시(Kevin Warsh)가 차기 연준의장으로 공식 지명됐다. 워시는 다른 유력한 후보였던 대통령 경제자문 케빈 해셋(Kevin Hassett), 현직 연준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Christopher Waller),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채권 담당 임원 릭 라이더(Rick Rieder)를 제치고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워시는 10년 넘게 연준의장 자리를 준비해 왔다. 그는 2017년에도 이 자리에 도전했지만, 당시에는 너무 젊었다. 인플레이션을 지나치게 우려한 과거 기록도 저금리를 원했던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트럼프는 제롬 파월 의장을 연임시켰다. 이제 55세가 된 워시는 마침내 원하는 자리를 얻었다. 상원의 인준을 받으면 5월 중순에 임기가 끝나는 파월의 뒤를 이어 연준의장이 될 것이다. 

쟁쟁한 경쟁자들이 연준의장이 되기 위해 여러 달 동안 노력했다. 특히, 현직 연준 이사인 월러는 경력 면에서 가장 좋은 선택지로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허물고 싶어 하는 파월 의장이 이끄는 연준과의 연속성이 높다는 이유로 선택받지 못한 것 같다. 

연초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는 현직 경제자문위원회장 해셋이었다. 예측시장 폴리마켓에서 그의 지명 확률은 80%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해셋이 트럼프의 금리 인하 요구에 과하게 순응하여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채권시장을 망가뜨릴까 봐 우려한 월스트리트의 CEO들은 해셋을 임명하지 말라고 트럼프 행정부에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가 파월 의장을 압박하기 위해 사법부를 동원했을 때, 연준의 독립성을 우려한 (일부 공화당원을 포함한) 정치계의 강한 반발은 해셋의 기회를 꺾은 것이다.

블랙록 임원 릭 라이더는 과거에 민주당 정치인과 트럼프의 경선 경쟁자 니키 헤일리에게 기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트럼프의 눈 밖에 났다. 현직 연준의장을 "완고한 노새"라고 표현한 대통령은 이번 지명자가 "이 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후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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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해셋을 피했지만, 케빈 워시도 만만치 않다. (이미지: 후버 연구소)
경력과 인맥 모두 되는 케빈 워시
케빈 워시는 1970년 뉴욕주 올버니에서 학교 교복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공공정책을 전공한 뒤 하버드 법학대학원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했다. 학부 시절부터 뛰어난 네트워킹 능력으로 주목받았는데, 스탠퍼드의 한 경제학 교수는 부시 행정부의 인재 추천 요청에 워시를 즉각 추천하며 "내가 가르친 학생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워시는 1995년 모건 스탠리에서 투자은행가로 금융 경력을 시작했다. M&A 분야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2002년 월스트리트를 떠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경제정책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시기에 그는 워싱턴의 정치 역학과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추게 되었다. 

2005년, 벤 버냉키가 연준의장 지명을 위해 백악관에 합류했을 때 워시는 그의 상원 인준 청문회 준비를 도왔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준 이사로 지명되었는데, 당시 35세로 역대 최연소 연준 이사가 되었다. 

연준 이사 재임 기간(2006~2011년)은 워시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그의 월스트리트 인맥과 금융시장 이해도는 버냉키 의장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산이 되었다. 당시 골드만 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파인(Lloyd Blankfein) CEO는 워시에 대해 "혼돈의 순간에도 침착했다"고 회고했다. 워시는 월스트리트 CEO들과 공화당 지도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고, 연준 직원들 사이에서는 '워시한테 확인했어?'라는 말이 관용구가 될 정도였다. 한편, 워시는 자신의 이사 직책을 내세우기보다 의회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버냉키 의장의 보좌관'이라고 소개할 만큼 겸손한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워시는 양적완화(QE)에 대해 일관되게 회의적 입장을 견지했다. 2010년 11월, 버냉키가 추진한 2차 양적완화(QE2) 정책회의에서 워시는 반대를 주장했다. "부담을 의회와 행정부에 돌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결국 의장에 대한 충성심으로 찬성표를 던졌으나, 며칠 뒤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문을 써서 공개적으로 의구심을 표명했다. 이 행보는 그를 공화당 내에서 '내부자 출신의 개혁파'로 자리매김하게 했지만, 동료들 사이에서는 정책의 실효성을 약화시킨다는 비판도 받았다. 

워시는 2011년 연준을 떠난 뒤 스탠퍼드 대학교 후버 연구소의 펠로우가 되었고, UPS 이사회에 합류했으며, 전설적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패밀리 오피스인 듀케인 캐피탈 매니지먼트(Duquesne Capital Management)에서 파트너로 일했다. 드러켄밀러 밑에서 10년 이상 경제와 시장을 논의하며 실전 투자 감각을 갈고 닦았다. 

워시는 2002년 화장품 재벌 에스티 로더 가문의 제인 로더와 결혼했다. 장인인 로널드 로더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주오스트리아 대사를 지낸 공화당의 주요 기부자이자 트럼프의 오랜 지인이다. 로더 가문의 일부는 트럼프의 마라라고 리조트와 같은 팜비치 해안가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어, 워시는 트럼프의 보수 생태계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트럼프와의 관계는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워시는 연준의장 후보로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제롬 파월에게 자리를 내줬다. 2024년 대선 승리 후 트럼프는 워시를 마라라고로 불러 재무장관 후보로 면접을 보기도 했다. 재무장관 자리는 스콧 베센트에게 돌아갔지만, 워시는 연준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호감을 얻었다. 

모건 스탠리에서 시작된 투자은행 경력, 드러켄밀러 밑에서의 14년간 투자 실무, 금융위기 당시 월스트리트와의 직접적 소통 경험은 워시에게 금융시장에 대한 실전적 이해를 부여했다. 학계 출신이 주류인 역대 연준의장들과 달리, 시장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그의 배경은 연준 운영에 차별화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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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워시는 벤 버냉키가 미 연준의장이던 시절에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미지: 브루킹스 연구소)
워시가 생각하는 통화 정책의 방향
차기 연준의장 지명자의 통화정책 처방전은 단순하다. 성장을 높이고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중앙은행 대차대조표를 축소(중앙은행이 보유한 자산 규모를 축소)하라는 것이다. 그는 AI가 생산성 혁명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저금리가 저물가와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 인터뷰(FT Unhedged, Robert Armstrong, 2026년 2월 2일자)에서 워시는 이렇게 말했다.
 
"정책 입안자들에게 AI가 주는 난제는 경제는 성장하는데 그 수치가 당장 생산성 통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의 단순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기술이 닿는 모든 것은 저렴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당신이 중앙은행가로서 후행적인 경제 데이터만 쳐다보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늦었습니다. 국가가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더 빨리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유사한 사례는 1993년과 1994년 인터넷 혁명이 시작될 때의 앨런 그린스펀입니다. 그는 당시 정교한 데이터보다는 일상의 징후들을 토대로 우리가 금리를 올릴 상황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 강한 경제와 더 안정적인 물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통화정책이 데이터보다 직관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제롬 파월 및 전직 의장들이 실천해온 '데이터 의존적' 통화정책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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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부엉이의 이름은 이기원이다. 다양한 금융기관에서 채권 관련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 자산운용사에서 채권형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채권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가치투자에도 관심이 많다. 워런 버핏의 열렬한 추종자로 버크셔 헤서웨이 주주총회를 2차례 방문하고 다수의 관련 기고도 했다.

[부엉이의 차트피셜]은 친숙하지만은 않은, 하지만 누구에게나 중요한 금리와 채권 시장을 비롯한 금융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주요 지표와 차트를 기반으로 풀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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