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3화. FTX 사태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FTX의 파산과 이를 둘러싼 이야기는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죠.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암호화폐와 업계 전체가 지금 마주한 현실은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당분간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현재 환경과 업계의 상황을 짚어봅니다.
아직 먼지가 다 가라앉지 않았지만, 이 사태는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를 볼 수 있는 가이드가 될 이야기에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복잡한 상황을 더 큰 그림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 오늘 발행된 이야기의 미리보기를 전해드려요. 주요 이슈를 전하는 샷 추가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3화. 날개 잃은 크립토 FTX 사태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
아직 가라앉지 않은 먼지 지난 여름 루나 사태를 겪으며 글로벌 암호화폐 업계는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틀렸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다는 것을 모두 잊고 있었다. 그것도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와 FTX 제국의 붕괴라는 또 다른 재앙과 함께.
MIT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뱅크먼-프리드는 2019년 암호화폐 거래소 FTX를 창업한 후 순식간에 세계 5위권의 거래소로 키워내며 "암호화폐 업계의 JP모건"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30살의 “천재”였다. 인기 프로스포츠 구단과 선수들을 스폰서하고, 미국 정치권에 막대한 후원금을 내는 등 거침없는 대외 행보를 보여왔다. 뱅크먼-프리드가 쌓아 올린 FTX 제국의 핵심은 암호화폐 거래소 FTX와 헷지펀드 알라메다 리서치였다.
FTX는 블랙록, 세쿼이워 캐피털, 타이거 글로벌 같은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의 유수 투자자들이 아낌없는 찬사와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를 쏟아부은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뱅크먼-프리드와 FTX가 써 내려간 화려한 드라마는 고객들이 불과 사흘 만에 60억 달러(약 7조 9400억 원)가 넘는 자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끝에, 결국 파산보호 신청으로 막을 내렸다.
FTX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1월 2일, 알라메다 리서치가 보유한 자산의 절반에 가까운 60억 달러(약 7조 9400억 원)가 다름 아닌 FTX가 직접 발행한 토큰인 FTT이며, 이 중 22억 달러(약 2조 9100억 원)는 대출 담보로 이미 잡혀있다는 암호화폐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의 보도 직후부터였다.
나흘 후,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자사가 보유 중인 5억 8000만 달러(약 7700억 원) 어치의 FTT를 처분하겠다고 발표했고, 유저들의 패닉은 곧장 뱅크런으로 이어졌다. FTT의 가치는 22달러에서 5달러로 순식간에 폭락했다. (11월 17일 현재는 1.6달러 수준이다.)
뱅크먼-프리드는 오랜 라이벌인 바이낸스 창업자 창펑 자오(Changpeng Zhao)에게 구조 요청을 보낼 정도로 다급하게 사태 해결을 위해 뛰었지만, 바이낸스는 실사에 들어간 지 하루 만에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미국 증권선물 감독 당국이 FTX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고, FTX가 고객 예치금을 유용했다는 혐의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알라메다 리서치가 투자한 또 다른 암호화폐 금융사인 쓰리애로우캐피탈과 보이저가 파산하자, 손실을 메꾸기 위해 FTX의 고객 예치금을 무단으로 유용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결국 FTX는 80억 달러(약 10조 6000억 원)가 넘는 유동성 위기를 끝내 넘기지 못하고 파산 보호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
위험 신호가 나오고 순식간에 파산 신청에 이르렀다. |
리먼 브라더스 쇼크급은 아니지만 연초에 3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42조 가치에 달했던 기업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유동성 위기를 겪다 며칠 만에 파산하게 되었는지, 업계에서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뱅크먼-프리드와 창펑 자오가 공공연한 적대관계에 있었던 점을 상기시키며, 뱅크먼-프리드가 미국 의회에서 입안을 앞둔 암호화폐 규제 법안을 FTX에게 유리하도록 로비해온 것에 격분한 창펑 자오가 "일격을 가했다"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뱅크먼-프리드와 창펑 자오는 트위터를 통해 서로에게 날선 발언을 서슴지 않아 왔었다.
