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주 행동주의는 '미쿡식'인 걸까?

[부엉이의 차트피셜] 4화. 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움직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주들이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진에 회사의 전략과 방향을 재설정하라고 요구하거나, 주주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못 하도록(혹은 주주 이익을 더 챙기도록) 압박하는 '주주 행동주의'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도 주주 행동주의 움직임이 결실을 맺는 사례들이 최근 차례로 생기면서 저평가된 한국 증시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생기고 있습니다.

오늘 [부엉이의 차트피셜]은 SM엔터테인먼트의 지배구조 변경을 이루어내고, 이제는 은행 지주들의 주주 환원 정책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는 시장 상황을 전해드려요. 오랜 역사의 미국 자본 시장 선례들을 따라가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짚고, 한국 시장이 해외 시장에 비해 얼마나 저평가를 받고 있는지, 어떤 점들이 해소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부엉이의 차트피셜] 4화.
주주 행동주의는 '미쿡식'인 걸까?
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커지는 움직임
SM의 광야는 주주들로 구성되어 있다
H.O.T부터 소녀시대, EXO, 에스파에 이르기까지 SM엔터테인먼트는 K-POP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창업주이자 총괄 프로듀서인 이수만 회장이 있다. 이수만 회장은 대한민국에 기획형 아이돌 시스템을 도입한 장본인이며, 최초로 한류 진출에 성공한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까지도 SM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싱을 총괄해왔다. 

하지만 2022년 10월 SM엔터테인먼트는 이수만 총괄과의 프로듀싱 계약을 조기 종료했다. 이로써 이수만 회장은 회사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뗀다. 그뿐만 아니라 SM은 회장의 개인회사(라이크 기획)에게 지급하던 수수료 계약도 취소하여 이수만과 완전한 결별을 준비 중이다.

SM엔터테인먼트와 이 회장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의 발단은 10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2010년 이수만 회장은 사내 등기이사에서 사임하고 제작자로만 활동하겠다고 밝힌다.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본인은 총괄 프로듀서로 프로듀싱에만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사내 직책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월급도 받지 않았다.

회장이 무급으로 창작에만 전념했다면 두고두고 아름다운 미담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수만 총괄(더 이상 회장 직책이 아니므로 이하 이수만 총괄로 지칭)이 탈법적인 보상 수단을 대신 마련하면서 다른 주주들과의 악연이 시작됐다.  
월스트리트가 만능은 아니지만,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과 주주 행동주의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주주 이익을 편취하는 보상 구조
이수만 총괄은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을 설립하고 제작에 참여하는 용역 댓가로 SM엔터테인먼트 매출의 6% 정도를 수취해왔다. 2000년부터 2021년 3분기까지 누적된 수수료는 1427억 원에 달한다.

회사의 이익이 아닌 매출을 기반으로 수수료를 책정하여 회사가 적자를 보던 해에도 수수료가 지급됐다. 회사가 영업 적자를 기록한 2006~2008년 매해 십 억원 이상의 수수료가 지급됐으며, 영업이익이 109억 원에 불과했던 2017년에 지급된 수수료는 무려 108억 원이다.

유능한 프로듀서가 창작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SM은 그 수준이 지나쳤다. 2020년 하이브의 방시혁 대표와 JYP의 박진영 대표가 받아 간 급여와 상여는 약 5~7억 원 수준이었는데, 얼라인파트너스의 관련 자료인 <SM 저평가 해소를 위한 첫 걸음>에 의하면 같은 해 라이크기획이 수령한 수수료는 129억 원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이수만 총괄의 개인회사라면 수수료가 얼마든지 문제없다. 하지만 수많은 주주가 존재하는 상장 회사에서 최대 주주가 보유한 회사에 수백억 원의 수수료가 흘러 들어갔다.

라이크기획 외에도 다수의 계열사가 배임 문제를 안고 있다. 싱가포르에 설립된 에스엠브랜드마케팅은 이수만 총괄과 친인척이 지분 41.7%를 보유하고 있는데, 팬클럽 서비스 플랫폼인 광야클럽을 운영한다. 굿즈를 판매하고 공연 기획을 담당하는 드림메이커도 이수만 총괄이 지분을 보유 중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라이크기획에 지급한 수수료(인세) 추이(자료: 얼라인파트너스, <SM 저평가 해소를 위한 첫걸음>)
에스엠이 라이크기획에 지급한 수수료는 '매출' 기준으로 책정되었다. 회사가 적자여도 수수료는 언제나 가져가는 것이다.  
이제 주주들은 참지 않는다
이수만 총괄이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편취하면서 주주들의 불만이 누적됐다. 과도한 수수료 지급과 방만한 계열사 경영 등으로 회사의 이익률이 경쟁사 대비 낮았고, 주가 역시 저평가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무배당 정책을 고수하며 주주들에게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SM엔터테인먼트는 우수한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인 JYP나 하이브보다 매출액 대비 시가총액이 턱없이 낮은 수준에 거래됐다. 이에 참다못한 주주들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2019년 6월 KB자산운용은 SM엔터테인먼트에 공개 주주 서한을 발송하며 행동을 개시한다. 1) 배당 성향을 30%로 상향하고, 2) 라이크 기획과 SM엔터테인먼트를 합병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를 통해 왜곡된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낮은 주가를 정상화 시키려고 했다.

