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텔의 컴백이 필요한 이유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8화. 그로기 상태인 왕의 귀환은 가능할까?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은 재작년부터 본격화되었고, 이제 미국은 본격적으로 반도체 칩의 생산 공정까지 본토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를 미국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길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주요 생산 기반을 해외로 옮긴 지 오래이고, 인텔과 같은 대표 기업은 메모리 칩 사업에서 철수하는 등의 실책이 이어지면서 지난 몇 년간은 특히나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의 전체 동력이 커지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져 왔죠. 

이런 상황에서 다시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기업은 바로 인텔이라고 지목되고 있는데요. 실적까지 크게 떨어진 이들이 과연 멈추었던 혁신 동력을 만드는 길을 갈지 그리고 턴어라운드를 만들 수 있을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미국 v 중국, 반도체 전쟁의 의미에서 짚어 본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시작된 상황에 이어, 현재 미국이 만들어 가려는 반도체 산업 재편의 본격적인 계획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업인 인텔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인텔이 결국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짚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매출이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그로기 상태인 인텔의 화려한 컴백은 과연 가능할까요?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로 보입니다. 인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돌아보는 오늘 이야기를 우선 보고 다시 생각해 볼 질문이고요.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 8화.
인텔의 컴백이 필요한 이유
그로기 상태인 왕의 귀환은 가능할까?
독후감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2022년 하반기 미국 서점가에서 최고의 화제가 된 책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터프츠 대학교 국제관계학 및 경제학사 교수인 크리스 밀러(Chris Miller)의 <칩 워 Chip War>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칩 워>는 반도체라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한 상품의 탄생부터 이르게는 소련과의 냉전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최근 중국과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반도체가 미국의 대외 정책과 전략에서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2021년부터 노골적으로 격화된 미-중 반도체 전쟁의 뿌리와 향후 미국이 나아갈 방향성의 선택지들을, 업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자인 밀러 교수 본인도 반도체 관련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반도체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집적회로 트랜지스터의 원리부터 아주 쉽고 간명하게 설명해 준다. 비전공자 혹은 전형적인 '문과생'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아직 번역 출간 전인 국내에서조차 소셜미디어를 달굴 정도로 관심이 높은데, 이는 반도체 관련 산업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의 기대와 우려를 모두 반영하고 있는 현상일 것이다.

지극히 일방적으로 미국의 시각에서 쓰여진 책인 데다, 나름 대만과 함께 반도체 생산의 글로벌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시피 한 점이 아쉽지만, 그 대신 반도체라는 하나의 상품을 중심으로 미국이 그리고 있는 향후 국제 관계의 지형도를 엿보는 데에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 
<칩 워>의 미국판 표지(왼쪽)와 유럽판 표지. 표지 디자인의 '미묘한' 차이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생산'
작년 여름, 미국은 소위 '반도체 법(CHIPS Act)'를 민주·공화 양당의 압도적인 지지로 의회에서 통과시키며 미국 내 반도체 연구 개발 및 생산을 위한 520억 달러(약 69조 1080억 원)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향후 8년간 240억 달러(약 31조 8960억 원)의 세제 혜택은 별도 예산으로 책정됐다.

"칩 워", 즉 전쟁을 방불케 하는 비장한 각오로 미국이 팔을 걷어부친 배경에는 원조 반도체 강국으로 글로벌 경제를 쥐락펴락하던 1990년대 이후 불과 20년 만에 세계 시장 점유율 12%로 쪼그라들어 버린 미국의 반도체 생산 산업의 위기감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생산'이다.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미국은 여전히 수위를 지키고 있다. 문제는 1990년대 이후 반도체가 빛의 속도로 진화를 거듭하며 세계 반도체 산업은 흔히 "글로벌 공급망"이라 불리는 분업 체제로 운영되어 왔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미국에서 설계한 반도체를 유럽과 일본이 제조한 장비로 한국과 대만이 생산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분업 체계는 각국의 인적, 물적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자 자유 무역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혀 왔는데, 2010년대 후반 들어 중국이 패권국가로서의 야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기 시작하자 미국은 이제 설계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굳힌 듯하다.

(크리스 밀러는 여기에 더해 고성능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역량이 집중된 동아시아 지역 - 한국, 대만, 일본 - 이 지진과 전쟁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팬데믹으로 인한 반도체 공급 부족 쇼크, 그리고 뒤따라온 인플레이션으로 호되게 골머리를 앓았던 미국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자각이다.)

