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스피드 뱅크런을 보여주는 시대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7화. SVB 사태는 해프닝일까 재앙의 서곡일까
인류의 일과 삶의 방식을 모조리 바꿀 것만 같은 AI의 발전과 이를 정점으로 보여주는 GPT-4가 공개된 와중에 SVB 파산 사태의 수습 과정은 현재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들입니다. 경제 상황이 불안정하다고 매일 보도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기술도 사람들을 매일 놀라게 하는 중이지만, 계속 일어나는 새로운 사건도 사람들이 매일 불안하게 바라보는 중이죠.

초스피드 뱅크런을 보여준 SVB의 파산 사태는 미 정부가 빠르게 수습에 나서면서 국면이 바뀌었지만, 여진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AI 시대에도 새로운 기술과 기업에 투자할 근본적인 금융 시스템의 안정은 필수입니다. 초스피드로 고금리 시대로 전환되었고, 이에 따라 급격히 바뀐 거시경제 환경 속에서 또 어떤 뇌관이 나올지는 이제 더 면밀히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SVB 사태와 관련해 수습 국면에 들어간 현재의 상황을 종합 정리하고, 앞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가이드가 되어주면서 지금 꼭 짚어야 할 이야기를 전합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7화.
초스피드 뱅크런을 보여주는 시대
SVB 사태는 해프닝일까 재앙의 서곡일까
지난 주말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실리콘밸리 뱅크(Silicon Valley Bank, 이하 SVB)의 파산은 너무 충격적이다 못해 많은 사람들에게 당혹감과 동시에 황당함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동안 큰 부실 징후가 없었던, 미국에서 자산 규모 16위의 대형 은행 하나가 하루아침에 뱅크런이 일어나 파산 위기에 몰렸고 결국 당국에 의해 폐쇄당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이슈로 연초부터 갈팡질팡하고 있던 금융 시장은 딸꾹질을 했고, 일반 시민들은 2008년 베어스턴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되어 이후 유럽 금융 위기로까지 이어진 대침체(Great Recession)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SVB는 여러모로 '핫'한 은행이기도 했다. 

이 은행의 예금 잔고는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기 직전인 2019년 말에는 618억 달러(약 81조 5140억 원)에 불과했지만 불과 3년이 지난 2022년 말에는 거의 3배에 가까운 1731억 달러(약 228조 3190억 원)로 증가했다.

도대체 SVB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은행은 어떻게 돈을 버는 곳일까?"에 대한 답을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은행은 뭐해서 돈을 벌까?
은행이 예금을 수신하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예금은 고객의 돈이지 은행의 돈이 아니다. 일종의 부채다. (재무제표에도 부채로 반영된다) 그리고 부채에는 비용이 든다. 첫 번째로는 은행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지점과 ATM 유지비도 들고, 창구 텔러들 월급도 줘야 하고, 모바일 뱅킹 앱도 개발해야 하고 등등)이 들고, 두 번째로는 고객에게 지급해야 하는 이자 비용이 든다. 

이러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은행은 이 돈을 다른 고객들에게 빌려준다. 주택자금 대출, 기업 대출 등이다. 이렇게 대출을 해준 고객들에게 거꾸로 이자를 받아서 매출을 일으킨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대출을 해줄 수는 없다. 은행은 (당연히) 돈을 갚을 능력이 확실한 우량 고객에게만 대출을 해준다. 

만약 우량 대출을 해줄 곳이 마땅치 않거나, 시장에서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면? 기존의 누군가가 이미 빌리거나 빌려준 돈을 상품화한 각종 증권에 투자한다. 예를 들면 미국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 Morgage-Backed Securities)을 사들이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2020년과 2021년 2년 동안 증가한 SVB의 예금잔고만 1270억 달러(약 167조 원)가 넘는다. 그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초저금리와 함께 시장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풀었고, 그 결과 실리콘밸리 지역의 스타트업들은 엄청난 금액의 투자를 받았다. 

이 투자금을 회사 금고에 보관할 리는 없다. 안전한 은행에 예금한다. SVB의 예금 잔고가 급증한 데에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단기간에 예금잔고는 급증했는데, 이 돈을 빌려줘서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올릴 대출 고객은 그만큼 빨리, 많이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모두가 지구상에서 제일 안전하다고 하는 미국 국채, 그것도 장기 국채와 MBS에 투자했다. (SVB는 상업 은행 중에서 유가증권에 가장 많이 투자한 은행이다) 여기까지는 언뜻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문제는 2022년부터 미국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지속적으로 금리를 왕창 올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기준 금리가 왕창 올라간다면? 채권 가격은 왕창 떨어진다. 
모두가 내 돈 인출을 위해 달려가는 뱅크런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완전히 바뀐 시장에 속수무책
일반적으로 채권은 보유 기간이 길수록 불확실성에 대한 비용으로 금리가 더 높다. (은행에 정기 예금을 할 때 6개월짜리보다 2년짜리가 금리가 높은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심지어 MBS의 금리는 국채 금리보다 더 빨리 올랐다. 팬데믹 기간 중에 연준은 경기 부양을 위해 MBS를 포함한 채권을 대거 매입했는데, 긴축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채권 매입을 중단했다. 수요가 없으면 가격은 떨어진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레버리지가 끼어든다. 레버리지란 간단하게 말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의 몇 배까지 투자할 수 있느냐를 말한다. 고객이 맡긴 1달러 당 10달러까지 국채에 투자했다고 치면 레버리지는 10배가 된다. 만약 10배의 레버리지로 투자를 했는데, 10% 손해를 본다면? 고객의 돈 1달러는 100% 다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과연 SVB는 몇 배의 레버리지로 미국 장기 국채와 MBS를 사서 얼마의 손해를 보았을까? 

