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태로운 폭스바겐의 전환기

[정인의 미래 경제사] 4화. 변화는 자주 오지 않지만 결국 빠르게 온다
2024년 3월 4일 월요일
폭스바겐은 독일 자동차 산업의 얼굴이자 독일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이기도 합니다. 폭스바겐이 멈춰 서면 그들과 협력하는 (사실상 함께 독일을 지탱하는) 수많은 중소 기업들도 어려워지며, 전반적인 산업 생태계에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죠. 근데 그런 폭스바겐이 전기차 시대를 맞이하면서 지금은 존재론적 위협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자동차 시장은 아직까지 전기차로의 거대한 전환이 일어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내연기관 차량은 여전히 생산이 잘 되어 잘 팔리고 있고, 주요 기업들 중에는 전기차가 대세가 되기 어렵다면서 내연기관 차량에 계속 집중하겠다고 선언을 한 곳도 있죠. 

하지만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은 이미 불가피해졌다는 것을 대부분이 인정합니다. 그리고 거대한 전환은 이미 기저에서 일어나는 중입니다. 아직도 꽤 많은 이들이 아직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거나, 그 변화를 애써 축소해 보려고 하는 것은 그 전환이 일어나는 중심축이 기존의 산업을 주도하던 중심축과는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내연기관 차량과는 완전히 다른 거대한 전기차 생태계의 중심축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국도 일부 몫을 하며)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고, 세계 3위가 된 독일 경제를 이끄는 폭스바겐은 전기차 시대에 자칫하면 변방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예상은 폭스바겐이 시의적절하게 전환을 한다면 보기 좋게 틀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보유한 거대한 생태계를 잘 운영하면서도, 새로운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어 순조롭게 전환을 이루어야 하는 현재의 상황은 너무 어려운 과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전기차 생태계를 가장 먼저 구축하고 자국 기업들로 인해 가장 먼저 소비자들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중국은 폭스바겐이 아주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시장이죠. 

"에이. 그래도 설마. 폭스바겐인데"와 같은 말이 떠오르셨다면, 오늘 [정인의 미래 경제사]를 통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폭스바겐이 그룹 산하의 그 멋진 차들을 지속 생산하고, 전통의 멋진 기업으로 소비자들의 인식에 계속 남으려면 더 빠르게 움직이면서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환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곧 보여줘야 합니다. 

[정인의 미래 경제사(史)]
위태로운 폭스바겐의 전환기
변화는 자주 오지 않지만 결국 빠르게 온다
이제 세계 3위가 된 독일이라는 경제 대국의 산업을 뒷받침하는 폭스바겐은 존재론적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독일차 위협하는 '불타는 지붕'?
지난해 7월, 폭스바겐 그룹의 CEO 토마스 셰퍼(Thomas Schäfer)는 경영진에 "지붕이 불타고 있다"라며 위태로운 폭스바겐의 미래를 경고했다. 폭스바겐은 아우디와 포르쉐, 벤틀리 같은 명품 자동차 브랜드를 소유한 세계 최대의 완성차 제조업체이다(2022년 매출액 기준). 팬데믹을 빠져나온 이후, 세계 경제가 불황의 초입에 서있지는 않은지 의심받는 동안에도 매출이 늘었다. 지난해 폭스바겐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16% 증가한 2351억 유로(약 339조 5500억 원)였고 차량 판매도 8% 증가해 680만여 대가 팔려나갔다. 같은 기간 벤츠와 BMW와 같은 다른 독일 브랜드의 성적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독일의 완성차 업체들은 쭉 뻗은 고속도로 끝에 가파른 낭떠러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만약 그 의심이 현실에 도래한다면 낭떠러지 아래에는 '중국'이라는 이름표를 단 거대한 용이 이들을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셰퍼의 경고 직후, 그와 이사회는 중국에 있는 폭스바겐 중국 본부인 브이스페이스(V-SPACE)에 방문했다. 중국에 있는 합작 파트너는 물론 중국 미디어와 간담회를 갖기도 했는데, 외신은 중국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한 행동이라고 해석했다. 방문 당시 등장한 '폭스바겐은 중국 속도(Chinese speed)로 가속 중이다'라는 문장이 해석의 포인트였다

‘중국 속도’는 중국의 고도성장 능력이다. 단순한 고속 성장을 일컫는 말은 아니고, 중앙에서 목표를 제시하면 일사불란하게 단결해 시행하는 등 중국 체제 안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만들어낸 고도성장 능력을 뜻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한강의 기적’ 같은 자부심이 녹아든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폭스바겐으로서는 당연한 PR 전략이었다. 중국은 폭스바겐의 최대 단일 시장이다. 지난 수십 년간 그룹이 벌어들인 수익의 절반 가량이 중국 시장에서 나왔다. 판매량이 줄어든 지금도 중국은 폭스바겐 그룹의 자동차 매출 중 3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폭스바겐을 포함한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전동화 전환이 느리기로 유명하고, 중국 자동차 시장의 구매자들은 빠르게 전기차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외제차 브랜드와 중국 자국 브랜드가 양분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사정은 다르다. 구매자의 80% 가량이 자국의 전기차를 선택한다. 

