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일러 스위프트가 만든 계기

[키티의 빅테크 읽기] 17화. MS의 액티비전 인수가 쉽지 않을 수도 있는 이유
빅테크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지원을 받으며 나섰던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위원장인 리나 칸(Lina Khan)에 대한 기대감은 최근 많이 사그러들기도 했습니다. 불경기가 이어지는 경제 상황과 빠르게 변하는 산업 지형 속에서 FTC가 갈피를 못 잡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죠.

하지만 최근 하나의 뜻하지 않은 사례가 갑자기 '반독점'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도록 만들었고, FTC는 12월 들어 지금까지 준비해 온 케이스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중이에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선 소송은 적어도 리나 칸 임명 이후 가장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빅테크 케이스입니다. 이에 따라 FTC와 리나 칸 위원장의 존재감도 다시 커지는 중이고요.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침 오늘 FTC의 소송에 대한 대응 답변을 제출했는데요. "게이머들에게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옵션을 주게 된다"가 논리의 골자가 된 것으로 보여요. 소송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는 듯 보이지만, 최근 달라진 기류에 긴장감이 돌고 있는 분위기이기도 해요.

어떤 사건이 바로 이 타이밍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반독점 케이스로 옮겨가게 했을까요? 그리고 메타에 대한 반독점 소송은 마이크로스프트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FTC가 진짜 승산 있는 싸움을 하는 것일까요?

오늘 [키티의 빅테크 읽기]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여러 사례를 짚으며 전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뿐만 아니라 향후 빅테크에 대한 반독점 케이스 전체 국면에 어떤 영향이 끼쳐질지 가늠할 수 있는 힌트가 되기도 합니다.

[키티의 빅테크 읽기] 17화.
티켓 판매 독점이 만든 계기
MS의 액티비전 인수가 쉽지 않을 수도 있는 이유
테일러 스위프트가 만든 계기?

"이 사건으로 많은 Z세대가 하룻밤 사이에 반독점 전사로 돌아섰어요. 제가 했던 그 어떤 조치보다 더 많은 반독점 반대세력이 생긴 셈이죠."

12월 6일 월스트리트저널 'CEO 카운실(Council)' 행사에 참석한 리나 칸(Lina Khan)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이 웃으며 한 말이다. 칸 위원장이 언급한 ‘이 사건’이란 미국 최대 티켓 예매 사이트인 티켓마스터(Ticketmaster)에서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 예매를 했다가 중단한 사태다. 

미국의 팝 아이콘인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는 11월 초 새 앨범 발매와 함께 2023년에 진행될 미국 20개 지역 콘서트 사전예매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번 사전 예매처인 티켓마스터에 수많은 팬들이 접속하면서 웹사이트 접속이 수시로 끊기고 오류가 잇달아 발생해 티켓 예매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봇(bot)을 동원해 티켓을 산 암표상들이 웃돈을 얹어 팔면서 푯값이 최대 4700만 원까지 치솟았다. 

결국 티켓마스터는 11월 18일 티켓 판매를 취소했다. 당연히 Z세대 팬들(그리고 Z세대 자녀 대신 티켓을 예매하려 시도한 부모 세대)의 분노는 티켓마스터에 집중됐다. 미 상원에서 티켓마스터 대표를 소환해 청문회를 열 정도로 파장은 확산됐다. 

티켓마스터는 단순한 티켓 판매 사이트가 아니라 미국 티켓 판매량의 80%를 차지하는 독점 기업이다. 이들은 과거에도 과도한 수수료율로 1990년대 록그룹 펄 잼(Pearl Jam)에게 소송을 당하는 한편 인기 공연을 예매하러 접속한 회원들을 자회사 사이트로 유도해 더 비싼 티켓을 파는 등의 행위로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0년 세계 최대의 콘서트 기획사 라이브네이션(LiveNation)이 이런 티켓마스터를 인수한다. 이로써 라이브네이션은 유명 팝스타 독점계약, 콘서트장 운영, 티켓 판매까지 콘서트 업계를 수직계열화한 사실상의 독점 기업이 됐다. 

