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을 깨고 나오는 AI 시대의 고민

1. 너무 빨리 발전하는 AI, 2. 중국 배터리의 유혹, 3. 줄어든 기후테크 투자
오늘은 이제 각종 플러그인까지 연동하며 알을 깨고 나오는 챗GPT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전해드립니다. 최근 AI의 발전에 있어 짚어보고 생각해 볼 이야기를 담았어요. 이어서 중국 배터리를 계속 써야 한다는 미국 제조사 포드와 테슬라의 움직임이 의미하는 바, 그리고 줄어든 기후테크 투자 현황을 간략히 살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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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생성AI #챗GPT플러그인
1. 알을 깨고 나오는 AI 시대의 고민
최근 오픈AI는 챗GPT가 다양한 파트너 및 써드파티(외부 서비스)의 API를 이용할 수 있는 플러그인(Plugin)이라는 기능을 공개했죠. 오픈AI의 소개에 따르면, 챗GPT 플러그인은 “안전을 핵심 원칙으로 삼아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 용으로 특별히 설계된 도구로, 챗GPT가 최신 정보에 액세스하고 계산을 실행하거나 타사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라고 했고요.

이제 챗GPT에 플러그인을 연동하면 레스토랑 검색 서비스를 호출해 주말에 갈만한 멋진 레스토랑 리스트를 추려달라고 할 수도 있고, 레시피 앱을 활용해 오늘 저녁에 먹을 레시피 추천을 받은 후, 추천받은 레시피 재료들을 바로 주문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챗GPT는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호출해 필요한 식료품들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게 됩니다. 마치 쿠팡이나 이마트 온라인 장보기를 하는 것처럼요.

지금까지의 챗GPT가 일종의 닫힌 하나의 다른 '계' 안에 있었다면, 이제 플러그인을 통해 마침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인데요. 이렇게 실제 세계와 상호작용까지 할 수 있게 된 챗GPT는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오픈AI의 달리(DALL-E)가 "깨지려는 알의 모습"이라는 설명에 따라 생성해 준 이미지예요.
머리에 팔과 손, 다리가 생긴 AI
우선 플러그인의 의미는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머리만 있었던 AI가 팔과 손, 다리를 가지게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요. 더욱 놀라운 점은, 챗GPT와 플러그인 연동을 원하는 서비스들이 별도 연동을 위한 코드 작성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저 연동하려는 API가 어떤 동작을 하는 것인지를 자연어로 설명하고, 어떤 API를 '호출'할 수 있는지만 알려주면 됩니다.

만약 플러그인이 없었던 챗GPT라면, 사용자가 "사과 1개 배달 주문해줘"라고 요청하면, "저는 AI 언어 모델로, 물리적인 것을 주문하는 것은 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플로그인이 연동된 챗GPT라면, 인스타카트(Instacart) 같은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호출하여 사과 배달 주문을 넣습니다.

근데 이렇게 연동 플러그인을 언제 호출하고, 호출하지 않을지 어떻게 판단할까요?

챗GPT는 대화의 맥락에서 적절한 순간에 연동된 API를 '알아서' 호출하여 대답을 해 줍니다. 심지어 오픈AI는 챗GPT 플러그인 연동 가이드에 호출할 순간을 명시적으로 지정하는 것을 지양하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챗GPT 플러그인에 연동된 서비스들은 수학 프로그램 검색 엔진인 울프람 알파(Wolfram Alpha), 식료품 배달 앱 인스타카트, 업무 자동화 툴 재피어(Zapier), 여행 앱 카약(KAYAK) 등을 포함해 총 11개가 있습니다. 주로 챗GPT가 약점이었던 계산이나, 실시간 여행 정보 검색이나 인터넷 쇼핑 등 사람들이 인터넷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분야들이에요.

놀라움 만드는 플러그인 사례들
실제 플러그인을 통해 만들어지는 사례들을 보면 놀라움을 감추기 힘듭니다.

  • 우선, 앞서 말씀드린 주말에 갈 레스토랑을 검색하고, 레시피를 추천, 주문받는 사례는 이 영상으로 단번에 설명이 되고요.
  • 회수(Retrieval)라는 이름의 써드파티 플러그인은 챗GPT에 '기억'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해당 플러그인을 사용한다면 새로운 챗이 시작되더라도 다른 챗에서 말한 내용을 기억하고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 여러 앱을 이어주는 재피어(Zapier)의 플러그인을 쓴다면 사실상 더 많은 서비스에 연결된 것이나 다름없어요. 재피어를 이용해 자신의 지메일 계정에서 특정 사용자에게 온 메일들만 골라서 읽어주는 것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 비디오 편집 플러그인을 이용한다면, 업로드한 비디오의 앞 5초만 잘라서 편집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고요.

