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테크와 반독점 전쟁의 서막

1화. 빅테크와 반독점 전쟁의 서막
2021년 1월 20일 수요일

오늘은 예고한 대로 새로운 아티클을 들고 찾아왔어요. 테크 및 미디어 전문 칼럼니스트인 사이먼의 롱폼(Longform)"테크 비즈가 바꾸고 있는 세상 모습을 짧지 않게 전해드립니다"를 기치로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찾아올 예정인데요. 뭐든 압축적이고 짧게 만드는 숏폼(Short-form)의 시대에, 충분한 맥락과 내용을 담아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테크 비즈의 주요 이슈 분석을 롱폼(Long-form) 형식으로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이야기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함께 담은 이야기를 전할게요. 

+ 기존의 화, 금 뉴스 콘텐츠 외 커피팟이 외부 기고자와 협업하는 첫 기획 아티클인데요. 차근히 그리고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랄게요.

[사이먼의 롱폼] #1화
빅테크와 반독점 전쟁의 서막
지난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미 연방의회 건물을 침입해서 난동을 피운 일은 미국의 헌법을 부정하는 심각한 사태였고, 그 일을 선동한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종료를 며칠 앞두고 두 번째 탄핵을 당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미국의 의회와 법무부가 실리콘밸리의 빅테크(Big Tech)를 상대로 준비 중인 반독점 조사와 무관해 보이지만,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 이 둘은 사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선 의회 침입 사건 직후 트위터가 마침내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적으로 사용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4년 동안 쏟아진 여론을 버티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 뿐 아니었다.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트위터의 이러한 조치를 예상하고 피난처 혹은 대안 트위터로 생각하고 있던 팔러(Parler)가 스마트폰 플랫폼 두 군데(안드로이드, iOS)에서 모두 퇴출당했고, 팔러에 서버를 제공하던 아마존의 웹서비스도 거래를 중단해버렸다. 트럼프와 지지자들은 그 밖에도 유튜브, 페이팔, 틱톡 등 다양한 거대 인터넷 플랫폼들로부터 퇴출당했고, 트위터는 폭력을 선동하는 극우 사용자들을 추척해서 계정을 삭제 중이다.

그런데 오바마 백악관의 홍보수석이었던 제니퍼 팔미에리(Jennifer Palmieri)는 플랫폼 기업들의 이런 발 빠른 행동을 상원의 향방을 결정하던 조지아주의 상원의원 결선투표와 관련지어 해석했다. 사건이 일어난 날 민주당은 조지아주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공화당으로부터 상원을 되찾아왔다. 그 얘기는 상원의 각종 위원회가 민주당의 손에 들어온다는 얘기였고, 무엇보다 반독점 조사, 심사를 민주당이 주도하게 됨을 의미했다. 팔미에리는 플랫폼을 가진 빅테크가 트럼프와 지지자들을 퇴출한 것은 곧 시작될 바이든 행정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자세를 취한 것으로 해석한다.