폭스바겐 그룹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20년 20%에서 2023년 14%로 하락했다. 전기차 시장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셰퍼 CEO가 말한 ‘불타는 지붕’의 정체다.  
폭스바겐의 중국 수요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미지: 로이터)
미국에도 중국에도 기댈 수 없는 사정
지난 2월, 미국 세관에서 항구에 도착한 폭스바겐 신차 수천 대를 압류하면서 이미 예고됐던 중국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값비싼 포르쉐 스포츠카와 SUV, 벤틀리와 아우디 차량 수천 대는 신장위구르에서 강제노동을 통해 생산됐을 수도 있는 부품이 포함된 상태로 미국에 도착했다. 폭스바겐은 부품을 공급한 업체에서 해당 부품의 출처가 중국 서부라고 밝히자 미국 세관에 그 사실을 알렸다. 폭스바겐은 해당 부품이 정확히 어떻게 생산됐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미국은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UFLPA)'을 제정해 2022년 6월부터 신장위구르에서 생산한 제품의 수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강제노동과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서다. 중국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강제노동으로 알루미늄을 생산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데 폭스바겐은 중국의 전기차 제조업체 SAIC모터스와 합작 투자 이다. SAIC모터스는 신장위구르 지역의 핵심 도시인 우루무치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 폭스바겐은 SAIC 외에도 여러 중국 기업과 합작 중이다. 기술 일부를 이전하는 조건으로 합작을 통한 중국 현지 투자는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1990년대부터 선택한 경영 전략이다. 심각한 기후변화로 전동화 전환 속도가 빨라진 2020년대 이전만 해도 이 전략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진퇴양난이다. 

독일은 생산설비도 파트너도 시장도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중국은 유럽이 정치적으로 결코 동의하기 힘든 상대다. 회색지대에 방치해 두었던 모순이 뾰족하게 드러난 것은 미국과 중국이 각자 공급망을 무기삼아 갈등 중이기 때문이다. 

중국 전기차 생산업체도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2023년 4분기, 중국의 전기차 생산업체인 비야디(BYD)는 전기차 52만 6000대를 판매해, 전기차의 대명사인 테슬라의 판매량을 4만 대 이상 따돌렸다. 지난해 연말, 비야디는 헝가리에 전기자동차 전용 공장을 설립해 유럽시장에 보다 직접적으로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독일 자동차 업계는 중국 시장 경영이 어려워진 것에 더해 유럽 안방에서도 중국 자동차 업계와 경쟁하게 됐다. 1990년대에 독일 기업들이 선택했던 바로 그 전략이다. 

결국, 폭스바겐 그룹은 에너지 고비용으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늦은 전동화에 거액을 투자해야 하는 시점에 닥쳐 있다. 경영진은 중국 현지에서 전동화를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중국 시장에서 전기차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면 독일이나 다른 EU 국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것보다 비용절감이나 수익성 면에서 나을 수 있다. 현재 중국 전기차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인 보호주의적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중국 속도'에 대한 언급에는 그런 속내도 깔려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또한 중국 좋은 일이라는 점이다. 독일의 중국 직접투자는 팬데믹 공급망 교란과 끝나지 않는 미중 무역 갈등 덕에 지난 3년간 급증했다. 지난해 독일 해외직접투자액 10.3%은 중국으로 갔다. 2018~2020년 사이 독일의 중국 직접 투자액은 평균 3%였다. 