이제 대충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인지 감이 오시나요? 링크드인의 창업자이자 OpenAI의 이사진이었던 리드 호프먼(Reid Hoffman)은 GPT와 같은 AI를 '증폭제(Amplifier)'라고 부릅니다. 마치 똘똘한 부하 직원이 모든 사람들에게 한 명씩 생긴 것과 같이 인류의 생산성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AI가 실제 세계로의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 통제에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GPT-4의 테스트 과정 중, GPT-4가 인력 소싱 서비스 태스크 래빗(Task Rabbit) 을 통해 실제 인간을 고용하여 캡챠(로봇 방지를 위한 퍼즐)를 풀려고 했다는 케이스가 논문에 실렸습니다. 심지어 고용된 사람이 GPT-4에게 봇(Bot)인지를 묻자, 자신에게 시각 장애가 있어 도움을 요청한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했죠.

이런 실제 사례에 더해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AI가 인간에게 명확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사례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AI가 태스크 래빗이 아니라, 딥웹이나 다크웹을 통해 암살자를 고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한 어떤 집단이 악의를 가지고 AI로 만들어진 사진을 통해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호감을 사 접근해 금품을 갈취하는 사기 행각을 말함)을 24시간 쉬지 않고 돌린다면 피해자들은 수도 없이 늘어날 수 있어요. 큰 혼란을 불러오고 순식간에 주요 기관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일들입니다.

구루들이 말하는 기대와 우려
앞으로 AI는 인간이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무엇이든 똑같이, 혹은 더 잘 해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사실은 가능성 여부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로 다가온 듯합니다. PC 시대를 연 구루 빌 게이츠와 AI 시대를 연 샘 알트먼은 각각 어떤 기대와 어떤 우려를 가지고 있을까요?

빌 게이츠는 최근에 자신 블로그에 올린 글 <AI의 시대가 시작되었다>에서 가장 기대하는 분야를 교육과 건강이라고 말합니다. 학생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진정한 맞춤 교육이 AI를 통해 가능해질 것이며, 건강 분야에서 또한 AI의 도움으로 값비싼 진단 기계들의 접근 가능성이 훨씬 올라가 특히 빈곤층에서의 건강 문제를 많이 해결해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샘 알트먼은 최근 테크 저널리스트 카라 스위셔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그가 AI를 통해 가장 혁신을 기대하고 있는 분야는 과학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딥마인드의 단백질 폴딩 기술 등을 비롯해 인간이 예측할 수 없던, 혹은 너무 많은 노동력이 들어 하지 못했던 것들을 AI가 대신 해줄 수 있으니 과학의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이 기대된다는 것이죠.

빌 게이츠와 샘 알트먼은 둘 다 AI의 통제 불가능한 발전에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그의 글에서 단기적으로는 AI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릴 수 있는 가능성, 장기적으로는 AI 가 통제를 벗어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점에 대한 우려를 표합니다. 샘 알트먼은 역사적으로 원자력, 우주 기술 등 중요한 기술 발전의 재원은 보통 정부가 담당했었지만, 시대가 바뀌어 이제 AI는 민간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 챗GPT로 촉발된 'AI 군비 경쟁'이 충분한 고민 없이 세상에 AI 모델을 내놓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딥마인드의 창업자 데미스 하사비스는 최근 한 강연에서 "AI의 개발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며 부수면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테크와 스타트업계에 널리 퍼진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유명한 말, '빠르게 움직이고 부숴라(Move fast and break things)'를 비틀어 인용할 것이죠.

이처럼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 속에서, 업계 선두에 있는 이들 또한 AI의 안전성, AI에 의한 거짓 정보의 배포 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습니다.

AI 개발 시대를 받아들인다면
이렇게 AI 군비 경쟁이 심화되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AI 모델과 놀라운 유스 케이스들이 나오는 와중, 비영리 단체 생명의 나무(Future of life institute)에서 "AI 개발을 잠시 중단하자"는 내용의 서한이 발표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죠.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를 비롯해 일론 머스크,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등 업계 내외의 전문가들을 포함해 28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은 이 서한은 GPT-4 이상의 모델을 학습시키는 일을 6개월간 중단하고, 안전 프로토콜 마련, AI 규제 정책 입안과 관리체계 마련 등에 단기간 집중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말에 불과할 뿐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AI 학계의 거물 앤드류 응 교수 또한 이러한 제안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어요. 개발을 중지하려면 결국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데,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기술을 정부가 중지한다는 것은 반경쟁적이며, 새로운 혁신을 위한 동기를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취지의 주장이에요. 구글의 CEO 순다 피차이는 최근 인터뷰에서 해당 서한이 공개된 데에 의의는 있다는 취지로 답변했으나, 구글이 AI 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분명히 했죠.