하지만 주류 금융계에서는 현재의 암호화폐 투자는 "더 큰 바보 이론(Greater-fool theory)"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결국 언젠가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처음 제시한 이 이론에 따르면 자산의 가격은 본질적인 가치와 무관한,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인 믿음이나 기대에 따라 매겨질 수 있다. 모두가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것을 알지만, 자신이 산 가격보다 비싸게 팔 수 있다고 믿고 아파트를 구매하는 것과 비슷한 결정이다. 일종의 폭탄 돌리기인 셈이다.
지난 4월, 샘 뱅크먼-프리드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자 농사(yield farming.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는 암호화폐 세계에서, 은행 대신 유동성을 공급하는 시장 참여자에게 제공되는 보상)"를 돈 상자에 비유했다. 이 상자의 가치는 다른 이들이 얼마나 더 많이 돈을 넣으려고 드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루나의 이자 준비금(yield reserve)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는 질문에 "당신 엄마 돈”이라고 대답했던 테라폼랩스의 권도형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어이가 없어진 블룸버그의 기자(블룸버그의 대표적인 금융 칼럼니스트인 맷 레빈(Matt Levine)이었다)는 "그거 폰지 사기(Ponzi Scheme)랑 아주 비슷하게 들린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주류 금융계에서는 FTX의 파산을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쇼크에 맞먹는다고 보고 있다. 물론 암호화폐 업계의 전체 자산 총액은 (작년 이후 거의 3분의 1 토막이 난) 1조 달러(약 1320조 원) 정도밖에 되지 않고, 또한 대부분의 토큰들은 카지노 칩 정도의 기능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즉 정해져 있는 사용처에서밖에 쓰지 못하기 때문에, 리먼 쇼크 때처럼 경제가 전방위로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지난 수년간 시장에 풀린 어마어마한 양의 "진짜 돈"이 만들어낸 자산 거품이 빠르게 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암호화폐 업계 전체가 치명타를 입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
일명 SBF라고 불리는 FTX의 전 CEO 샘 뱅크먼-프리드는 트위터를 통해서 관련 사태에 대해서 소통해 왔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 스레드를 남기고 있지만 곧이곧대로 보는 이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완전히 바뀔 암호화폐에 대한 인식 전 세계 중앙은행들, 특히 미국의 연준(Fed)이 연이은 금리인상으로 시장을 조이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 심리가 가장 크게 쪼그라든 섹터가 바로 암호화폐다. (암호화폐 예찬론자들은 중앙은행의 독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암호화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역설해왔는데, 정작 시장에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에 가장 취약한 섹터가 암호화폐였다는 현실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리먼의 붕괴가 서브프라임(Subprime Mortgage,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완전히 재평가를 하는 계기가 된 것처럼, FTX의 몰락 역시 암호화폐 그 자체에 대해 투자자들이 다시 생각하게 되는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암호화폐 섹터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규제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지 않는 한, 적어도 단기간 내에 주류 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기는 난망이다. FTX의 파산이 암호화폐 섹터의 고질적인 문제 두 가지를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나는, 토큰의 가치를 지탱하는 자산이 (암호화폐가 만들어갈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제외하고) 무엇인지 그 누구도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재무상태표가 아무 의미가 없다. 애초에 코인데스크가 FTX가 보유한 자산의 상당 부분이 FTT라는 주장을 제기했을 때, FTX는 애매하게 대응을 피했다. 주류 금융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사가 발행한 토큰을 담보로 잡는 것부터 불가능하지만,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고객과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고 정직하게 공시할 것이 법으로 의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바이낸스의 창펑 자오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보유한 FTT를 처분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FTT의 가치는 날개 없이 추락하며 FTX 제국 전체의 붕괴를 앞당겼다. 불투명성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또 하나는 FTX가 고객의 예치금을 굴려온 방식이다. FTX 제국은 거래 중개, 프랍 트레이딩(Proprietary Trading, 고객이 예치한 자산이 아닌 회사의 자기자본으로 투자하는 거래), 여신, 수탁 업무를 전부 동시에 운영하고 있었다. 고객의 예치금이라는 자산이 이중 삼중으로 담보로 설정되어 각종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온갖 자산유동화증권으로 설계해서 팔았던 서브프라임 사태의 교훈을 기억하는 이라면, 이쯤에서 이미 불길한 데자뷔가 느껴지는 것이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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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안젤라는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주목해야 할 거시 경제 변화와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Long-from) 아티클입니다. 급격히 변하는 거시 경제 지형 속에서 놓치지 않고 주목해야 할 이야기를 전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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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3화.