라이브네이션은 티켓마스터를 인수하면서 공연 기획에 드는 다양한 과정을 간소화하여 시장에 도움이 될 것이란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티켓마스터는 암표상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인기 공연 수요에 따라 가격을 변동시키는 '다이나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을 도입해 팝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티켓마스터에서 예매된 인기 록스타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2023년 콘서트 투어 티켓은 다이나믹 프라이싱 정책에 따라 1000~4000달러를 호가하기도 한다. 

칸 위원장은 월스트리트저널 행사에서 "라이브네이션-티켓마스터 합병 당시에도 수직적 결합(vertical integration)에 따른 경쟁침해와 서비스 품질저하의 우려가 있었다"며 "이렇게 몸집이 너무 커지면 고객의 목소리에 신경 쓸 이유가 없어진다(too big to care)"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테일러 스위프트 팬들은 독점 기업의 소홀한 고객 서비스의 피해자가 된 셈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FTC가 ‘세기의 테크기업 결합’에 제동을 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Activision Blizzard, 이하 액티비전) 인수 합병 계획에 FTC가 소송을 제기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은 의도치 않게 반독점에는 관심도 없던 이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이미지 출처: 티켓마스터) 

다른 빅테크와 다른 포지션 
2021년 한때 애플보다 시가총액이 커질 정도로 다시 빅테크로 성장한 MS의 액티비전 인수가 성사된다면 MS 역사상 가장 큰 인수합병이자 최근 보기 드물었던 빅테크 기업 간의 결합이 된다. 액티비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FPS(First Person Shooter) 게임인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를 비롯해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하스스톤', '오버워치' 등의 게임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인 캔디크러시를 만든 킹(King)도 소유하고 있다. 

MS가 액티비전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건 올 1월이다. 빅테크를 규제하고 나서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던 리나 칸이 FTC로 오며 기업 간에도 대형 인수합병을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MS가 과감히 나선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우선 액티비전이 매물로 나온 타이밍이다. 액티비전이 처한 기업 위기 때문에 좋은 조건이 제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액티비전은 2021년 직장 내 성차별, 성추행, 그리고 경영진들이 이를 묵인한 혐의로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대형 소송을 당했다. 사건 후 직원들은 파업을, 이용자들은 이용 거부를 선언했고 결국 매각 결정에까지 영향을 준다. 

둘째로 MS가 그동안 쌓은 나름 좋은 기업이미지가 인수합병에 결정적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여론 측면에서 불리하진 않다. MS는 20년 전 이미 반독점 소송을 겪었지만 그런 사건을 겪고도 빅테크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는 만큼 ‘좋은 기업시민’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직원 다양성 분야에서도 MS는 좋은 이미지다. 여러 이슈로 기업문화 내홍을 겪고 있던 액티비전 인수가 가능한 빅테크는 MS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만약 메타가 나섰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테크 기업들이 줄줄이 의회에 반독점, 노동, 소셜미디어 콘텐츠 조정 이슈로 소환될 때에도 MS는 비껴갔다. MS가 강점을 보이는 클라우드 및 엔터프라이즈 제품 분야는 다른 빅테크와 비교할 때 소비자와 직접 상대할 필요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이미 역사 속 큰 승리가 있는 MS
MS는 액티비전 인수 발표 후 FTC를 의식한 듯 여러 조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예를 들어 콘솔 게임 1위인 플레이스테이션을 보유한 소니에 최고 인기 게임 ‘콜 오브 듀티’의 향후 10년 계약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유저들이 ‘콜 오브 듀티’를 가장 많이 하는 콘솔 기기가 플레이스테이션이기 때문이다. 