이에 SM엔터테인먼트 측은 "인세 지급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액수 자체만 부각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주주의 이익과 상충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며 KB자산운용 측의 요구를 묵살했다. 이후 SM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실망감에 장기간 하락세를 이어간다.

2022년 2월 얼라인파트너스가 SM엔터테인먼트에 새롭게 주주 서한을 보내 독립적인 감사를 선임할 것과 라이크 기획과의 계약을 공정하게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2020년에 설립된 신생 자산운용사인 데다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비교적 적은 0.9%만 보유했기 때문에 행동주의가 성공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
하지만 3년 전과 분위기가 다르게 흘러갔다. 다른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2022년 3월 주주총회에서 얼라인파트너스가 지명한 곽준호 감사인이 감사위원회에 선임된 것이다.

2022년 10월에는 라이크기획과 수수료 계약을 조기 종료하여 문제의 본질을 해결했다. 2023년 1월 주주총회는 이수만 총괄을 제외한 대부분 주주들이 손을 들어주면서 얼라인파트너스의 완전한 승리로 막을 내렸다. SM엔터테인먼트 이사진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 사항을 전격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1) 정기주주총회에서 얼라인파트너스 이창환 대표를 기타 비상무이사로 추천하고, 2) 에스엠과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관계회사, 그리고 모든 자회사들과의 거래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3) 향후 3년간 별도 당기순이익의 최소 20%를 주주에게 환원한다는 정책을 공시하는 등 12개 합의 사항에 동의한다. 이로써 대주주의 편취를 허용하던 지배구조가 개편됐다.

지배구조가 문제가 해결되자 자본시장은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SM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작년 증시 하락장에도 불구하고 하락과 상승을 반복하며 횡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가 약세장 속에서 주가 하락을 막은 것이다.

연초 주주총회에서 배당 지급이 확정되고 자회사와의 내부거래 문제까지 해결되면서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뚫고 올라갔다.
코스피 지수와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추이 (자료: 연합인포맥스, 2019년 6월 11일 지수 및 주가를 100으로 재조정한 기준)
주주들의 행동이 시작된 이후 주가가 코스피를 꾸준히 앞질러 왔다. 연초엔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다.
주주 행동주의의 무덤이었던 한국 
앞서 SM엔터테인먼트 사례에서 대주주의 부당거래를 차단하고 배당 성향을 소폭 상향하는 것만으로도 저평가된 주가가 일시에 회복되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주주들이 잃어버린 권리를 찾은 사례가 많지 않았다.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도 한국에서 주주 행동주의 운동을 전개했지만 처참하게 패배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방식이 제일모직 주주에게 지나치게 유리하다며 합병을 반대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제일모직의 대주주였기 때문에 삼성그룹은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은 저평가하고 제일모직은 고평가해야 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를 취득하여 보도자료를 통해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이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으며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다"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주주총회 의결권 기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안에 대해 반대 권고했다. 하지만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찬성 69.5%로 원안대로 가결됐다. (놀랍게도 엘리엇과 해외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삼성물산 주주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표를 던진 것이다.  

해외에서도 의도적으로 기업가치를 왜곡하여 합병을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주주나 행동주의 펀드가 이를 눈치채고 이의를 제기하면 합병이 성사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에 랄스턴 퓨리나(Ralston Purina)라는 동물 사료 및 식품 기업이 자회사인 애그리브랜드(Agribrands)를 저평가된 가치에 합병하겠다고 나선 것을 (지금도 유명한) 행동주의 펀드인 서드 포인트(Third Point)가 막아선 것이다. 

합병은 부결되었고, 이후 카길(Cargill)이라는 세계적인 식량 기업이 애그리브랜드를 훨씬 높은 가치에 인수한다. 제값을 주고 가져간 것이다. 서드 포인트는 물론 주주들은 모두 큰 이익을 봤다. (참고로 랄스턴 퓨리나도 얼마 가지 않아 (2001년에) 네슬레가 합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주주 권리의 권리를 회복하려는 변화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2019년에서 2021년 사이 한국 주식시장의 개인투자자 숫자는 610만 명에서 138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인구의 25%가 주식에 투자한다. 젊은 투자자들은 미국 기업에 투자한 경험을 통해 선진 자본 시장에서 주주 권리가 어떻게 보고 받고 있는지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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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부엉이는 다양한 금융기관에서 채권 관련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 자산운용사에서 채권형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채권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가치투자에도 관심이 많다. 워런 버핏의 열렬한 추종자로 버크셔 헤서웨이 주주총회를 2차례 방문하고 다수의 관련 기고도 했다.

[부엉이의 차트피셜]은 매월 1회 찾아옵니다. 친숙하지만은 않은, 하지만 누구에게나 중요한 금리와 채권 시장을 비롯한 금융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주요 지표와 차트를 기반으로 풀어드릴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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