날개 잃은 크립토
FTX 사태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아직 가라앉지 않은 먼지
지난 여름 루나 사태를 겪으며 글로벌 암호화폐 업계는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틀렸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다는 것을 모두 잊고 있었다. 그것도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와 FTX 제국의 붕괴라는 또 다른 재앙과 함께.
MIT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뱅크먼-프리드는 2019년 암호화폐 거래소 FTX를 창업한 후 순식간에 세계 5위권의 거래소로 키워내며 "암호화폐 업계의 JP모건"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30살의 “천재”였다. 인기 프로스포츠 구단과 선수들을 스폰서하고, 미국 정치권에 막대한 후원금을 내는 등 거침없는 대외 행보를 보여왔다. 뱅크먼-프리드가 쌓아 올린 FTX 제국의 핵심은 암호화폐 거래소 FTX와 헷지펀드 알라메다 리서치였다.
FTX는 블랙록, 세쿼이워 캐피털, 타이거 글로벌 같은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의 유수 투자자들이 아낌없는 찬사와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를 쏟아부은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뱅크먼-프리드와 FTX가 써 내려간 화려한 드라마는 고객들이 불과 사흘 만에 60억 달러(약 7조 9400억 원)가 넘는 자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끝에, 결국 파산보호 신청으로 막을 내렸다.
FTX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1월 2일, 알라메다 리서치가 보유한 자산의 절반에 가까운 60억 달러(약 7조 9400억 원)가 다름 아닌 FTX가 직접 발행한 토큰인 FTT이며, 이 중 22억 달러(약 2조 9100억 원)는 대출 담보로 이미 잡혀있다는 암호화폐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의 보도 직후부터였다.
나흘 후,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자사가 보유 중인 5억 8000만 달러(약 7700억 원) 어치의 FTT를 처분하겠다고 발표했고, 유저들의 패닉은 곧장 뱅크런으로 이어졌다. FTT의 가치는 22달러에서 5달러로 순식간에 폭락했다. (11월 17일 현재는 1.6달러 수준이다.)
뱅크먼-프리드는 오랜 라이벌인 바이낸스 창업자 창펑 자오(Changpeng Zhao)에게 구조 요청을 보낼 정도로 다급하게 사태 해결을 위해 뛰었지만, 바이낸스는 실사에 들어간 지 하루 만에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미국 증권선물 감독 당국이 FTX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고, FTX가 고객 예치금을 유용했다는 혐의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알라메다 리서치가 투자한 또 다른 암호화폐 금융사인 쓰리애로우캐피탈과 보이저가 파산하자, 손실을 메꾸기 위해 FTX의 고객 예치금을 무단으로 유용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결국 FTX는 80억 달러(약 10조 6000억 원)가 넘는 유동성 위기를 끝내 넘기지 못하고 파산 보호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리먼 브라더스 쇼크급은 아니지만
연초에 3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42조 가치에 달했던 기업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유동성 위기를 겪다 며칠 만에 파산하게 되었는지, 업계에서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뱅크먼-프리드와 창펑 자오가 공공연한 적대관계에 있었던 점을 상기시키며, 뱅크먼-프리드가 미국 의회에서 입안을 앞둔 암호화폐 규제 법안을 FTX에게 유리하도록 로비해온 것에 격분한 창펑 자오가 "일격을 가했다"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뱅크먼-프리드와 창펑 자오는 트위터를 통해 서로에게 날선 발언을 서슴지 않아 왔었다.