폭스바겐 그룹은 미국 세관에 신장위구르산 부품을 자진신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에 공장을 세울 수밖에 없고, 중국에 공장을 세우면서도 줄어드는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성적표로 받아들고 있다.
BYD를 비롯한 중국 전기차 기업들과 전반적인 시장의 성장은 중국에서 폭스바겐의 추락을 당기고 있다. 
핵심 수요가 가장 큰 경쟁자가 된 상황
지난해 각국 경제성장률을 다루는 뉴스를 조합해 보면 재미있는 연쇄고리가 하나 발견된다. 우리나라가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당했고, 일본은 독일에 역전당했다. 명목 GDP에서 1968년 이후 55년 만에 독일에 밀렸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보면 일본은 잘 나가야 할 것 같은데 기술적 경기침체에 들어섰다. 일본을 이겼다니 독일의 경제성적은 괜찮을 것 같은데 막상 독일은 경제성장률 전망이 1.3%에서 0.2%로 크게 하향됐다고 한다. 독일은 지난 4분기 연속 1%로 낮은, 혹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나타냈다. 독일이 유럽경제를 짓누르고 있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현재 독일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독일의 산업구조 때문이다. 독일은 중후장대산업을 위주로 경제를 성장시킨 제조업 국가이며, 수출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공업에서 가격경쟁력은 에너지 가격에 크게 의존한다. 독일은 21세기에 들어서며 기후변화에 대응해 빠른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돌입했다. 나머지 부족한 에너지는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저렴한 천연가스에 의존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독일의 중후장대산업을 단숨에 고비용 구조로 바꿔 놓았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을 무기 삼아 유럽을 협박했는데, 독일이 이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 경제가 겪는 어려움에는 팬데믹 당시 뿌린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한 고금리도 한몫했다. 

지난 2월 19일, 독일의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독일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 수요 감소와 내수 소비 둔화, 고금리에 따른 투자 위축을 이유로 들었다. 독일 자동차산업 입장에서 바라보면 해외수요 감소란 결국 중국에서 독일 자동차를 덜 사고 있다는 뜻이다. 수출이 줄어들자, 독일의 하청 기지 역할을 하던 동유럽 경제도 어려워졌다. 

독일 자동차의 주요 수출 시장이었던 중국은 전기자동차가 주류로 올라서기 시작하면서 구매자에서 경쟁자로 포지션을 바꿨다. 폭스바겐은 중국 소비자의 선호에 따라 전동화를 서둘러야 하는 입장이다. 전동화에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투자를 줄이거나 동결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전동화가 잘되지 않으면 전기차는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전기차가 경쟁력을 잃으면 중국 시장은 더 멀어질 것이다. 
86년이 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되는 전통의 멋진 (내연기관) 차량들은 이제 회사의 미래를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 (이미지: 폭스바겐)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
내연기관 대신 2차 전지(배터리)를 동력 삼아 움직이는 자동차를 전기차라고 한다. 자동차산업에서 전동화(the electrification)'는 단순히 전기차를 의미하기보다는 포괄적이고 사업적인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차 공장을 새로 짓고 사업 포트폴리오와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며 기술개발과 비즈니스 파트너까지 포함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쟁쟁한 부품제조업체들에 납품받는 기술과 부품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배터리시스템(BSA), 배터리 상태를 측정 및 관리하는 BMS·BSA, 감속기를 일체화한 PE 시스템, 전기차 충전 시스템 ICCU, 증강현실 헤드업디스플레이(AR-HUD),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 등등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계보다 컴퓨터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자동차의 중심축이 기계공학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옮겨가는 역사적 순간을 지나고 있다. 

중요한 변화는 자주 오지 않지만 한 번 오기 시작하면 굉장히 빠르게, 그리고 쉽게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폭스바겐 그룹은 물론 독일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들은 전기차의 시대가 오리라고 진지하게 믿지는 않았던 듯하다. (다만 대표적인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는 듯도 하다) 하지만 전염병과 기후변화, 지정학적 분쟁이 그 '중요한 변화'를 단숨에 만들어냈다. 

2020년에서 2023년까지 3년간 직원 수가 20명 이상인 독일의 1차 하청업체는 700개 남짓에서 615개로 감소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3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기업 규모가 노동시장에 얼마나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지 생각해 보면, 폭스바겐 그룹은 거의 국가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산업을 거대한 축으로 삼아 다른 제조업까지 돌아가는 독일로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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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김정인입니다. 책 <오늘 배워 내일 써먹는 경제상식>,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의 저자입니다. 심각한 ADHD를 지녀 암기력과 주의집중력이 약해요. 덕분에 남들만큼 알아두기 위해 매사 원인 혹은 시작점부터 맥락을 찾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해로 암기를 대신한달까요. 직접 기운 맥락이 다른 이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때 기뻐합니다.

[정인의 미래 경제사(史)]는 미래에 중요하게 기록될 경제사적 사건 혹은 현상에 대한 해설을 전하는 롱폼 아티클입니다. 일어난 일을 통해 되짚어봐야 할 점을 찾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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