MS가 소유한 게임 비즈니스는 중국(텐센트), 일본(소니) 업체들보다 규모가 훨씬 작다면서 인수에 정당성을 계속 부여하는 여론전도 펼쳤다. MS가 이렇게 먼저 굽히고 나온 건 일종의 노하우다. 지난 20년간 미국에서는 기업 인수합병을 경쟁 당국(FTC)이 조건을 달아 상당수 승인했다. 빅테크 기업이 몸집을 불린 원동력이기도 하다. 반독점 소송으로 가더라도 당국의 우려 사항에 대한 양보안을 내놓으면 법원이 기업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다름 아닌 20년 전의 MS다. MS는 1990년대 말 압도적인 PC 운영체제인 윈도우에 웹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며 경쟁자 넷스케이프를 고사시켰다. 2000년 반독점 소송 1심에서 법원은 MS 분할 명령을 내렸지만 항소에 나선 MS가 당시 새로 들어선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법무부와 타협하여 회사 분할을 피했다. 2002년 법원은 MS에게 ‘공정한 경쟁 보장 조치’를 명령하며 소송을 종결했다.  

그러나 2022년의 FTC는 2002년 FTC가 아니다. 리나 칸과 함께 반독점 강경파로 꼽히는 팀 우(Tim Wu)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대통령 기술·경쟁정책 특별보좌관이 컬럼비아 대학 교수 시절 쓴 책 <빅니스 (The Curse of Bigness)>에서도 이런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유럽(경쟁 당국)에서는 수년간 MS를 추적하면서 기업 해체를 목표로 삼는 대신 MS 윈도우 미디어플레이어가 아닌 다른 걸 선택할 옵션을 주라고 지시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MS를 사용하며 다른 미디어 플레이어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실패한 해결책의 전형이다."

그 당시 윈도우의 위용은 대단했다. 이때부터 인터넷 산업의 경쟁과 혁신에 대한 논의가 본격 시작되기도 했다.

"이번 건은 커도 너무 커"
이렇듯 인수합병을 일단 허가하고 조건을 느슨하게 다는 기존의 반독점 정책은 산업 경계와 국경을 넘나드는 테크 기업에 있어서는 특별히 더 효과가 없다는 게 지금 미국 반독점 정책을 이끄는 행정부 수장 3인방 – 리나 칸, 팀 우, 조나단 캔터(Jonathan Kanter) 법무부 반독점국장 – 의 생각이다. 

다만 대형 인수합병에서는 조건을 더욱 강화한 반독점법 통과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번 의회에서는 중간 선거 이후 맞이한 소위 레임덕 세션(선거 후 퇴임하는 의원들이 포함된 의회 회기) 동안 반독점법 통과가 어렵게 됐다. FTC 입장에서는 고래가 고래를 삼키는 격인 MS-액티비전 인수합병을 손봐야 한다는 의지는 확실하지만 강화된 법이 없으니 입법적으론 도움을 못 받게 된 거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서 워낙 인수합병을 너그럽게 허가해 준 지라 소송에 가더라도 FTC가 결코 유리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크계 최대 합병 사례에 FTC가 대응하지 않는다면 다른 작은 건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더욱 어렵다. 바로 이게 FTC가 MS-액티비전 인수에 소송을 제기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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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를 소개합니다
키티의 한글 이름은 홍윤희이다. 이커머스 기업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소셜임팩트를 담당한 바 있다. 딸의 장애를 계기로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자는 취지의 협동조합 무의(Muui)를 운영하며 2021년 초 카카오임팩트 펠로우로 선정됐다. IT, 미국 정치, 장애, 다양성, 커뮤니케이션 등의 주제를 넘나들며 페이스북브런치에 글을 쓴다. 한국일보, KBS 제3라디오, IT뉴스 미디어인 아웃스탠딩 등에 정기 기고와 출연 중이다.

[키티의 빅테크 읽기]는 미국 빅테크와 테크 산업이 끼치는 경제사회 및 정치적인 영향에 대해 다루는 롱폼(Long-form) 아티클이에요. 전체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맥락과 행간을 놓치지 않는 시선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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