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시험대에 올라선 일본 경제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19화. 17년 만의 금리 인상이 의미하는 것
2024년 3월 25일 월요일
일본이 무려 17년 만에 금리를 인상했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으며 전 세계가 금리를 올려온 가운데 일본은 이 인플레이션이 오래 이어온 디플레이션을 벗어날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는 점을 역시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인플레이션이 간절한 나라를 통해 일찍이 전해드렸는데요.

이런 노력에 대해 일본 내부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재작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왔지만, 마이너스 금리를 지속 유지하며 어떻게든 물가를 올리려고 애써온 가운데 일반 시민들은 무섭게 뛰어오르는 물가로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기시다 내각은 연일 최저 지지율을 갱신하며 정치적 부담이 커져 왔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트라우마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물론, 그래도 1년 반 가까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일본이 마침내 금리를 올렸다는 것은, 디플레이션 탈출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임금 인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는 조심스러운 자신감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의 굴레를 떨쳐내고 날아오를 수 있을지를 주목하는 시선도 커졌죠.

하지만 과연 물가와 임금 상승만으로 일본이 바라는 건전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요? 낙관에 앞서 현재 일본의 상황은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드디어 실현한 금리 인상은 디플레이션 탈출과 진정한 경제 성장을 다시 이루기 위한 한 가지 조건의 실현이라고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전합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이제 시험대에 올라선 일본 경제
17년 만의 금리 인상이 의미하는 것
3월 18~19일 일본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일본 열도가 모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번 회의에서 일본이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최대의 경제 미디어로 도쿄증권거래소의 '닛케이 지수'를 산출하는 닛케이가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만으로도 연이어 속보를 냈을 정도이다. 

그리고 3월 19일, 마침내 일본은행은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결정하면서 2016년 2월에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를 8년 만에 해제하고, 현재의 정책 금리를 -0.1~0.0%에서 0.0~0.1% 수준으로 인상했다. 일본은행의 우에다 카즈오 총재는 "물가 상승과 임금 상승의 선순환이 확인됐다"며, 2%대의 안정적인 인플레이션과 함께 무엇보다 그토록 기다렸던 임금 상승이 자리를 잡으면서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2% 인플레이션은 각국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짓는 암묵적인 기준선으로 통한다. 인플레이션이 2%에 미치지 못하면 섣부른 금리 인상이 오히려 다시 경기 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이 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하리라는 예상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첨병으로 공격적인 금리 정책과 양적 완화를 주도했던 쿠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 총재가 2023년 4월 퇴임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임 총재가 새로운 거시 경제 방향성을 제시하는 모양새가 되지 않겠느냐는 예측이었다.*
* 이에 대해서는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4화인 인플레이션이 간절한 나라에서 다룬 바 있다.

하지만 30년 디플레이션의 트라우마는 모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17년 금리 인하의 막을 내리기 위해서는 신임 우에다 총재가 취임한 후에도 무려 꽉 채운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한편으로는 기업들에게 임금 인상을 촉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대급 엔저를 내세워 해외 투자자들에게 일본에 투자할 것을 권유하는 등, 어떻게든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숨 가쁘게 움직였다.*
* 본 내용은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14화인 기시다의 #바이재팬은 성공할까?에서 다루었다.

그리고 마침내 숫자들이 화답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변동성이 큰 신선식품 제외)는 지난해 3.1% 오르며 1982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2년 2.3%에 이어 목표치인 2%를 연속으로 웃돌았고, 전년도에 비해서도 크게 오른 수치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신선식품을 제외한 식품은 전년 대비 무려 8.2% 오르며 48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원자재와 에너지를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인데,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엔저'가 맞물려 재료비와 운송비를 크게 끌어올렸다. 
8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한 일본은행 전경.
벚꽃과 함께 찾아온 임금 인상 
하지만 역시 가장 반가운 것은 노동자의 임금 상승일 것이다.

일본은행은 2023년, 2024년의 춘투(매년 봄 일본의 대형 노조들이 주도하는 임금협상)에 대해 은근한 기대를 피력했다. 정부는 은근한 기대만 하고 있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소속 현직 총리로는 16년 만에 처음으로 렌고 정기 대회에 참석해 "경제 활력의 원천은 임금 인상"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GDP 대비 민간 소비가 54%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인데, 1991년부터 2019년까지 임금이 거의 30년 동안 5% 상승으로 사실상 정체되어 있었다.