AI 군비 경쟁을 보통의 시민들은 어떻게 지켜봐야 하는 걸까요? AI를 도구이자 플랫폼으로써 활용하는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학습해두지 않는다면, 마치 PC를 고집하던 회사들이 모바일 시대에 밀려나고, 종이 신문이 인터넷 시대에 뒷전이 된 것처럼 스리슬쩍 발 딛을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좁아지지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장 AI에게 명령하는 법(프롬프트 엔지니어링, Prompt Engineering)을 연습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보다는, "내가 지금 하는 일에서 챗GPT에게 어떻게 도움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 좀 더 넓은 범위로 생각하고 활용을 빨리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그리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면) AI의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실무자에서 '디렉터'로 승진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좋은 디렉터가 가져야 하는 자질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모두가 개인 비서를 가지는 시대에 더 적합한 고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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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 O2O 스타트업에서 일했고, 현재는 글로벌 콘텐츠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스타트업, 웹3, AI 등 새로운 기술이 바꾸어 나가는 세상의 모습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 그래서 화제가 된 인터뷰
음악 이론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할 줄 아는 악기도 없지만 전설적인 음악 프로듀서가 된 릭 루빈(Rick Rubin)의  예전 인터뷰 영상은 그래서 최근 소셜미디어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저는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뭘 좋아하고, 뭘 좋아하지 않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결단력 있게 구분할 줄 압니다”라고 했는데요.

물론 모두가 '디렉터'가 될 수 있는 시대도 아직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갖가지 AI를 활용할 수 있는 시대에 일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기차] #IRA #포드 #테슬라
2. 중국 배터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
미국 중심의 전기차 생태계 구축을 위해 전기차 보조금의 근간을 재설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점차 구체화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중국 기업과의 제휴 시도가 이어지고 있어요. 보조금을 못 받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경쟁사에 비해 더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공급망을 구축할 기회를 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죠.
포드와 테슬라 모두 이번 합작에 대한 의지가 강해요. 
중국과 제휴 강화하는 포드
미국 제조사 중 중국 기업과 제휴를 적극적으로 진행 중인 곳은 포드에요. 포드는 지난 2월, 35억 달러(약 4조5000억 원)를 투자해 미시간에 중국 최대 배터리 제조사 CATL과 제휴한 전기차 전용 배터리 공장을 세운다고 밝혔어요. 또 최근 중국의 정련 업체 화유 코발트 및 여타 기업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45억 달러(약 5조 9000억 원)를 들여 배터리 소재 공장에 투자한다고 했죠

포드는 저렴한 가격의 배터리와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중국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인데요. CATL의 배터리는 한국 배터리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삼원계 배터리(리튬을 기반으로 세 가지 활물질(니켈/코발트/망간(NCM) 등)을 쓴 배터리) 보다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주로 생산해요. 

LFP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보다 더 무겁고 주행거리 등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낮고 화학 구조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으로 알려졌어요. 인도네시아 투자도 광물 단계부터 공급망을 관리하기 위해 중국 기업과 손을 잡은 것이죠.

중국 배터리 데려오는 테슬라
테슬라도 포드처럼 CATL과 미국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어요. 이번에 설립될 공장의 위치는 테슬라 본사가 위치한 텍사스 인근이 될 수 있다고 해요. 

테슬라는 업계에서 가장 먼저 중국의 LFP 배터리를 도입해왔고 이미 작년 글로벌 전체 생산 차량의 절반 가까이 되는 차량에 LFP 배터리가 탑재됐다고 알려졌어요. IRA 지침에 따라 중국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수입해서 쓴다면 현재로서는 무조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배터리를 수입하기보다 미국에서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한 것이죠. 

특히 최근 공격적으로판매 가격을 인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렴한 LFP 배터리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놓기 어려운 매력적인 가격 
테슬라나 포드와 같은 미국 제조사들이 CATL 등 중국 기업과 합작 사업을 검토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저렴한 가격 때문입니다. S&P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한국 제조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삼원계 배터리인 NCM 배터리 팩 가격이 LFP 가격에 비해 약 2배가량 높다고 해요. 행여나 IRA의 보조금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하더라도 전기차 생산자 입장에서는 보다 저렴하게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해둔다면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타격을 줄일 수도 있죠.