CHIPS 법의 골자는 미국의 반도체 산업 리쇼어링(Reshoring, 생산비와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해외로 옮긴 생산 시설을 다시 자국으로 옮겨오도록 하는 것), 즉 미국 국내에서 반도체 산업의 전과정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당연히 지난 수십 년간 취약했던 장비와 생산 분야를 따라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반도체 생산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다. 공장 한 개를 지으려고 해도 최첨단 기술과 장비는 물론 그 공장을 실제로 돌아가게 하는 인적 자원과 노하우가 필요한,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종합 예술이다.

단순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지난 세월을 만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말처럼, 결국 대규모 반도체 생산을 해본 경험과 지식 자산이 있는 회사가 필요하다.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인 퀄컴과 엔비디아, AMD는 사실상 설계만을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회사들이다. 하지만 미국이 기댈 곳이 아예 없는 곳은 아니다.

무려 세계 최대의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지금도 여전히 양산을 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바로 인텔이다. 
왼쪽 사진은 왼쪽부터 차례로 1978년의 앤드류 그로브,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의 모습이다. 인텔은 양산이 가능한 종합 반도체 기업이고, 미국이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계속 가져가기 위해서는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인텔이다
사실 미국 반도체 산업이 지금과 같은 구조를 가지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인텔이다. 1968년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고든 무어(Gordon Moore)가 창립했고, 두 사람의 페어차일드 반도체 시절 동료인 앤드류 그로브(Andrew Grove)가 합류했다. 세 사람 모두 반도체 업계에서 그야말로 전설 그 자체라는 사실만 보아도 20세기 후반 인텔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인텔은 처음에는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1970년대 이후에는 프로세서 반도체에 집중한다. <칩 워>에 따르면, 같은 반도체 중에서도 메모리 반도체는 저가의 노동력과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인 분야인데, 다름 아닌 일본이 바로 이 전략으로 치고 나왔다.

도시바, 후지쯔, NEC와 같은 일본 기업들은 일본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스파이들을 대거 고용하여 미국 반도체 기업의 핵심 기밀을 빼내기를 밥 먹듯이 했다. 

당시는 플라자 합의 전이었고,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일본의 가격 공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20년 후 중국 기업들의 행보와 상당히 비슷하다) 메모리 가격이 반토막 나면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줄줄이 경영난에 직면했다. 비메모리 섹터로 사업을 피벗하고 반도체 설계에만 집중, 생산은 생산 전문 기업(파운드리)에 위탁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였던 인텔의 사업 철수는 뼈아팠다. 
특유의 멜로디도, 특유의 마크도 모두 그 시대를 상징했다. 이때는 다른 기업들이 인텔을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 Intel Corporation
이어지지 못한 "인텔 인사이드"
1985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거액의 영업 적자를 기록하자 당시 사업 담당 부사장이었던 그로브는 무어에게 달려갔다.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 '메모리 칩의 아버지들'이었지만, 회사가 휘청일 지경에 이르자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결국 인텔은 1985년, 대규모 정리해고와 함께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를 선언한다.

메모리 사업은 접었으나, 프로세서 반도체에서 인텔은 승승장구했다. 때는 바야흐로 가정용, 일반 오피스용 PC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다. 1990년대까지 시판되는 거의 모든 PC에는 인텔의 CPU가 탑재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1980년대 초중반 이전 출생자라면 마지막에 "인텔 인사이드"라는 멜로디가 포함된 PC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메모리의 아픈 추억을 잊고 프로세서 반도체에 집중한 인텔은 경쟁자인 AMD를 성능 면에서 압도하며 시장 밖으로 밀어냈고, 이제 인텔 없는 컴퓨터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인텔 제국에는 해가 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에 지금 인텔과 AMD의 희비를 가르는 결정적인 산업의 역사 페이지가 시작된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개인용 컴퓨팅 디바이스는 PC에서 모바일로 대전환을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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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바일 시대 이후 반도체 산업은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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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안젤라는 한국과 일본의 최대 인터넷 기업에서 IPO, M&A, 지분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한 후,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글로벌 IT 기업과 자본 시장, 거시경제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하여, 페이스북에 소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 여러 책도 우리 말로 번역한 바 있다.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은 주목해야 할 거시경제 변화와 그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하는 각 산업의 이야기를 전하는 롱폼(Long-from) 아티클입니다. 급격히 변하는 거시경제 지형 속에서 놓치지 않고 주목해야 할 이야기를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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