급여가 오르지 않으면 소비자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 주식시장 부양 등으로 반짝 경기가 살아날 수는 있지만, 의미 있는 성장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계 소득의 기본인 임금이 올라야만 한다. 

실제로 2022년은 일본 가계에 매우 고통스러운 한해였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물가 상승 압력은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데,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임금을 올리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고, 이는 지난 30년간 일본에서 보기 힘들었던 변화였다. 기업과 노동자 모두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여 임금 인상을 주저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거세게 권리 행사에 나선 노동자들과,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우며 '인력 비용'이 아닌 '인적 자본에의 투자'로 노동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일본 정부의 의지에 결국 그동안 거액의 현금을 곳간에 쌓아놓고서도 투자에 보수적이었던 기업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20~2022년 일본 관광 산업에 치명타를 입혔던 코로나19 팬데믹이 끝이 나자 일본을 찾는 해외 여행객들이 급증했다. 관광 산업은 고용 효과의 파급력이 큰 대표적인 산업이다. 여러 긍정 요인이 겹치면서 결국 일본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렌고(連合,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춘투 1차 집계(771개 사) 결과 평균 임금 인상률은 5.28%를 기록했다. 33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임금 인상률이다. 
2024년 '춘투'는 33년만의 최대 임금 인상률을 이끌어내며 벚꽃 엔딩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지: gotokyo)
디플레가 끝난 것은 아니고
일본은행은 금리만 올린 것이 아니다. 단기 금리는 물론 장기 금리까지 낮게 억제해 온 일종의 장단기 금리 조작인 '(국채) 수익률 곡선 제어(Yield Curve Control, YCC)' 정책이나 인위적인 주가 부양책이었던 상장지수펀드(ETF)와 일본 부동산 투자신탁(J-REIT) 매입 정책도 모두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행은 2010년 이후 총 37조 엔(약 329조 원)의 ETF와 6500억 엔(약 5조 7800억 원)의 J-REIT를 매입해 왔다.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행의 통화 정책이 큰 전환점을 맞았다"라고 평가했다. 우에다 총재가 지난 11년 동안 유지해 온 파격적인 양적 완화 정책이 "그 역할을 다했다"며 이제 "다른 나라들의 중앙은행과 같은 통화 정책을 설정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그래서 상당히 의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에다 총재는 이번 조치가 전면적인 긴축 정책으로의 방향 전환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일본 은행은 양적 완화 스탠스를 계속 유지할 것이며 향후 정책 조정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도 밝히지 않았다. 실제로 한때 논란이 된 적이 있는 '무제한 국채 매입 정책' 역시 당분간 지속될 예정이다. 

근원 인플레이션(Core Inflation: 농산물, 에너지와 같이 계절적 요인이나 일시적 충격에 의한 물가변동분이 제외된, 기초경제 여건에 의해 결정되는 장기적 물가상승률)이 아직 목표치인 2%에 도달하지 않은 데다, 만약 경제가 다시 하방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일 경우, "과거에 사용했던 방법을 포함해 다양한 완화 정책 옵션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성 장관 역시 이번 금리 인상이 "디플레이션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다양한 지표들을 보다 포괄적으로 주시하겠다는 뜻"이라고 선을 그었다. 게다가 어찌 됐든 금리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이자 부담과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진다.

금리가 싼 국내에서 돈을 빌려서 공격적으로 해외에 투자해 온 일본의 금융 기관들에게도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은 반갑지 않다. 일본의 해외 투자는 작년에만 4조 달러(약 5834조 원)에 달했으며,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일본의 금리가 갑자기 올라가서 이들 투자 자금이 국내로 유턴하면 특히 미국과 유럽의 자본시장이 불안정해질 위험도 있다.
그래도 일본의 엔저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  
그래도 당분간 엔저는 계속?
환율 역시 구체적인 언급은 거부했지만, "경제 및 물가 전망에 영향을 미칠 경우 통화 정책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국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비록 마이너스 금리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크기 때문에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미국의 기준 금리는 5.25~5.50%로, 일본과는 5% 이상 차이가 난다. 금리의 다른 말은 돈의 가치, 또는 돈을 빌리는 비용이다. 이렇게 금리차가 커서는 엔화의 가치가 올라갈 여지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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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안젤라는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주목해야 할 거시경제 변화와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Long-from) 아티클입니다. 급격히 변하는 거시경제 지형 속에서 놓치지 않고 주목해야 할 이야기를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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