하지만 주류 금융계에서는 현재의 암호화폐 투자는 "더 큰 바보 이론(Greater-fool theory)"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결국 언젠가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처음 제시한 이 이론에 따르면 자산의 가격은 본질적인 가치와 무관한,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인 믿음이나 기대에 따라 매겨질 수 있다. 모두가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것을 알지만, 자신이 산 가격보다 비싸게 팔 수 있다고 믿고 아파트를 구매하는 것과 비슷한 결정이다. 일종의 폭탄 돌리기인 셈이다.
지난 4월, 샘 뱅크먼-프리드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자 농사(yield farming.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는 암호화폐 세계에서, 은행 대신 유동성을 공급하는 시장 참여자에게 제공되는 보상)"를 돈 상자에 비유했다. 이 상자의 가치는 다른 이들이 얼마나 더 많이 돈을 넣으려고 드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루나의 이자 준비금(yield reserve)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는 질문에 "당신 엄마 돈”이라고 대답했던 테라폼랩스의 권도형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어이가 없어진 블룸버그의 기자(블룸버그의 대표적인 금융 칼럼니스트인 맷 레빈(Matt Levine)이었다)는 "그거 폰지 사기(Ponzi Scheme)랑 아주 비슷하게 들린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주류 금융계에서는 FTX의 파산을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쇼크에 맞먹는다고 보고 있다. 물론 암호화폐 업계의 전체 자산 총액은 (작년 이후 거의 3분의 1 토막이 난) 1조 달러(약 1320조 원) 정도밖에 되지 않고, 또한 대부분의 토큰들은 카지노 칩 정도의 기능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즉 정해져 있는 사용처에서밖에 쓰지 못하기 때문에, 리먼 쇼크 때처럼 경제가 전방위로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지난 수년간 시장에 풀린 어마어마한 양의 "진짜 돈"이 만들어낸 자산 거품이 빠르게 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암호화폐 업계 전체가 치명타를 입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완전히 바뀔 암호화폐에 대한 인식
전 세계 중앙은행들, 특히 미국의 연준(Fed)이 연이은 금리인상으로 시장을 조이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 심리가 가장 크게 쪼그라든 섹터가 바로 암호화폐다. (암호화폐 예찬론자들은 중앙은행의 독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암호화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역설해왔는데, 정작 시장에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에 가장 취약한 섹터가 암호화폐였다는 현실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리먼의 붕괴가 서브프라임(Subprime Mortgage,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완전히 재평가를 하는 계기가 된 것처럼, FTX의 몰락 역시 암호화폐 그 자체에 대해 투자자들이 다시 생각하게 되는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암호화폐 섹터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규제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지 않는 한, 적어도 단기간 내에 주류 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기는 난망이다. FTX의 파산이 암호화폐 섹터의 고질적인 문제 두 가지를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나는, 토큰의 가치를 지탱하는 자산이 (암호화폐가 만들어갈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제외하고) 무엇인지 그 누구도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재무상태표가 아무 의미가 없다. 애초에 코인데스크가 FTX가 보유한 자산의 상당 부분이 FTT라는 주장을 제기했을 때, FTX는 애매하게 대응을 피했다. 주류 금융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사가 발행한 토큰을 담보로 잡는 것부터 불가능하지만,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고객과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고 정직하게 공시할 것이 법으로 의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바이낸스의 창펑 자오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보유한 FTT를 처분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FTT의 가치는 날개 없이 추락하며 FTX 제국 전체의 붕괴를 앞당겼다. 불투명성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또 하나는 FTX가 고객의 예치금을 굴려온 방식이다. FTX 제국은 거래 중개, 프랍 트레이딩(Proprietary Trading, 고객이 예치한 자산이 아닌 회사의 자기자본으로 투자하는 거래), 여신, 수탁 업무를 전부 동시에 운영하고 있었다. 고객의 예치금이라는 자산이 이중 삼중으로 담보로 설정되어 각종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온갖 자산유동화증권으로 설계해서 팔았던 서브프라임 사태의 교훈을 기억하는 이라면, 이쯤에서 이미 불길한 데자뷔가 느껴지는 것이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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