빅테크는 바이든에게 '좋아요'를 날렸다.
되짚어 보는 '반독점 패러독스'
그렇다면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빅테크의 반독점 혐의를 어느 정도의 강도로 다룰까? 아직 정확한 그림은 나오지 않았지만, '인사가 만사'라는 점은 미국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봐야한다. 현재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사라 밀러(Sarah Miller)라는 인물이다. 미국경제자유프로젝트(American Economic Liberties Project)를 이끄는 밀러는 그동안 미국 빅테크의 반독점 혐의를 꾸준하게 지적해온 사람으로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러는 "지난 12년 동안 독점의 힘이 초래한 위기가 커져 왔다"면서 독점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심각한 제도적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인 '소비자의 복지(consumer welfare) 이데올로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AELP)의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소비자의 복지(consumer welfare) 이데올로기', 이게 무슨 뜻일까?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독점이 아니다"
독점의 여부를 판단할 때 소비자의 복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이론은 1970년대 미국 법무부에서 일하기도 했던 판사 로버트 보크(Robert Bork)가 자신의 유명한 저서, <반독점 패러독스(The Antitrust Paradox)>에서 주장한 것이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독점의 개념은 우리에게도 유명한 20세기 초 독점기업들의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존 D.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Standard Oil)이다. 많은 석유회사들을 인수하거나 가격을 낮춰 무너뜨려서 시장을 장악한 후 휘발유 가격을 높여 이윤을 챙긴 대표적인 독점기업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시장도 기업도 변하면서 시장을 독점한 기업이 반드시 나쁘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기업은 규모가 커질수록 원자재 수급 등의 가격 협상에 유리하고, 그렇게 해서 소비자가 지급하는 가격이 낮아진다면 시장을 독점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을 쪼갤 필요가 없다는 것이 바로 보크의 주장이었고, 흔히 보키즘(Borkism)이라 불리는 이 이데올로기는 1970, 80년대 이후로 미국의 정부와 법원이 독점을 바라보는 시각을 크게 바꿔놓았다.

경쟁을 없애야 하는 테크 시대로 진화
이 덕분에 많은 기업이 독점의 혐의를 벗어나 사업을 할 수 있었지만, 이 보키즘에 현재 가장 절실하게 의지하고 있는 것은 2000년 전후로 급속도로 거대화된 인터넷 기업들이다. 특히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처럼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용자 정보를 사용한 타겟 광고로 수익을 내는 기업들의 경우 독점은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변한 인터넷 비즈니스의 영향으로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독점이 아니라는 보키즘은 "경쟁은 루저들이나 하는 것(Competition is for losers)"이라는 피터 틸(Peter Thiel)의 <제로 투 원(Zero to One)>에 이르게 된다.

PC는 만들었지만, OS는 못 만들었다.
IBM,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지 않고 IBM에 운영체제(OS)를 공급해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IBM은 하드웨어를 만들면서 왜 운영체제, 즉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지 않았을까? 스티브 잡스가 "소프트웨어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업은 하드웨어도 직접 만들어야 한다(People who are really serious about software should make their own hardware)"라는 원칙으로 지금의 애플을 만들어냈다면 IBM도 당시에 그걸 몰랐을 리 없을 텐데 말이다.

IBM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못한 이유
그 배경에는 바로 미국 정부가 1969년부터 1982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IBM의 독점혐의를 두고 벌인 길고 긴 전쟁이 있었다. 미국의 반독점법 위반 조사와 재판은 1, 2년 안에 끝나지 않는, 길고 긴 과정이다. 그리고 그 긴 싸움은 기업의 사고방식을 바꿔 놓는다고 알려져 있다. 자신들이 만든 기업이 쪼개지는 걸 막기 위해 정부, 법원과 전쟁을 치르면서 독점 혐의에 대해 치가 떨리는 사람들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IBM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면서 운영체제를 만들 생각을 못 한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까지 만들었다가 또다시 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들었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을 사지 못한 이유
반독점 재판에 시달렸던 IBM의 악몽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업의 기회를 잡았고, 1980년대 PC 성장의 최대 수혜자가 되면서 시장을 장악하자 미국 정부가 이번에는 마이크로소프트로 반독점의 칼날을 돌렸다.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조사는 마지막 판결까지 7년이 걸렸다. 재판이 끝난 2001년이면 구글이 검색 엔진으로 시장에서 주목을 끌고 있던 시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유망해 보이지만 아주 작은 스타트업에 불과한 구글을 사버릴 수 있었다. 구글의 창업자들도 검색 엔진으로 사업을 할 생각이 없었고, 적당한 매수자를 찾는 중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성사 가능한 딜이었겠지만,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진은 (IBM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표적이 되는 게 두려웠다.