CATL이 주로 생산하는 LFP 배터리는 니켈, 코발트에 비해 희소성이 떨어지는 인산철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 측면뿐 아니라 수급의 불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꼽혀요. 삼원계 배터리 한 가지 종류의 배터리에만 의존하는 것이 오히려 수급 면에서 안정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고요. 

보급형 전기차 모델에는 LFP 배터리를 사용하고 고급형 모델에는 삼원계 배터리를 사용하는 등 용도를 달리해 배터리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주도권을 확보하는 편이 제조사 입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더 많은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이게 중국 견제를 위한 건데
물론 미국 정계는 중국 기업과의 제휴 시도에 큰 반감을 보이고 있어요. IRA 법안 통과에 중추적 역할을 한 웨스트버지니아주 조 맨친 상원의원은 직접적으로 포드-CATL의 이번 딜을 비판했고 의회 일각에서는 아예 중국산 기술을 사용한 전기차 배터리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요.

포드와 테슬라가 구상하는 CATL과의 합작법인은 자동차 제조사와 배터리 제조사가 지분을 나눠 갖는 통상적인 구조가 아니고, 자동차 제조사가 100% 법인을 소유하고 기술 라이센스만 도입해 배터리를 생산하는 형태예요. 
중국 기업에 보조금 혜택이 돌아가지 않도록 의원들을 달래기 위해 설계한 구조이죠.

하지만 현재 형국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중국 기술 도입 자체를 막자는 의견까지 나오는 상황이 된 것이에요. '기후위기 법안'이라고도 불리는 IRA가 전기차를 비롯한 클린 에너지 테크(Clean Energy Tech) 경쟁에서 앞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큰 법안인데 그 취지를 교묘하게 거스르는 방향으로 보는 것이에요. 

한편에서는 전기차 배터리뿐만 아니라 앞서 클린 에너지 테크 산업을 구축한 중국의 기술 활용을 막게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요. 포드와 테슬라가 현재와 같은 정치경제적 형국에서도 중국 기업과 합작에 나선 것이 장기적으로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필요한 움직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앞으로가 더 중요한 IRA 해석
미 재무부가 IRA 해석을 통해 이렇게 중국 기업과 제휴를 통해 생산한 배터리에 보조금을 줄지 말지를 어떻게 결정할지는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재무부는 지난 3월 31일에 보다 구체화된 IRA 해석을 내놓았는데요. 입법 당시에 비해 조금 관대해졌던 가이던스에 이어 더 구체적으로 제한 사항을 명시했죠. 

미국뿐 아니라 FTA 체결국 지위에 있는 국가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더라도 보조금 지급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되었고*, FTA를 체결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이 '핵심 광물 협정'에 따라 FTA 체결국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았어요. (EU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분위기입니다) 부품과 소재의 정의가 보다 명확히 정리되면서 한국 배터리 업체들도 기존 공정 과정에 큰 폭의 변화를 줄 필요는 없게 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죠.
* 이번에 발표한 IRA 세부 지침의 핵심은,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980만 원)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1) 핵심 광물은 미국 혹은 미국과 FTA 체결이 된 국가에서 가공 및 생산한 것을 40% 이상 사용해야 하고, 2) 부품은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한 부품을 50% 이상 사용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한 가지 추가로 살펴야 할 점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외국 우려 단체(Foreign Entity of Concern) 지정이에요. IRA는 외국 우려 단체에서 배터리 부품을 제조하거나 배터리 관련 광물을 채굴, 제련 등을 한다면 모든 혜택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북한, 이란 같은 국가들이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국가나 기관, 기업이 명시되지 않았어요. 

특히 포드도 투자를 한 인도네시아에서는 외국 우려 단체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으로 전 세계 매장량의 24%를 차지하고 있죠. 포드를 비롯해 한국의 많은 배터리 기업들도 인도네시아에서 공급망 확보를 위해 투자를 하는 상황이고요.

하지만 인도네시아 혹은 인도네시아의 광산들의 외국 우려 단체 지정에 대한 미국의 판단은 유보된 상태인데요. 그 이유는 미국과 FTA가 맺어져 있지 않고, 현재 니켈 산업의 많은 부분이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전해집니다.