정리해보자. SVB는 원래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았어야 할 장기 국채와 MBS를, 팬데믹 시절 금리가 아주 낮을 때,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대량으로 구매한 뒤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었고, 미국 연준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면서 큰 손해를 보았다. 12월 말 기준, SVB는 투자 손실로 인해 금융자산으로 발생한 이익이나 손실을 분류하는 기타포괄손익누계액이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이는 은행의 총 자기자본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장부상의 손해다. 즉 실현되지 않은 손실이라는 뜻이다. SVB는 여전히 미국 국채를 가지고 있고, 채무자인 미국 정부는 망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이 꺾이든 다른 어떤 이유에서든 연준이 금리 인상 폭과 속도를 줄이거나, 혹은 더 길게 봤을 때 다시 금리를 인하하게 되면, 국채 가격은 회복할 것이고, SVB의 투자 손실도 줄어들거나 심지어 플러스로 돌아설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희망의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그때까지 SVB에 예금을 넣어두고 있는 고객들이 돈을 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나 가능하다. 그러나 지난 며칠간, 이 고객들은 마지막 희망을 박살 냈다.

이러니 뱅크런이 발생할 수밖에
연준이 지속적인 금리 인상 의지를 밝히면서 시장에 풀렸던 돈이 말랐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서 거액의 투자금으로 버텨온 스타트업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2022년 2분기 이후 세 분기 연속 예금 잔고가 감소했다. 2020년에서 2021년까지 이어온 상황이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유동성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SVB는 유상증자를 시도했는데, 그 와중에 18억 달러(약 2조 3670억 원)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보유하고 있던 채권 210억 달러(약 27조 6150억 원)어치를 '현재 시장 가치'로 팔려고 나섰다.

당연히 증자는 실패했고, 은행이 위험한 것 같다는 신호를 감지한 고객들은 바로 다음 날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이른바 뱅크런이다.
 
여기에 2022년 말 현재 총예금 잔고 1731억 달러(약 227조 6270억 원) 중 무려 96%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지급 보증을 해주지 않는 초과금인 것으로 드러났다. (FDIC의 지급 보증 한도는 예금주당 25만 달러다) 최악의 경우 25만 달러(약 3억 2900만 원) 밖에 건지지 못하는 셈이니 고객들은 SVB의 현금이 완전히 고갈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돈을 빼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금융 당국은 일단 지난 금요일에 SVB를 폐쇄했다. 주말 내내 분주하게 움직인 끝에 일단 FDIC의 지급 보증 한도와 관계 없이 예금액 전액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해서 급한 불을 껐다. 예금자 보호를 위해 '산타클라라 예금 보험 은행(DINB, Deposit Insurance National Bank of Santa Clara)'을 설립하고, SVB의 예금을 전부 이 은행으로 옮겼다. 

지급 보증 한도 이내의 예금주는 월요일 오전에 즉시, 지급 보증 한도를 초과하는 액수에 대해서도 이번 주 내로 인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발표해서 SVB 사태가 금융 시장 전반에 불안을 전파하는 것을 차단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일요일 저녁에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의 은행 시스템은 견고하다"라며 국민들을 직접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영국에서는 리쉬 수낙 총리와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가 SVB 영국 법인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부쳤다. 일요일 저녁 늦게, HSBC가 단돈 1파운드에 인수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 결과 운명의 월요일이 다가오자 은행주들의 폭락은 피할 수 없었지만, 글로벌 증시는 SVB로 인한 위기가 제한적이라는 판단 (및 연준이 당분간 금리 빅스텝 인상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감) 하에 일제히 상승하며 블랙 먼데이의 공포를 떨쳐냈다. 

불과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미국 내 자산 규모 16위의 대형 은행 하나가 유상증자에 실패하고, 뱅크런이 일어나고, 도산 위기에 직면하고, 당국이 나서서 불을 껐다. 아무리 초스피드에 익숙해진 시대라 해도 숨이 찰 지경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사태가 수습 국면에 들어가면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누구의 책임이냐는 문제 제기도 즉각 머리를 들었다. 자넷 옐런 재무부 장관은 예금 보호와는 별개로 베일아웃(Bail-Out), 즉 공적 자금으로 구제 금융을 제공하여 회사를 회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혹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왜 갑자기 헷징 비용을 줄였는지 아직 이해하기 어렵다.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실책
SVB의 이해하기 어려운 실책도 이제 드러나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2022년 이후 금리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고 SVB가 보유하고 있는 채권 자산의 가치는 그만큼 쪼그라들고 있었다. 국채와 MBS라는 특정 자산에 투자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이 몰려 있었음에도, SVB는 헷징(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가격 변동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 장치)을 소홀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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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안젤라는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주목해야 할 거시경제 변화와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Long-from) 아티클입니다. 급격히 변하는 거시경제 지형 속에서 놓치지 않고 주목해야 할 이야기를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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