반독점 흐름이 만들어낸 빅테크의 탄생
1990년대의 마이크로소프트가 1970, 80년대의 IBM 반독점 소송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구글은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 소송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두 케이스 모두 기업이 정부의 반독점 소송에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두 기업은 독점 혐의를 벗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미국 정부는 업계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데 성공했고, 그 소송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테크 업계의 거대 기업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진행될 (전문가들은 10년도 걸릴 수 있다고 전망한다) 반독점 소송 역시 그렇게 실리콘밸리의 테크 산업의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승리해서 빅테크 기업 중 하나라도 쪼개지면 엄청난 일이지만, 모든 기업이 소송에 승리해도 현재와 같은 행동은 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실리콘밸리가 어떤 문제가 있길래 그럴까?

모노폴리는 무너질까?
빅테크의 킬존(Kill Zone)에 들어가면
실리콘밸리의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이렇게 생각해보면 된다. 차세대 검색엔진이 등장해서 구글을 누를 수 있을까? 차세대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이 등장해서 아마존을 누르고 승리할 수 있을까? 안드로이드나 iOS를 넘어서는 새로운 스마트폰 운영체제가 등장해서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상식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실리콘밸리의 창업가들이 불가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일 수 있을지 몰라도 벤처 투자자들은 창업가와 전혀 다른 동물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천재 창업가들 중에서 정말로 성공할 만한 사람들을 골라내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아마존을 꺾는 이커머스 업체를 만들겠다"는 창업가에게 투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 이유는 창업가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아마존의 규모와 자본에서 나오는 힘에 맞설 만큼의 투자를 할 수 있는 투자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라 불리는 대기업들이 대부분 마찬가지로 자기 영역에서 2인자의 성장을 철저하게 차단할 규모와 힘을 갖고 있다. 그들의 사업영역을 킬존(kill zone)이라 부른다. 그 영역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기도 어렵고, 용케 사업을 키워나간다고 해도 싹이 보이는 순간 1인자가 나타나서 인수하거나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자신의 경쟁자로 여긴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을 사버렸고, 사지 못한 스냅(스냅챗)의 경우 그들의 독창적인 제품을 철저하게 베껴 자신들의 앱에 적용해버렸다.

반독점 소송은 산업의 지형을 바꾼다
물론 이런 반론을 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IBM과는 전혀 다른 비즈니스를 했고, 구글도 마이크로소프트와 전혀 다른 비즈니스를 했다면, 차세대 기업들도 아마존, 구글 등과 같은 영역이 아닌,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금의 빅테크는 자신의 주력 종목에서의 경쟁자들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하는 기업들도 사버리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작가이자 테크 전문가인 코리 닥터로우(Cory Doctorow)는 구글이 성공적인 제품을 몇 개나 만들어냈느냐고 묻는다. "구글이 직접 만들어서 성공시킨 제품은 1.5개다. 검색엔진이 하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핫메일을 발전시킨 G메일이 다른 하나(0.5개)다. 유튜브, 안드로이드 같은 성공적인 제품, 서비스는 전부 인수한 것들"이라는 게 닥터로우의 주장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실리콘밸리의 반독점 소송은 언제 어느 쪽이 승리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 결과 분리되는 기업이 나올 수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주 긴 싸움이 될 거라는 사실, 그리고 재판의 결과와 상관없이 실리콘밸리의 관행과 경영진의 생각을 바꾸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거대한 소송의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기업들이 자랄 공간이 탄생할 것이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미국 반독점 소송의 힘이다.
☕️ 글쓴이 소개
사이먼(Simon)의 한글 이름은 박상현이다. 현재 조선일보, 중앙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에 테크산업과 미디어 및 사회에 관한 칼럼을, 피렌체의 식탁과 씨로켓 브리핑의 뉴스레터에 각각 미국정치와 미디어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메디아티(Mediati)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뉴욕의 페이스 대학교(Pace University)에 방문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라스트 캠페인> 등의 역서가 있다. 이제 커피팟에도 글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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