이에 더해 인도네시아의 광산은 캐나다나 호주 등지의 광산에 비해 훨씬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어 탄소 저감을 추구하는 법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어요. (미국이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리튬, 코발트, 마그네슘 등을 비롯해 태양광 패널 등의 클린 테크에 필요한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된 캐나다와 전략적인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최근 들어 커지고 있죠)

인도네시아 상공회의소는 "(미국과 EU를 포함한) 서방과 중국이 모두 친구이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국적 기업들과 중국 그리고 비중국 공급망을 따로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이런 구애가 앞으로 나올 IRA 지침에는 어떻게 작용할지 지켜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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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라인. 언론사와 스타트업을 거쳐 현재는 전기차 업계에서 일하고 있어요. 최신 전기차 트렌드와 그 후방산업인 배터리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후테크] #투자감소 #단신
3. 잠시 숨 고르는 기후테크 투자
고금리 기조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 그리고 생성 AI 붐에 따라 투자가 AI 영역에 몰리고 있는 와중에도, 장기적으로 유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후테크 분야만큼은 벤처캐피털과 사모 펀드 등의 투자가 줄지 않았음을 짚어 전해드리기도 했는데요. 

1분기 들어 기후테크에 대한 벤처캐피털 투자가 크게 감소했다는 수치가 발표되었어요. 지난해 같은 분기에 비해 총투자 금액이 36% 감소했고, 거래 건수도 430건에서 279건으로 줄었습니다
슬슬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오긴 했는데, 이번엔 크게 줄었어요. (데이터: 피치북(Pitchbook))  
잠시 숨 고르는 분위기?
기후테크 분야는 테크 업계가 모두 힘들었던 작년에도 계속해서 잘 나가던 중이었어요. 시장이 활황이었던 2021년에 비해서, 특히 탄소 배출 관련 스타트업들은 투자 감소가 단 2%에 그쳤고 총 138억 달러(약 18조 1220억 원)의 자금을 유치했어요. 이렇게 잘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당면한 기후위기 앞에 이를 해결하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향후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죠.

현재와 같은 분위기의 시장에서는 당분간 펀딩이 계속 줄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예상됩니다. 전체적인 벤처캐피털 시장이 (AI를 제외하고는) 좋지 않고, 어쨌든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 기후테크 등의 투자를 검토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이에요. 

거기에다 최근 터진 SVB 파산 사태는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죠. 기후테크 기업의 절반은 SVB와 거래 관계였고, SVB가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 이들의 기술과 사업을 지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더는 그런 든든한 지원자가 없어진 상황입니다.

물론 다른 은행과 기관들이 '자금'의 자리를 금방 메울 수도 있지만, 이들이 기후테크 등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쌓아온 전문성과 인내심이 단기간에 메워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에요.

잠시 멈출 여유가 없는데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낸 <2050년까지 넷제로> 리포트에 담긴 분석에 의하면 2050년까지 세계가 넷제로를 이루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요. 현재 시장에 이미 나와 있는 기술로 2030년까지 목표한 탄소 감축의 80%를 달성할 수 있지만, 2050년까지 필요한 탄소 감축량의 46%는 현재 데모 단계에 있거나 프로토타입 단계에 있는 기술로 이루어야 해요.

이 분석이 맞다면 (혹은 맞게 만들려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 탄소 포집 등의 탄소 감축 기술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화 등을 위한 기반 기술에도 투자를 크게 늘려야 합니다. 앞선 이야기에서도 언급한 전기차 배터리,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이미 화석 연료에 비해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풍력 및 태양 에너지 등의 재생에너지 발전도 더욱 크게 당겨야 하고요.

다만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기술 등이 자리잡는 데 30년이 걸렸는데, 앞으로 나올 기술은 이것보다 훨씬 더 빠른 시간 안에 자리잡아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투자와 개발이 빨라져야 한다고 스탠포드 대학 교수이자 에너지 전문가인 아룬 마줌달(Arun Majumdar)은 짚은 적이 있어요. 

벤처캐피털 시장의 활황과 함께 투자가 크게 이어졌던 상황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자면
현재와 같은 흐름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옵니다. (반복하지만) '기후위기 법안'이라고도 불리는 IRA는 약 3710억 달러(약 488조 원)가 기후테크 및 에너지 사업에 투입될 예정이고, 이 중 상당 부분은 새로운 기술을 지원하는 데도 투입될 것으로 예고되어 있죠.

물론 더 구체화되어야 하는 상황이고, IRA의 효과가 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향후 수년간은 기후테크 투자를 키우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탄소 포집, 그린 수소 생산 등은 세액 공제와 보조금 지원으로 효과를 보고 있는 중이에요.

또 오랜 기간 이어진 벤처캐피털 등의 민간 투자와 (IRA를 따라) 이어질 각 국가와 기관의 정책적인 뒷받침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데요. (아직 갈 길이 멀어도) 각 영역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거나 실질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생각보다 더 빠르게 마련될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조금 더 커진 상황이지만 이번에 발표된 수치로 시장 전망을 당장 어둡게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당분간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는 물론 지켜봐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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